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수라기(獸羅記) 66번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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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장님. 여기부터가 나호족의 주 영역이라고 합니다.”
참마도를 꽉 움켜쥔 20대 중반 가량의 병사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적무환을 쳐다 보았다. 다른 한명의 병사와 함께 맨 앞의 전초 역할로 길잡이를 맡은 원주민과 조심스레 한발 한발을 움직이다 옆의 원주민의 말을 듣고 자신들의 조장인 적무환에게 보고를 하는 것이었다.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히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전 나호족이 국경수비대를 공격하여 복호장군을 위시로한 많은 군사들을 몰살시켰고 그 위세가 이 근방에서 으뜸이라 여기어지는 부족의 영역으로 들어섰기 때문에 경계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였다.
“선두 정지.”
“선두 정지.”
적무환의 명에 그 옆의 사내가 복창을 하였다. 그러자 일제히 행군을 멈추고 병사들은 병기를 곧추세워 주변을 경계하였다. 혹 모를 기습에 대비를 하는 것이었다.
“전초 본진 합류.”
“전초 본진 합류!”
이십여장 앞쯤에 서있던 전초 둘과 원주민은 뒷걸음질치면서 천천히 발을 옮겨 적무환과 다른 병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가등!”
“예! 조장님.”
“근처에 시내나 개울이 있는지 물어봐라.”
가등이라 불리운 병사는 원주민에게 무어라 말을 하였고 원주민은 손짓 발짓을 하면서 그 말에 대답을 하였다. 이민족이고 소수부족이라 하더라도 피부색만 좀 다를 뿐 중원인과 별 차이가 없는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이 곳 운남에는 많은 부족들이 각자의 영역을 정하고 거주하고 있었다. 걔중에는 확연히 그 용모가 중원인들과 구별되는 부족들도 있었으나 지금 이 길잡이처럼 의복을 엇비슷하게 갖춰 놓으면 잘 알아보기 힘든 경우도 있었다. 다만 언어에 있어서 차이가 많아 때로는 통역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가등 역시 그렇게 통역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민족의 말을 알아 듣기 보다는 어찌 어찌하여 이 원주민과 의사소통이 되기 때문에 그에게 원주민과의 통역을 맡긴 것이었다.
“좌측으로 3리 가량 가면 시냇가가 있다고 합니다.”
“일단 그 쪽으로 이동하자.”
운남의 기후는 겨울은 온난하고 오히려 상대적으로 여름은 서늘하여 일년 내내 따뜻한 봄과 같은 기후였다. 게다가 여름을 중심으로 하여 우기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여름이 갓지난 지금 역시 우기에 접어들은 형편이었다. 아무리 여름이 서늘한 기후라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계절에 비하면 상대적인 것이지 수년 간을 이 곳에서 지내온 병사들이라 할지라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적무환 역시 땀에 젖어 위에 걸친 윗도리가 몸에 착 달라 붙어 있었다. 보통 경갑주를 입고 군사 행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의 무위를 알고 있는 윗 장수들이 적무환이 갑주를 입는 것을 꺼려하는 것을 알기에 묵인하고 있었다. 적무환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하나 같이 가죽으로 덧댄 갑주를 입고 있었다. 그러기에 이 후덥한 더위에 비오듯 땀을 흘리고 있었고 그 사정을 알기에 잠시라도 몸을 닦기 위하여 시냇가로 병사들을 이동시켰다.

“어! 시원하다.”
“제길..정말 운남의 날씨는..염병..”
“자자..그만하고 교대해야지. 자네들만 시원하면 되겠는가? 동료들도 생각해야지.”
반은 혹 모를 기습에 대비하여 갑주를 걸친채 경계를 서고 있고 다른 반은 갑주를 벗고 물속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나이가 많은 병사가 그렇게 말을 하자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병사들은 하나 둘 밖에 나와서 갑주를 다시 입기 시작하였고 무장이 완전히 갖추어진 것을 보고는 그동안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들이 갑주를 벗고 물에 뛰어 들었다.
“가등!”
“예!”
“길잡이와 함께 이리로 오게.”
가등과 길잡이는 앞조에 있어 수욕아닌 수욕을 마치고 경계를 서고 있던 참이었다. 적무환의 부름을 받고는 서둘러 적무환의 앞으로 달려 왔다. 적무환은 가볍게 물을 떠서 세면을 한 정도로 더위를 삭였다. 내기를 일으키면 한 겨울에도 홑옷을 입고 한 여름에도 갑주를 입어도 문제가 없지만 지금 적무환은 스스로 그 내기를 금제한 상태라 땀을 흘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가등.”
“예! 조장님.”
“저 친구 이름이 뭔가?”
“호라친입니다.”
“호라친? 흐음, 가등, 저 친구에게 나호족에 대하여 물어보게.”
가등이 무어라 호라친에게 말을 건네었다. 길잡이 호라친은 가등의 말을 경청을 하더니 짧게 대답을 하였다.
“뭐라 그러나?”
“어떤 것이 알고 싶으신지 여쭤보라 합니다.”
“그냥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하라 하게. 참, 왕간! 왕간, 어디있나?”
적무환은 가등의 말에 대답을 하고는 고개를 돌려 다른 병사를 불렀다. 그러자 물 속에 있던 병사가 허둥지둥 물에서 빠져 나와 옷을 껴입고는 적무환에게 달려 왔다.
“부르셨습니까? 조장님!”
“여기서 야영을 한다. 준비하도록.”
“예. 조장님.”
왕간이라는 사내가 예를 취하고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적무환은 가등에게 고개를 돌렸다. 가등은 그 동안 호라친에게 적무환의 말을 전하였고 호라친은 가등에게 손짓 발짓에 표정을 최대한 동원하여 열심히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적무환은 호라친의 표정이 분노에서 두려움으로 그리고 기대감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보고 재미있다는 얼굴을 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던 호라친의 말이 끝나고 가등이 적무환에게 돌아섰다.
“그래, 뭐라던가?”
“그게..워낙 많아서 잘 정리가 되질 않습니다.”
“대충 들은바를 얘기 해보게.”
“예. 호라친이 말하기를 나호족은 불과 십년 전까지만 해도 이 근처에서는 소수 부족으로 극히 허약한 종족이었다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것이 십년 전쯤부터 나호족이 외부 부족과 전쟁을 시작하였고 계속 전쟁에서 이기고 노예를 만들어 지금의 대부족이 되었다 합니다.”
“십년 전까지 소수 부족이었다고? 자세히 좀 말해보게. 가등.”
호라친에게서 전해들은 가등의 말은 이러했다. 나호족은 정말 그 위세가 형편 없어 주변의 다른 종족들에게 소위 밥줄이라 할 정도였다 했다. 나호족과 인접한 여러 부족들은 수시로 나호족의 마을을 침탈하여 보물과 식량을 빼앗고 여인들을 데려와서 자신들의 노예로 삼았었는데 십년 전쯤 나호족에 신인이 내려왔다는 것이었다.
나호족은 그 신인을 나호족이 섬기는 여신의 환생으로 여기고 그 신인을 받들어 모셨다고 하였다. 신인은 그런 나호족을 불쌍히 여기어 신력을 나누어 주었고 그 신력을 받은 나호족의 젊은 전사들은 용맹하게 되어 주변의 부족의 침략을 막아내었다 했다. 그러다 나호족의 힘이 더 이상 만만치 않게 되자 한 부족이 나호족을 전력을 다하여 공격을 하였었는데 결과는 어이없이 일방적인 나호족의 승리였다. 거기에 힘을 얻는 나호족은 주변의 부족들의 침입에 더 이상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나호족은 ‘힘’이라는 것을 소유하게 되자 이번에는 반대로 인접한 부족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용맹한 나호족의 전사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신력을 지니고 있어 하나 둘 다른 부족들을 굴복시켰고 급기야는 이 곳 운봉산 일대의 모든 부족들을 굴복시키고는 지배하고 있다고 하였다. 호라친은 그 말을 하면서 주먹을 부르르 쥐고 분노에 몸을 떨었다. 그 와중에 자신의 부족이 나호족에게 멸망을 당했고 살아남은 몇몇 부족의 사람들은 나호족의 노예가 되거나 다른 부족의 노예로 들어갔다 했다. 자신은 그나마 운이 좋아 이렇게 밥이라도 제대로 먹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말을 할때에는 안도감으로 표정이 완화되었다.
가등이 호라친에게서 들은 말을 거의 적무환에게 전달하였고 적무환은 묵묵히 그 말을 들었다. 그의 머릿속은 호라친에게서 전해 들은 ‘신인’이라는 말에 신경이 쓰였다.
‘신인? 신인이라..신인이 신력을 나호족에게 주었다고 했겠다. 신인..신선? 아닐테고 그렇다면 혹시..’
“가등! 호라친에게 그 신인에 대하여 물어보게.”
가등이 또 호라친에게 질문을 하였고 호라친을 대답을 하였다.
“호라친도 자세히는 모르겠답니다. 그도 소문으로 들은 거랍니다.”
“그 소문이 어떤 것인데?”
“신인은 손에서 천둥이 치고 일격에 호랑이를 때려잡는다 한답니다.”
이 곳의 호랑이는 만주나 장백산 인근의 대호와는 체격의 차이가 있는 호랑이지만 그래도 맹수의 왕이라 평가를 받는 짐승이었다. 그런 호랑이를 일격에 때려잡는다하면 범인들에게는 대단히 두려운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신인은 여인이랍니다.”
“여인?”
“예. 나호족은 신인을 나호족이 섬기는 신의 딸로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래? 여인..여인이라.”
적무환은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병사들은 수욕을 마치고는 야영할 준비를 끝내었다. 미리 준비한 건량등을 식기에 담아서 가등이 적무환에게 가져왔다.
“조장님! 저녁입니다.”
“음, 그래.”
간단히 고기말린 것과 소채 몇가지지만 적무환은 조금씩 입에 넣고는 씹기 시작하였다. 언제부터인지 적무환은 음식을 먹을 때 천천히 최대한 천천히 먹는 습관이 생겼다. 많은 양을 섭취하지는 않았지만 이로 잘게 씹어서 거의 걸쭉해질때까지 만들어 삼켰다. 이는 작은 양으로 최대한의 영양을 섭취하기 위한 한 방편이었다. 이를 적무환은 다른 일부의 노회한 병사들이 하는 것을 보고 자연스레 배웠다.
그렇게 식사를 하던 적무환의 눈이 순간 반짝 빛났다.
“가등.”
“예! 조장님.”
“준비하게.”
나직한 말, 적무환의 옆에 앉아 적무환과 비슷한 모양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그 말을 들은 가등의 얼굴에 순식간에 긴장의 빛이 가득 번져나갔다. 이 말은 일종의 은어로서 전투준비를 하는 것을 의미하였기에 가등은 심각한 기색으로 조용히 발을 병사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옮겼고 그 말을 그대로 병사들에게 전하였다. 병사들은 태연히 몸을 일으켜 자신이 벗어놓은 갑주와 병기들이 있는 곳으로 신형을 이동시키다 일제히 갑주를 몸에 걸치고 병기를 세워 들었다. 그리고는 대형을 갖추워 적무환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가등, 호라친에게 숲을 향해 나오라고 하게.”
가등이 호라친에게 적무환의 명령을 전달하였다.
“#[email protected]^$%@#”
호라친이 우거진 숲을 향해 무어라 외쳤다. 적무환의 말을 그대로 떠들어대는 호라친이었다. 호라친의 음성이 숲속을 진동하였다. 이제 어둠이 막 내려 앉으려 하는 어스름한 시간이었지만 사물을 분간하기엔 충분한 빛이 있었다. 그러나 조금의 움직임도 숲속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주변이 고요해졌다. 벌레들의 울음소리나 짐승들의 울부짖음도 먼곳에서 아스라히 들려오는 것이지 주위에서는 적막이 감돌았다.
“창 하나 주게.”
고개도 돌리지 않고 적무환은 가등이 전달한 창을 하나 집어들고는 앞에서 삼분지 일지점을 가볍게 쥐었다. 그리고는 위로 치켜든다 싶더니 앞으로 쳐내었다.
쉬익..
파공음과 함께 창이 공간을 순간적으로 갈랐다.
푸웃..
“큿.”
어딘가에 창이 작렬하는 소리와 함께 끊어지는 듯한 짧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틀림없는 사람의 음성이었다. 적무환이 쳐낸 창이 숲속에 은신한 누군가에게 적중한 모양이었다. 헛숨을 들이키는 신음이 숲속에서 나왔다. 푸스스 숲이 흔들렸다. 이어서 수풀 속에서 몇몇 음영이 움직인다 싶더니 하나 둘 몸을 세우는 것이 보였다.
적무환과 다른 병사들은 병장기를 힘껏 거미쥔채 안력을 그 쪽으로 집중시켰다. 시야에 대략 십여명의 사람의 모습을 한 그림자가 보였다. 그들은 곧 수풀을 헤치고 숲 밖으로 걸어나와 적무환등과 수장의 거리를 두고는 멈춰섰다. 열셋, 숲속에서 은신하고 있다가 모습을 드러낸 인원의 숫자였다. 아직 완전히 어두어지지 않아 그들의 행색을 살필 수 있었다. 여인으로 보이는 셋과 건장한 젊은 사내로 보이는 열명이었다. 그 사내 중 한명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피를 흘리고 있었고 다른 쪽 손으로 적무환이 쳐낸 창을 쥐고 있었다.
적무환의 눈짓에 가등이 호라친에게 말을 하였고 호라친의 입이 열렸다.
“%^(%^&%”
“....”
대답이 없었다. 재차 호라친의 말이 이어졌다.
“@#^$%#*%”
“감히 이 곳이 어디라고 들어 왔는가?”
뜻밖에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서툴지만 틀림없는 한어로 되돌아 왔다. 가운데 서 있는 여인, 이제 갓 스물을 넘겼을까? 허리춤에 검집으로 보이는 기다란 막대를 매달고 꼿꼿히 서서 병사들을 내려다 보듯 말을 하는 여인에게서는 익숙해 보이는 위엄이 묻어났다.
‘검?’
적무환은 입을 연 여인을 바라보다 문득 여인의 허리춤에 달려 있는 검집을 보고는 의구심이 생겼다. 적무환은 눈을 돌려 여인 옆에 서있는 다른 여인들과 사내들의 행색을 세밀히 관찰하였다. 마찬가지였다. 그들 상당수가 검으로 보이는 병기를 허리춤에 혹은 손에 들고 적무환등을 노려보고 있었다.
검(劍). 다른 병기의 태생과는 차이가 있는 원래부터 살상을 목적으로 생겨난 병기가 검이다. 만병지왕이니 만일검이니 하는 말 자체가 그 검의 수련이나 쓰임새 등을 단적으로 말해주었다. 그러한 병기가 이 외진 운남의 한 귀퉁이의 이민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물론 그들이 검을 쓸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운남의 지형이나 기후 등의 자연 조건은 검보다 다른 병장기를 사용하는 것에 유리하였다. 항상 손질을 해야하고 그 사용법이 다른 무기에 비해 까다로운 검을 쓸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가지!
‘무공을 익힌 것인가?’
그런 적무환의 생각은 여인이 추궁하듯 재차 물어보자 깨뜨려졌다.
“감히 본 공주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인가?”
노기가 은은히 섞여 있었다. 강압적인 말투가 당연한듯 스스로를 공주라 칭한 여인은 병사들은 노려보았다. 그 옆에 좌우로 서있던 사내들의 눈에서도 분노가 섞인 빛이 새어나왔다. 적무환은 빤히 그 여인을 쳐다 보았다. 조금 어색하긴 해도 복색은 중원의 복색이었다. 공주라 한 여인은 경장이라기 보다는 궁장에 가까운 화려한 비단의복을 걸치고 있었다. 여인은 이 근방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원주민 여성과는 차이가 있는 용모였다. 운남에 사는 대부분의 이민족은 코가 낮고 얼굴이 동그랗고 피부가 짙은 갈색을 보여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허나 이 여인은 머리색은 칠흑같이 검지만 오똑한 콧날이며 중원의 여인들보다 오히려 더 흰 피부결을 가지고 있었다. 절세미인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디가도 꽤 미인이라 평함을 받을만한 미색이었다. 그런 그녀와는 달리 주변의 두 여인은 이 공주의 시비인듯 평상 원주민의 옷차림에 평범한 얼굴이었다.
적무환이 가등에게 눈짓을 하였다.
“우리는 원 제국의 병사들이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금번 이 운봉산 지역을 순찰하려 한다. 너희들은 나호족인가?”
“원 황제? 여기는 원의 영토가 아니다. 이 곳은 우리 땅이다.”
“뭣이? 황실의 명을 거역할 셈이냐?”
“우리에겐 황제란 없다. 이 지역은 우리 나호국의 영지다.”
“나호국? 나호족이 아닌가?”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마라. 본국의 국왕께서는 얼마 전 나라를 세워 국왕위에 오르셨다.”
“뭐라고? 나라를 세웠다고? 그러면..”
“가등!”
적무환은 가등과 공주의 설전을 중지시키곤 공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공주는 원과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요?”
“못할 것도 없지.”
“알겠소. 그럼 그렇게 보고하리다. 전원 회군 준비.”
“어딜 간다는 것인가?”
“운봉산이 그대들의 영지라니 여기서 떠나야 하지 않겠소.”
“그럴 필요 없다. 너희들은 한발짝도 이 곳에서 나갈 수 없다. 너희들은 우리의 포로다.”
“우리와 대적하겠다는 건가?”
적무환의 목소리가 조금 서늘해졌다. 허나 기세가 오른 공주는 그 것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해서 적무환등을 몰아붙였다.
“대적? 건방진 중원놈들. 네 놈들은 본국으로 끌려가서 충실한 노예가 될 것이다.”
“노예라..자신이 있는가?”
“아직 네놈들의 처지를 잘 모르는 가 본데 여기 이 용사들은 나호국의 최정예 백인 용사들 중 열명이다. 당연히 자신이 있지.”
쭈욱 살펴보니 하나같이 태양혈이 불룩 솟아 오른 것이 꽤 무예를 익힌 것으로 보이는 자들이었다. 일견해도 강호에서 이류급은 평가받을 만한 사내들 열명이 형형히 눈빛을 빛내며 이쪽을 쏘아보고 있었다.
“내가 누군지 아는가?”
“호호호..사신(死神)이라는 허명에 우리가 겁을 먹을 것으로 아느냐? 그 따위 이름이야 다른 부족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될지 몰라도 본국의 용사들에겐 코웃음꺼리 밖에 되지 않는다. 정 의심이 된다면 힘을 보여주지. #$^#, #$^%#$&”
나호국의 공주는 옆에 서 있는 사내에게 눈짓을 하였고 나호국의 용사 중 하나가 몇걸음 앞에 나와 섰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서 적무환을 가리키고는 손가락 끝을 까닥였다. 나오라는 의미, 아주 얕잡아 보는 듯한 자세였다. 초반에 선기를 제압하려는 의도가 보였다.
“왕간.”
적무환이 알고 있기에 지금 자신을 제외한 열아홉의 인물 중 길잡이를 빼면 열여덟. 그 중 무예를 좀 했다 싶은 병사는 가등과 왕간, 그리고 왕간과 친한 정자후라는 세명이었다. 나머지 열다섯 중 제법 군생활을 하여서 연륜이 쌓인 병사들이 열둘 나머지 셋은 신참이나 다름 없는 어린 병사였다. 수색의 중한 임무라 가능한한 경험이 있는 병사를 데리고 나오려 했지만 아직 편제가 완전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데려온 신병이었다. 신병들은 잔뜩 긴장된 기색이 역력히 보였다. 그 신병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초전이 중요했다.
왕간은 적무환의 명이 떨어지자 예를 취하곤 자신의 병기인 도를 빼어들었다. 폭이 네치가 조금 넘고 길이는 석자 정도의 살짝 굽어진 형태의 흔히 볼 수 있는 도였다. 비스듬히 도를 세우곤 왕간은 한걸음 한걸음 발을 떼어 나호족의 전사가 서 있는 곳에 다가가더니 마주 섰다. 사선으로 도를 세우고는 도끝을 안쪽으로 하여 얼굴 어림까지 들어올렸다. 살짝 몸을 비틀어 어깨가 적을 대면할 수 있는 기수식을 취하였다.
“자후!”
“예. 조장님.”
정가라 불리웠던 사내가 적무환 가까이 달려왔다. 적무환은 부대가 통합되고 재편될 때 스스로 나서서 몇몇 추가 병사를 뽑았다. 그 중 왕간과 정자후 이 둘이 포함되었다. 적무환 자신의 무예 경지가 일정 수준 이상이었기에 일반 무인들이 무형중에 발산하는 기도만 감지하더라도 대략의 무예수준을 판단할 수 있었다. 적무환이 느끼기에는 왕간이나 정자후 이 둘은 강호에 당장 나서더라도 궁경 중 중기(重氣)의 단계를 넘어선, 최소한 무이관주 였던 상명선의 무위는 가졌다 판단하였다. 이십대의 나이에 결코 낮다고만 할 수 없는 경지였다.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였고 그와는 별개로 실력과 경륜이 있는 병사들이 필요했기에 적무환은 백부장에게 둘을 포함한 몇몇을 요구하였고 관철시켰다.
왕간과 정자후는 과거 무림에서 쓰디쓴 상처를 입고 방황끝에 군에 투신한 젊은 영재들로서 사문의 기린아로 촉망받던 예날을 뒤로 한채 스스로를 숨기고 운남, 이 외곽에 와서 생활하고 있던 중이었다. 가능하면 튀지 않게 군영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가진 능력덕분에 아직 죽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적무환이 처음에 자신둘을 호명하였고 바로 앞에서 적무환을 마주쳤을 때 자신들을 요구한 ‘사신’이라는 인물이 뿜어내는 기세에 제대로 숨도 못쉴 지경이었다. 당혹감은 곧 호기심과 의아함으로 전이되었고 그들은 적무환의 부대에 합류하였을 때 적무환의 기존 병사들이 적무환에게 두려움과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는 슬쩍 물어보았을 때 나온 대답이 그들을 더욱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조장과 있으면 살 수 있네.’

나호족의 전사가 가벼이 검을 들어 올리고는 한발 내딛으면서 검을 뻗쳤다. 초식이라기 보다는 탐색의 의미로 빠르게 찔러내는 일검이었다. 왕간은 사선으로 들고 있던 칼을 비틀어 슬쩍 검을 쳐내고는 그 여력을 되살려 몸을 한바퀴 빙글 돌리며 도를 수평으로 가슴어림께 휘둘렀다. 검을 퉁긴 나호족의 전사는 이미 그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칼의 궤적의 밑으로 몸을 숙이면서 검을 그어 왕간의 장딴지쪽을 베어갔다.
“$&^”
“허업!”
탐색전이 벌어지나 싶더니 금새 흉흉한 금속광이 허공에 흩날렸다. 급히 칼을 거둬들이는 왕간은 한발로 땅을 박차면서 허공으로 떠올라 검을 피하면서 공중에 떠 있는 채 아랫쪽으로 도를 세차례 내리 찍어 적의 머리를 노렸다. 왕간의 사문 절기인 창응삼뇌격(蒼鷹三雷擊)이었다. 거센 칼바람과 함께 도의 기세가 휘몰아치자 나호족 전사는 검을 바닥에 대고는 철판교의 수법으로 몸을 뒤집어 위치를 바꾸고는 쇄도해 들어오는 도를 일일히 쳐 내었다.
왕간을 검에 실려 있는 적의 내기가 만만치 않음에 튕겨지는 힘에 거역하지 않고 위로 솟구쳐 올라 일장 여를 후퇴한 다음 바닥으로 내려섰다.
“자후! 혹 어떤 무예인지 아는가?”
흠칫 정자후는 몸을 움찔 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왕간이 펼치는 무공은 선풍이십사도입니다. 왕간은 선풍뇌도의 무예를 이었습니다.”
“나호족은?”
“처음에는 삼재검법을, 그리고 왕간의 선풍도를 막은 수법은 아직..”
“그래? 계속 보면서 말해주게.”
적무환이 나호족과 왕간이 어떤 무공을 펼치고 있는가 알아보는 사이에도 왕간과 나호족의 전사는 연신 병장기를 부딪히고 있었다. 왕간이 도를 휘둘러 도풍을 일으켜 짓쳐들어가면 나호족의 전사는 검풍으로 일일이 해소를 해나갔다. 그러면서 틈이 보이면 그 새로 검을 밀어 넣었고 왕간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재빨리 도를 거두어 검을 쳐내었다. 일진일퇴의 공방전, 누구하나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싸움이 계속되었다.
“초영휘류!”
나호족 전사의 검이 회전을 일으키며 뿌연 검 그림자를 남기면서 환영을 일으키고 그 환영이 왕간의 사방위를 핍박하자 깜짝 놀란 정자후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무언가?”
“저 나호족의 전사의 무공은 진천성화검인 듯 싶습니다.”
“진천성화검?”
“예. 그렇습니다. 지금은 그 문파가 성의전에 귀속이 되어 사라졌지만 한때 명성을 날렸던 의검문(醫劍門)이라는 문파의 절예였습니다.”
“의검문? 성의전에 귀속이 되었다고?”
“예. 조장님. 삼십여년 전입니다.”
“성의전, 성의전이라..”
성의전은 다름아닌 난화성녀 유가형의 사문이었다. 적무환이 잠시 골몰하게 생각을 하면서 장내에서 눈을 떼고 있을 때 왕간과 나호족의 전사의 대결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둘 중 누구 하나 우위를 잡지 못하고 기력을 소모하였다. 이장이 채 안되는 거리를 두고 가쁘게 숨을 내쉬면서 왕간과 나호족의 전사는 매서운 눈빛만 날리고 있었다.
“왕간! 돌아오라.”
왕간이 적무환의 말에 경계를 하면서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는 다른 병사들이 진형을 갖추고 있는 곳까지 다달은 다음에야 긴장을 풀었다. 나호족의 전사 역시 주춤 주춤 뒷걸음 하더니 공주란 여인과 다른 전사들이 서 있는 곳까지 물러선 후 숨을 고르는 것이 보였다.
적무환은 왕간이 자세를 잡자 앞으로 몇발자국 나섰다. 칠척이 넘는 엄청나게 장대한 체격을 가진 적무환이 앞에 나서자 강렬한 위압감이 나호족 인원들에게 전달되었다. 공주를 비롯하여 나호족의 전사들의 안색이 가볍게 변하였다. 예상보다 강한 왕간의 무위에 놀랐고 말로만 듣던 자를 이렇게 가깝게 보게되니 그 이름에 걸맞는 위용을 지니고 있음을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기세가 꺾인 것은 아니었다. 이 들 중 나호족이 자랑하는 최고의 전사가 섞여있기 때문이었다.
“나를 아는가?”
적무환이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사신이란 이름으로 우리가 겁을 먹을 것이라 생각했나?”
공주의 옆에 서 있는 나호족 사내가 역시 서투른 한어로 입을 열었다. 사신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이 적무환에게 가벼운 놀람을 주었다. 이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부대내에 첩자가 있거나 혹은 부대의 일거수 일투족이 지속적으로 감시를 받고 있다는 말이었다. 더군다나 이쪽 원주민 부족들이면 누구나 가질 ‘사신’의 공포따위는 무시할 정도라는 느낌이 은연중에 배어나왔다.
적무환은 안력을 돋구워 나호족의 전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과연 강하다는 이름을 들을 만 했다. 저 정도라면 무림의 후지기수 그 누구에게도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을 받을 정도였다. 칠룡이나 사화를 제외하면 저들을 맞상대할 자가 흔치 않으리라. 적무환은 속으로 생각했다.
“생각을 바꿨다.”
“무슨 말인가?”
뜬금없는 적무환의 말에 나호족의 공주가 반문을 하였다.
“너희들은 대원의 포로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
갑작스러운 항복의 권유에 공주를 비롯한 나호족 전사들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표정이 실리더니 곧 실소로 번지다가 대소가 터져나왔다.
“킬킬킬..”
“홋홋홋..”
“크하하하하..”
적무환은 나호족의 사람들이 웃던 말던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빤히 그들을 쳐다볼 뿐 일체의 움직임도 없었다. 얼마를 웃던 나호족 인물들의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그러더니 나호족 최고의 전사로 보이는 자가 입을 열었다.
“건방진 놈! 어디 네 놈들의 무공도 그 손만큼이나 광오한지 보겠다. !#%$”
그 전사의 명과 함께 나호족의 전사들이 일제히 검을 빼어들고는 달려들어왔다. 흉흉한 검빛이 나호족 전사들의 검끝에서 뻗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원의 병사들도 제각각의 병기를 거세게 움켜쥐고는 함성과 함께 마주 달려나왔다.
난전이 벌어졌다. 나호족의 전사들은 미약하나마 검기를 흩뿌리며 용맹스러운 기세로 병사들을 공격하였다. 원의 병사들은 가등과 왕간, 정자후를 축으로 하여 노회한 병사들이 진형을 갖추어 쏘아들어오는 나호족의 전사들에게 맞섰다.
순간,
적무환은 땅을 박차며 돌진하였다. 그 앞으로 달려나오던 나호족의 전사의 검세를 비스듬히 철퇴로 쳐 올려 방향을 흩더니 계속 빠르게 달려나갔다. 그 적무환이 달려나가는 방향의 끝, 깜짝 놀라 안색이 하얗게 변하고 있는 나호족의 공주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보검으로 보이는 날이 잘 서려있는 검을 곧추 잡고 있는 나호족의 공주는 갑자기 적무환이 자신쪽으로 달려오자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었다. 급히 두 시비가 검을 빼어들고는 공주의 앞을 막아섰고 나호족 최고의 전사라는 자 역시 대경실색하여 신형을 뒤집어 적무환의 배후로 검을 찔러갔다.
캉!
적무환이 철퇴를 뒤로 하여 검을 막아내었다. 검에 실린 역도를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여 튕겨 나간 적무환은 어느새 공주 바로 앞까지 도달하였다. 두 시비로 보이는 여자들이 휘두른 검을 철퇴로 쳐 내고는 적무환은 공주를 노렸다. 경황중에 내지른 공주의 검을 겨드랑이 밑으로 흘려버리고는 나호국의 공주의 손목을 겨드랑이에 끼었다. 그리고는 신형을 돌려 공주의 뒤로 돌아가서는 발을 가볍게 내질러 공주의 무릎을 뒤쪽에서 걷어찼다.
“꺄악!”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 앉다 시피한 공주의 갸녀린 목이 적무환의 손에 쥐어줬다. 적무환은 공주의 손을 한 손에 휘어 잡고 입을 열었다.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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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어찌 여자를 하나 (혹은 그 이상) 조달했습니다. (사전에 구상하고 있던 여인이지만요.)
응응응...을 기다리시는 분들은 조금만 참으시길..그 다음에는 꽤 많이 나올 예정이니까요.
이번 회에 하나를 넣을려고 했지만 그렇다면 또 올리는 시간이 늦어져서..
응응응..을 기대하는 분들께 죄송합니다. 야설에 응응응도 안나오구..ㅠ.ㅠ

컴에 대해서 뭐 하나 여쭙겠습니다.
윈98을 쓰다가 윈xp업그레이드를 깔았어요.(정품이라는 것에 욕심이 나서..) 그런데 그 이후로 컴이 난리가 아닙니다. 윈도우미디어플레이어를 비롯 여러 프로그램이 안되고 자꾸 오류메시지만 뜨네요. (이 질문을 msn에 보낼까 말까 하는 메시지가 뜹니다.)
이를 어쩔까요..ㅜ.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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