상파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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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야하지 않은 이야기지만 마땅히 아무데나 올릴만한 글은 아니기에 몇 자 적어봅니다.
해외 첫 출장지였던 브라질의 수도이자 남미 최대의 도시 상파울로.. 공항에서 대한항공 직원이 그러더군요 상파울로 가시는 손님은 존경스럽다고. 비행시간만 26시간이더군요.
로스앤젤레스에서 잠깐 내렸다가 기장을 포함한 승무원이 전부 물갈이하고 다시 출발.
그 때가 우리나라는 96년도 설 연휴기간이었고 브라질은 카니발(브라질 발음은 까나발이더군요) 기간이었습니다. 출장 갔던 업무는 그럭저럭 끝나고 카니발 마지막날...
원래 카니발 축제는 리오가 알아주지 않습니까? 전 카니발은 길거리에서 하는 퍼레이드인줄 알고 있었는데 카니발 경연을 하는 경기장이 따로 있더군요. 그 경기장 입장권은 몇 달 전에 매진이 된다더군요.
마치 우리나라의 태권도장식으로 브라질에는 삼바스쿨이 상당히 많은데 상파울로 지역의 한 삼바스쿨이 학예회식으로 상파울로 어느 거리에서 퍼레이드를 한다고 해서 구경을 갔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웬만한 대학축제는 저리 가라할 정도로 엄청나더군요.
사진으로만 보던 티백모양의 팬티만 걸친 채 삼바를 추어대는 탱탱한 브라질 아가씨들... 촌놈 정말 정신 없이 눈 돌아갔죠. 마침 가지고 간 캠코더로 마구 찍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슴을 노출한 '퀸'에 해당하는 아가씨를 카메라로 찍으려고 하자 삼바스쿨 선생님인 듯한 노인이 그 아가씨의 가슴을 팔로 받쳐 올려주더군요. 참으로 희안한 나라였습니다.
그렇게 한 바탕 흐드러진 분위기에 젖어 상파울로 환락가의 한 술집을 갔습니다.
길거리에 차를 주차시키는데 그곳의 거지가 주차비를 받습니다. 그 대신에 그 거지는 차를 지켜주더군요, 거지들 간에도 관리하는 주차영역이 있고 거지에게 주차비를 내지 않는 차는 유리창이 깨지는 등의 해꼬지를 당한답니다.
그곳 현지 직원 분 중에 싸스콰치를 연상케하는 분이 있었는데 골치아픈 잡다한 문제를 뒷골목 방식으로 해결하시는 분으로 추정되더군요. 그 분의 안내 덕에 저렴하고 안전하게 술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무대에서는 몇 십분 간격으로 전라의 스트립쇼가 진행되고 스트립 쇼가 끝나면 술집에서 고용된 각종 라틴, 흑인, 원주민혼혈의 아가씨들이 삼바를 추더군요. 물론 손님은 아무 아가씨나 골라서 같이 춤을 출 수 있구요.
술집의 아가씨들은 손님들이 사주는 음료수 값의 몇 퍼센트를 받는 식이더군요.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이 채 안 되는 음료수 값으로 맘에 드는 아가씨를 옆에 앉혀놓고 맘대로 피아노를 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맘에 드는 점은 음료수 한 잔이면 무척 고마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사달라고 조르는 것도 없고. 다른 파트너로 바꿔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잠깐 앉혀서 이야기하는 정도는 굳이 음료수를 사주지 않아도 되고...
우리나라 룸싸롱 여직원들을 생각하면 정말 천국이 따로 없더군요.
술값이 싸서가 아니라 '돈'을 밝히지 않는 점이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게 놀던 중.. 무대에서 춤을 추는 자그마한 금발의 빨간 바지 아가씨가 눈에 띄더군요
눈이 몇 번 마주쳤습니다. 나보고 나오라고 손가락을 까닥거리더군요. 내가 나가질 않으니까 제자리로 오더니 옆에 앉아도 되냐고 하더군요. 당연히 앉으라고 했죠.
제 다리 위에 앉아 춤추고 껴안고. 제가 좋답니다. 오늘밤 같이 자지 않으면 칼 맞겠더군요. 당시 33이 되도록 결혼 못한 한심한 제가 마다할 리가 있겠습니까. 가기 싫다는 것도 끌고 갈 판인데..
생애 최초로 이국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기념비적인 날이었습니다.
숙소인 호텔로 가서 일단 한 게임을 끝내고...
그곳의 털도 금발이더군요 털이 금발이라 그런지 속된말로 백xx처럼 보이더군요.
썬탠을 어찌나 진하게 했던지 옷을 벗어도 하얀색 비키니를 입은 것처럼 보이더군요.
장난삼아 캠코더를 들이댔더니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포즈를 취해주더군요.
웬 떡이냐 싶더군요. 그 비디오 우리 집사람에게도 보여줬더니 별로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더군요. 하지만 총각 때 일이니까 어쩌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한 게임을 끝내고 시간도 새벽 2시가 넘어서 샤워를 끝내고
한 숨 차려고 하는데... 이 아가씨가 손가락 5개를 펼쳐 보이며 뭔가 얘기를 하는 겁니다.
영어도 못하는 놈이 포르투갈 말을 어찌 알아듣겠습니까? 브라질 사람들도 영어는 거의 못하더군요. 우리나라 애들처럼 팁을 요구하나보다... 별 생각 없이 돈을 줬는데 아니라는 겁니다. 돈은 완강히 거부하더군요. 거의 30분 이상을 손짓 발짓으로 얘기해 본 결과..
5번을 뽀끼뽀끼(Fuck) 해야 한다는 겁니다.
결국 5번은 했습니다만... 그 이후로 여태까지 앞으로도 그렇게는 못 할겁니다.
우리 집사람이 가끔씩 놀려댑니다. "어떤 년은 하룻밤에 5번 해주고..."
그리고 그 아가씨가 항문섹스를 요구하더군요.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참 쑥맥이라 당황해서 못한다고 했더니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더군요.
그리고 임신할 수 있으니 자기 등에다가 사정하라고 하더군요. 그 당시 AIDS의 공포에 대해서 매스미디어에서 떠들어댔었지만 양쪽이 상처 나서 피가 섞이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성행위로는 절대 감염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있어서 콘돔은 쓰질 않았습니다......
사실은 콘돔이 모자랐습니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12시에 일어나 캠코더로 기념촬영 한 번 더 해주고. 출근해야 한다고 옷을 입는데... 무척 아쉬운 듯 슬픈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더군요.
그 눈빛은.... 표현할 말이 없군요...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그 눈빛이 생각나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나더군요..
왜 그랬는지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가슴이 아련해지곤 하거든요.
이틀 후 점심시간에 그 아가씨와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유학 중이던 아르바이트 직원과 같이했죠. 자동차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중이라고 하고. 자기는 동양남자가 좋답니다. 브라질 남자들은 뭔가 원하는게 있으면 하늘에서 떨어지길 기대하는데 동양사람들은 그걸 얻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고...
브라질 출장 이후의 문화적 충격이 참 오래가더군요. 어쩌면 브라질 사람들이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GNP, 수출 몇백억불, 경제성장율 이런 것이 참 무의미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까나발을 위해 일년을 일하고 준비하고 돈에 대한 욕심이 없는 생활..
그 아가씨의 이름은 루씨아라 (정확한 발음은 모르겠네요 스페링은 LUCIMARA)
저에게 여자 복이라고는 집사람과 이 아가씨가 전부랍니다.
해외 첫 출장지였던 브라질의 수도이자 남미 최대의 도시 상파울로.. 공항에서 대한항공 직원이 그러더군요 상파울로 가시는 손님은 존경스럽다고. 비행시간만 26시간이더군요.
로스앤젤레스에서 잠깐 내렸다가 기장을 포함한 승무원이 전부 물갈이하고 다시 출발.
그 때가 우리나라는 96년도 설 연휴기간이었고 브라질은 카니발(브라질 발음은 까나발이더군요) 기간이었습니다. 출장 갔던 업무는 그럭저럭 끝나고 카니발 마지막날...
원래 카니발 축제는 리오가 알아주지 않습니까? 전 카니발은 길거리에서 하는 퍼레이드인줄 알고 있었는데 카니발 경연을 하는 경기장이 따로 있더군요. 그 경기장 입장권은 몇 달 전에 매진이 된다더군요.
마치 우리나라의 태권도장식으로 브라질에는 삼바스쿨이 상당히 많은데 상파울로 지역의 한 삼바스쿨이 학예회식으로 상파울로 어느 거리에서 퍼레이드를 한다고 해서 구경을 갔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웬만한 대학축제는 저리 가라할 정도로 엄청나더군요.
사진으로만 보던 티백모양의 팬티만 걸친 채 삼바를 추어대는 탱탱한 브라질 아가씨들... 촌놈 정말 정신 없이 눈 돌아갔죠. 마침 가지고 간 캠코더로 마구 찍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슴을 노출한 '퀸'에 해당하는 아가씨를 카메라로 찍으려고 하자 삼바스쿨 선생님인 듯한 노인이 그 아가씨의 가슴을 팔로 받쳐 올려주더군요. 참으로 희안한 나라였습니다.
그렇게 한 바탕 흐드러진 분위기에 젖어 상파울로 환락가의 한 술집을 갔습니다.
길거리에 차를 주차시키는데 그곳의 거지가 주차비를 받습니다. 그 대신에 그 거지는 차를 지켜주더군요, 거지들 간에도 관리하는 주차영역이 있고 거지에게 주차비를 내지 않는 차는 유리창이 깨지는 등의 해꼬지를 당한답니다.
그곳 현지 직원 분 중에 싸스콰치를 연상케하는 분이 있었는데 골치아픈 잡다한 문제를 뒷골목 방식으로 해결하시는 분으로 추정되더군요. 그 분의 안내 덕에 저렴하고 안전하게 술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무대에서는 몇 십분 간격으로 전라의 스트립쇼가 진행되고 스트립 쇼가 끝나면 술집에서 고용된 각종 라틴, 흑인, 원주민혼혈의 아가씨들이 삼바를 추더군요. 물론 손님은 아무 아가씨나 골라서 같이 춤을 출 수 있구요.
술집의 아가씨들은 손님들이 사주는 음료수 값의 몇 퍼센트를 받는 식이더군요.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이 채 안 되는 음료수 값으로 맘에 드는 아가씨를 옆에 앉혀놓고 맘대로 피아노를 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맘에 드는 점은 음료수 한 잔이면 무척 고마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사달라고 조르는 것도 없고. 다른 파트너로 바꿔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잠깐 앉혀서 이야기하는 정도는 굳이 음료수를 사주지 않아도 되고...
우리나라 룸싸롱 여직원들을 생각하면 정말 천국이 따로 없더군요.
술값이 싸서가 아니라 '돈'을 밝히지 않는 점이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게 놀던 중.. 무대에서 춤을 추는 자그마한 금발의 빨간 바지 아가씨가 눈에 띄더군요
눈이 몇 번 마주쳤습니다. 나보고 나오라고 손가락을 까닥거리더군요. 내가 나가질 않으니까 제자리로 오더니 옆에 앉아도 되냐고 하더군요. 당연히 앉으라고 했죠.
제 다리 위에 앉아 춤추고 껴안고. 제가 좋답니다. 오늘밤 같이 자지 않으면 칼 맞겠더군요. 당시 33이 되도록 결혼 못한 한심한 제가 마다할 리가 있겠습니까. 가기 싫다는 것도 끌고 갈 판인데..
생애 최초로 이국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기념비적인 날이었습니다.
숙소인 호텔로 가서 일단 한 게임을 끝내고...
그곳의 털도 금발이더군요 털이 금발이라 그런지 속된말로 백xx처럼 보이더군요.
썬탠을 어찌나 진하게 했던지 옷을 벗어도 하얀색 비키니를 입은 것처럼 보이더군요.
장난삼아 캠코더를 들이댔더니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포즈를 취해주더군요.
웬 떡이냐 싶더군요. 그 비디오 우리 집사람에게도 보여줬더니 별로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더군요. 하지만 총각 때 일이니까 어쩌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한 게임을 끝내고 시간도 새벽 2시가 넘어서 샤워를 끝내고
한 숨 차려고 하는데... 이 아가씨가 손가락 5개를 펼쳐 보이며 뭔가 얘기를 하는 겁니다.
영어도 못하는 놈이 포르투갈 말을 어찌 알아듣겠습니까? 브라질 사람들도 영어는 거의 못하더군요. 우리나라 애들처럼 팁을 요구하나보다... 별 생각 없이 돈을 줬는데 아니라는 겁니다. 돈은 완강히 거부하더군요. 거의 30분 이상을 손짓 발짓으로 얘기해 본 결과..
5번을 뽀끼뽀끼(Fuck) 해야 한다는 겁니다.
결국 5번은 했습니다만... 그 이후로 여태까지 앞으로도 그렇게는 못 할겁니다.
우리 집사람이 가끔씩 놀려댑니다. "어떤 년은 하룻밤에 5번 해주고..."
그리고 그 아가씨가 항문섹스를 요구하더군요.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참 쑥맥이라 당황해서 못한다고 했더니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더군요.
그리고 임신할 수 있으니 자기 등에다가 사정하라고 하더군요. 그 당시 AIDS의 공포에 대해서 매스미디어에서 떠들어댔었지만 양쪽이 상처 나서 피가 섞이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성행위로는 절대 감염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있어서 콘돔은 쓰질 않았습니다......
사실은 콘돔이 모자랐습니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12시에 일어나 캠코더로 기념촬영 한 번 더 해주고. 출근해야 한다고 옷을 입는데... 무척 아쉬운 듯 슬픈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더군요.
그 눈빛은.... 표현할 말이 없군요...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그 눈빛이 생각나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나더군요..
왜 그랬는지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가슴이 아련해지곤 하거든요.
이틀 후 점심시간에 그 아가씨와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유학 중이던 아르바이트 직원과 같이했죠. 자동차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중이라고 하고. 자기는 동양남자가 좋답니다. 브라질 남자들은 뭔가 원하는게 있으면 하늘에서 떨어지길 기대하는데 동양사람들은 그걸 얻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고...
브라질 출장 이후의 문화적 충격이 참 오래가더군요. 어쩌면 브라질 사람들이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GNP, 수출 몇백억불, 경제성장율 이런 것이 참 무의미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까나발을 위해 일년을 일하고 준비하고 돈에 대한 욕심이 없는 생활..
그 아가씨의 이름은 루씨아라 (정확한 발음은 모르겠네요 스페링은 LUCIMARA)
저에게 여자 복이라고는 집사람과 이 아가씨가 전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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