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매운맛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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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가을 쯤

일본 '고후'라는 시골에서 동경으로 올라오는 손님을 마중하고자 동경 신숙역에서
오후 7시쯤 기다리고 있었다.
니시구찌 앞에서 곤색양복에 밤색가방을 든 사람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한국말이 마구 들렸다.
세상에 영양 20-30명이 마구 몰려나오면서 한국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반가왔다.
어쩜 얼굴들이 그렇게도 한결같이 예쁜지.....
그동안 일본여성들의 한결같은 무매력 넌섹시한 분위기에 젖어 있다가
기막힌 피부와 섹쉬풀한 여학생들을 단체로 보니
감개가 무량했다.
갑자기 홈식크가 밀려왔다.

그런데...
"스미마셍가, 신쥬꾸리자드 비루 이끼따인 데스케도..(리자드빌딩 좀 가고싶은데요...)"
그중 한 학생이 호기심많은 눈으로 나에게 묻고 있었다.
일본말로 대답할까 한국말로 대답할까.
내가 생긴게 이상한지 일본에선 택시 운전자도 내가 일행과 한국말을 하면 "손님 한국말 참 잘하시네요."
일본놈하고 같이 있어도 오히려 나를 일본놈으로 착각하기 쉽상이었다.
그 영양들은 ㅇ대 일어학과 여학생들로 일본연수를 왔단다.
친절하게 설명하고 돌아서려는데
학생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안나이 오네가이" (안내좀 ..)
"오이시이 도고로 오시에데 구다사이" (맛있는 집 좀 아르켜줘요)

다음날 전화가 불같이 왔다
모처럼 이국에서 색다른 경험을 느끼고 싶어하는 열망들이 대단해 보였다.
바쁜와중에
당시 유행하던 '쥴리아나 도쿄'를 안내했다.
그리고 유락조에 있던 나의 세컨 오피스로 4명이 함께놀러 왔다.
[세컨오피스;당시 내직업상 각국의 환율 ,경기동향 ,정치변화 등을 파악하기 위해 위성방송용 모니터 5대를 장치해 놓은 리빙오피스였다.]
K조교와 학생L,L,C 3명 그중2명은 형제였다.
그방에서 새벽 3-4시 까지 놀았는데 완전 호기심 그자체였다.
중요한건 여학생임에도 음란사진이나 포르노 영화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내가 부끄러울 정도....
하지만 내가 누군가.
참고로 여자가 그런 취향을 보이면 절대 호응하면 안된다.
멍청한 남자들은 기회다 싶어 한술 더 뜨는 경우가 있는데
미모,또는 괜찮은 여인네는 그런경우 남자가 좀 자제하는 게 훨씬 이지적으로 각인되고 성욕조차 고조되기 마련이다.

모두 돌아간후 집으로 못가고 잠이들었는데 수위실에서 전화가 왔다.
누가 찾아왔다나
마치 국산영화처럼 L학생을 침대에 누이고 내 책상에서 위성용'MBC굳모닝 코리아'를 보고있었다.
그때 시트를 들추며 들어와 누우란다.
입은옷을 하나씩 벗어내고 벗겨내고 그렇게...
아침은 무르익어 갔다.

이틀후 조교와 학생3명이 찾아왔다 회사로
오후 비행기로 가야한다나
그런데 표정이 너무들 밝았다.
세상에!
일본친척집에 며칠 머무른다고 거짓말을 하고 4명이 남은것이다.
그로부터 세컨하우스는 그들차지가 되었다.
그때부터 L학생은 3명의 눈을 피해 정염을 태우려 했다.
회사옆 러브호텔로
지바 해변가 '막구하라'방갈로로....
그렇게 몰입했다.

며칠후 눈치빠른 조교가 진지하게 다그쳤다.
애 상처 주지말라고....
눈을 내리깔고 비웃는듯한 목소리가 참 인상적이었다.
아무 대답도 않자 ...
유유히 걸어가는 모습의 히프마져 아름답고 섹시했다.

떠나기 전날 전부 통음을 하고 널부러졌는데 나만을 굳이 침대로 보낸다
가정교육 잘돼있는 대한의 아름다운 딸들이여.
헤어짐에 내가 눈시울이 아플정도............

자고있는중에 꿈이 이상했다.
하반신이 너무 황홀했다.
허벅지에서 배꼽부분까지가 따뜻한 크림으로 적셔져서 흘러내리고 있는것 같았다.
꿈에서도 사정하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출렁거리는 느낌에 눈을 떴는데
캄캄해서 누군지는 보이지 않으나 손으로 내입을 막았다.
그리고 나를 입으로 열심히 핥고 있었다.
그리고 올라와 나를 그곳에 집어넣고 ..
꽉 무는듯 가만히 있었다.
누군가 깨면 어떡하려고 .....L학생을 내심 탓하면서도
숨이 막힐듯한 쾌열감에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데 손으로 나를 쓰다듬는 터치가 영 희한하고 생소하고 좋았다.
허릴 적당히 움직이며 혀로는 입술을 핥으면서 귀에다 속삭였다.
넘어가는 목소리로 딱 한마디
"세게..... 심하게 해줘......"


조교였다.





***기억을 잘 살려 50번 시리즈까지 제출하겠습니다.***
얼마후 조교는 TV 기자가 되어 TV에 나와 나를 가끔 미소짓게 합니다
('아나운서'가 아니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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