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수라기(獸羅記) 23번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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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튜브링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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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련(練)과 련(鍊)


이제 앞으로 달릴 차례다! 아환은 그렇게 생각했다.

(1)

"누님?"
"왜?"
"우리 새집으로 옮깁시다."
"새집?"
"그래요. 제가 만들었어요."
"어디있는데..?"
"저기 저 낙성봉이요."
"낙성봉?"
"예. 작년 여름에 누님의 집을 찾다가 발견한 곳이예요."
"어떤 곳인데?"
"음양조화역이라고 알아요?"
"음양조화역? 그 곳은 전설로만 전해지던 곳이 아닌가요?"
"예. 저도 그렇게 알았죠. 하지만 실존하는 곳이었습니다. 누님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어요.그러다가 며칠 전에 집을 완성하였어요. 이제 금방 겨울이 다가오니까 서둘러 그 곳으로 가지요."
그러고 보니 요즈음 가끔 이 사내가 밖에서 시간을 조금 많이 보낸다 싶었다. 무슨 일일까 물어볼까? 혹은 한번 알아볼까? 하다가 너무 간섭하는 것 같아서 그냥 궁금한 상태로 잠시 접어두었다. 그런데 그것이 집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니..
"음양조화역이라..음양조화역이라..예. 그래요."
순순히 검후는 승낙을 하였다.

벌써 산 속은 겨울이 임박하여 아침 저녁으로 싸늘한 한기가 휘몰아쳤다.
겨울의 산속은 추위도 추위지만 먹을 것이나 기타 활동에 불편한 점이 많았다. 또한 무공을 익히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아환은 그러한 악조건하에서 생활하기 보다는 음양조화역에서 살면서 무공을 익히는 것이 진전속도도 빠르고 또 아환이 생각한 바를 이루기에 용이하였다.
아무래도 이 곳은 다른 사람이 별로 찾아오지 않는다 하여도 가끔 약초꾼이나 나뭇꾼이 근처에 나타나기도 하여 신경이 쓰이기도 하였다.
검후야 아환이 하자는 대로 따를 뿐이었다. 그녀는 첫 정인에게 푹 빠져서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환이 좋으면 좋은것 나쁘면 나쁜것. 사랑은 이성을 멀게 한다더니 검후가 딱 그 꼴이었다.

"하누님?"
"왜요?"
"누님에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요?"
"누님! 상가진 아시죠?"
"상가진? 알지요. 그런데 상가진엔 왜? 요즈음 가본지도 꽤 되었는데.."
"상가진에.."
"상가진에 무어가 있는데?"
"..."
아환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지금 아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상운진에 관한 것이었다. 쉽게 상운진에 관한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어찌 되었든 아환은 스스로 상운진을 책임지겠다고 다짐하였다. 아환이 필요로 하여 그 몸을 취하고 그 순정을 받았다. 또한 아환의 생각속의 일을 진행하기 위하여는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도 하였다. 상운진을 이용한다면 아환이 계획하는 바가 더 빠른 시간에 보다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용이했다.
아환이 머뭇거리고 있자 검후가 재차 묻는다.
"환제. 상가진에 무슨 일이 있는데?"
"저.."
"말해요. 아환."
마침내 결심을 한 듯 아랫 입술을 물고는 아환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 곳에는 상운진이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상운진?"
안색이 홱 변했다. 여인이라니. 자신이 있는데 여인이라니.
"상운진이라는 여인은 어떤..?"
말끝이 살짝 떨려서 울린다.
"..."
"말해요. 환제."
"누님.."
"어서 말을 해봐요."
음성이 날카로와 졌다.
"죄송합니다."
말을 못하고 아환은 고개를 떨구었다.
"죄송이고 뭐고 일단 말을 해요. 상운진이라는 여자가 누구예요?"
"..."
"아환!"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 날카롭게 찢어지는 듯 대기를 갈랐다.
"..."
"혹시 그녀하고.."
"..."
"그런 것인가요? 그녀와 혼인을 했나요?"
"아닙니다. 아직.."
"아직? 그렇다면 혼인을 할 여자란 말인가요? 그런거예요? 아환! 그런 거예요? 이봐요. 말을 해봐요. 말을..상운진이란 여자하고 혼례를 치를 것인가요? 아환!"
떨리는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 도도하고 고귀하던 기품은 어디다 다 내팽겨쳤는지 지금의 아환 앞의 여인은 자신의 사랑을 잃을까봐 두려움과 아환에 대한 배반, 그리고 질투심에 괴로워하는 여염집 처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어느 새 눈물이 그렁그렁 검후의 눈가에 맺혔다.
"그래요?.."
"..."
입을 굳게 다물고 대답을 하지 못하는 아환..
"그럼 그녀와 혼례를 치르고 여길 떠날 것인가요?..아환..."
마지막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잦아드는 음성. 진실로 아환을 사랑하는 검후의 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정말 이 사내가 자신의 곁을 떠나면 어떡하나? 지금까지 구십년이 넘는 세월을 홀로 살아왔는데 앞으로 다시 혼자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누님?"
"예."
"전 누님을 그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예?"
밝아지는 여자의 목소리.
"하지만 저는 상운진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럼.."
"누님. 상운진은요..제가 처음 이 곳 상가진에 떠돌다 간신히 정착을 하였을때.."
아환의 입에서 상운진에 관한 설명이 흘러나왔다. 처음 이 곳에 힘들게 정착하였을때 무이관 부녀가 도운 일이며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에 관하여 애써준 일이며 여러 상황, 사건들을 약간의 살을 보태어 검후에게 말했다.
원래 거짓말은 진실 아홉에 거짓 하나를 섞어야 그 말을 믿어 주었다. 혹시 이 말을 상가진의 그 어느 다른 이에게 물어 보아도 그렇다고 대답할 정도로 살을 붙여 검후에게 설명을 하였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누님."
"휴~"
한동안의 설명을 귀기울여 들은 후 검후가 숨을 푸우 내쉬었다. 한숨에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젠 어쩔건가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찌해야 할지.."
한참을 아환을 노려보던 검후..
"휴우..할 수 없죠."
"예?"
"이리로 데리고 와요."
"예? 무슨 말..?"
"여기로..아니 그 이사갈 곳으로 데리고 오라구요. 이사할 곳으로. 같이 살아야할 것 아니예요."
"예? 예!"
"정말 못됐어. 정말..!"
체념을 하였는지 어느새 표정이 풀리고 곱게 눈을 흘겨 아환을 째려보았다. 생각보다는 훨씬 쉽게 일이 풀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는 곧 검후가 아환을 얼만큼 사랑하느냐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였다. 어찌 되었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책임지려 하는 여인이었다. 솔직히 그 여자를 거절하고 싶고 아환을 강제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만약 무공이라면 그리 쉽게 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그렇게 쉽게 만들고 변하여지는 것이 아님을 검후 역시 잘알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의 과다한 분노나 질투로 인하여 아환이 자신에게 멀어진다면 그 것 역시 참을 수 없었다.
그리 깊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사실 하나가 떠올랐을때 그 것을 허락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것은 후손, 즉 자식에 관한 문제였다.
비록 검후가 무공과 심결로 인하여 외모가 기타 장기가 이십대 초반의 모습을 보이곤 있다고 하나 경도(經燾:생리)가 끊어진지 오래가 지났다. 따라서 자신은 회임을 할 수 없는 몸. 얼마 있지 않아 자신에게 싫증을 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식을 보기 위하여 다른 여자를 품을 지도 몰랐다. 그런 때가 오면 검후는 아환을 붙잡을 자신이 없었다. 무공이 아닌 남녀간의 관계는 서로의 신뢰와 사랑, 그리고 배려가 중요하였다.
이에 생각이 미치자 검후는 차라리 일찍 그 사람을 맞이하여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자신은 배분이나 기타 무림의 관례상 아환과 혼례를 올릴 수 없는 위치가 아닌가?
생각을 하면 할수록 검후는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냥 자신과 외딴 곳에서 은거를 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림의 삶을 겪어본 그녀에게 사내를 묶어둔다는 것은 그 사내의 기개를 꺾고 웅지(雄志)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환 역시 자신과의 삶에 언젠가는 강호로 출도를 할 것이다. 돌아오겠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 언제 그녀를 데려 올거예요?"
"누님이 허락하시면.."
"정말 악당이야..못됐어. 못됐어.."
"하하하.."
"웃지말아요. 이 악당!"
손을 들어 가볍게 주먹을 쥐고 아환을 때리려고 덤벼들었다. 만약 공력이 들어가 있으면 아환은 그 즉시 저승행이겠지만 다행히도 그 주먹엔 한줌의 진기는 없었다. 아니 다른 것, 사랑이 들어 있었다.
"하하하..그래요. 전 악당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합니다."
와락!
검후를 껴안아 버리는 아환의 튼튼한 두팔. 그 속에 잡힌채 작은 주먹을 쥐고 아환의 가슴을 두들기는 검후의 교태라 할 행위들..
아환이 번쩍 검후를 안아들고 침상으로 다가갔다.
어느새 검후의 두 팔은 아환의 목을 살며시 끌어 안고 무언의 호응을, 그리고 계속 되어질 앞으로의 행위를 기대하고 있었다.



(2)


텅텅텅..
저녁이 이제 얼마남지 않은 시각,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상운진은 방문을 열고 연무장을 가로질러 대문쪽으로 걸어 갔다.

"누구세요?"
"사저. 주환입니다."
"아환?"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상운진은 대문을 열어 젖혔다.
대문앞. 장대한 체구를 지닌 사내가 서 있었다. 입가엔 잔잔한 미소를 담은채 시선을 밑으로 내려 작은 체구의 소녀, 상운진을 지긋이 응시하였다.
"아환?..아환..아환!!!"
맨처음에는 아환의 커진 체구와 넓어진 가슴, 그리고 제법 성년의 티가 나는 얼굴이 다소 낯설었지만 금새 그 얼굴과 몸에서 자신의 꿈에 그리던 정인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음성이 점점커졌다.
울면서 아환의 품에 달려드는 조그마한 체구의 여인, 상운진은 손을 떼면 아환이 사라질 듯 아환의 두팔을 꽉 움켜잡은 채 얼굴을 아환의 넓직한 가슴에 비비며 아환의 이름을 계속하여 불러대었다.
"아환..아환..아환.."
토닥토닥..
아환이 손을 들어 가볍게 상운진을 품안에 안고서는 다독였다.
"그래, 그래..잘있었어요? 사저."
"흑흑흑.."
"어구. 우리 아름다운 사저가 울보가 다되었네."
"흑흑흑.."
살며시 여인을 안아주곤 그 간의 여인의 그리움의 시간을 보냈던 것에 대한 보답인양 얼마의 시간을 보내며 거의 일년 반이 지난 후의 회포를 풀었다.

아환은 단정히 서서 절을 올린다.
그 머리가 향하는 곳, 무이관의 관주인 상명선이 정좌하여 앉아 있다.
"그간 별래무양하셨습니까? 사부님."
"그래그래."
일견하여도 아환에게서 풍기는 기도가 작년 여름 상가진을 떠날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짐에 상명선은 미미한 미소를 얼굴에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견하구나. 아환. 네가 이렇게 성장하다니.."
"다 사부님의 은덕입니다."
"아니야..아니야..네 자질이 훌륭하고 노력이 가상한 것이지 이 못난 사람이 한 것이 무어가 있다고.."
"사부님의 은덕이 아니면 전 이렇게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허허허.."
게다가 겸손과 예의까지 갖추었다.
"운진아."
"예. 아버님."
"오늘 그 네가 작년에 담은 국화주나 맛을 봐야겠구나."
"예. 아버님."
아환과 저녁을 같이 할 모양이다. 이제는 명실공히 장인과 사위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상운진의 마음은 한참 들떠 올랐다.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여기 자리에 남아 있고 싶었으나 또 다른 의미에서 중요한 자리를 준비하러 간다고 생각하니 서둘러야 겠다는 생각이 들은 상운진, 예를 올리고 밖으로 나갔다.
상운진이 나가고 난 후,
"그래, 하산한 것이더냐?"
"아닙니다. 사부님. 제자는 아직 멀었습니다."
"그럼..?"
"상가진에 온지도 오래 되었고 사부님께도 인사들 드릴꼄 해서 찾아뵈었습니다."
"그게 전부이더냐?"
"..."
일순 말을 잇지 못하였으나 곧 생각을 정리하고 말문을 재차 열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이번에 산을 올라갈때 사저를 함께 모시고 올라갔으면 합니다."
"운진을?"
"예."
"허허허.."
"무공을 훔쳐가서 저렇게 발전을 시켰거늘 딸자식을 훔쳐가면 어찌 할꼬?"
난데 없이 나타나 딸자식을 내놓으라고 하는데도 상명선은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평소보다 말수 가 많은 것이 그러하였고 술을 마시자고 하는 것도 그러하였다. 아니 이미 아환이 나타났을때 그것을 짐작이라도 한 듯 덤덤히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겠지..그렇겠지.."
"죄송합니다. 사부님."
"아니다. 그럼 혼례는?"
"사부님. 죄송합니다. 아직 배움이 끝나지 않은 터라.."
"이런 고얀 놈을 봤나? 예물도 가져오지 않고 딸자식을 훔쳐갈려 하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어도 상명선의 입가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에 아환은 말없이 고개만 푹숙이고 있었다.
"쯧쯧쯧.."
"죄송합니다. 사부님."
"되었다."
아환이 머리를 들어 사부 상명선을 바라 보았다. 형형한 안광이 찌를 듯 상명선의 동공을 자극하였다. 현 아환이 올라선 경지가 어느 정도 인지 상명선은 궁금하여 졌다.
"아환아."
"예. 하명하십시오."
"연무장에 나가서 준비하고 있거라. 오랜만에 권로(拳路)나 한번 밟아보자"
"예. 사부님."

아환이 연무장에서 연무복으로 갈아 입고 기마세를 갖추곤 상명선을 기다렸다. 조금 후에 상명선이 연무장에 나타났다.
평소의 상명선의 모습이 아니었다. 머리를 질끈 영웅건으로 묶고 갈의의 무복을 한 차림이었다.팔뚝과 종아리 부근에는 가죽으로 덧댄 보호구를 착용하고 신발은 가죽재질에 앞부분이 철로 감싸여져 있었다.
"사부님. 어인 일로..?"
"아환아."
"예. 사부님."
"내가 이리 한 이유는 현 네게서 풍겨나오는 기파를 볼때 결코 나의 하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내가 전력을 다하지 않는 다면 어찌 대련이라 할 수 있겠느냐. 또한 너도 전력을 다하여 이 비무에 임하여라."
지금 상명선은 전력을 다하여 아환을 상대할 모양이었다. 그로 인하여 현재 아환의 무위와 단점등을 살피어 주고 차후 강호의 경험에 도움을 줄려 하는 모양이었다.
"사부님."
가슴에 뜨거운 것이 솟아올랐다. 이런 저런 꿍꿍이를 가진 자신을 위하여 저렇게 노고를 하시다니..아환의 심장에서 붉은 피가 솟구쳐 올랐다.
"관례대로 삼초를 양보하마. 아니다. 아니다. 강호의 결투라 생각하고 나도 사정을 봐주지 않겠다."
"예."
아환이 동자배불의 자세을 취하곤 천천히 정권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자. 시작하자."
"예."

텃!
아환이 기합소리와 함께 진각(振脚)을 내치며 힘차게 권을 내뻗었다. 초식이라고 할 수 없는 일직선의 지름. 상명선이 팔뚝으로 슬쩍 흘리려 손을 들어 밀어내었다. 하지만 밀리지 않고 들어오는 아환의 일권.
"헛!"
헛바람 들이키는 소리를 내며 상명선은 손을 펴 아환의 정권을 감싸쥐려 하였다. 아환이 정권을 거두어 들이고 몸을 돌리며 이권으로 상명선의 얼굴로 주먹을 휘둘렀다. 상명선은 상체를 뒤로 젖히어 이권을 피하곤 이권이 돌아간 자리에 뛰어들어 연환권을 쳐내었다.
아환은 침착히 그 권영(拳影)들을 하나하나 쳐내며 한걸음 한걸음 물러섰다.
"좋구나."
상명선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조금전 정권을 흘리지 못함에서, 이권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내뻗은 경기에서 아환의 무위가 생각보다 훨씬 고강함을 깨달았다.
자세를 갈무리하는 상명선, 풍도십사식의 기수세를 만들어 낸다.
"전력을 다하여라. 아환!"
"예."
"풍영섬."
말을 맺기가 무섭게 빠른 정권이 아환의 얼굴로 들어왔다. 아환은 순식간에 몸을 회전하며 권이 지나간 길 옆으로 신형을 들여넣었다. 동시에 뻗어지는 손. 정권을 말아쥐지 않고 기이하게 손가락을 구부린 상태로 상명선의 앞섶을 순식간에 채었다.
찌이익.
길게 무복이 찢어졌다.
상명선은 다급히 발을 뒤로 옮겨 아환의 권세에서 벗어났다.
"허..이런.."
가슴을 내려다 보며 어이가 없는 듯 상명선은 탄식을 하였다. 아직 채 일초를 교환하지도 않았는데 이런 낭패를 보다니..등에서 땀이 흘러 내렸다. 저 녀석은 이미 나를 훌쩍 뛰어 넘었구나. 대견하다. 대견하다. 내심 중얼거리며 상명선은 다시 자세를 가다듬었다.
"제법하는 구나. 이번엔 쉽지 않을게다."
상명선은 빠르게 앞으로 달려가면서 땅을 박차 올랐다. 이어서 두 발을 교차하며 아환의 안면부위를 번갈아가면서 걷어찼다.
아환은 두 손을 펴서 자신의 얼굴로 날아오는 발을 급히 막았다.
탁.탁.탁.탁.탁.탁
좌우발이 세번씩 여섯번의 발길질이 아환의 양손에 떨어져 내렸다. 일단 공격은 막았으나 아환의 양손은 금새 부어 올랐다. 상명선의 신발앞 부분의 철추가 두 손에 작렬하면서 아환은 고통을 느꼈다.
상명선은 땅에 발을 다시금 딛고 뛰어 올랐다.
똑같은 초식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아환이 상체를 젖혀 위로 상명선을 흘려 보내려 하였다. 하지만 상명선은 공중에서 몸을 한 번 틀더니 발을 들어 크게 내리찍는 기세로 아환을 공격하였다.
"헙!"
아환이 몸을 틀어 공세를 피했다. 파각(破脚)이 땅에 떨어짐과 동시에 상명선의 돌려차기가 날라왔다. 아환은 두 팔을 십자로 교차하여 그 발을 막으며 그 기세에 저항하지 않고 뒤로 훌쩍 물러섰다.
다시 상명선의 공격. 이번에는 발을 풍차처럼 휘둘어 아환의 허리부근을 공격하였다. 아환은 상명선의 발에 있는 철추에 신경을 쓰느라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하고 수비에 치중하며 조금씩 물러섰다.
"이얍!"
기합과 함께 아환의 얼굴로 주먹이 날아들었다. 풍격화(風擊火)의 초식이었다. 정권에 이은 연환각이 들어오고 재차 주먹이 날아드는 수법. 아환은 정권을 흘리고 이어올 연환각을 대비하려 상체를 비틀었다. 하지만 풍격화가 아닌 풍영섬의 변초로 빠른 일권이 아환의 옆구리로 들어왔다.
"으헛!"
다급히 몸을 굴러 공세에서 벗어났다. 나려타곤의 수법. 흔히들 치욕적인 수법이라 말을 한다. 수세에 취하였을때 나귀가 몸을 굴러 자리를 벗어나듯 몸을 굴려 공세의 권역에서 벗어나는 비상시의 초식. 마음이 급하자 아환은 땅에 몸을 굴려 피하고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서 자세를 가다듬었다.
새빨개졌다. 나려타곤의 초식을 쓴 아환의 얼굴은 수치심에 가득 담긴 붉어진 모습이었다.
"아환!"
"예. 사부님."
"부끄러운게 아니다."
"예?"
"명예도 좋지만 생명은 그것보다 더 소중하다. 허황된 이름에 목숨을 버리지 말아라."
진지한 상명선의 어투. 상명선은 아환에게 실전의 경험을 가르치려 하였다.
"예. 사부님."
아환은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풍진뢰(風振雷)의 중수법으로 상명선의 상반신을 공격하였다. 진각으로 발을 밟고 근거리에서 발경으로 가슴이나 얼굴을 가격하는 초식이 들어오자 상명선은 한발을 들어 발그림자를 만들어 아환에게 반격하였다. 풍진뢰에서 풍도하로 초식을 변경, 버티고 있는 다른 쪽의 발을 쓸어갔다. 이에 상명선이 철추가 달려있는 신발로 내려 방어하자 초식을 거두어 들이고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아환! 최선을 다하라고 하였다. 솔직히 말하거라. 지금 네가 가진 능력의 얼마 정도를 발휘한 것이냐?"
"사부님. 전.."
"이 놈아. 다 알고 있으니 솔직히 대답하거라."
"예. 저의 능력에 오할 정도 됩니다."
"오할? 오할이라..오할이라.."
"죄송합니다. 사부님."
"아환?"
"예. 사부님 하명하십시오."
"한번만 전력으로 상대를 해주지 않겠느냐?"
아환이 시선을 상명선의 눈길과 마추쳤다. 이글거리는 눈빛, 무예를 추구하는 무도가의 강한 욕망을 읽을 수 있었다. 체면등의 겉치례보다는 호기심과 의욕을 충족하려는 열망, 아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부님."
"이번에는 내가 막아보마. 한번 공격해 보거라."
"예. 그럼 들어갑니다."
팔뚝의 가죽대로 안면부를 보호하고 철추화를 가볍게 들어 하체의 여러 곳을 동시에 방어하는 상명선. 아환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아환은 발을 놀리나 싶더니 금새 상명선의 눈앞에 정권을 밀어대었다.
"흡!"
엉겁결에 옆으로 머리를 돌려 그 주먹을 피하였다. 아환이 다가서며 주먹을 교차하며 상명선을 공격하였다. 상명선은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연환각으로 방어를 하였다. 아까와는 달리 아환은 일권 일권으로 하나하나의 연환각을 깨뜨리며 앞으로 전진하였다.
쩡.쩡.쩡.쩡...
쇳소리가 연무장에 울려퍼졌다. 아환의 정권과 상명선의 철추가 부딪히며 나는 소리였다. 기이한 느낌에 상명선을 발로 땅을 세차게 박차고 뒤로 크게 물러섰다. 그리곤 시선을 내려 철추화를 보았다.
"헛!"
신발을 감싸고 있던 철추가 부서져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그리하여 조금전보다 신발이 매우 가벼워져 있었다. 그 부서진 철조각을 보던 상명선은 허탈하여 졌다. 이 정도였나? 별 내공을 주입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 정도란 말인가?
상명선의 철추화는 상명선의 이름을 날리게 한 기본 복장이며 무기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상명선은 이 철추를 상당히 강한 합금의 재질로 만들어서 강호를 행보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것이 지금 부서져 내렸다. 서운함보다는 아환에게 느끼는 탄성이 더욱 커졌다.
"대단하구나."
"죄송합니다. 사부님."
"아니야. 이제 쓸일도 없는 데..그럼 한합만 더 손을 섞어보자."
상명선의 자세가 신중하여 졌다. 처음보는 기수식, 좌수는 땅으로 지면과 손바닥을 마주보여 평행하게 우수는 곧추 세워서 위로 들어 손가락의 끝이 하늘로 향하게 하고 발은 자연스럽게 균형을 배분한 채로 아환을 향해 있었다.
'처음 보는 초식인데..비상 절초인가?'
아환의 동작이 신중하여 졌다. 상명선이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아환은 그에 밀려 한발 한발 뒤로 물러 섰다. 점차 상명선의 발이 빨라 진다 싶더니 풍영보를 발휘하여 아환의 근거리까지 접근하였다. 이후 발차기, 앞으로 발끝이 날라온다. 지극히 평범한 일초, 아환은 감히 방심하지 못하고 초식을 뒤로 젖혀 피해냈다.
발을 거둔후 이어지는 상명선의 정권, 아환이 고개를 비틀어 머리 곁으로 흘려보냈다.
창!
기이한 금속성과 함께 상명선의 가죽대에서 칼날이 튀어 나왔다.
"헛!"
가까스로 상체를 젖혔지만 몇가닥의 머리카락이 하늘로 날아 올랐다. 아환은 급히 발을 뒤로하여 공세권에서 벗어난 후 자세를 잡고 후속공격에 대비하였다.
기이한 초식으로 방금전까지 살기가 흐르는 공격을 하던 상명선 어느새 팔뚝의 가죽대를 벗고 손에 든채 아환을 쳐다보고 있었다.
"훌륭하구나. 훌륭해. 네가 그토록이나 성장했구나. 정말 더이상 나는 네 상대가 되지 못하겠구나. 항산선녀에게서 일년반가량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화응(化應)지경에 들다니..헛허.."
"이 모든 것이 다 사부님의 은덕입니다. 아직 제자는 모자랍니다."
"내가 한 것이 무어라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너털 웃음을 짓던 상명선, 정색을 하고 아환에게 말을 건넨다.
"아환아!"
"예. 사부님."
"강호란 항상 예측불허의 곳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이다. 항상 네 예상보다 더 험난한 일이 많을 것이다. 네 목숨을 가장 아껴라."
"명심하겠습니다."
"헛허..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들자. 오랜만에 국화주를 거나하게 맛보겠구나. 사위덕에 말이다. 허허허."

"아하아하..."
자그마한 공간, 밀폐되어 있는 작은 밀회 장소에 호롱불 하나가 벽에 반사되어 노르스름한 빛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 공간의 한쪽에 있는 침상같아 보이는 나무구조물위에 희디흰 여체 하나가 꿈뜰거리고 있었다. 그 앞에서 그 것을 지켜보는 사람 하나와..
섬섬옥수라 할수 있는 가늘고 투명한 살결을 가진 손가락이 하얗고 봉긋한 살덩이 위에서 부드러이 노닐고 있다. 손끝으로 때론 손바닥으로 끊임없이 젖가슴을 매만지고 쓰다듬는 여체, 상운진의 모습은 어두운 공간 속에 음영의 대비로 인하여 고혹적이었다.
불빛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 중의 하나인 가랭이 사이에도 한 손이 이미 들어가 움직이고 있었다. 손의 움직임으로 보아 단순히 매만지는 단계일듯 미미한 동작을 보였다. 거친 사내의 손이 천천히 여체쪽으로 다가왔다. 무릅에 손을 갖다대고는 슬쩍 다리를 벌렸다.
은은한 호롱불빛이 그 사이로 밀려들어갔다.
매끈한 아랫배를 지나 둔덕에 올라서더니 급격한 경사, 비처로 이어졌다. 그 비쳐가 시작되는 지점에는 동그란 금빛 고리가 하나 매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비처엔 계속하여 관리를 해온 덕분인지 터럭하나 없는 마치 어린 아이의 속살처럼 미끈하게 보였다. 그 갈라진 틈과 옆을 상운진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가벼운 자극을 하고 있는 중. 사내의 눈앞에서 보여지는 자위인지라 평소 자신이 하던 것보다는 강도를 훨씬 약하게 하여 시연하는 중이었다.
"운진. 평소 하던대로 해봐."
"하아하아..예."
사내 맛을 안 여자는 달구어진 여체를 어떡하든 식혀야 한다. 그 방법 중 가장 일반화 되어있고 타인의 눈치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수음(手淫). 아마 적지 않이 상운진도 그를 즐겼으리라. 그렇지만 오랜만에 만난 정인의 앞에서 손장난을 보인다는 것이 어색함을 느낀 상운진은 아환의 요구에 형식적인 손놀림을 하였다. 그러나 몇번의 손이 닿아 비부와 젖가슴등을 자극하자 촉촉히 물기에 젖어드는 음부, 애액이 어느새 흘러나와 손가락을 적셨다.
손가락 하나가 사라졌다. 검지하나가 질속으로 들어가서 질벽을 쓰다듬듯 하다가 천천히 진퇴운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몇번을 왕복하다가 손가락이 하나 더 들어가고, 그러다가 세손가락을 이용하여 비처를 쑤셔대고 있는 상운진의 행태를 아환은 지켜보다 살짝 고리에 손가락을 걸었다.
"아흑!"
외마디 신음소리와 함께 여체가 크게 졎혀졌다.
아환은 손가락 사이의 고리를 조금 당겨보았다.
"하악..하악..!"
크게 도리질을 좌우로 바쁘게 해대는 상운진, 그 앳된 얼굴은 고통과 쾌락이 혼합된 기묘한 찡그림을 하고 있었다. 아환의 손이 조금씩 움직일때마다 뇌전이 전신을 관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돌기를 꿰뚫고 있는 금빛 고리는 호롱불빛에 반사되어 하얀 여체에 붉은 살틈에서 그 색과 모양을 자랑하고 있었다. 성인의 손가락이 하나들어갈 정도의 고리엔 예전에 달려 있던 방울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만..하아하아.. 아흑!"
쾌락의 교성이 애원의 갈구로 다시 열락의 물결속으로 잠겨들었다.
아환은 슬며시 일어나 자신의 바지를 내리고 양물을 꺼내었다.
검붉은 사내의 육봉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그 살덩이를 바라보던 상운진의 눈빛이 열기로 번들거렸다. 예전보다는 확실히 거대해짐을 일견해도 느낄수 있었다. 일년반이 넘는 시간동안 아환의 육체만 발달한 것이 아니라 그 것도 장대해짐에 상운진의 기대심은 더욱 커졌다.
아환은 손가락에 고리를 끼운채 자신의 양물을 서서히 고리 및 그곳의 입구로 가져갔다.
스윽..
처음엔 그 크기에 버거운듯 입구에서 살이 밀린다 싶더니 여인의 음순을 말아감으며 여체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웃!"
눈이 커졌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상운진은 두 팔을 버티고 상체를 조금 세웠다.
아환이 고리를 살짝 당기면서 남근을 여체속에 끝까지 밀어넣었다.
"흐윽!"
출렁. 여체의 젖가슴이 아환의 눈앞에서 춤을 추었다. 제법 살이 올라 하얀 살덩이가 공모양을 유치한 채로 상하로 움직여대었다. 그 유두위의 고리 역시 그 움직임에 따라 아래 위로 흐들렸다. 자신속에 들어온 남근의 감촉과 그 쾌감이 음핵에서 느껴지는 쾌락의 통증과 병행하여 극치의 환희를 상운진에게 가져다 주었다.
긴 머리채가 쉴새없이 좌우로 흔들렸다. 크게 벌어진 입술 사이론 투명한 타액이 그 점성을 유치한채 붉은 입술가로 가느다란 줄을 만들고 있었다. 몸을 흔들어 댐에 따라 아환이 잡고 있던 고리가 움직였고 아환의 양물 또한 여인의 진퇴에 따라 기묘한 각도를 변화시키며 상운진의 음부속에서 헤매이고 있었다.
아환은 허리 운동을 세지 않은 강도로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운진은 예전과는 다른 극도의 쾌감에 어쩔줄 몰라했다.
"아욱..하아..으흑..웃.."
이어지지 않는 신음성이 계속되었다. 상운진의 눈이 차츰 그 흰자위의 부위가 넓어졌다. 미칠 듯 찾아오는 쾌락을 못이켜 정신이 혼미하여졌다.

"악!"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여체가 뒤로 쓰러졌다.
아환은 음핵에서 손을 떼고 남근을 여체에서 빼낸 후 상운진의 머리맡에 다가갔다.
"이런.."
상운진은 경험해보지 못한 쾌락에 급기야는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었다. 하얗게 까뒤집어진 눈자위가 반쯤 감긴채 널부러져 있는 뽀얀 여체. 얼마나 침과 땀을 흘렸는지 목과 가슴위로는 물기가 호롱불빛에 반사되어 반들거렸다. 여인의 음부에는 애액이 마치 홍수처럼 흘러내려 있었다. 그 속에 음핵에서 번져나온 듯한 연한 붉은 액체가 섞여 미묘한 색의 조화를 이루었다.
"후후.."
아환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채 쓰러진 여체의 옆에 앉아 조식을 취하였다.

(3)

"예?"
"그렇지만 운진은 나에게 있어 첫 여자야. 소중한 나의 여인이라고."
"그래도..어찌 절 두고 다른 여자를.."
창백해진 안색에 울먹이며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있는 상운진의 모습이 희미한 호롱불빛 아래 비추어졌다. 물기에 젖어 머리칼은 흐트러진 상태로 흰 육체에 붙어 있고 어느 정도 습기가 마른 듯 몸에 물기는 많이 보이지 않았다. 다소곳이 아환의 품에 안겨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던 상운진의 귓가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어왔다.
"그 여자에게 무공을 배우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다. 할 수 없었다. 네가 눈에 아른거리고 혈기가 오른 나에게 그 여자가 다가와서 그만.."
"그럴수가..그럴수가.."
현재 상운진의 귓가에 아환의 음성은 멀리서 들려오는 듯 그냥 울려퍼지고 그 뜻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귓가에서 지워졌다.
아환은 검후와의 관계를 말하고 있었다. 그녀와 육체관계를 맺었고, 그녀와 같이 살고 있다는 말을 하였다. 이는 아환이 무예를 익히고 내려와서 자신과 행복하게 같이 살날만 꿈꾸고 있던 외진 마을 소녀에게 날벼락이나 다름 없었다. 아환이 산에 오른 후 일편단심, 학수고대하며 한 남자만을 그리며 길다면 긴 세월을 참고 또 참았다. 한창 물이 오른 자신에게 좋은 혼처에서 수시로 매파를 보내어 청혼을 하였지만 오직 아환만을 자신의 낭군이라 여기고 있던 상운진은 일언지하에 그 모든 것을 물리쳤다. 물론 상명선의 암묵적인 지지도 있었지만 흔히 말하는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것은 적어도 상운진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럼..절 버리실 건가요? 저를 버리고 그 여자와 혼인할 건가요? 저를 노리개로 생각하고 있으셨나요? 그런건가요? 환랑!!"
울먹이는 듯한 소리가 점점 그 높이를 더해가더니 울부짖듯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끝이 난다.
상운진에게 있어서 아환에게 버림받는 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어떻게 그럴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정말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갑자기 현실화 되었다 생각하니 상운진은 미칠 것만 같았다.
"운진.."
부드러운 음성이 상운진의 귓가에 들려왔다. 아환은 팔을 들어 살포시 상운진을 안았다. 힘없이 넓은 가슴에 무너지는 작은 동체. 아환은 상운진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결코 그렇지 않아. 운진."
커다란 사내의 거친 손바닥이 작은 소녀의 동체를 토닥였다.
"운진. 내 말을 잘들어."
"..."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힘겹게 들어 아환의 눈을 쳐다보았다.
"운진은 스스로 나의 앞길에 방해가 되기를 바래?"
절레절레 검은 머릿결이 움직였다.
"운진?"
"..."
"운진?"
"...예."
"나는 여기서 정체할 수 없다. 나는 전진하고 싶어. 하지만 내 능력으로는 그것이 힘들다. 그러던 중 내게 하나의 기회가 왔어. 어떤 사람을 만나고 무공을 익히다 그 사람과 정이 들었어. 그럴줄 몰랐지만 사람과 사람의 일은 항상 예측할 수 만은 없잖아. 나도 그러리라 미처 생각 못하였어. 그러다가 일이 벌어지게 되었지. 어쩌면 이것이 나에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지금 그 여자에게서 무예를 배우고 있어.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대단한 무예의 고수야. 덕분에 나도 어느 정도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고. 앞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어. 운진. 당신은 내가 여기서 머물고 날개를 꺾은 평범한 촌민으로 그저 그렇게 살기를 바래?"
"아니요. 하지만..."
"그래. 알아. 운진은 지금 내가 마음이 변할까봐 그런 것이겠지."
"예"
"난 결코 운진을 버리지 않아. 내가 운진을 얼마나 아끼는 지 운진은 알아?"
"..."
"난 운진을 사랑해. 하지만 나와 새로운 관계를 가진 그녀도 나는 사랑해. 만약 내가 그녀를 이용하려고만 하였다면 운진은 그런 나를 좋아할 수 있겠어?"
대답없이 설레설레 고개를 흔든다.
"나는 둘을 같이 아끼고 좋아할거야."
"...예."
"운진?"
"예?"
"내말을 믿지?"
"예."
"그래. 그래."
아환이 살며시 상운진의 머리를 끌어당겼다.
"환랑?"
"응?"
"정말 둘을 똑같이 사랑할건가요?"
"그래. 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둘이 나에게 얼만큼의 사랑을 보이느냐에 따라 내 마음도 어느쪽으로 기울지는 나도 장담하지 못하겠어. 지금 내 생각으로는 가능한한 편애를 하지 않을려고 한다. 그렇지만 더욱 내게 사랑을 베풀고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더 가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까?"
"그렇지요."
"운진은 지금보다 더 날 사랑해주기를 바래."
"예."
"내 말에 더 잘 따르고."
"예."
"내가 하자는 대로 할거지?"
"예."
어느새 아환이 한명의 여자를 더 취하게 된것에서 둘사이의 사랑의 경쟁을 유도하는 쪽으로 화제가 슬쩍 바뀌어졌다.
"그 사람도 좋은 사람이니까 운진하고 마음이 잘 맞을거야."
"알았어요. 환랑."
"그래야지."
아환은 말을 마무리하고 상운진을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졌다.
"그래도 운진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많이 아니까.."
슬쩍 말을 흘리는 아환. 무슨 의도일까?

"자. 이쪽으로 와봐."
상운진은 아환이 이끄는 대로 작은 동체를 맡겨버린다.
아환은 두툼한 입술로 작은 입술을 덮어버리며 여체를 평평한 곳에 눕히곤 그 위로 자신의 몸을 실어갔다.

열기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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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이 음양조화역을 언급하셨는데 제 의도를 미리 아시는지..^^;
이 글은 솔직히 토요일에 2/3쯤은 써놨습니다.(상명선과의 대결까지)
이제 외진 장소, 음양조화역에서 아환과 검후, 상운진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제목과 이 글의 내용을 보시면 앞으로의 전개를 대충 짐작을 하실수 있을듯..

그리고 이 수라기의 총 분량은 대략 지금까지 제가 쓴 부분이 전체의 십분지일 정도가 될까 하는 게 제가 구성한 내용입니다. 그리 글솜씨에 자신은 없지만 앞으로 강호를 나가서 벌어질 일이며 강호에 나가기 전의 행보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도 상당한 분량이 될것입니다. 길다고 지루하게 생각되신다면 줄여보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제 경험은 무협지(이 글은 야설이라 말씀드렸습니다.)는 길면 길수록 그 전개나 구성이 재밌더라구요. 어떤 무협지는 주인공이 무공을 익히면 전체 분량의 반이나 2/3가 지나가더라구요. 그리곤 어째어째..대미. 잼없습니다.
하나더 자꾸 복수를 말씀하시는 분이 있는데 물론 복수를 해야지요. 하지만 복수로 무협이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복수는 기껏해야 이 글에서 2부나 3부에서 어느 정도 해결이 되고요. 그 이후는 아환의 강호행이 주를 이룰것입니다. (주루풍운도 있어야겠지요?)

덧글이 저두 30개가 넘은 경험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 건강을 염려해 주시고 덧글 써주시는 분들께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졸필에 많은 분들이 남겨주셔서..:''ㅜ.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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