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수라기(獸羅記) 59번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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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으음..”
나직한 신음을 발하며 수겹의 검막을 뚫지 못하고 아환은 뒤로 튕겨져 나갔다. 아환의 현 내공은 화경의 내공을 상회하는 수준, 그 팔성의 공력으로 도기를 전개하였고 운용방식 역시 고절한 절예라 할 수 있는 건곤형의 응용된 일식이었다. 밀물처럼 쇄도해 들어가던 아환의 칼에서 뿜어져 나간 도기(刀氣)는 팔괘의 방위를 철벽같이 방어하는 여덟 복면 사내의 검기의 막을 찢는 데는 성공하였고 여덟 사내 중 무공이 약한 두셋에게는 약간의 충격을 가하였으나 결과적으로 말하면 선공을 취하였음에도 그다지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사내들 역시 어느 정도 대비를 하였다 하더라도 전력을 다해 펼쳐진 것이 아닌지라 아환의 의도와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 아환의 선제 공세가 전혀 효과가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여덟의 복면을 한 사내 중 가운데의 우두머리격인 사내 좌측에 있던 복면인이 스르르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환의 눈에 들어왔다. 언뜻 보면 그냥 자리에 주저 앉는 것처럼 바닥에 신형을 가라앉힌 사내는 이내 뒤로 벌렁 자빠져 쓰러졌다. 그러한 사내의 이마에 보랏빛을 선연히 빛내고 있는 손가락만한 작은 돌기하나가 보였다. 처음부터 있던 것처럼 사내의 이마부위에 튀어나온 금속 물체, 다름아닌 제갈세가의 무영비도였다.
“칠제!”
“헛! 이게 무슨..무영비도!”
“일도탈명(一刀奪命) 파천황(破天荒)!”
갑자기 동료 중의 한명이 쓰러지자 다급한 음성으로 바닥에 누운 이를 불렀으나 어이가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부릅뜨고는 누워 허공을 쳐다 보는 그에게는 이미 생기가 없었다. 비도가 이마를 뚫고 들어가서는 그 경력으로 인하여 뇌를 산산히 파괴한 모양이었다. 즉사였다. 아환이 공격을 하면서 절정의 도기를 떨쳐내었고 그 태산 같은 압력이 담겨있는 건곤형의 붕(崩)은 비록 완전히 그 검막을 무너뜨리지는 못하였으나 그 면밀한 방어태세에 상당한 균열을 발생시켰고 아환의 뒤에서 틈을 보던 제갈수란은 충돌시에 비도를 날렸다. 아환의 강력한 도기는 비도가 날아가는 기세를 숨겨주었고 아환이 물러서면서 뒤로 신형을 뒤집어 허공으로 솟구칠때에 들이닥친 비도는 개중 상대적으로 무예가 낮아 보이는 복면 사내 중의 한명을 노렸다.
“그 위명이 하늘을 찌를 듯한 하남성의 팔협을 이런 곳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군요. 한동안 활동이 뜸하시다 싶더니 흑천에 자리를 잡으셨네요. 이런 야산에까지 소녀를 보러 오신 분이 하남팔협이시라니..아! 이제 칠협이 되신 것인가요?”
아환이 자세를 고쳐잡고 도를 치켜올려 대비를 하는 그 자리의 옆에 혜광을 빛내면서 내뻗은 손을 거두어 들이는 아름다운 여인, 제갈수란이 있었다. 곧게 뻗은 두 옥기둥을 땅에 받치고 꼿꼿히 서서 깊은 지혜가 일렁이는 눈으로 팔협이라 불리우는 사내들을 찬찬히 살피는 제갈수란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팔협이라 불리우는 사내들에게 말을 건네었다. 허나 말이 부드러울뿐이지 그 속에 담긴 내용은 팔협을 격분시켰다.
“이 처죽일 계집!”
“감히 칠제를 해하다니..내 이 년을 당장..”
“곱게 대할려고 했더니 끝내 벌을 청하는군. 제갈수란! 결코 오늘 그냥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
여유가 있어 보이던 사내들의 눈빛이 금새 시퍼런 살광을 줄기 줄기 내뿜는 야차의 눈으로 변하였다. 처음에 위에서 명령을 하달받고 제갈수란과 주환이라는 사내를 처치하려 올때까지만 해도 이번 임무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자신들이 누구인가. 비록 칠룡에는 끼지 못하였지만 나름대로는 칠룡과 차이없는 무공을 지녔다 자부하는 하남팔협이 아닌가. 하남성에 둥지를 틀고 있는 오악검파 중 하나인 숭산검파의 직전제자로서 차후 숭산검파가 무림을 영도하는 위치에 올라서기 위한 그 초석으로서 칭송을 받던 팔협이었다. 한때 오악검파 중 최고의 위치에 올라서서 화산파를 능가하는 위세를 보이던 숭산검파였다. 지금은 그 세력이 많이 쇠락하여 화산에 그 자리를 내어준 상태이지만 언젠가는 오파일방을 능가하는 문파로 설 기대를 가진 문파인 숭산검파의 최고 후지기수들이었다. 게다가 비밀리에 모종의 인물로부터 기예를 전수받아 한층 그 무위가 높아져 자신만만하던 하남의 여덟 무사는 자신들이 합력을 해서 펼친 무공이 아환의 공세에 타격을 입자 일순 심기가 흔들렸다. 그것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선두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형제들!”
짧은 부름과 함께 사내가 눈짓을 동료들에게 보내었다. 그러자 다른 복면인들은 그 눈빛을 받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선두의 사내가 검을 아환에게 향한채 출수를 준비하고 다른 사내들은 좌우로 갈라져 아환과 제갈수란을 포위하려 하였다.
“상공! 조심하세요. 숭산검파의 팔괘검진이예요.”
팔괘란 중국 상고시대 복희씨가 만들었다는 천지간의 변화상을 담고 있는 건, 태, 이, 진 손, 감, 간, 곤의 여덟 괘(卦)를 뜻함이다. 제갈수란은 숭산검파에 전수되어 내려오는 비전 절예 중 하나를 떠올리고 얼른 아환에게 주의를 주었다.
팟!
제갈수란의 전음이 아환에게 들어오기전 이미 아환이 땅을 박차고 한쪽으로 신형을 돌진했다. 진세라는 것을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아환이지만 무공을 수련하면서 무이관주 상명선이나 검후 조설하로부터 수차례 조심할 것을 당부받은 것 중 하나가 무인들이 이루는 진(陣)이었다. 소림의 백팔나한대진이나 십팔나한진, 무당의 오행검진과 오오대오행진등은 차치하고 각종 일반화되어있는 차륜진들도 그리 쉽게 상대할 것은 아니었다. 하물며 숭산검파의 비전이라 여기어지는 진세야 더 말할 나위없었다.
팔괘는 검후에게서 그 방위를 들은 것이 전부인 미천한 지식을 갖고 있는 아환이지만 그 방위위치를 향해 신형을 날리는 팔협을 보고 순간적으로 취약한 곳을 찾았다. 다름아닌 간의 방위, 조금전에 죽은 칠제라는 인물이 담당하는 위치가 빌 것은 자명했다. 다른 이들이 그 허점을 메운다 해도 다른 곳보다는 용이하리라.
‘건곤형의 쾌(快)’
아환은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추고는 상대의 목부위 어림을 향해 거의 오척에 이르는 도신을 가로로 뉘이고 빠르게 그었다.
츠츠츠..
칼에서 무형의 도기가 대기를 가르면서 손과 감의 방위를 선점하려 달리는 이들에게 쇄도해 들어갔다. 아직 진을 이루지 못한 두 사내의 복면속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순식간에 자신들에게 짓쳐들어오는 쾌속한 기세가 엄청난 힘을 담고 있음을 짐작하고는 이를 악물고 진기를 끌어올려 검을 휘둘렀다. 아환의 쾌도를 신형을 움직여 피하는 것은 달려나가는 여력이 강해 그리 할수 없었다.
다른 방향으로 전진하던 세 사내가 아환이 반대쪽의 동료를 덮쳐나가자 마음이 급해졌다. 선두의 사내 역시 아환의 빠른 공격에 당혹스러워하며 손과 감의 방위를 맡은 아우들을 지원하려 나섰다. 그리 많은 격전을 겪지는 않았지만 이번처럼 진세를 펼치기 전 공격을 받는 일이 극히 드물었기에 나머지 네 다섯 사내는 진세를 꾸리는 것을 일단 포기하고 아환의 뒤를 노렸다.
허나, 거기에는 아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칠룡과 버금가거나 그 이상이라 평가받는 사화 중의 하나 제갈수란이 있었고 제갈수란은 빠르게 다섯번의 손을 떨쳐 비도를 쳐내었다.
캉. 캉. 캉. 캉. 캉..
차창..창..
“우욱..”
“커억..”
각기 다른 금속성이 터져나왔다. 제갈수란의 비도는 이번에는 일수탈명의 이름값을 하지 못하였느나 다섯 사내의 돌진을 어느 정도나마 막기에는 충분하였다. 제갈세가의 무영비도는 암기술에 가까운 절예인지라 은밀함과 정제됨이 필수지만 지금 상황이 그리하지 못하였기에 급박히 쳐낸 다섯비도는 다섯명의 검에 튕겨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제갈수란이 다섯 사내의 행보를 막는 동안 아환의 검은 애초에 목표한 두 사내와 충돌하였다. 그 이후 터져나온 두 신음은 그들의 것이었다. 그들의 손에 쥐인 꽤 정련되어 있는 보검이라 할 수 있는 청강검이었으나 무게의 차이가 상당하였고 아환의 묵현금으로 만들어진 견고한 거도에 실린 경력과 속도는 검 하나를 잘라내고 그 검주에게 깊은 내상을 입혀 뒤로 물러서게 하였고 계속된 도기의 여파는 다른 한명의 검과 부딪히고는 그 여세로 팔을 잘라버렸다.
“끄아아..”
“오제!”
“오형!”
“이런 쳐 죽일 놈이..”
“이 개 같은 년!”
팔꿈치 위로 잘려진 상처를 부여 잡고 비명을 지르는 오제라 불리운 사내가 입에 피거품을 물면서 신형을 휘청였다. 아환의 쾌도에 검이 부러진 사내는 주춤 주춤 뒤로 물러선 후 풀썩 자리에 주저 앉았다. 선홍빛의 핏덩이가 울컥 울컥 입에서 토해졌다. 상당한 내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아환은 칼을 거두면서 크게 한발을 내딛고 신형을 빙글 돌리면서 팔을 잃은 오제란 사내를 항야 뒤차기로 발을 힘차게 내뻗었다.
‘풍도건곤(風跳乾坤)’
무이관의 풍도십팔식중 풍영각이 아환의 건곤형과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초식으로 거듭났다. 수많은 발의 그림자가 오제를 뒤덮는다 싶더니 연이은 격타음이 들렸다.
퍼퍼퍼퍼퍽..
사내의 머리가 터져나가 허공에 허연 뇌수와 핏줄기가 비산하였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늑골이 부서지고 쇄골이 함몰되어 들어갔다. 아환의 족영은 연달아 다섯 번의 가격을 사내의 상반신에 집중시켰다. 처음에 내려찍은 파각은 사내의 두개골을 부수었고 정수리가 박살나면서 오제라 불리운 사내는 두 눈이 밖으로 튀어나오고 칠공에서 피가 뿜어져 나온 상태에서 즉사를 하였다. 그 이후에 네번의 발차기는 확인사살이었다.
처참하게 부서져 나가는 다섯번째의 형제를 보는 나머지 사내들의 눈이 뒤집혔다. 극도의 노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그들의 분노의 불길에 제갈수란이 기름을 붓는다. 제갈수란은 다섯 사내에게 전력을 다해 비도를 쳐내어 뒤로 물러서게 한다음 다시한번 내상을 입어 주저 앉은 사내에게 비도를 쳐내었고 예와 마찬가지로 비도는 바닥에 주저 앉은 사내의 이마를 꿰뚫어 또 하나의 목숨을 거두었다.
미처 화가 폭발하기도 전에 또 하나의 형제가 유명을 달리하자 나머지 다섯 사내는 이성을 잃었다. 시뻘건 안색으로 일제히 검을 쳐들어 아환과 제갈수란에게 짓쳐들어오는 팔협의 나머지 사내들. 그렇지만 생사가 걸려있는 싸움에서 흥분은 금물이었다. 들끓어 오르는 노기가 그들의 냉철한 이성을 스러지게 하고 앞뒤 가를 것 없이 달려오는 사내들의 기세는 거세고 강렬해 보였지만 전과 같은 치밀한 협공이 아니었다.
아환이 제갈수란의 앞으로 나섰다. 아환의 주위로 근접한 다섯 장검의 흉험한 검기를 향해 그의 칼이 둥그렇게 원을 수차례 그리며 마주쳤다.
‘건곤의 화(化)’
사량발천근(四兩發千斤)이라 하였던가? 유유한 원을 그리는 아환의 도세에 다섯 검이 휘감기고 거세게 밀려오는 경기가 아환의 도에 이끌려 방향을 이리 저리 바꾸었다. 그러면서 아환은 강약을 조절하여 네 장검의 방향을 하나로 돌려 버렸다.
카캉..캉..
“끄으..”
“삼제!”
“형님!”
“이..이럴수가..”
아환의 이화접목의 수법으로 그 예봉이 뒤틀린 네 사내의 검은 삼제라 불리운 한 사내에게 집중이 되었고 삼제 자신의 칼은 어이없게도 허공으로 쳐 올라간 상태라 방비를 할수 없었다. 그 결과 네 사내의 칼을 꼬치를 꿰듯 양쪽 옆구리와 목, 그리고 그 중 가장 공력이 높은 선두의 사내만이 간신히 갈무리를 한 장검만이 비스듬히 삼제란 사내의 귀밑으로 들어가 상해를 입히지 않았을뿐 나머지 세 사내의 검은 사정없이 삼제의 몸을 파고 들었다.
“끄르르..”
피가래가 끓는 듯한 괴기한 소리가 삼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얗게 까뒤집어진 눈과 줄기 줄기 배어나오는 핏줄기와 함께 격렬히 몸을 떨던 삼제란 사내가 곧 축 늘어졌다. 또 하나가 죽은 것이었다.
“이..이...”
“같이 죽자! 이 마귀야!”
“이제, 사제, 육제! 멈춰!”
대형으로 보이는 사내의 만류에도 눈이 뒤집혀진 세 사내는 극렬한 분노에 사로 잡혀 아환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심정은 동료들의 죽음에 덧붙여 자신들의 손에 형제가 목숨을 잃었다는 자책감이 짓누르면서 더 이상의 냉정함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면 결과는 당연지사.
나란히 달려들던 세 사내가 아환의 쾌도에 동시에 세개의 목을 허공에 띄워 올리자 뒤따라 쫓아 들어온 우두머리의 사내가 망연자실하여 그 자리에 우뚝 섰다.
툭..툭..툭
풀썩..풀썩..
모든 자연의 물체가 그렇듯 허공에 더있는 물체는 땅에 떨어지는 법, 원독과 분기에 가득한 튀어 나올 것 같은 두 눈을 각기 달고 있는 세 수급은 이내 바닥에서 떨어지면서 굴러 다니고 목을 잃은 시신들은 쇄도하던 그 여력으로 얼마간을 더 달려 나가더니 하나 둘 쓰러졌다.
이제 장내에 서 있는 사람은 아환과 제갈수란 외에 오직 하나, 팔협의 대형이라는 복면 사내였다. 검을 늘어뜨리고 멍하니 바닥에서 움직임을 멈춘 세 머리통을 응시하였다. 밤의 하늘에서 내려 앉는 은빛 편린들은 이제 더 이상 밤의 낭만이나 흥취 같은 것을 보이지 않았다. 거무스름한 빛깔로 보이는 피웅덩이가 곳곳에 흩어져 있고 바닥을 나뒹구는 동그란 물체에 목이 없는 사람의 모습, 그리고 이마에 보라빛 돌기를 내비치고 쓰러진 인간들이 처참한 상태는 이 곳이 유부 지옥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잔혹하였다.
덜덜덜..
대형의 온몸이 바람에 잔가지 떨 듯 무섭게 흔들렸다. 공포심? 분노? 황당함? 여러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이 전신에 팽배히 번져나가고 물결이 번지듯 차츰 그 진동의 폭이 커지는 가 싶더니 뚝. 사내의 떨림이 순간 멈추었다. 복면으로 뒤덮은 얼굴인지라 눈밖에 보이지 않은 모습이지만 사내의 눈가에 습기가 점점 번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우는 것일까?
“형제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 못난 우형을 잘 따라 주었네. 이인자의 문파에서 성장하여 어떻게든 일인자로 올라서려 그토록 노력하였는데 이제 이 야산에서 우리 형제들 모두가 뼈를 묻게 되는군. 인과응보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누구나 가진 욕망을 실현하려 우린 찾아온 그 기회를 최대한 잡으려 했었지. 아우들, 내 그대들을 편히 대지로 돌려 보내지 못함을 이해하게. 그리고 우리 잠시 후에 보세나.”
나직한 음성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대형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가까운 형제나 친구들에게 말을 건네듯이 사내는 평온한 기색으로 혼백이 떠난 아우들의 주검을 일일히 쳐다보고는 옅은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사내의 고개가 방향을 틀었다. 어느새 입가의 웃음은 사라지고 무심한 시선이 이동을 하면서 아환에게, 제갈수란에게 돌려졌다. 아무 말 없이 사내가 하는 모양을 지켜보던 제갈수란이 입을 연다.
“그만하시는 것이 좋겠어요. 동료의 시신도 수습을 하고..상부에도 보고를 해야하지 않을까요?”
“제갈수란!”
“말씀하시죠.”
“신경쓸일이 아니다.”
“...”
“어차피 여기서 뼈를 묻기로 작정한 이상, 내 그냥 가지는 않으리라.”
별 감정이 깃들지 않은 음색이 아환과 제갈수란의 귓가를 파고들고 뒤를 이어 대형이라는 사내의 눈빛이 점점 붉어졌다. 급기야는 핏빛으로 흰자위가 완전히 변하는 순간, 아환과 제갈수란은 동시에 본능적인 위기감이 전신을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위험하다!’
사내는 엄청난 속도로 아환에게 쳐들어 왔다. 몇번 발을 땅에 디딘 것 같지도 않았는데 벌써 사내의 신형은 코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그러면서 사내의 검은 일직선으로 아환을 찔러왔다. 아환은 뒤로 몸을 빼 내면서 거도를 아래에서 위로 사선으로 쳐올렸다. 검은 칼이 대기를 쪼개면서 일어난 도의 기세가 복면사내를 향해 마주쳐갔다. 공세로 방어를 취하는 아환의 거도에 사내가 검을 회수하면서 휘두른 수 검이 작렬을 하였다.
캉. 캉. 캉. 캉.
“음..”
아환이 뒤로 주춤 주춤 물러섰다. 사내가 휘두른 경력을 이기지 못하여 아환은 물러서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 이들 하남팔협과 부딪혔을 때 경험하였던 위력이 아니었다. 그보다 수배의 위력이 강한 검력이 아환의 내부를 진탕시켰다. 부딪히기 전에는 아환이 충분한 내기를 주입하지 않았어도 조금전의 싸움에서처럼 능히 복면사내를 물리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연달아 검을 쳐내는 사내의 공격이 완전히 아환의 예상을 뒤엎었다.
아환은 뒤로 신형을 빼내면서 도를 세워 안면부위와 상반신을 보호하면서 이후 계속될 공세에 대비를 하려 하였다. 허나 뜻밖에 복면 대형의 행동은 아환의 예상을 벗어났다. 아환의 도에 자신의 검을 수차례 부딪혀 아환을 물러서게 한후 그 반동으로 복면사내는 제갈수란을 덮쳐들어가는 것이었다. 아환가 충돌하면서 가속이 붙어 순식간에 제갈수란의 바로 앞까지 도달한 복면사내의 장검이 제갈수란의 목을 꿰뚫으려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갸날픈 작은 손에 들려 있는 무영비도를 미처 던지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 제갈수란의 목을 급기야 복면사내의 검이 꿰뚫었다. 아니, 관통한 것처럼 보였다. 복면 사내의 장검은 제갈수란의 목을 통과하는 듯 싶더니 몸 전체가 스치듯 제갈수란의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복면 사내의 신형은 제갈수란이 서있던 바로 뒤에 내려 앉았고 금새라도 피가 솟구칠 것 같은 제갈수란의 교영이 흐릿해지더니 종적을 감추었다.
‘잔영(殘影)! 기환(奇幻)?’
퍽!
바닥에 주저 앉은 것처럼 보이던 사내의 몸이 순간 폭발을 하였다. 그러면서 사방 수장을 섬전같이 비산하는 피와 조각난 살점과 뼈조각이 뒤덮었다. 밤하늘이 온통 핏빛으로 변하였다.
“폭신마공! 아앗! 악!”
다급한 교성과 함께 뾰족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비명은 바로 복면 사내의 좌측 어림에서 나왔고 그 쪽에서 흰 인형하나가 뒤로 튕겨나갔다. 애초에 이 복면인은 아환을 노린 것이 아니라 작정하고 제갈수란을 노린 것이었다. 아환에게 선공을 취하여 아환을 물러서게 한후 아환이 제갈수란의 공격하는 자신을 막지 못하도록 대비를 하는 일종의 계책이었고 그의 계획은 성공하여 폭신마공으로 펼친 동귀어진의 공세는 제갈수란의 몸에 작렬하여 군데 군데에 붉은 핏자국이 상의만 걸친 제갈수란의 전신에 피어올랐다. 퉁겨나간 제갈수란은 옷자락이 하늘거리고 가랑이 끝을 간신히 가리고 있는 상의가 치켜 올라가 슬쩍 아무 수풀도 보이지 않은 갈라진 틈을 언뜻 내비쳤다.
“으으..”
물러서던 제갈수란이 푹 주저 앉았다. 창백하게 질린 안색, 심상치 않은 내상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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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어찌 올리게 되었습니다.
자꾸 제가 ‘수정’이란 말을 입에 담는 이유는 지금 수라기의 모습은 제게 있어서 ‘스케치’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단계도 괜찮다 여기시는 분이 있으시겠지만 저는 색을 입히고픈 마음이 있지요.

정말 초 장편으로 가야하나 하는 생각이...ㅜ.ㅜ.. 앞으로 한 2년 연재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이 걸 중단하고 다른 글을 끄적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아마 이 사족을 쓰기 위하여 수라기를 연재하나 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주 수요일에 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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