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놈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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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이란 제목으로 올리던 글은 끝맺음이 힘들어서 지금 머리를 뜯고 있는

중입니다. 마무리가 되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부터 쓰려고 하는 글도 물론 허구 입니다. 재미 없어시더래도 읽어 주세요.

잡놈일기1

나는 남들이 인정을 하는지 안하는진 모르지만 스스로를 잡놈이라 부른다.

내 나이는 30살...., 아직 장가는 못갔다. 물론 도둑장가나 억지 장가는 수도

없이 갔지만....,

나는 세상 여자들은 모두 경멸한다. 꼭 한명 지금은 돌아가신 나의 큰어머니를

제외하고.....,

나는 어머니를 모른다. 어머닌 나를 낳다가 돌아 가셨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엄마 목숨을 대신해서 내가 이땅에 태어 난 것이다.

나의 아버지? 그인간에 대해선 묻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난 그 인간은 여자보다

더 많이 경멸한다. 갓 태어난 핏덩어리 어린 자식 그것도 엄마도 없는 자식을 내

몰라라 버리고 노가다 판으로 돌아 다녔다.

그래도 나는 별 부족한게 없이 자랐다. 새엄마란 년이 들어 오기 전까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새엄마란 년이 들어온후 몇년동안 큰어머니가 살아 계실때 까진

불쌍하진 않았다.

큰어머닌 나와 비슷한 시기에 사촌을 낳았는데 그 사촌보다 나를 먼저 젖을 먹이셨고

맛있는 음식이 생겨도 꼭 나부터 챙겨 주셨다.

나는 제법 클때까지 큰어머니를 엄마라 부르며 자랐다.

하지만 내인생이 잘못되기 시작한건 내가 열살 무렵 아버지란 작자가 새엄마를 데려

왔고 그 새엄마란 년은 나를 별로 좋아 하진 않았지만 큰어머니의 보살핌으로 별 설음을

받지 않았다. 몇년간은...., 아마 그 새엄마란 여자 나보다 20살 정도 많을거다.

하지만 내가 열살 무렵 큰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큰아버진 사촌 두명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셨다. 아버지와 형제 였지만 큰아버지도 무지 좋은 분이셨다.

당연히 큰어머니가 안계시니 나를 데려 가실리가 없고 아니 그럴 형편도 안되었다.

난 새엄마가 있는 우리집으로 들어 가야 했다. 그 당시 새엄마는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아참! 내이름은 나오봉, 키는 180정도에 몸무게는 83 군살이 없는 거구다.

학력은 국민학교 중퇴..,지금까지 번돈은 모두 좆대가리에 투자를 했다.

맨처음 좆에 투자 한건 포경수술.., 그후로 인연을 맺은 돌팔이에게 돈이 조금만

생기면 찿아가서 좆 모양을 바꿨다. 실리콘에 다마는 기본이고 평소 발기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씹질이 가능 하도록 좆에 심을 박아서 평소에는 아래로 향하게 해 놓았다가

필요할 경우 위로 세우면 바로 수셔 박을수 있다. 발기하지 않은 평상시 좆의 크기가

보통 조금 큰좆을 가진 사람의 것만 하다. 그러니 발기가 되고 나면 완전히 말좆이다.

내 좆에 심을 박은 이유는 차차 이야기 하겠다.

내좆의 또한가지 특색은 표피 끝부분에 털을 심었다. 돌팔이가 내돈 먹은게 미안했는지

서비스로 해 준건데 이 털은 한없이 부드럽다가 물기를 머금으면 뻣뻣해 진다.

나는 어린시절 부터 서러울때는 운동을 하였다. 처음 시작한 운동은 달리기...,

고향 뒷산을 뛰어 오르곤 했는데 항상 무거운것을 다리에 매달고 뛰었다. 그리고 집을 나온

열살 무렵부터 지금 까지도 운동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꼭 한다. 태권도를 필두로 단증을

딴것만 해도 여럿이다. 한마디로 내 체력과 좆대가리는 국보급이다.

이제 나의 과거 부터 이야기 하겠다.

서두에 이야기 했듯이 엄마는 내가 태어 날적에 돌아 가셨고 아버지는 나를 큰어머니에게

맡기고 밖으로 나돌았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여섯살쯤 되었으리라. 새엄마란 여자를 데리고 왔는데 난 그여자를

아직 한번도 엄마라 불러 본적이 없었다.

그 여자는 우리집에 오는 첫날 부터 나를 별로 좋아 하지 않는것 같았고 나또한

그냥 큰집에 살았다. 큰어머니는 자기 자식 보다 나에게 더 잘해 주셨다.

남들이 학교 갈 나이가 되었을때 나도 학교에 들어 갔고 준비물은 큰어머니가 사촌과

꼭 같이 챙겨 주셨다. 가끔 우리집에 가서 잠만 자고 오기도 하였다.

내가 국민학교 2학년때였다. 새엄마가 낳은 아기가 무슨 병인지 모를 병에 걸려서

죽어 버렸고 새엄마는 그때부터 나에게 더욱 무관심 하더니 나를 괴롭히기도 하였다.

아버진 여전히 한달에 두서너번 집에 들어 왔고.....,

그해 여름 이였다. 밤 늦게 큰집에 손님이 많이 오셔서 나는 우리집으로 자러 갔다.

집에 들어 서는데 안방에서 새엄마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그때만 해도 난 아직

남여의 일을 알지 못하는 나이라 "어디가 많이 아파요?" 라며 문을 열었고 안방에는

알지 못하는 남자와 엄마가 부등켜있고 새엄마가 신음을 내길래 난 그놈이 새엄마를

괴롭힌다고 생각하고 몽둥이로 두들겨 팼는데 남자는 옷을 챙겨서 도망을 갔고

새엄마란 년은 옷을 입을 생각도 않고 일어나더니 내 뺨을 때렸다.

실컷 두들겨 맞고는 작은방에서 잠을 잤고 그날 이후론 더더욱 나를 괴롭혔다.

아버지가 생활비는 꼬박 꼬박 들여다 주었는데 어떤때는 돈이 없어 졌다며 그게 나의

소행이라고 두들겨 패기도 하고 아버지한테 이야기 해서 맞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해 가을 큰어머닌 병에 걸렸고 돌아가실때쯤 내 손을 잡으며-불쌍한 내새끼를

어쩔꼬....,-라며 눈물을 흘리셨고 돌아가시기 전날엔 나에게 굳건하게 자랄것을 유언처럼

부탁 하시곤 돌아 가셨다.

큰어머니가 돌아 가시고 얼마후 큰아버지는 사촌을 데리고 이사를 가셨고 나는 어쩔수 없이

우리 집으로 갔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인 나의 설음이 시작 되었다.

한번도 밥을 챙겨 주는 법이 없었고 나는 배가 고프면 내가 찿아 먹거나 이웃에서

얻어 먹곤 하였다. 어떤때는 밥을 챙겨 먹다가 새엄마에게 들키면 또 두들겨 맞았다.

큰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에서 보낸 일년은 매일 맞으며 살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새엄마가 외출하고 없는 틈을 타서 집에 돈을 뒤져서 가출을 하였다.

제법 큰 돈이였는데 그 돈은 아직도 다쓰지 않고 나의 저금통장에 남아 있다.

무작적 온곳이 서울의 어느 변두리 였는데 몇일을 방황하다 거의 거지가 될무렵 어느

중국집에 취직이란걸 하였다.처음엔 중국집 주방의 잔심부름을 하면서 밥만 얻어 먹었다.

중국집은 부부가 운영 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주방일을 여자는 홀 서빙도 하고 가끔

배달도 하곤 하였다.

배달 하는 형도 있었는데 나보다 나이는 훨씬 많았지만 덩치는 나보다 작았다.

중국집의 안주인 역시 좆같은 년이였다. 남편은 그런대로 잘해 주었는데 여자는

나를 하인 다루듯 하였고 손님이 먹다 남긴 자장면을 모아서 위에 자장을 조금더

부어 주며 점심으로 먹게 하였다. 그래도 그집에서는 배는 채울수 있었기에 내가 열여섯살

될때 까지 오랜 세월을 있었다. 나중에는 제법 주방일도 하게 되었고 배달도 잘하게

되니 월급이란걸 주었다. 중국집에 배달원들은 몇달이 지나지 않아서 나가곤 하였는데

나는 육년이란 세월을 버티니 주인 남자는 월급도 주고 잘해 주었지만 여자는 여전히

좆같았다. 그여자도 새엄마란 년과 나이도 비슷하였다.

중국집에 있으면서 버틸수 있었던 힘은 돈이 모이는것과 매주 화요일이면 쉬는데

주인 남자가 나를 데리고 낚시를 꼭 갔다.

내가 열세살이 되면서 모아둔 돈을 좆에 투자하기 시작 하였다. 그계기는 다름아닌

중국집 주인 때문이였다. 그때 까지만 해도 난 여자와 씹질이란건 알지 못했다.

어느 화요일 (아마 내가 열네살때 였을거다.)에 아저씨와 낚시를 갔는데 다른때 처럼

아저씨는 나에게 낚싯대를 보게 하곤 어디론가 가는 거였다. 다른 주에도 낚시하러 오면

아저씨는 두세시간 어디 갔다 오곤 했는데 그날은 아저씨를 살금 살금 따라 갔다.

구석진 곳으로 간 아저씨가 어느 방갈로 같은곳으로 들어 갔고 나도 따라 가 보니

안에는 모르는 여자가 있었고 처음엔 안고 무슨 이야긴지 하더니 둘다 옷을 벗고 어찌어찌

하더니 아저씨 좆이 그 여자 보지속으로 들어 가는 것이 였다.

아저씨 좆이 보지속으로 들어 가는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내좆이 커지고 있었고

멍하니 한참을 내 좆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는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일을 끝내고 나온

아저씨에게 들켰다. -오봉이 너 다 봤니?- "예" -집에 가면 아줌마 한테는 비밀이다-

나는 비밀을 지켜 주었고 아저씨는 주방에서 나와 일을 할때는 여자 이야길 해 주었고

가끔 아저씨와 목욕을 가면 내 좆을 보곤 포경 수술을 하여야 겠는데 하면서 돌팔이를

소개 해 주었고 그 돌팔이는 남의 좆 수술을 많이해 준 사람 인지라 내 물건이 상당히 좋다며

이것저것 수술을 할것을 권했고 여자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면서 좆같은년들에게 맛을

보여 줘야 겠다는 생각에 좆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중국집에서 육년을 보내고 그만 두었다. 그만둔 이유는 물론 주인 여자 그년이

여전히 좆같이 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만 두고 나올때 주인 남자는 비밀을 지켜 주어서

인지는 몰라도 많이 서운해 하며 나를 잡았는데 여자는 자기집에서 도둑질이나 하지 않는지

내 짐을 모두 검사 하기 까지 했다. 나는 속으로 "씹할년 네년도 언젠가는 나한테 잘못했다고

빌날이 있을거다"라고 중얼 거리곤 그집을 나왔다.

가까운 여인숙을 얻어서 짐을 두고 참으로 오랬만에 집에 가 보고 싶었다.

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본능적으로....., 오후 해질녘에 집에 도착 했는데 문은 잠겨

있었다. 동네를 한바퀴 돌아 보니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에전 큰집터에 가보니 집은 없어지고 대나무만 무성하다. 다시 우리집에 와서 현관에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있으니 새엄마가 아기를 업고 들어 온다.

아직 아기가 어린걸로 봐서 낳은지 얼마되지 않은것 같다. 내가 일어서며 인사를 했다.

-왜 왔니?- 한마디 하고 안으로 들어 간다. 따라 들어 갔다. 아기가 자는지 아이를 내려

눕히고 나오는데 아기를 보니 아버지를 닮은게 아버지의 둘째가 분명 한것 같다.

"동생이 태어 났군요.언제 낳았어요? 아버진요?" 새엄마 아니 여자라고 쓰겠다.

여자는 대답 없이 나가더니 -네 아버지는 다쳐서 읍내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봐라-

"아무리 미워도 오랫만에 왔는데 저녁은 먹여서 내 쫒아요." 나도 화가 나서 한마디

했다. 비록 내 나이 16살이지만 덩치는 20살 먹은 청년보다 더 컸다. 힘도 물론 세고...,

그래도 여자는 대답을 않고 밖으로 나가려 한다. 순간 나는 돌아 버렸다.

여자의 손을 확 잡아 끌었다. 여자가 도끼눈을 하면서 -왜그래?-라며 뺨을 때린다.

나도 질세라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확 당겨 버렸다. 여자가 방바닥에 넘어진다.

-이놈이 에미를 치네.., 이런 후레자식...,- "에미 좋아 하네 야 이년아 네가 나한테

언제 에미노릇 해 줬냐?" -이런 나쁜놈 당장 아버지 한테 이럴거다.-

"일러라 이년아 나도 이럴게 있다. 네년이 다른놈한데 씹대 준거 내가 봤는데...,"

여자는 나를 때릴려고 주먹을 쥐고 달려 들었지만 순간 나의 주먹이 여자의 복부를

가격했고 여자는 뒤로 벌렁 나자빠 졌다.

"씨팔년 오늘이라도 좀 잘 대해 주면 지난날은 잊고 엄마 대우 해 주려고 했더니

어쩔수 없는 년이군, 오늘 네년 나한테 씹창 한번 나봐라."

나는 여자가 보는 앞에서 옷을 모두 벗어 버리고 여자가 악을 쓰면 동네 시끄러울것

같아서 일단 입을 막고 손을 묶어버렸다. 여자가 심하게 반항 하며 욕을 했지만

여자의 입에는 나의 양말을 물리고 런닝을 찢어서 입을 가리고 손을 묶고 나니

두 다리만 버둥 거렸다.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뺨을 몇대 후려 쳐 버렸다. 여자의 코에서 코피가 흐른다.

아직은 여자가 두눈을 허옇게 뒤집고 알아 들을수 없는 소리로 악을 쓴다.

머리채를 잡고는 들었다가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눕혀진 여자의 둔덕 부분을 발로 지긋이

밟았다. 그 순간 여자는 나의 좆을 봤는지 눈이 동그래 진다.

난 아직 여자 경험이 한번도 없었지만 좆은 특이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성이 난 내 좆은

길이와 굵기가 장난이 아닌데다가 실리콘에 다마..., 그기다가 표피 끝에는 털까지..,

여자는 이런 괴이한 좆은 아마도 처음 보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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