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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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선배의 집을 방문했다가 앞치마를 입고 설겆이를 하고 있는 선배의 모습을 지켜보며 '어울린다'라고 발언했다가 '복날에 개잡듯' 줘 터진 적이 있다.
나의 '어울린다'는 말은 분명 어떤 조소도 담겨있지 않는 형식적 인사치레에 불과했지만. 부부싸움후 아내가 친정으로 가출해 버린지 3일이 지난 선배로선 내 말이 꽤나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항상 분위기 파악 못하는 나의 불찰이었다. 지금도 그날을 추억하면 똥꼬시린 아픔에 가슴이 저며온다..
'어울린다'는 말은 사람(혹은 사물)과 사람 사이의 '조화로움'을 지칭하는 관용어구다. 일상속에서 우리는 이를 흔히 한쌍의 '조화로운' 연인들에게 찬사를 보낼 때 즐겨쓰곤 하는데. 그러나 그말의 의도가 건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늘 그 표현이 영 마땅치가 않다..
그 표현이 내 비위를 거슬리는 이유는, 가만히 살펴보면 그것이 그들(연인들)의 내면상의 조화로움보다는 '사회통념'상 주로 외형상의 조화로움(정확히 '조건'의 조화로움.. 외모, 학벌. 재력. 집안과 같은...)에 주목해서 나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매우 인간적인' 소프트웨어를, 조건이라는'매우 비인간적인' 하드웨어 안에 낑궈넣는 치졸한 짓이다. 조건에 주목하기엔 사랑이라는 절대가치는 너무도 숭고한 것이지 않은가....
이러한 '사회통념'들을 대할 때 마다 아직 장가도 못간 '못난' 나는 항상 불안해 진다. " 아~ 씨바 도대체 나처럼 '힘없고' '빽없고' '잘난 것 하나 없는' 자에겐 어떤 여자가 어울린다는 말이냐...?? "
다행히 나의 이런 열패감은 사회활동 과정 속에서 가끔, 아주 가끔 위로받을 때가 있다..
나는 대학 졸업후 웨딩관련 사업을 운영하며 수백쌍의 결혼식을 직접 목격했다. 물론 대부분의 신랑, 신부들은 그들의 외모만 보아도 그 '조화로움'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어울린다. 그러나 흔하진 않지만, '조화롭지 않은' 결혼도 적잖이 목격할 수가 있다. 예컨대, 핸섬한 미남과 뚱땡이 노처녀, 혹은 맹인 신랑과 정상인 신부간의 결혼도 흔치 않게 성사된다. 심지어 어린 청년과 많은 나이차이의 '아줌마'와의 결혼도 목격한 적이 있다.
외형적 조건이 '부조화'를 이루는 이러한 이질적 '계급'간의 결혼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그들의 사랑의 깊이만큼의 카타르시스를 안겨다 준다. 그것은 차라리 감동이다..
오늘의 결혼식(내 '불알'친구 진우의 결혼식)도 그러했다. 30살 노총각이 6살연하의 '꽃다운' 처녀와 '꽃다운 계절'에 장가를 듬에도 그의 노모가 서럽게 눈물을 훔친 이유는 다름아닌 신부의 '다리'에 있었다. 그녀는 소아마비 장애인 이었다... 그녀의 다리는 '꽃다움'을 손상하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표현대로 '신이 맺어준' 인연이었을까...? 어느 화창한 가을날 진우가 운전하던 차에 그녀의 휠체어가 치였고 그 인연으로 만난 그들은 병상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고 그렇게 서로의 빈가슴을 채워갔다. 그러나 소위 '잘나가는' 펀드매니저인 진우와 '비천한' 장애인인 그녀사이의 '계급차'는 주위의 공감을 사기엔 너무도 큰 것 이었다. 양가 집안은 물론이고 친구들조차 그들의 '부조화'를 사사오입했다.
우리 친구들의 우정의 방식은 비열하게도 그들을 갈라놓는 것이었고, 그러한 명제하에 그들의 '어울리지 않음'을 질타하는 우리에게 그녀석은 언젠가 조용히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충분히 어울려,, 우리는 같은 영화에 감동받으며, 같은 싯구에 눈물지으며, 같은 하늘을 즐겁다고 여기거든..." 듣는 나의 심장이 뜨겁게 진동했다..
맞는 말이다. 사랑이란 결국 감성의 문제이다. 너와내가 같은 리듬에 살이 떨리고, 너와내가 같은 멜로디에 심장을 공명하며, 너와내가 같은 박자로 뜨겁게 호흡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같은 '감성'을 지녔다는 것은 같은 '행복'을 느낄수 있다는 말이고 그것은 그만큼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적어도 감성이라는 측면에서 공통분모를 지녔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들은 행복의 필요조건을 충족한 셈이다..
온갖 역경속에 결국 그들의 결혼을 완성함으로써 사랑이라는 절대가치를 지켜낸 진우, 소감을 묻는 우리에게 '앞으로의 인생을 그녀를 위한 장애인 전용 영화관 건립을 위해 살 것이다' 라고 화답하는 녀석의 환한 미소를 마주하며, 나는 조용히 그러나 진심의 울림을 담아 찬사의 한마디를 던졌다. 그것은 지난번 선배에게 '개패듯' 줘 터진 사건이후 내 안의 금기로 남아있던 말이었다.. "자식. 정말 잘 어울린다..."
~~ 진우야.. 부디 행복하거라...~~
나의 '어울린다'는 말은 분명 어떤 조소도 담겨있지 않는 형식적 인사치레에 불과했지만. 부부싸움후 아내가 친정으로 가출해 버린지 3일이 지난 선배로선 내 말이 꽤나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항상 분위기 파악 못하는 나의 불찰이었다. 지금도 그날을 추억하면 똥꼬시린 아픔에 가슴이 저며온다..
'어울린다'는 말은 사람(혹은 사물)과 사람 사이의 '조화로움'을 지칭하는 관용어구다. 일상속에서 우리는 이를 흔히 한쌍의 '조화로운' 연인들에게 찬사를 보낼 때 즐겨쓰곤 하는데. 그러나 그말의 의도가 건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늘 그 표현이 영 마땅치가 않다..
그 표현이 내 비위를 거슬리는 이유는, 가만히 살펴보면 그것이 그들(연인들)의 내면상의 조화로움보다는 '사회통념'상 주로 외형상의 조화로움(정확히 '조건'의 조화로움.. 외모, 학벌. 재력. 집안과 같은...)에 주목해서 나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매우 인간적인' 소프트웨어를, 조건이라는'매우 비인간적인' 하드웨어 안에 낑궈넣는 치졸한 짓이다. 조건에 주목하기엔 사랑이라는 절대가치는 너무도 숭고한 것이지 않은가....
이러한 '사회통념'들을 대할 때 마다 아직 장가도 못간 '못난' 나는 항상 불안해 진다. " 아~ 씨바 도대체 나처럼 '힘없고' '빽없고' '잘난 것 하나 없는' 자에겐 어떤 여자가 어울린다는 말이냐...?? "
다행히 나의 이런 열패감은 사회활동 과정 속에서 가끔, 아주 가끔 위로받을 때가 있다..
나는 대학 졸업후 웨딩관련 사업을 운영하며 수백쌍의 결혼식을 직접 목격했다. 물론 대부분의 신랑, 신부들은 그들의 외모만 보아도 그 '조화로움'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어울린다. 그러나 흔하진 않지만, '조화롭지 않은' 결혼도 적잖이 목격할 수가 있다. 예컨대, 핸섬한 미남과 뚱땡이 노처녀, 혹은 맹인 신랑과 정상인 신부간의 결혼도 흔치 않게 성사된다. 심지어 어린 청년과 많은 나이차이의 '아줌마'와의 결혼도 목격한 적이 있다.
외형적 조건이 '부조화'를 이루는 이러한 이질적 '계급'간의 결혼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그들의 사랑의 깊이만큼의 카타르시스를 안겨다 준다. 그것은 차라리 감동이다..
오늘의 결혼식(내 '불알'친구 진우의 결혼식)도 그러했다. 30살 노총각이 6살연하의 '꽃다운' 처녀와 '꽃다운 계절'에 장가를 듬에도 그의 노모가 서럽게 눈물을 훔친 이유는 다름아닌 신부의 '다리'에 있었다. 그녀는 소아마비 장애인 이었다... 그녀의 다리는 '꽃다움'을 손상하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표현대로 '신이 맺어준' 인연이었을까...? 어느 화창한 가을날 진우가 운전하던 차에 그녀의 휠체어가 치였고 그 인연으로 만난 그들은 병상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고 그렇게 서로의 빈가슴을 채워갔다. 그러나 소위 '잘나가는' 펀드매니저인 진우와 '비천한' 장애인인 그녀사이의 '계급차'는 주위의 공감을 사기엔 너무도 큰 것 이었다. 양가 집안은 물론이고 친구들조차 그들의 '부조화'를 사사오입했다.
우리 친구들의 우정의 방식은 비열하게도 그들을 갈라놓는 것이었고, 그러한 명제하에 그들의 '어울리지 않음'을 질타하는 우리에게 그녀석은 언젠가 조용히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충분히 어울려,, 우리는 같은 영화에 감동받으며, 같은 싯구에 눈물지으며, 같은 하늘을 즐겁다고 여기거든..." 듣는 나의 심장이 뜨겁게 진동했다..
맞는 말이다. 사랑이란 결국 감성의 문제이다. 너와내가 같은 리듬에 살이 떨리고, 너와내가 같은 멜로디에 심장을 공명하며, 너와내가 같은 박자로 뜨겁게 호흡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같은 '감성'을 지녔다는 것은 같은 '행복'을 느낄수 있다는 말이고 그것은 그만큼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적어도 감성이라는 측면에서 공통분모를 지녔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들은 행복의 필요조건을 충족한 셈이다..
온갖 역경속에 결국 그들의 결혼을 완성함으로써 사랑이라는 절대가치를 지켜낸 진우, 소감을 묻는 우리에게 '앞으로의 인생을 그녀를 위한 장애인 전용 영화관 건립을 위해 살 것이다' 라고 화답하는 녀석의 환한 미소를 마주하며, 나는 조용히 그러나 진심의 울림을 담아 찬사의 한마디를 던졌다. 그것은 지난번 선배에게 '개패듯' 줘 터진 사건이후 내 안의 금기로 남아있던 말이었다.. "자식. 정말 잘 어울린다..."
~~ 진우야.. 부디 행복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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