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수라기(獸羅記) 52번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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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타타탁..탁...타탁..
무엇, 사람의 발소리라 짐작되는 발소리가 여러 차례 들려왔다. 점점 그 소리가 가까워 지는 것으로 보아 이 쪽을 향해 달려오는 모양이었다. 아환 등의 중인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언제라도 출수할 준비를 완료한 상태에서 곧 들이닥칠 상황을 기다렸다. 짓쳐오는 이들의 속도가 매우 빠른지라 범상치 않은 자들임을 깨달은 사람들은 예리하게 눈을 빛내었다.
츄츠츠츳...
숲이 갈라지며 수명의 푸른 인영들이 튀어 나왔다. 저마다 형형히 빛나는 안광에 예리하게 날이 선 장검을 든 채로 숲속으로부터 나온 청의의 인물들은 장내에 무리지어 있는 아환등이 있음을 알고는 경신술을 멈추었다. 그리곤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은채 검을 세워 경계를 하였다.
"형산의 곽사량이요. 어디서 오신 분들이시오?"
신중하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비굴해보이지도 않은 당당한 기개가 엿보이는 청의의 무리들 중 삼십대로 보이는 한 사내가 앞으로 나와 검을 쥔손을 뒤집어 포권의 예를 취하였다.
"소생은 하남의 남궁비오. 동도들과 형산을 둘러 보고 있었소."
은연중에 일행들의 영도자로 여기어지는 남궁비가 손을 들어 포권의 예를 취하면서 곽사량의 질문에 답을 하였다. 그러자 깜짝 놀라는 곽사량,
"만검창룡 남궁비, 남궁소협이셨군요. 곽모의 결례를 용서하시오."
"별말씀을..형산의 용검(勇劍)을 뵙게 되어 소생이 오히려 영광입니다."
"그런데..아! 그렇지요. 사화지연..사화지연이 이번에 형산에서 있었지요. 사화지연의 일로 형산에 오신 것입니까?그렇다면 무림사화와 다른 영웅들이시겠군요."
몇번의 포권을 거듭하는 곽사량.
"예. 저희 일행은 그렇습니다만.."
말끝을 흐리는 남궁비, 아무래도 타 문파의 일이라 대놓고 당신들은 왜 이렇게 급박하게 이쪽으로 달려왔냐고 묻기가 곤란해서 은근슬쩍 물음을 던졌다.
"저희는 마두 하나를 쫓고 있었습니다. 몰래 형산에 침입을 하여 장문인과 여러 형산의 문도를 상해하고는 도주한 악랄한 마두입니다. 혹시 괴인영을 보시지는 않으셨습니까?"
심각하게 인상이 굳어지며 곽사량이 남궁비의 말에 대답을 하였다.
"못보았습니다. 장문인께서는 큰 부상을 입으셨습니까?"
"가볍지는 않습니다만..죄송합니다. 더 이상 말씀을 드리기가 곤란합니다. 차후에 아시게 될겁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문파의 일을 계속 행해야겠습니다. 영웅들께 결례에 다시한번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곽사량과 청의의 사내들은 예를 가볍게 취하더니 이내 다른 쪽으로 달려가 이내 중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일행들은 형산의 문도들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눈을 계속 돌리다가 곧 그들이 보이지 않자 시선을 떼었다.
"유명사신이 왔다던데 그 악랄한 마두가 형산에 침입을 했단 말인가?"
운학일룡이라 불리우는 장씨성의 사내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유명사신이 왔었다는 것을 알고 접한 아환과 사화, 남궁비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안색이 무겁게 변하였다.
"듣자하니 그 마두는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긴다던데.."
사화와 같이 있던 여인들 중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유명사신에 대하여 들은 바를 뱉어 내었다. 같이 있는 여인 둘 역시 마찬가지. 그것을 본 제갈수란이 그들을 진정시키고는 슬쩍 아환을 보는듯 마는듯 독백을 한다.
"유명사신이라..흐음..그가 형산에는 무슨 일로.."
아환은 제갈수란의 눈길을 무시했다. 그러고는 남궁비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을 건네었다.
"남궁형. 축융봉이 흉흉한 것 같소이다."
"그러게 말이오. 허. 이를 어쩐다.."
"다른 곳으로 가십시다."
"예. 그게 좋겠습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시오?"
누구하나 반대하는 사람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여인들은 더더욱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어했다. 일행은 대충 자리를 정돈하고는 짐을 챙켜 가던 길의 반대방향으로 거슬러 가기 시작했다.

일행은 얼마 길을 걷다 방향을 틀어 축융봉이 아닌 다른 쪽의 길로 발을 들여 놓고는 느긋하게 걸음을 늦추어 새로운 경치를 바라보며 아까 뜻밖의 상황으로 중단된 산행을 즐기면서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한동안을 노닥거리면서 산을 오르던 일행들은 해가 뉘엇 뉘엇 지고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서둘러 하룻밤 노숙을 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산행을 일몰전에 마치고 산을 내려와 숙소에서 묵기로 하였지만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 시간을 놓쳐서 미처 하산준비를 하기도 전에 해가 저물자 밤의 운치라든지 오악의 야경등을 말하면서 밤을 산에서 지내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하였었다. 무림인들이어서 산속의 짐승이나 기타 돌발상황에 대처할 능력은 충분하였기에 노숙에 그리 큰 부담은 갖지 않았다. 단지 여인들이 화장이나 기타 옷매무새 등으로 칭얼거렸지만 사화들 중 누구도 거부를 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그러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한 일행들의 눈앞에 마땅한 장소가 나타났다. 그리 폭이 크지 않은 시냇가가 흐르는 비교적 다른 곳보다는 평탄한 지형이 눈에 띄었다. 사내들은 나서서 바닥의 자갈과 박힌 돌등을 제거하여 평평하게 만든다음 준비해간 모포 등으로 약식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계절 상 여름이라지만 산중의 밤의 온도는 높지 않고 오히려 서늘한 기운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일행 모두가 내공을 익힌 무인들이었기에 별 어려움이 없이 하루를 묵을 준비를 마쳤다.
점심때와 마찬가지로 육포와 여러 간단한 요깃거리로 배를 채운 중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환은 혼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왼쪽의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남궁비와 사화가 같이 산보할 것을 제의했으나 아환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장대한 몸을 날려 숲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남궁비와 사화를 제외한 사내들 넷과 여인들 셋도 끼리끼리 흩어져 발걸음을 옮겼다.
숲속으로 들어간 아환은 걸음을 바삐 걸으면서 전신의 감각을 곤두세워 주변을 경계하였다. 혹 누군가가 자신을 따르는 것은 아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예리하게 시선을 빛내면서 산속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그리고는 산중의 우거진 수풀속, 여간해서는 외부에서 찾기 힘든 장소를 물색한다음 그곳에 가부좌를 틀고는 운공을 하기 시작하였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어 조식과 지식을 반복하며 내기를 운용하였다. 무상심결의 구결에 따라 끌어올린 진기를 온몸의 혈도와 경맥으로 밀어내어 순환을 시켰다. 그러면서 점점 아환은 무아지경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수련에 힘쓰지 못하였던지라 아환은 운기조식을 하면서 진기를 다스렸다. 그의 주위에 무형의 기운이 모여들었다. 이내 그 무형의 기운들은 중첩이 되면서 유형화되다가 어느 순간 둥그런 고리 형태를 만들었다. 새하얀 빛을 내는 다섯개의 고리가 그의 몸을 휘감았다. 오기조원...
그로부터 시진 가량이 지났다. 그때까지 아환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가부좌를 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다 고리가 점점 그 모양과 색채를 선명하게 형성하는 순간 그 기환(氣環)들은 스며들 듯 아환의 체내로 사라졌고 크게 숨을 토해내며 아환이 눈을 떴다.
번쩍!
날이 이미 저물어 컴컴한 산중에 번갯불이 번쩍였다. 길지 않은 시간, 운공을 행한 아환은 자리를 털며 몸을 일으켰다. 진기의 일주천덕분에 가뿐해진 몸과 상쾌한 기분을 느낀 아환은 화타오금세를 풀면서 서서히 몸을 움직였다.
태극을 그리면서 그의 밟이 일정한 방위를 밟고 체조를 하듯 유연하게 그의 거구가 동물의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하나하나의 형(形)과 식(式)을 그려내었다. 용맹한 호랑이가, 웅장한 곰이, 우아한 학의 날개짓이 그의 몸에서 펼쳐졌다.
아환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신비로운 용(龍)의 승천을 마지막으로 화타오금세를 마무리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고개를 들어 축융봉쪽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간간히 솟아 오르던 화전(火箭)도 더 이상 허공에 그 빛의 선을 그리지 않았다. 허나 언뜻 언뜻 희미한 불빛들이 축융봉의 근처에서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직 상황이 종료된 것같지는 않았다.
'유명사신이 잡히지는 않은 것 같군.'
술한잔 받은 것외엔 별다른 관련이 없었기에 아환은 그쪽에서 신경을 끄고 발을 들어 왔던 길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어려서부터 산에서 많이 생활한 그이기에 이깟 어둠이나 험한 산세는 전혀 문제가 될게 없었다.
내려오는 아환의 귓가에 희미하게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신음성 같기도 하고 무언가 중얼거리는 듯한 음성이 감지되자 아환은 발을 멈추고 신경을 그쪽으로 집중시켰다. 여러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남자의 소리도 여자의 소리도 들려왔다. 아환은 기척을 죽이고 신형을 날려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곳에는 세명의 사람이 뒤엉켜 있었다. 두명의 남자와 한명의 여자. 특이한 것은 여인은 완전히 옷을 다 벗고 있어 적나라한 그 흰 나신을 드러내고 있었고 사내들은 하의만 벗고 있는 상태였다. 한 사내는 여인의 앞쪽에 또다른 사내는 여인의 뒤에서 열심히 엎드려있는 여인의 뒤를 밀어붙이는 중이었다.
밤하늘에 떠있는 달은 짙은 구름에 가려져 그 빛을 충분히 뿌리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 미광(微光)으로도 화경의 경지를 넘어선 아환에게 세 사람의 모습을 구별하기엔 충분하였다. 그리 타인의 성관계를 즐겨보는 취미가 있는 아환은 아니지만 그의 눈에 이채로운 것이 띄어 아환은 경신술을 발휘하여 근처의 나무위로 올라가 방금 전 그의 신경을 자극한 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언뜻 보아서는 무슨 문양 같은 것이 여인의 등에 새기어져 있었다. 거의 등을 뒤덮을정도로 커다란 무늬가 색색으로 채색이 되어 여인의 하이얀 나신을 장식하고 있었다. 아환이 안력을 돋구워서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자 그 문양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어이없게도 그것의 정체는 문신, 그것도 다름아닌 남성의 성기모양을 묘사해낸 문신이었다. 그 문신이 여인의 등에 새겨져 있다는 것은 아환의 흥미를 자아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문신은 무림에 그리 흔하지도 그렇다고 금기로 정해지지 않은 것이 보통이었다. 특정 문파는 문도들에게 문신을 강요하고 그것으로 하나됨의 결속을 다지기도 하였다. 그외에도 흑도나 녹림의 인물들이 타인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하여 눈에 잘띄는 곳에 문신을 새기기도 하였고 죄를 지은자들은 이마나 어깨 등에 화인(火印)을 찍히기도 하였지만 명문가의 여식이 문신을 신체에 새기는 것은 거의 찾기 힘들었다. 하물며 남자의 성기모양이야..
'저 여자는 선우세가의 선우지라 하였는데..흐음..지금은 비록 그 세력이 상당부분 쇄퇴하였다 하더라도 능히 안휘성에서 꽤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들었다. 그런 여인이..'
갸날픈 교수를 뻗어 여인은 앞에 있는 사내의 양물밑의 고환을 감싸고 있는 살덩이를 쓰다듬었다. 입에는 여전히 사내의 양물이 물린채 앞뒤로 반은 자의적으로 또 반은 뒤에서 부딪혀오는 다른 사내의 힘에 못이겨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비스듬히 바위에 걸터앉아 선우지의 봉사를 즐기고 있는 사내는 다름아닌 운학일룡 장씨 성의 사내였다.
장궁은 강소성의 그리 크지 않은 문파인 운학문의 소보주라 소개를 받았었다. 가전무예를 익혔다고 하였고 준수한 외모이지만 오만해 보이는 태도로 아환은 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또 한사내, 뒤에서 열심히 하체를 선우지에 부딪혀가는 사내는 점창파의 속가제자로 역시 안휘성에 있는 작은 문파출신이라 말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 사내 둘이 오히려 자신보다 거대한 세력을 가진, 그리고 그 영향력이 비할바 되지 않는 선우가의 여식을 희롱하고 있는 것이었다.
"향주님, 과연 높은 분들께서 즐길만한 계집인데요. 이 탱글탱글한 살결하며 조여주는 맛이란..요년이 그 따위 짓만 하지 않았어도 우리에게 차례가 돌아오기 힘들었을텐데..우리로서는 잘되었지만요. 크흐흐.."
뒤에 서 있던 점창의 속가제자, 강문직이라는 사내가 괴소를 흘리며 장궁에게 말을 건네었다. 그러자 장궁, 갑자기 얼굴이 굳어지며 눈에서 강렬한 빛을 내며 주위를 살펴보곤 강문직에게 서둘러 말을 했다.
"부향주, 말조심하게. 혹시 누가 들으면 어찌하는가? 아직 본파는 무림에 드러나서는 안되네. 작은 실수하나가 대사를 그르칠 수 있네. 항시 그렇듯 자네는 입을 조심해야 할 것이야."
"향주님, 속하 향주님께 죄를 청합니다. 아무도 없는 곳이라 그만 속하가 방심을 했습니다. 벌하여 주십시오."
강문직은 급히 선우지의 몸에서 양물을 빼내고는 그자리에 부복하여 장궁에게 죄를 청하였다. 창백하게 질린 안색이 방금전 장궁을 말한마디에 그가 얼마나 긴장을 하며 놀랐는지를 알수 있게 하였다.
"되었네. 앞으로는 주의하게."
장궁은 선우지의 머릿채를 움켜잡더니 거칠게 뒤로 당겨 선우지의 고개를 쳐들었다. 들린 얼굴, 무림사화만큼은 되지 못해도 꽤 아름다운 미안이 안력을 돋군 아환의 시야에 들어왔다. 타액이 입가를 흘러내리며 가느다란 물줄기를 보이고 있었다. 눈가가 희미하게나마 반짝이는 것으로 보아 물기가 맺혀있는 모양이었다.
"크큿. 선우지. 이런 날이 올줄은 몰랐겠지. 그 도도하던 선우가의 영양이 이렇게 바뀔 줄은 누가 알았을까? 그러게 순순히 본파의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고 본인의 정실이 되어 차후 무림을 한손에 휘어잡을 본파에 속할 수 있었을텐데..멍청한 네 년의 아비와 선우가의 원로라 하는 자들 덕이라 생각해라."
이죽거리는 장궁의 말이 선우지의 귓가에 들어왔다. 머리카락이 송두리째 뽑힐 듯이 아팠지만 그보다는 장궁의 입에서 토해지는 말이, 자신의 처지가 더 가슴을 찢어 발겼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 선우지는 아랫 입술만 꼭 깨물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가서 강공자의 뒷 마무리나 해줘라."
장궁이 선우지의 머릿채를 잡은 손을 뒤로 팽개치듯이 선우지를 밀어대었다.
휘청..
선우지의 교구가 사내의 힘을 이기지 못하여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간신히 중심을 잡고는 선우지는 발가벗은 나신을 바로 세워 몸을 돌려 뒤쪽에 서 있는 강문직에게로 다가갔다. 몸을 돌리자 적나라한 선우지의 하이얀 동체가 나무위에 있는 아환에게 낱낱히 보여졌다.
등과 마찬가지로 앞부분을 장식한 여러 문신들..단지 차이라 하면 사내와 여인이 교접하는 모양의 그림이 그나마 정교하면서도 세밀하게 새겨져있다는 것뿐 선우지의 가슴에서 아랫배까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또 그러한 선우지의 오른쪽 젖가슴에는 선명하게 화인이 하나 찍혀있었다. 창(娼)..
선우지는 걸음을 떼어 강문직에게 다가가더니 무릎을 꿇고는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강문직의 남근을 입에 담았다. 그러더니 머리를 흔들면서, 입술을 오므리고는 강문직의 양물을 빨아대는 것이었다. 그런 선우지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고는 아랫도리를 흔들어대는 강문직.
아환은 잠시 눈을 감고는 무엇인가를 골몰히 생각하였다. 그의 뇌리에는 조금전 장궁과 강문직이 했던 말이 수차례 되새김되고 있었다. 그러기를 얼마, 아환은 눈을 뜨고는 슬그머니 나뭇가지에서 몸을 일으켜 살짝 신형을 날려 세 사람이 얽혀있는 회음의 공간에서 몸을 빼내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벗어나자 아환은 경신술 무영행을 발휘하여 일행들이 처음에 모여있던 장소로 신형을 날렸다. 거의 기억자로 꺾이는 방향으로 방향을 정하였다. 과연 무림의 일절로 꼽히는 절기답게 무영행은 길지 않은 시간에 아환을 중인들이 모여있던 곳에 가져다 주었다.
아환의 장대한 체구가 시커멓게 한쪽의 음영을 그리면서 중인들 앞에 나타나자 작은 모닥불을 피워놓고는 담소를 나누던 남궁비를 비롯 사화가 반색을 하며 아환을 맞아주었다.
"주형. 어디갔다 오시는 길이시오? 꽤 오랜 시간동안 보이시질 않길래 혹 산을 내려가신 것은 아닌가 생각했소."
"그냥 산세가 좋아 잠시 사색에 잠겼었소."
"호오..그래, 산의 야경은 마음껏 즐기셨소?"
"그랬소."
말을 하면서 아환은 주위를 둘러 보았다. 장내에는 남궁비와 사화, 그리고 사내 둘, 여인 둘이 있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까의 장궁, 강문직, 선우지였다. 남궁비가 아환에게 다가와 모닥불의 한쪽으로 아환을 인도하였다.
모닥불위에는 기다란 나뭇가지에 꿰인 고깃덩어리가 지글지글 기름을 흘리면서 익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언뜻 보아도 꽤 큼직한 고깃덩어리였다.
"조금 전 백리 소협에 잡아온 맷돼지입니다. 육포보다는 이런 산중에는 사냥을 하여 먹는 것이 어울린다고 하나 잡아 오셨지요."
멧돼지 치고는 그리 크지 않았다. 아마 새끼를 잡아온 것이리라. 아환은 별기색없이 한쪽에 주저 앉아 물끄러미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고기가 다익고 백리석은 품에서 예리한 비수를 하나 꺼내어 고기를 잘라내어 사화에게, 인들에게, 그리고 남궁비에게 고기를 내밀었다. 그러면서 아환은 본척도 하지 않고 자신의 양을 베어낸 다음 먹기 시작하였다.
"허, 이런. 백리형. 주형께 없소이다. 그 비수 좀 잠시 빌려주시겠소?"
"이 멧돼지를 드실 분을 이미 다 받았소이다."
명백한 거절, 백리석은 별로 주환이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노골적인 적대감이 은연중에 아환에게 전달되었다. 그러한 백리석을 보는 남궁비의 얼굴이 난처하게 변하였다. 또 한명, 악서령의 눈이 새파랗게 변하더니 눈가에 살기가 맴돌았다.
"되었소. 별로 배가 고프지 않군요. 남궁형이나 드시오."
아환은 내심 유치한 행태를 취하는 백리석을 한방 먹여주고 싶었지만 쓸데없는 분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불꽃만 쳐다보던 아환의 눈앞에 내밀어지는 호리병하나. 아환이 눈을 들어 그 손의 임자를 보았다. 남궁비였다.
"한잔하시오."
"고맙소."
잘 밀봉되어 있던 병마개를 열자 향긋한 주향이 풍겨나왔다. 강렬한 향으로 보아 꽤 독하지만 귀한 술로 보였다. 아환은 병을 기울여 한모금 술을 입에 머금었다. 알싸한 주향이 혀끝에서 감돌다가 스르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아환은 한모금 더 입에 대더니 남궁비에게 병을 건네었다.
남궁비는 병을 받고는 자신도 한모금 마시더니 옆의 유가형에게 병을 건네었다. 유가형은 손에 들어온 술병을 마시지 않고는 옆으로 인계하였고 여인들은 다 술을 마시지 않고 그저 옆으로 병을 돌렸다. 백리석과 다른 한 사내가 한 모금씩 마시고 고기를 먹고 있을 때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세명의 사람들이 장내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장궁 등이었다.
그들도 합류하여 재차 술이 돌고 멧돼지 고기를 비수로 베어내어 각자의 몫으로 돌려 어느 정도 배를 채운후 일상의 담소가 이어졌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하나 둘 불가에서 일어나 자리에 들었다. 이제 남아있는 사람은 아환과 남궁비, 유가형과 악서령만 남았다.
"소저들도 이만 자리에 드시지요."
"두분 소저들도 쉬시오."
남궁비와 아환의 말이 비슷하게 나왔다. 그러자 유가형은 복잡한 시선으로 남궁비와 아환을 잠시 응시하더니 나직히 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악서령은 아환의 말에 가뿐히 교구를 일으키고는 미리 준비해둔 자리에 가서 등에 작은 바위를 기댄다음 눈을 감았다.
"주형, 산책을 하시지 않으시겠소?"
이미 대충 잡아도 자시를 넘은 시간, 난데 없는 산책이란 말에 아환은 남궁비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그의 눈에 담겨있는 기이한 간절함을 읽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엉덩이를 자리에서 떼었다.
남궁비가 발을 떼었다. 아환은 그의 뒤를 아무 말 없이 따랐다. 훌쩍 큰 신장을 가진 두사람은 일행들이 쉬고 있는 장소에 흐르는 시냇물을 거슬러 위로 천천히 올라 갔다. 한참을 올라가자 폭이 좁아지고 넓어지기를 반복하더니 급기야는 작은 폭포가 눈에 들어왔다.
남궁비는 근처를 둘러 보더니 한쪽으로 걸음을 옮겨 적당한 크기의 평평한 바위위에 걸터 앉았다. 아환도 남궁비를 따라 그 옆에 약간의 사이를 띄고 옆에 자리하였다. 남궁비는 품에서 아까 그 술병과 비슷한 크기의 호리병을 꺼내더니 아환에게 다시금 내밀었다. 한모금 마신후 남궁비에게 다시 한모금 들이킨 후 아환에게..몇차례의 술병이 아환과 남궁비를 왕복하였다.
"좋은 술이군."
"백일취(百日醉)라 불리우는 술이오."
아환이 한마디 툭 내뱉자 남궁비가 답을 하였다. 그리고는 또 몇차례..
백일취는 꽤 독한 술이었다. 술이라면 어려서부터 마셔왔고 늘 즐겨왔던 아환이지만 은근히 취기가 오를 정도였다. 일반인이라면 벌써 고꾸라지기를 수차례했을 것이다. 내공을 써서 주기를 날려버리면 그만이지만 그러면 술을 마시는 의미가 없기에 서서히 신경을 잠식하여 긴장을 이완시키는 주기를 은은히 즐기면서 아환은 술을 마셨다. 술기운이 오르는 것은 남궁비도 마찬가지, 아환은 알지 못하지만 본래 남궁비는 다른 이들과 술을 대작을 할 때 항상 내공으로 주기를 몰아내며 취하지 않을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다. 그런 그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술을 마심에 내기를 전혀 운기하지 않는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술을 들이키던 남궁비,
"주형은..딸꾹..자유인이오..?,..딸꾹.."
취기에 못이겨 딸꾹질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자유인?"
"그렇소. 끄으..자유인 말이오."
"무슨 뜻이오?"
"자유로운..끅.. 새처럼 세상을 훨훨..딸꾹..날아다니는 사람이냔 말이오..?"
"자유인이라..글쎄..자유인이라..남궁형은 그렇지 않소."
"절대로..절대로 난 자유인이 아니오. 으음..아니, 자유인이 될 수 없소..꾸음.."
"될 수 없다..라..왜 그렇소?"
"그러기엔..그러기엔 너무 무겁고..정말 무겁고 무섭소."
"뭐가 그리 무겁고 무서운게요?"
"내가, 바로 내가 남궁비라는 것이..딸꾹..그렇소."
취기가 올라 평소보다 반응속도가 느리지만 아환은 남궁비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천하의 남궁비가, 만검창룡이 무슨 연유로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나는 남궁형을 말을..으흠..잘 이해하지 못하겠소."
아환도 적당히 취기가 올랐다. 늘 그렇듯 술자리에서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법, 언뜻 자신이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해다는 남궁비에게 반감이 일어나 어투가 굳어졌다. 그것을 눈치를 챘는지, 못하였는지 남궁비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왜..내가..끅..남궁비의 삶을 살아가야하는지..끄..왜 검을 잡아야하는지..헙..모르겠소."
"..."
"주형,"
"예."
"주형이 부럽소."
"남궁비, 호강에 겨워 몸살이 났군. 오대세가 중의 으뜸이라 평함받는 남궁가에서 적자로 태어나 갖은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것이며 훌륭한 가문의 고절한 절예로 타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네 놈이 그 따위 말을 한단 말이냐? 네놈은 굶어 봤느냐?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는 민초들이 이 중원땅에는 부지기수다. 그런데 뭐 어쩌고 어째? 남궁비의 삶이 어떻다고..?"
어느새 싸늘히 식은 아환의 얼굴빛에 냉랭해진 아환의 강렬한 안광이 남궁비의 눈에 작열했다. 아환 역시 태생은 그리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먹고 살만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움을 유년기에는 겪지 못하였다. 허나 하루 아침에 일가가 몰락하고 부모님이 세상을 뜨자 혈혈단신에 혹시 모를 생명의 위협까지 겪으며 중운을 떠돌다 간신히 정착을 하고 지금의 이 위치까지 온 과거가 있다. 그러면서 아환은 자신보다 훨씬 더 비참하고 처절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많이 보아왔다. 돈이 없어 자식을 팔고, 아내를 팔았으며, 식량이 없어 어린 자식들이 굶어 죽은 주검을 묻는 것을 질리도록 겪어왔다.
천연을 만나서 비왕의 무예를 전수받고 기보를 얻어 신체를 보하였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였다면 자신 역시 어디 한 외진 곳에서 굶어 죽어나 혹은 산적이나 다른 여타의 인간들에게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 형편이었다. 그런 자신의 앞에서 남궁비의 삶이 싫다고 말하다니..
정색을 하고 화살처럼 내뱉어 남궁비의 가슴을 후벼내던 아환의 말에 어느 정도 취기가 사라진 듯 남궁비의 눈빛이 흐릿했던 취기를 헤치고 다시금 그 빛을 찾았다. 그러면서 남궁비는 아환의 분노에 크게 당황하였다.
"주형. 내 말뜻은 그게 아니오. 난 단지..아니, 주형의 말이 맞는 것 같소. 맞는게 아니라 정확할 것이오. 내가 분수를 모르고 그런 실언을 하였소. 사죄드리오. 허허..호강에 겨워 그런 것이오. 호강에 겨워.."
"..."
왠지 비감이 서린 남궁비의 말에 아환은 더 계속하려던 말을 일단 접고는 남궁비를 물끄러미 응시하였다. 그런 아환의 시야에 남궁비의 눈가에 맺힌 작은 이슬이 살짝 보였다.
'응? 눈물?'
"그런데 말이오. 주형. 왜 나는..왜 나는 남궁비로 살아야 하는 것이오?"
"무슨 말이오. 그럼 남궁형은 남궁형이 아니란 말이오?"
"내가 남궁비라..그렇지, 난 남궁비가 맞소. 어쩔 수 없는 남궁비란 말이오..그러기에.."
살짝 이슬방울이 남궁비의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기이한 감정, 아환은 문득 저 눈물을 닦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설레 고개를 저었다.
"세가..주형도 알다시피 남궁세가는 명문세가요. 수많은 군웅들이 남궁세가를 우러러 보고 있고 그 후광을 입은 나를 부러워 하고 있소. 하지만 말이오. 난 그들이 부럽소. 자유로운 그들이 부럽단 말이오."
"진정 그들이 자유롭다 생각하오?"
"무슨.."
"정말 자유로운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 여기시오?"
"그것은..그건 아니지만.."
"내가 알기론 말이오. 그 누구도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은 없소. 아니, 완벽히 자유롭지 못하기에 인간이라 말한다 생각하오. 다만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그렇겠지요. 그렇겠지요.."
"무슨 일이오?"
뜬금없는 말, 남궁비는 고개를 돌려 아환을 보았다. 그 어떤 것이라도 아환의 얼굴에서 읽고 싶었으나 남궁비는 미미하게 고개를 흔들며 다시금 고개를 원상태로 돌렸다.
"세칭 명문의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전혀 맞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자신이 원하지 않고 심지어는 자신을 파괴시킴에도 그 일을 행해야 되지요. 단지 세가의 이익을 위해, 명예를 위해 그 방향으로 자신을 밀어넣어야지요."
"..."
"때로는 세가가 죽으라면 죽어야 하고 그것에 반기를 들었을때엔.."
"흐음.."
쓸쓸한 어투로 말을 하다가 남궁비는 말을 끊고는 더 이상 말을 이어나가지 않았다.
아환을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천하제일의 기남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제 둘다 술기운은 상당 부분 해소되었지만 아직 여파가 남아 있어 불그스레하게 서로의 얼굴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타가 공인하는 제일의 미남인 남궁비의 준수한 용모가 더욱 매력있어 보였다.
아환은 쓸데 없는 잡념을 떨치고자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후두두..후두둑..퐁,,퐁,.
나뭇잎에, 나뭇가지에, 바닥에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면서 폭포앞의 작은 소(沼)에 물방울이 튀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아까부터 하늘이 흐리다 싶더니 비가 오는 모양이었다. 몇방울 내리던 빗방울은 이내 줄기가 되어 거센 물소리를 내면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꽂혔다.
쏴아아...
"이런..비가..남궁형, 어서 일어나시오."
"흐리더니만..어서 비를 피할 데를 찾읍시다."
둘은 서둘러 몸을 일으키고는 일단 숲속으로 신형을 날렸다. 여름비라 그리 차갑지는 않아도 오랜 기간을 비를 맞아 좋을게 없었다. 아환과 남궁비는 발을 박차고 수장씩 신형을 날리면서 계속해서 주위를 살펴 비를 피할 곳을 찾았다. 수식경이 지난 후 두 사람은 마침내 몸을 쉬일 만한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계속해서 안광을 번뜩이던 아환이 찾은 동굴이었다. 둘은 시선을 맞추고는 신형을 날려 동굴속으로 들어가 소나기를 피하였다.


(4)

스으읏..
뿌연 수증기가 동굴속을 메워갔다. 두 사람, 아환과 남궁비는 내기를 이용하여 젖은 옷을 말리고 있었다. 몸에 바싹 달라 붙어 있는 옷가지에 둘의 몸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환이야 옅은 옷가지 하나만 걸치고 있어서 바로 근육으로 뒤덮인 아환의 상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지만 남궁비는 옷이 몸에 달라 붙어 있어도 상체는 평평해 보였다. 아마 속에 무언가를 껴 입은 모양이었다.
아무 말 없이 진기를 돋우어 열을 발산시키는 두 사람. 그들의 능력으로서는 어렵지 않아 곧 바싹 마른 의복을 걸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옷이 다 마르자 두 사람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아 중단되었던 아까의 말을 계속 이어갔다.
"주형."
"왜 그러시오. 남궁형"
"내 이야기 하나를 해드리겠소. 내가 잘 아는 어떤 소녀의 이야기오."
"...."
"한 소녀가 있었소. 스스로는 범인이라 생각했지만 세상이 그렇게 그녀를 내버려두지 않은 그런 소녀였소. 흐음..어느 무더운 여름날, 그 소녀는 꽤 알려진, 그리고 훌륭한 집안에서 첫째로 태어났소. 그런데 그것까지는 괜찮았소. 여느 집안과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허나 소녀는 결코 가져서는 안될 신체를 가지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소.
가문의 원로들은 그 소녀가 태어나자 실망을 했지만 그 실망은 이내 안타까움으로 변하였소. 만약 그 소녀가 사내라면, 그래서 그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다면 그 사내는 훌륭하고 위대하게 그 문파아래서 성장했을 것이고 그것은 곧 가문이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것이 될 테니 말이오. 그리하여 그 가문의 원로들은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소. 어이없게도 그 고민은 이 소녀의 성(性)을 논하는 것이었소.
그 결과 가문은 이 소녀에게 일단 여성이 아닌 남성을 강요하였으며 아직 돌이 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소녀는 사내아이로 결정이 되었소. 그때부터 이 소녀, 아니 이제 소년이 되었지만 여하튼 그는 사내 옷을 입고 사내처럼 행하는 것을 교육받았소. 하늘이 내린 신체, 아니지, 아니지..저주받은 그 신체는 그러한 가르침에 너무나도 빠르게 그리고 익숙하게 적응을 했소. 그러한 과정 중에 가문은 이 소녀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소. 수많은 돈이 이 소녀를 가르치는데 쓰여졌소. 또 가문은 이 소녀를 위하여 상당수의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켰소. 단지 이 소녀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소녀에게 젖을 물리던 유모가 죽고 기저귀를 갈아주던 시비가 목을 잃었소.
글을 가르치던 스승이 괴질로 죽었고 어려서 그와 같이 지내던 이웃 가문의 또래가 모습을 감추었소. 그뿐아니라 그 가문까지 어느날 멸문지화를 당했소. 웃기지 않소? 아무 것도 아닌 사실 하나에 그 많은 사람이 죽고, 그 생명을 가문의 영광을 위하여 서슴없이 행한 가문이 어찌 우습지 않겠소?
그런 것고 모른채 소녀는 하루하루 성장을 하였소.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소. 그러던 중 그녀의 사내동생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소. 그러자 소녀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었소. 여태까지 자기에게 쏟아졌던 사랑이-적어도 소녀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을 사랑이라 여기었소.-이제 송두리째 날아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곧 그것은 기우라는 것을 깨닫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소. 천혜의 신체라 불리우는 소녀와는 달리 소년은 너무도, 너무나도 평범한 몸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었소. 게다가 가문의 원로들은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갓태어난 어린 아이가 버티기엔 불가능할 정도의 수많은 개정대법을 펼치고 각종 이물을 아이에게 먹였소. 소녀가 그것을 무난히 지탱했기에 과욕을 부린 것이지요. 그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비참했소. 갓태어난 아기가 그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오히려 병이 들은 것이었소. 그것도 심각할 정도로.
소녀는 그것을 안타까워 하였지만 속마음으로는 안도했었소. 오만했기에, 모든 것을 자기본위로 생각했기에.. 또 그런 나이잖소. 이제 다섯이 넘은 애가 무얼 알겠소? 그렇게 또다시 가문은 소녀를 중심으로 움직였소.
소녀는 하루 하루를 세가의 사람들의 기대를 훨씬 웃도는 인물로 성장을 하였소. 계속해서 쏟아지는 찬사와 부러움의 시선이 소녀로 하여금 더더욱 분발을 하게 만들었고 소녀는 열살을 갓넘어서 이미 강호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였소.
그렇게 커가던 중 어느날 소녀는 여인이라면 누구나 나타나는 신체적인 특징을 맞게 되었소. 그 특징이 나타나기 전만 해도 그것에 대하여 전혀 고민을 하지 않던 소녀는 겁이 나기 시작했고 소녀는 그것을 감추려고 하였소. 그러다 가문의 어른에게 그것을 들키고야 말았소. 그 가문의 어른은 심한 꾸지람을 소녀에게 하였고 바로 시비 하나를 붙여주었소. 그 시비를 본 순간 소녀는 경악했소. 얼마전까지 멀쩡했던 명랑한 성격을 가진 귀여운 아이였소. 소녀보다 한두살 많은 여자 아이였는데 시비라고 들어온 순간 그녀를 본 소녀는 창백히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소. 그 시비는 혀가 짤리고 귀의 고막이 터져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몸이 되었던 것이오.
소녀는 가문이 무서워지기 시작했소. 도망치고 싶었소. 허나 그러기엔 소녀는 너무나 겁이 많았고 무모한 결정보다는 여러 가지 계산을 하였소. 그 결과 소녀는 자신을 숨기는 방법을 터득하였고 그대로 행하였소. 가문의 사람들은 소녀가 매진하자 매우 기뻐하였소. 그것은 또다른 무게로 소녀를 짓눌러 왔소.
어느새 소녀는 나이를 스물을 넘기게 되었소. 그러자 그 소녀, 아니지..청년을 선망하는 수많은 명문가에서 혼담이 쇄도했소. 꽃다운 여식들, 그들의 부모와 가문에서 그 청년에게 매파를 보낸 것이지요. 이 청년과의 혼사는 곧 그들의 위치를 한단계 높일 수 있기에 가문의 일이 방해될 정도로 많은 청혼이 들어왔었소.
그러나 그 소녀가 본래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문에서는 혼담을 결정할 수 없었소. 차일 피일 미루기만 하다 강호에 기이한 소문, 즉 그 소녀가 남자가 아니라는 말들이 떠돌았소. 그러자 가문의 사람들은 놀라서 황급히 여러 일을 행하기 시작하였소. 소녀의 신체를 사내같이 만들고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었소. 원래 소녀는 어려서 무예를 단련했기에 제법 발달된 몸을 가지고 있었고 옷가지로 몸은 어느 정도 가릴 수 있었으나 손마디와 다른 곳은 어찌할 수 없었소. 따라서 가문에서는 어찌하면 이 소녀를 남자답게 보이게 할 수 있을까를 숙고하다 한가지 묘안을 짜내게 되었소. 바로 소녀에게 목젖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소.
소녀는 기이한 구슬을 삼키고 기공으로 그것을 목부위로 유도한다음 내기로 그것을 고정시켜 마치 사내처럼 목젖을 가지게 되었소. 또 무림의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혼사상대로 정하고는 혼담을 추진하기로 하였소. 그 여인이 속한 문파는 당연히 좋은 조건에 절세기남아로 평가받는 사내를 맞이할 수 있게됨에 선뜻 혼사에 응하였고 그 사실은 중원에 금새 널리 알려지게 되었소. 하지만 여자와 여자의 결합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소? 할 수 없이 가문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혼례를 미루어 갔소. 그쪽에서는 빠른 일처리를 바랬지만 그러기엔 상대하는 가문의 힘이 너무나 컸소.
소녀의 나이가 스물을 훨씬 넘고 이제는 그러한 삶에 익숙해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소. 주위에는 온통 구역질나는 권력과 부귀영화를 탐하는 삼류 인생들 밖에 없었소. 그런 소녀는 마침내 한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소. 여지껏 자신을 조롱하던 운명과 가문에 통쾌한 복수를 하자고..더 시간을 끌면 소녀의 가문은 그녀와의 정혼을 맺은 여인을 그냥 두지 않고 제거할 것이며 또다른 혼담을 찾으며 시간을 끌 것이오. 이는 비단 소녀뿐만 아니라 또다른 무고한 인명을 해하는 일이기에 그러기전에 소녀는 스스로 자신을 정리하고 마감하려 했소.
그 소녀는 마지막 남은 세상의 미련 때문인지 아니면 어떤 운명의 끌림때문인지 그와 친분이 있던 몇몇의 얼굴이나 보려고 한 곳으로 갔소. 거기서 그녀는 정말 그녀가 꿈꾸던 자유로운 사람을 보았소.
그 사람은 그녀가 여태까지 보아왔던 그 누구보다도 자유로왔고 제한을 받지 않는 인물이었소. 강했고 또 여유로왔소. 비록 남자같이 치장을 하고 다녀도 여인이라면 그 누구라도 꾸는 꿈을 소녀 역시 갖고 있었고 그 이상의 사내가 그 곳에 온 것이었소.
주형..."
"......"
한참 동안을 주절거리면서 한 소녀의 이야기를 토해내던 남궁비가 눈물이 그렁그렁이는 눈을 들어 아환을 빤히 쳐다보았다. 한 소녀의 이야기라 말은 하여도 어찌 그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랴?
아환은 멍해져서 할 말을 잃었다. 무림제일의 기남아, 천상의 미남자, 차후의 무림계의 절대자라 평가를 받는 만검창룡 남궁비가 여자? 말도 안되는 얘기다. 길거리의 아무나 잡고서 그렇게 말을 하다가는 미친 놈 소리를 들을 것이었다. 허나, 그 말도 되지 않는 내용이 현실이었고, 바로 눈앞에 닿아 있었다.
"그..그러니까..남궁형이.."
"주형.."
"...."
다시금 말을 잃었다.
"주형. 부탁이 하나 있소."
"남궁...어찌 말해야 할지..그래, 말하시오."
"그냥 편한데로 부르시오. 내가 주형에게 부탁할 것은..나에게 주형의 그 자유를 나누어 주시오."
"자유?"
"그렇소. 그 광활한 자유를 내게도 나누어 주시오."
"잠깐만 기다리시오..후~우.."
아환은 남궁비의 말을 막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난데 없이 산보를 하자고 하고는 술에 취해 주절거리더니 급기야는 자신이 여자라고? 허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하지 못하는 아환의 망설이는 모습을 보더니 남궁비는 입술을 꼬옥 깨물고는 손을 들어 장갑을 벗었다. 항시 끼고 있던 두툼한 검은 장갑이 손에서 나오자 그 부피만큼의 손이 나오질 않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우윳빛의 살갖이 희미한 빛속에 어스름하게 드러났다.
양쪽의 손에서 장갑을 벗고는 손을 머리로 가져가서는 질끈 동여매져 있던 영웅건을 풀러 헤치자 검은 윤기가 흐르는 비단결 같은 머릿채가 스르르 남궁비의 어깨를 덮으며 흘러내렸다. 그런 후 남궁비는 목젖부위에 손을 가져가더니 몇번 기묘하게 손을 놀린후 입을 벌려 작은 구슬하나를 뱉어내었다. 그러자 평평해지는 목선, 고운 선이 그대로 이어지는 곧은 선이 나타났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아환의 시선을 의식하였는지 남궁비는 옷고름에 가져가던 손을 잠시 멈칫하다가 입술을 꼬옥 깨물고는 옷고름을 풀어 상의르 벗었다. 미끄러지는 옷가지에 둥그런 어깨의 선이 또렷이 보였다. 상의를 벗어젖히자 그 속에 있는 회색빛의 갑의가 보였다. 보물(寶物)인지 그 서린 기운이 남다를 갑의의 이음새를 연이어 끄르는 남궁비, 그리고는 그 갑의가 떨어져 나가고 튀어나오는 두개의 살덩이..
일반 남자의 한손에 충분히 잡힐 듯 크지 않은 가슴이 미미하게 떨리면서 그 끝의 유실을 파르르 진동시켰다. 유백색의, 햇빛을 전혀 받지 못하였는지 얼굴빛보다 훨씬 새하얀 색을 보이는 소담스러운 유방. 그리고 연한 분홍빛의 유듀.
그 유두만큼이나 붉어진 얼굴로 남궁비는 손을 가져가서 자신의 가슴을 가렸다. 아환을 정시하던 시선은 아래로 향해 있었고 마치 아환의 분부만을 기다리는 새색시모냥 잔떨림을 보이며 남궁비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남..."
아환이 입을 열다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 자유를 저에게 나누어 주시는 조건으로 나에게 그 어떤 것을 요구하여도 다 드리겠어요. 원한다면..원하신다면 나의 육체와 영혼이라도.."
얼마전까지도 그리 굵지는 않았지만 흔한 일반 남성의 저음의 음색이 가늘고 높은 고음으로 변하였다. 아까 목젖을 제거하면서 그 음성을 바꾸는 외술도 같이 해제된 모양이었다.
남궁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을 허리춤의 바지끈으로 가져갔다. 이내 스르르 흘러내리는 백색의 하의.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일자로 곧게 뻗어 내려간 하얀 옥기둥. 그리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적당한 굵기의 여체의 다리의 곡선이 땅에서 위로 매끄럽게 이어지고 그 위에 두 옥주(玉柱)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백색의 고의. 사내가 입는 것이 아닌 규중의 여인들이 착용하는 얄궂은 비단 고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이 이 남궁비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치였을까?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가렸던 손을 열고는 밑으로 내려 고의의 끈을 푸르자 힘없이 떨어져 내리는 조그마한 천조각, 그리고 그 뒤에서 살며시 그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여인의 비림과 속살이 그대로 아환의 눈속으로 샅샅히 들어왔다.
남궁비는 그 자세 그대로 자리에 조심스레 주저 앉았다. 그러면서 얼굴에 손을 가져가 몇차례 얼굴을 쓰다듬자 얼굴의 선이 미미하게 변하였다. 각이 있어 보이던 턱의 선이 좁혀지고 크고 두툼하던 입술이 작고 도톰하게 바뀌었다.
잠시 후 아환의 앞에 완성된 모습의 사람은 사화에 능히 견줄만한 아름다운 외모를 빛내는 성숙한 한 여성이었다. 머릿결이 부드러이 가슴과 어깨를 뒤덮은 가운데 고개를 숙여 길다란 하얀 목선을 어둠 속에 드러낸 밤의 여신이었다.
"남궁형.."
"오늘은 제 나이 스물 다섯이 되는 날입니다. 제발 부탁드리건데 오늘 하루만이라도 저를 '비아'라고 불러 주세요."
"남...비아."
"..."
아환이 두툼한 손을 뻗쳐 남궁비의 턱을 가볍게 받쳐들고는 위로 올렸다. 반짝이는 두 눈에 아롱지어져 맺혀있는 물기가 보였다. 금새라도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이 한껏 물기를 머금은 고운 봉목이 아환의 동공에 아로 맺혔다.
아환은 엄지와 검지로 남궁비의 턱을 살짝 잡고는 자신의 얼굴을 남궁비의 얼굴로 가져가서 그 도톰한 입술에 살짝 자신의 입술을 얹었다.

................................ ......................................... ........................................ .............................

여기서 끊음이 도리가 아닌 줄 알고 있습니다만..
만족하실지는 몰라도 그래도 최대한 짜내어서 글을 올렸습니다.
시간이 그리 녹록치 않아서...

이제 또 한명의 여인과 엮어집니다.

제가 광고영업일을 하는데 요즈음 시장이 너무 어려워요. 좋은 정보 있는 분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운 여름 건강하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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