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p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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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튜브링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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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part2



전철을 타러가는 걸까...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난 엄청난 비밀을 알아버린것이다.
키를 사무실에서 가져오지 않은것은 생각할겨를이 없었다.
그녀가 사거리 은행건물 앞을 지나고 있을때 클락숀이 울렸다.
BMW한대가 라이트를 켜고 그녀 옆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도어가 열리고 누군가가 손짓을 했다.
난 눈이 매우 좋은 편이다.양쪽다 1.5 이기 때문에 왠만한건 선명히 보인다.
맥도날드에서 본 그 점주였다.

-정은씨...타요! 오늘 왜이리 늦었어요?

-민우씨..많이 기다렸어요? 오늘 세금계산서 정리하느라구요..우리 경리가 휴가가서
제가 대신 했거든요.

그녀가 조수석에 올라탔고,차는 이내 출발해버렸다.
대략 감이 오고 있었다.
지금 그녀는 사장과 내연의 사이인것 같다.
그런데 저 남자를 알게 된뒤부터 아마도 사장과의 사이를 정리하고 새출발하려는 거겠지,,,시집갈나이도 되었고하니 아마도 늙은 유부남보다는 능력있는
미혼남성을 택하는게 현명한 판단일것이다.
난 가까운 모텔로 들어가 샤워를 한뒤 맥주를 한잔 마시며 생각했다.
내가 몰래 엿들은건 아무도 모른다..사장도 모르고 그녀도 모른다.
영화에서 나오는것처럼 협박을해서 사장에게 돈을 요구해볼까?
아니면 그녀를 협박해서 그녀의 모든것을 가져볼까....큭큭
하지만 역시 이건 나의 상상일뿐.. 내겐 그런용기가 없다.
아니 일말의 양심이 나를 억누르는 건지도 ...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다. 요조숙녀처럼 보이던 그녀가 드라마에나 나오는
주인공같은 상황이라니...
그날밤 난 꿈을 꾸었다. 그녀를 소유하는 꿈을.....


다음날 난 구겨진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할수밖에 없었다.
샤워는 했지만 옷이 조금 엉망이다보니 괜히 내가 초라해보였다.
어젯밤의 일이 모두 꿈처럼 여겨졌다.
내가 들은 것들이 꿈이었다면 정말 즐거운 꿈이었을것이다.

사장은 아직 출근 전이었다.
정은만이 책상에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좋은아침!

-네..안녕하세요

-커피 드시네요? 모닝 커피 죽이죠?

-,,,,,,,,,,

저뇬이 또 내말을 먹는다. 공주아니랄까봐 소리도 안내고 저 뜨거운 커피를
홀짝홀짝 마셔댄다.
왠일로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갑자기 내가 멋있어보이냐?

-오늘 ..재포씨 꽤죄죄해 보이는거 알아요?

-네?

-옷도 구겨져보이고 머리도 붕 떠있고...세수는 했어요?

-......

저,,,저게..완전히 날 비하하는 발언을...

-어제 출장가서 집에 못 들어가서 그래요.

-그럼 어제 입은 옷 그대로 입고왔단 말이에요?

-어쩔수 없죠...

-.......

정은의 표정이 벌레보는 듯 찡그러졌다.
솔직히 찡그린 표정도 예쁘다. 하지만 저 깔끔떠는 건 정말 싫다.

- 왜 그런 표정 지으세요? 그래도 깨끗히 샤워하고 나왔는데...

-...아니에요... 오늘 업무는 제가 드릴께요. 사장님 좀 늦으신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팀장님!

일부러 팀장이란 말에 힘을실어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건방진 계집애가 책상에 앉은채로 업무볼 상가를 말해주었다.
완전히 내가 머슴이고 지는 달나라 공주인줄 착각하나보다.
내 참 더러워서.....

아침일찍 체인점 두군데를 돌고 농땡이를 피웠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 기집애가 얄미워졌다.지는 얼마나 잘났기에...
나이도 어린것이 도도하긴 엄청 도도해가지구...
으이구 성질나....
어떻게 골탕을 먹여주지..이 인간 이재포가 저런 계집애한테 자존심 긁혀가며
참아야한다는건 정말이지 한심스런일 아닌가..
골탕,,,골탕,,,.. 그녀는 나처럼 트집잡을 것이없어서, 쪽주기도 어렵고....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는중에 저멀리 용산상가가 내눈에 들어왔다.
예전엔 컴퓨터때문에 자주가곤했는데...
우리 선배중에도 용산에 가게를 하는 사람이 한명있다.
그렇다!! 난 재빨리 용산으로 차를 몰았다.

-형 저왔어요.

-얼레...재포 니가 웬일이냐?

-회사에서 일보다가 농땡이 피우는 중이죠.

-그래? 짜식 놈팽이 생활 벗었냐?

-언젠 내가 놈팽이었수? 그나저나 잘 되슈?

-덕분에 입에 풀칠은 한다. 넌?

-나도 마찬가지지...뭐.. 식사는요?

-먹었어..너 안먹었냐? 시켜줄까?

-먹었어요 ...그나저나 뭐 물어볼께 있어서...

-뭔데?

-형 가게에 디지털 녹음기 있어요?

-어떤거? 어학용?

-난 그런건 잘 모르고 성능좋은 걸로요.

-종류야 많지..어디다 쓸건데? 쓰는 용도에 맞춰야할거 아니야.

-그냥 장난삼아 하나 사려구요. 우리 와이프 바람피우는지 확인도 해볼 겸..
큭큭!

-도청기는 없어임마,,,, 이거나 한번바봐..

선배는 조그만하게 생긴 녹음기를 보여주었다.

-일제거든. 이번에 수입한거야!

-이야 작네요? ...성능은 어때요? 사용하는 방법은..

-짜샤 설명서보면 알아...대략 14시간정도 녹음되고 도중에 건전지가 다 떨어져도 녹음된 파일은 저장이 되어있어. 그리고.....

-알았어요..좋은거구만,,내가 집에가면서 볼께.. 얼마에요?

-내가 말하면 돈주게? 됐다. 담주에 술이나 한잔 사라..

-이야 통이 많이 커졌수..형님..돈 많이 버나보네.?

실컷 잡담을 하다 녹음기를 들고 차로 돌아왔다.
건전지를 끼우고 테스트를 해보았다. 정말 살기좋은 세상이다.
조그만하게 중얼거린 것까지 다 녹음이된다.
나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있었다.
다행히 식사하러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하지... 녹음기가지고 장난을 치고싶은데, 방법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둘의 대화를 녹음해서 가지고 있으면 뭔가 재밌는일을 꾸밀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내게그런 배짱이 없을지라도 은근히 기대라도 해볼수 있지않을까..

사장실에 들어갔다. 책상하고 화분, 에어콘,액자,어항,책장,컴퓨터 어떤곳에다 이걸 숨기지..?
숨겨봤자 괜히 허탕치는거 아니여..? 젠장 모르겠다 한번 숨겨나보자..
난 곰곰히 생각하다가 내가들고있는 녹음기가 매우 슬림하다는걸 깨달았다.
건전지 넣어두면 14시간정도 간다고했지....!
REC 버튼을 누르고 소파옆에있는 액자뒤에 녹음기를 끼워넣었다.
혹시나 떨어질까봐 몇번 흔들어보고 테스트해봤지만 문제없음을 확인하고 몰래 사장실을 나왔다.

20분이 지나자 사장과 정은이 함께 사무실에 들어왔다.

-어이 식사했는가?

-네.전 먹었습니다 사장님은요? 같이 드셨나봐요?

-응..요앞에서 냉면먹고왔네.

사장은 사장실로 들어가고 정은은 자기의 책상에 앉았다.
이것들 밥안먹고 다른데 갔다온거 아니여?
한번 의심이들면 계속 그런다 했던가? 내눈엔 요조숙녀처럼 앉아있는 그녀가 예전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것 이었다.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예? 아,,아니요

그녀얼굴을 의심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다 들켰다.
이 더운 날씨에 저렇게 뜨거운 커피 마시면 맛있을까?

-그런데 어제봤던 양평 점장님은 왜 오셨던 거에요?

-네?

-어제 맥도날드에서 봤잖아요.

-아...그냥 업무때문에 상의할게 있다더라구요..행사한번 해달라구 하길래..

-그럼 사무실로 모시지 않구요?

-......그럴까 했는데... 시간이 없으시다 하셔서 바깥에서 만난김에 거기서
얘기한 거에요. 어차피 사무실에서 얘기해도 똑같으니까..

-아하,,그래요? 난 또...

-,,,,,,,?

-아니요..두분이 매우 다정해보이시길래..헤헤!

-무슨... 농담 말아요....

-아,뭐 그냥 제 착각이었겠죠?

그녀의 얼굴이 살짝 발그레해지는걸 느꼈다.

-외근 나갔다 오겠습니다.

약간 당황하는 그녀를 뒤로한채 밖으로 나왔다.
오후에도 더운날씨가 계속됐다. 정말 비나 확 쏟아졌음 좋겠는데.
일부러 저녁을 먹은뒤 늦게 사무실에 들어왔다.
아침에 그녀에게 키를빌려 사무실 현관키를 복사해두었다.
업무보고는 전화로 끝냈기 때문에 아마 다 퇴근했으리라.
어차피 나 기다려줄 사람들은 아니기에...
혹시나 내가 없는동안 어떤 얘기가 오갔을까 무척 기대가 되었다.
액자를 천천히 들어올리고 녹음기를 빼내었다.
에구 긴장돼라..
심호흡한번 크게 한 뒤에 플레이버튼을 눌렀다.
소리에 반응하여 녹음되는 기능이 있기에 의외로 효과가 좋았다.
대기상태에서 소리만을 감지하여 작동-녹음하는 기능은 최대한 많은것을 담을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젠장...커피 타달란 말과 보고서 작성한것 결재하라는 것 외엔 라디오 소리만 가냘프게 녹음되어있었다.

'회사에선 그런말 안하기로 했나?'
저번에 내가 이녹음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허망한 마음을 애써 달래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뒤 삼일동안 계속 녹음기를 숨겨놓고 도청했지만 번번히 녹음기엔 쓸모없는 대화만이 입력되어있었다.
아마도 내가 영화를 많이 본것이리라..하기야 사무실에서 다시 그런이야기를
할필요가 있을까? 나만 괜히 헛다리 짚은것이다.
오늘은 외근을 끝내고 집으로 바로 들어갔다.
내일이면 미스김이 휴가를 끝내고 돌아온다.
그럼 내가 자질구레한일을 할 필요도 없겠지?
밥하기 싫어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집에올때 야한 영화도 빌려왔다. 최근들어 한국 애로배우들이 많이
예뻐진것같다.
몸매도 한등급 좋아진것같고....
갑자기 영화를 보다가 여자 생각이 간절해졌다..씨바 화장지가...
독수리 오형제의 도움을 받아 오랜만의 방출을 했다.
손맛이 짜릿짜릿하다. 불쌍한 내신세... 집사람이 빨리 출산을 끝냈으면 좋겠다.


다음날 난 허둥지둥 거리며 택시를 탔다.
오늘은 미스김이 출근하는 날이다.
어제 깜빡하고 녹음기를 사장실에 그대로 두고 와버린 것이다.
휴가갔다온 미스김이 청소한답시고 액자라도 닦다가 녹음기가 발견된다면,,,
최악이다!!
젠장..아까운 택시비!
다행히 일찍 나오는 미스김보다 빨리온것같다.
얼빵해보이는 얼굴과는 다르게 그 택시기사 졸라 빨리 달렸다.
엄지발가락에 힘주느라 쥐가날정도였다.
액자를 앞으로 당기자 빨간 점멸등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밧데리가 거의 떨어진 모양이다.
그때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난 재빨리 사장실에서 나와 내 책상으로 뛰다시피 걸었다.
생각대로 미스김이었다.
얼굴이 까맣게 타있는게 엄청 재밌게 놀다왔다보다.
그녀가 연신 싱글거리며 자기 휴가 갔다온 얘기를 해주는데 나도 하루빨리
가고 싶어졌다.
오늘따라 사장과 정은이 늦다. 벌써 출근시간 40분이 지나가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계단을 뛰어올라오는 여자의 하이힐소리가 들렸다..낯익은
발소리! 정은이다.

-죄송해요 늦었습니다! 어 정애왔네?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다.

나한텐 인사도 잘 안하는게...
정은과 정애가 서로 얘기하는것을 뒤로하고 난 서류를 챙겨 바깥으로 나왔다.
오늘은 돌곳이 너무많다.
아무래도 계절이 계절인지라 생맥주 사업은 호황이었다.
이곳저곳 오픈하는곳도 많고 소비량도 많았다.
생각해보니 요즘은 그녀와함께 상가를 돈지도 꽤오래됐다.
건방지고 도도하긴해도 그녀와 일하면 꽤 즐길게 많은데..
오늘은 양평쪽에 가는 날이다.
이미 시간이 퇴근시간에 가까왔지만 오늘 여기를 끝내야 내일이 편하기 때문에 한번 무리하기로 했다.
상가엔 점주와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대리님..

내가 가게에 들어서자 점장이 먼저 인사했다.

-네 바쁘시네요? 저번달 매출 집계좀 뽑으러 왔는데...담에 올까요?

-아니요,,무슨 말씀을, 여기까지 오셨는데 ...경아야 여기 주스 두잔만 가지고 와라..

-어떠세요? 잘 되시죠?

-우리 이대리님이 이렇게 관리를 잘해주시는데 당연하죠..

-하하,,,별말씀을...오늘은 저혼자 왔습니다.

-네?

-우리 한팀장님이 늦게 출근하셔서,,,

난 점장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너땜에 늦었지? 어제밤에 뭐했어?

-어,,그래요? 한팀장님이 철저하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지각도 하시네요? 허허

-아,,뭐 사람이니까,,,

녀석은 눈하나 깜짝하지않고 그녀와의 사이를 아무렇지않게 흘려버렸다.
둘이 애인사이인걸 밝히고 싶지않은걸까?
아마도 내 예상으론 그녀가 싫어하기 때문에 숨기는것같다.
점장은 의외로 호탕하고 남자다운 사내였다.얘길하다보면 느껴지지만 사업하는것도짜임새있고 배포도 제법 크다.
짐작이지만 의외로 선해보이는 마음을 가진듯했다.
능력 있겠다. 나이도 젊겠다. 여자들이 빠질만도 하다.
그 도도한 정은이 당신에게 애교부리는 모습을 보고싶군...
하지만 난 당신이 모르는 비밀을 알고 있지...
이래서 세상은 공평한것 아니겠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배가 고파 휴게실에 들러 우동을 먹었다.
내일은 아내에게 가봐야겠다. 며칠안봤더니 허전해서 기분이 우울하다.
담배하나를 꺼내물고 차에올랐다.
가방속을 뒤져 라이터를 찾는데 녹음기가 손에 잡혔다.
젠장 이건 괜히 얻었네! 돌려줄까?...녹음기를 가방에 다시넣으려다 액정에비췬
글자를 보았다.

"12분48초"

이게 뭐야,,,녹음된게 있나?
버튼을 눌렀다...젠장 밧데리가 떨어졌었지...
휴게실에서 건전지를 사와서 녹음기에 끼워 넣었다.버튼을 누르자마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어서 말소리도....

-한팀장...퇴근할거지?

-네!

정은은 아마 사장실 밖에있나보다. 목소리가 멀게느껴진다!

-잠깐 들어와.
곧이어 누군가 사장실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며칠 안남았군. 여긴 계속 다닐거지?

-그럼요! 사장님이 베풀어주신것도 있는데..

-어허,,또 그소리...오늘도 집에 바로 갈건가?

-....

누군가 일어나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가만있어봐...

-그치만...

-어허,,이제 내가 언제 정은이하고 이럴시간이나 있겠어! 가만있으라구...

난 더욱 볼륨을 높였다. 흥분감에 몸이 짜릿해옴을 느꼈다.
생각지도 못한사실이 현재 이 녹음기안에서 흘러나오고있다.

-정말...넌 부드러운 살결을 가지고 있어...흠...향기도 좋고~

-.........

-널 처음 가졌을때가 생각나는데? 그땐 정말 귀여운 구석이 많았는데..

-...지금은요?

-지금?...지금도 예쁘지..이쁘구말구...1년전보다 더욱...

-.......아~

내 심장은 그녀의 약한 신음소리에 터질듯 쿵쾅거렸다.
사장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너무 궁금해서 미쳐버릴것 같다.

-하지만,,,요즘 난 우울해...네가 떠나려고하니까..하~
-........

-떠나지 않는다고 약속해...내 곁에서 함께한다구...응?

-..떠나진..않아요..하지만 우리 더이상은 이런 관계 안돼요..그것만은 약속해요?

-.......노력할께...노력한다구...

흡착음소리...사장의 입술이 그녀의 어딘가에 닿는 소리가 들린다.
키스를 하는건가...

-정은아...소파에 누워볼래?

-......

-싫어?

-여기서요? 않됀다는거 아시잖아요

-넌 한번도 여기서 허락하지 않는구나...왜 그렇지?

-여긴 회사에요...제가 앞으로도 일할 곳이구요. 제 자존심을 무너뜨리려 하지마세요.

-..그래..그래 그랬었구나!

잠시동안 아무소리도 들리지않았다. 움직임 소리만 조금씩 들릴뿐...
내가 안타까운 심정으로 액정안의 남은시간을 들여다볼때 사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오늘은...나와함께 있어주지 않을래?

-....죄송해요...외박은 절대 하지 않는거 아시잖아요!

-그래도 오늘은 너와 함께있고싶어..이제 약속한 일주일도 이틀밖에 안남았잖아...
응?

-어쩔수 없어요...허락 못하겠어요...죄송해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넌 고집이...

-...........

-그럼 조금만 있다가 가거라,,,

-..........

-그것도 싫어?

침이 꼴깍 넘어간다. 그녀의 말이 너무도 느리게..마치 슬로우 비디오의 음성처럼 재생되는것 같다.
뭐라고 대답할까...?

-알겠어요...하지만 새벽에라도 집엔 가겠어요.

어쩔수 없다는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조용히 새어나왔다.

-그래..그건 알아서 해..피곤하면 내일 출근 늦게해도 돼니까..

-지금 갈꺼에요?

-응...몸이 달아올라 지금도 못견디겠어.예전에 한번갔던 소피텔로 갈까?

-.......사장님 편하신대로하세요.

소피텔이라면,,, 강북에있는 특급호텔을 말하는건가?

이어서 사람인기척이 들리고 곧이어 전등스위치 끄는 소리와 문닫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서 녹음은 끝나있었다.
한동안 멍하니 녹음기를 바라보던 난 갑자기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못하고 시원하게 소리내어 웃어버렸다.
이런,,,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내 욕망의 흥분을 분출 시키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녀가 오늘 아침에 늦게 출근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젠 분명 하이힐을 신지않았는데 오늘은 하이힐을 신고 출근했다는 건 결국 그녀가
집에 들어갔단 소린데...새벽까지만 사장이랑 함께 있었다는 거군,,
아무래도 이건 나혼자 알기엔 너무나 재밌는 사실이었다.
이걸 그녀의 애인에게 들려준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상상만으로도 나의 머리가 뜨거워졌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금 피곤했지만 그런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씻지도 않고 침대에 퍼져누웠다.
눈을 감고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 지하철에서 봤을때 한눈에 반했던 그녀..그녀가 사장과 뒤엉켜 섹스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상류층속에 파묻혀사는 그녀가 나를 비하하던 모습도 떠오른다.
일반인인 나와 자기는 격이 다르다는듯 쳐다보던 눈빛...그리고 말투!
내 머릿속엔 그녀를 보란듯이 꺽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뇌속을 자극하고 있었다.
컴퓨터를 켜고 녹음된 파일을 pc에 저장시켰다.혹시라도 실수로 지워진다해도 복사본이 있으니 걱정할필요가 없어졌다.
오늘밤은 기분좋게 잠을 잘수 있을것같다.


토요일이다. 아무래도 토요일은 기분이 좋다. 공무원들은 주5일 근무제로 들떠있지만
우리같은 일반인들은 막연히 주말인 토요일이 반가운 것이다.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회사에 도착하니 정은과 정애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대리님!

정애가 부드럽게 인사했다.

-네! 좋은 아침입니다.

가볍게 목례하고 자리에 앉았다.
헤즐넛 원두커피향이 코를 찌른다.

-정애씨 커피 여분없어요?

-어쩌죠? 물을 조금 부어서 없는데..... 제가 다시 타드릴까요?

-예!
정말 참한 기집애다. 성격이 어쩜 저리 천사같을까...

-애는...목마른 사람이 우물판다고...재포씨가 직접 타드세요! 아니면 아침에 조금 빨리 나오시던지...

정은이 내게 시선을 맞추지 않고 말했다.

-언니는...커피 타주는게 뭐 힘든일이라구,,제가 타드릴께요!

정애가 정은의 눈치를 보며 내게 살짝 미소지었다.
잠시 할말을 잃었던 나는 정은에게 말했다.

-한팀장님은 제가 그렇게 미우십니까? 섭섭하게...

-제가 뭘요,, 사실대로 말한것 뿐인데...정애가 여기 커피 타주러 온애도 아니구,,,
여자라구 커피심부름 하구싶겠어요?

-....제가 타달란것도 아니잖아요..

-여분없냐구 물은건 타달란 말이나 같죠!

-...........

할말이 없다. 저뇬은 정말 여우같은 계집애다. 어떻게 저리 사람 정곡을 찌르는말만 골라서 할까?
아침에 상쾌했던 기분은 다 날라가버리고 스팀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고 그녀의 입에서 업무에관한 얘기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재포씨 요즘 저하고 같이 안다닌다고 일을 게을리 하시는것 같아요.
아침부터 기분나쁘실지 모르겠지만 사장님 대신해서 한마디 할께요.
저번 주부터 돌아다니시는 코스가 너무 적은거 아니에요? 업무일지에 쓰인
코스가 하루분량치고 너무 적은것 같아서 하는 말이에요.

-........

-그리고 또 업무 다보시면 회사차는 조금 힘드시더라도 차고에 넣어두고 가세요.
저도 예전부터 그래왔고 다른 직원들도 그래왔어요. 누군 운전못해서 전철 타고 다니는줄 아세요? 앞으로는 회사업무에 차질 없도록 해주세요.

낮은 음성의 그녀 목소리는 내귀를 바늘로 찌르듯 공격해왔다.
정말 할말이 없다... 그녀 말의 대부분이 사실이기 때문에...하지만 정말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건 어쩔수 없었다.
정애는 당황했는지 커피를 내게 조심히 갖다주고 황급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적잖히 충격을 받은나는 아뭇소리도 하지 못한채 복도에나와 담배에 불을붙였다.
분하기도 하고 화도나서 눈물이 날것 같았다.
나이도 어린계집애한테 이런 모욕을 받았다는게 정말 분했다.
싸가지 없는 여잔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사람을 대놓고 무시할줄은 몰랐다.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오후 한시가 되었다. 퇴근시간이다!
사장이 퇴근하자 우리도 퇴근준비를 했다.
서먹서먹한 사무실분위기는 정애의 애교로 많이 풀려있었지만 내 맘속의 응어리짐은
쉽게 사라지질 않았다.
내가 서류 가방을 챙기고있을때 정은의 핸드폰이 울렸다.

-네 ..한정은입니다! 네...지금하려구요. 어디에요? 그래요? 그럼 거기서 봐요.
아니요...내가 택시타고갈께요. 한 20분이면 도착할거에요. ...이따봐요!

정은은 전화를 끊고 핸드백을 들고 일어섰다.

-언니 먼저갈께..재포씨도 안녕히가세요...

-...네

왠일로 저계집애가 나한테 인사를했다.아침에 지가 한말이 미안해서일까?
그녀가 사무실 문을 나간뒤 정애가 말했다.

-퇴근않하세요?

-해야지..미스김은?

-저두 해야죠...오늘 아침엔 기분 별로 안좋으셨죠? 정은언니가 성격이 직설적이라..

-뭐..어쩔수 없지. 그래도 정애에겐 잘해주던데?

-원래 언니 성격이 저렇게 직설적이진 않았는데.. 예전엔 부드러운 성격이었어요.
최근들어 좀 날카로워진것 같긴하지만...

부드러운 성격의 한정은은 내머리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회사를 빠져나온 나는 할일없이 시내를 배외하고있었다.
오랜만에 청계천에 가서 재밌는거나 사볼까..하는 맘이 들었다.
전철을 타기위해 지하도로 내려가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아내였다.

-나야..뭐해? 퇴근했어?

-응. 몸은 좀 어때?

-괜찮지뭐..자기 오늘은 여기 안올꺼야?

-응 가야지...밤에나 갈께. 장모님계셔?

-아니 절에가셨어,,,빨리와라..보구싶다.

-그래.

며칠만에 듣는 그녀 목소리다. 아무래도 오늘은 그녀와 함께 있는게 좋을것같다.
씩씩한 그녀가 목소리에 힘이 없는걸 보니 내가 보고싶긴 하나보다.
또 전화벨이 울린다.
뭘 사오라고 전화한거겠지?

-여보세요

-재포냐? 나다 이 자식아!

-어...기철이냐? 왠일이냐?

-왠일은..짜식.....잠깐보자.

청계천가는걸 포기하고 사당으로 갔다.
주먹구이집에 기철이와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여기다.
기철이 나를 발견했다.
기철의 건너편에 앉아있는 사람은...............양규였다.

-오랜만이다..재포!

-나왔구나? ...고생했다...왜 연락도 안하고 나왔냐? 두부라도 사가지고
달려갔을텐데..

양규와 기철 나 이렇게 셋은 고등학교 친구였다.
대학은 서로 같이 다니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결혼하기전까지 틈만나면
어울리곤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우리와는 다르게 양규는 어렸을적부터 부모님이 안계셨다.
친척집에서 자란 양규는 언제나 눈치밥을 먹고다니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우리가 대학을 들어갈때 양규는 제철소 공장으로 취업했다.
하지만 오래 다니진 않았던걸로 기억한다.
우리가 대학을 졸업하고 만남이 뜸해질즈음 언젠가 한번 모인적이 있었다.
녀석은 여자를 하나달고 나타났다.
어디서 났는지 승용차까지 몰고 말이다.
그때서야 녀석이 어떤일을 하는지 알수있었다.
몇달만에 만난 친구는 소위말하는 건달이 되어있었다.
지금은 기억나지않지만 그땐 낮은 꼬붕이라고 그랬던것같다.
그래도 공장다니면서 일하는 것보단 훨씬 낫다고 했다.
며칠후 녀석덕분에 총각딱지까지 떼게되었다.
총각딱지떼던날 늦은밤까지 술잔을 기울이던 우리 셋.....그때 가장 즐거운 웃음을
짓고 있었던 건 양규였다.
군대를 제대하기 얼마전 양규가 폭력사건에 휘말려 수감되었다는 걸 기철에게 들을수 있었다.
자그만치 6년 동안이었다. 초범이 아니어서 죄형이 여러가지 추가 되었다한다.
우리가 양규에 대해서 몰랐던 건 너무도 많았다.
두번정도 면회를 갔는데 양규는 생각보다 밝은 얼굴로 수감생활을 하고있었다.
나 역시 웃어주었지만, 예전의 양규 모습이 떠올라 마음은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긴 수감생활을 마친 양규가 지금 내 앞에 앉아있다.

-술 한잔 받아라.

양규가 술잔을 내게 건넸다.

-결혼생활은 어떠냐? 곧 재수씨 출산한다며?

-아직 몇달 남았다. 몸은 괜찮냐? 얼굴이 안돼보이는데...

-거기 물이 않좋아서 그래임마..

오랜만에 마시고 떠들었다.
셋이서 이렇게 마주않아 술을 마신게 얼마만 이었던지...
양규의 늠름했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2차까지 갔다가 요즘 간이 않좋은 기철은 먼저 집에 들어갔다.
연신 내일 또 한잔하자..낼은 내가쏜다 를 외치며 기철은 택시에 올랐다.
담배 한까치를 피우며 내가 물었다.

-언제 나왔냐?

-오늘..

-오늘? 오늘 나왔는데 우리 만난거냐?

-나와서 가장하고싶었던게 너희들과 한잔 빠는거였거든...어쨌든 묵은때가 싹
씻겨내려가는 기분이다.

-.........잘때는 있냐?

-왜? 큭큭.. 내가 그렇게 처량해보이냐?

-아니...한잔 더할까?

-됐다. 마누라 있는놈 오래 데리고 있으면 나중에 뭔소리 들을까 겁난다.

-우리 마누라 집에 없어.

-뭐? 뭔말이냐?

-아니..처가집에 가 있어, 거기가 나을거 같아서 보냈다,,임신걱정도 돼고..

-그럼 외로워서 어떻게 사냐? 우리 샌님 "재포"가...큭큭..

-얌마, 내가 왜 샌님이냐...어쨌든 오늘은 우리 집으로가자!

-괜찮아, 임마! 모텔에서 자면돼.

-출소 첫날부터 모텔갈래? 그래도 친구집이 좋을거다. 가자!

녀석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녀석은 연신 싱글거리며 내 결혼사진을 보고 웃어댔다.
샤워실로 녀석을 떠밀다시피 밀어넣고 대략 거실정리를 했다.
저번에 사두고 입지않은 추리링을 욕실앞에 놔두고 나도 옷을 갈아입었다.
녀석이 나온뒤 나도 샤워를 끝내고 거실소파에 앉았다.
이런전런 얘기를 하다가 녀석이 나에게 물었다.

-넌 지금 뭐하고 있냐? 노냐?

-미쳤냐? 놀면 누가 밥먹여주냐? 회사다녀..

-회사? 그렇지 너랑 어울린다..어떤회산데?

-그냥 그런회사지 뭐..그런데 넌 이제 뭐할거냐? 하기사 아직은 좀 쉬면서
재충전좀해라..사지 멀쩡한놈이 뭐 할일없겠냐?

-..........재포야...앞으로도 우리 자주만나자...

-새삼스럽게 무슨소리냐? 너 빨간줄이라고 우리가 색안경 쓰고볼까봐 그러냐?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양규가 않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다.

양규가 침묵을 깼다.

-뭐가?

-나...예전일 계속한다..

-.....

-돌아가기전에 너하고 기철이가 보고 싶어서....

난 잠시 할말을 잃었다. 이 녀석이 말하는 뜻은?

-예전에 내가 수감되기전에 우리 사장님이 나한테 약속하신게있거든..
거기로 갈거다.

-거기가..어딘데?

양규는 수감되기전에 자신이 몸담았던 위 사람으로부터 지역을 분배받았다 한다.
출감뒤 충분히 재기할 수 있는 양의….
양규가 윗사람 두어명대신 혼자 뒤집어쓰는 댓가였던 것이다.
아마도 건달세계에서 주로 하는 관례인듯 싶었다.

-난 ....이제 너희들 세계와 같이 어울리기 힘들어..너희들같이 회사들어가서 일하기도 힘들고..뭐 취직 자체가 힘들지....그리고 내가 못할거야... 그런데...여긴 달라. 내가 맘 만 먹으면 올라설 수 있거든....이젠 어렸을 적 그렇게 살고싶진 않다.

-.........

그날밤 녀석에게 난 아무말도 할수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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