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수라기(獸羅記) 34번째 올림
작성자 정보
- 유튜브링크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1,031 조회
-
목록
본문
제가 미쳤습니다. 며칠간을 새벽에 일어나서 수라기를 잡고 앉아 있다니..항상 밖에서는 피로해서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8장 우(友), 살(殺)
(1)
"후우~"
아환은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운기조식을 마쳤다.
이제 독상과 옆구리의 외상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약간의 흔적이 남아있을뿐 활동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그 와중에 음양신단이 일부가 더 용해되어 약간의 내기가 더 충만해진 느낌이 들었다.
이른 아침,
막 해가 떠오르는 시각. 아환은 세면을 하다가 물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별 다른 것은 없었으나 덥수룩한 수염과 스스로 느끼기에 눈빛이 더 강렬해진 듯한 기분외엔 특별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칠척의 장신에 험상궂어 보이는 사내. 산적의 인상인가?
내심 실소를 흘리며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일어나셨어요?"
밖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객을 깨우지 않을려는 배려가 보였다.
"음. 그래. 들어오너라."
"예."
살며시 문을 열고 쪼르르 들어오는 작은 인영. 객잔의 소녀 점원이었다.
"아침 식사 가져왔어요."
전날 미리 주문한 식사를 가지고 들어오는 갸날픈 체구의 어린 계집아이는 자기 체격의 반만한 쟁반에 여러 음식과 식수등을 힘들게 이다시피 하여 방에 들어섰다.
"수고했다. 홍홍이라 했나?"
"아! 홍홍은 제 언니고요. 전 청청이라 부르시면 되요."
힐끔 쳐다봐서 그런지 잘 몰랐지만 그 말을 듣고는 자세히 계집아이를 쳐다 보았다. 과연 어딘가 다른 느낌이 풍겼다. 어제의 홍홍이라는 여아는 의젓하면서 침착한 면모가 보였지만 청청이라는 이 계집아이는 밝은 기운과 시원한 성품이 느껴졌다.
"그렇구나. 어제 언니가 네가 몸이 아프다고 그러던데.."
"예.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나았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직 쾌차하지는 않았는지 파리한 안색이 병색이 완연했다.
"아직 다 낫지 않은 것 같은데.."
"다 나았어요. 언니가 그동안 혼자서 많이 힘들어서 빨리 일어서야죠."
두 자매의 의의가 상당히 좋은 듯 했다. 객잔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고 해도 어린 계집애 둘이서 모든 것을 소화하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많았다. 게다가 한명이 몸져 누울 경우 그 여파는 다른 한쪽에 돌아갔다. 남은 한명은 그 경우 혹사라고 할 정도의 일을 해야만 하리라.
"그래. 건강해야지."
아환은 동전 두닢을 청청에게 주곤 수저를 들었다. 아환이 식사를 시작하자 청청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방안을 물러 나갔다.
아침을 먹은 후 아환은 저잣거리로 나섰다. 평소같으면 수련을 할 시간이지만 마땅한 수련장소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곳에서 칼을 휘두를수도 없는 노릇, 아환은 마침 돈도 떨어지고 해서 근처의 전장으로 가서 환전을 한후 시장거리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여러 군상이 보였다. 수많은 점포가 자리를 잡고 각각의 물품을 팔면서 손님들과 흥정을 하고 호객행위를 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등 일상적인 시장의 광경이었다.
'어렸을때에는 저 단고하나 사달라고 조르기도 했건만..'
아이들이 단고장수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단고를 침을 흘리며 쳐다 보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 같이 비쩍 마른 체격에 낡은 천을 기운 옷가지를 입고선 혹시 땅에 떨어지는 것이라도 주워먹을까하는 모양새다.
'정말 어려운 세상이구나..'
아환 역시 부모를 잃고 구문현을 떠나면서 수없이 겪은 생활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상가진에서 정착한 후 잠시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러던 중 한 탁발승이 단고 장수에게로 가는 것이 보였다. 탁발승은 뒤에 맨 보퉁이를 끌러 단고 장수에게 내밀고 무언가를 얘기하는 듯 했다. 단고 장수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드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탁발승이 한참 보퉁이를 밀어대며 단고 장수에게 간절히 부탁을 하던가 싶더니 단고 장수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단고 장수는 상자에서 단고를 대여섯개 꺼내어 탁발승에게 전해 주고는 탁발승이 내민 보퉁이를 받아 가지고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떴다.
탁발승은 단고를 여러 아이들에게 조금씩 떼주었다. 머리를 쓰다듬고 가급적 공평하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난데없는 횡재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단고를 손에 쥐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연신 머리를 숙이며 탁발승에게 절을 하곤 단고를 조금씩 떼어 먹었다.
아환은 과정을 별다른 감정없이 보았지만 탁발승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아환 자신도 그러한 시절을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아환은 탁발승을 유심히 쳐다 보았다. 파르스름한 머리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부리부리한 호목에 두툼한 주먹코 건장한 체격을 가진 스물 안팎의 중이었다. 탁발승이기는 하나 범상치 않아 보이는 눈빛과 영웅의 기개가 보임에 아환은 그 중에 대한 관심이 더더욱 강해졌다.
아환은 탁발승이 단고를 아이들에게 떼어 주는 것을 바라보다 탁발승이 단고가 손에서 비자 다시 걸음을 시장거리로 옮기는 것을 보고는 그 뒤를 따랐다. 탁발승은 여러 객점과 민가를 돌면서 시주를 얻기위한 탁발을 하였다. 한집, 한집 반응이 달랐다. 스님이라고 환대하는 집, 무시하며 대꾸도 안하는 집, 심지어는 욕을 하고 부지깽이를 들고 나와 재수없다고 쫓아내는 이들도 있었다. 허나 탁발승은 웃음을 잃지 않고 염불을 외우며 담담한 응대를 할뿐 같이 화를 내거나 힘을 쓰는 것은 볼수가 없었다.
탁발승이 한 집에 가더니 무언가를 청하였다. 그러자 집의 아낙이 바가지에 물을 들고 나와 탁발승에게 건네었고 탁발승은 단숨에 그 것을 들이켰다. 마신후 배를 쓸어내리는 것을 보면 식사대용으로 물을 마신것이리라 짐작이 되었다. 아침 나절의 시간, 얻은 탁발을 단고와 맞바꾸고는 끼니를 거르게 되어 물로 배를 채우는 것이었다. 아환은 홀린듯이 그 광경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동쪽에서 뿌연 먼지구름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따가닥. 따가닥..
두필의 말이 먼지를 일으키며 탁발승이 막 물을 얻어마시고 몸을 돌이킨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비켜라. 이 땡중놈!"
말과 중과의 거리는 얼마 남지 않아 금방이라고 탁발승을 칠 것만 같았다. 탁발승이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말이 돌진하는 것을 보고는 급히 몸을 피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하였고 말이 비껴 지나가면서 무언가가 탁발승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우욱.."
탁발승이 어깨를 부여잡으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 밝던 인상이 눈살이 찌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적잖은 고통을 당한듯이 보였다.
히히힝..히힝..
말소리가 크게 들리고 말의 앞발이 들렸다가 내려왔다.
"야! 이 빌어먹을 땡중놈아. 정신을 어디다 팔고 다니는 거냐?"
쫙!
어느새 마상의 사람이 말위에서 뛰어내리며 손에 들은 채찍으로 탁발승을 내리쳤다.
"윽."
외마디 비명소리. 낡은 승복이 등부위가 길게 찢어졌다. 금새 붉은 피가 배어나왔다.
"감히 네까짓 놈이 길 한복판에서 본인들이 가는 길을 막는단 말이냐?"
화가 잔뜩 치밀어 오르는 지 말이 거칠었다. 말위에서 내린 자는 일남 일녀였다. 둘다 스물 전후정도의 나이로 보였고 차림새가 꽤 번드르르 한 것을 보면 제법 행세하는 집안의 자식들인것 같았다. 그리 썩 뛰어난 용모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잘먹고 치장을 잘하여서 인지 괜찮아 보이는 외모였다. 단지 오만하고 독선적으로 보이는 게 흠이었다.
"죄송하외다. 소승이 미처 보지를 못해서 그런 실수를 한 것 같소. 모쪼록 공자께서는 인자하신 성품으로 소승을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탁발승은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을 하곤 사과를 하였다. 흔히 겪는 일인지 사과하는 동작이 자연스럽다.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띄고는 용서를 구하는 탁발승. 허나 이런 웃음짓는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옆의 여자가 한몫 거들었다.
"저런 땡중놈은 나라를 좀먹는 쥐새끼같은 놈들이예요. 서공자, 저 눈초리를 보세요. 우리를 비웃고 있잖아요. 잘못을 모르는 저런 썩은 중놈들은 아예 혼찌검을 내주어야 해요."
여자의 말에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서공자라 불리우는 사내가 손에 든 채찍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쫘악!..쫙..츠악!...
"우욱..욱.."
몸을 잔뜩 웅크리고는 내리치는 채찍을 몸으로 견디어 내는 탁발승, 금방 승복이 걸레처럼 변하고 피투성이가 되었다. 여러번 이런 일을 당한 탁발승은 여기서 저항을 하다가는 더 험한 꼴을 당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아 신음을 흘리며 채찍질을 견디었다.
어느새 사람들이 꽤 모여서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소란이 일자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시장거리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란을 고개를 빼들고 쳐다보았다. 하나 누구하나 이 남녀를 말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환은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또야. 저 년놈들은 툭하면 스님들이나 도사님들을 괴롭히네. 전생에 부처님과 신선님들과 무슨 원한이라도 가졌는지 또 저 지랄이야.."
"그러게. 또 스님하나가 골병이 들겠구만. 쯧쯧쯧.."
"그래도 이 스님은 저번 스님처럼 반항을 하지 않아 다행이네. 그려..그 스님은 결국 의방에서 죽었잖아?"
"힘없는 게 죄지. 암, 힘없는 게 죄야.."
혹시 저 남녀들이 들을까봐 나지막한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이 남녀들은 때때로 이런 짓거리를 벌이는 가 싶었다.
"그만하시오."
나직하지만 힘이 있는 음성이 장내를 흔들었다. 서공자는 갑자기 채찍이 무언가에 잡힌듯 움직이지 않자 채찍을 따라 시선을 이동시켰다. 그러자 굵은 팔뚝이 눈에 들어왔다. 그 팔의 임자를 살펴보았다. 칠척 정도의 키에 딱 벌어진 어깨와 가슴의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는 사내하나가 채찍의 끝을 잡고 있었다.
서공자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누군데 본공자의 일을 방해하는 거지?"
"지나가는 떠돌이 무사요. 보아하니 이 스님이 크게 잘못한거 같지도 않고 또 그리 맞았으면 되었다 생각하니 이만 채찍을 거두시오."
"호오~영웅이 출현하였구만. 이봐! 떠돌이 무사면 그냥 떠돌아다녀. 쓰잘데 없이 나서지 말고. 쓴맛을 보기 전에 냉큼 꺼지도록."
"서공자님. 이 사내는 제법 무예를 좀 하는가 보죠? 저기 보세요. 저 큰칼을..칼이 크니까 무공도 아주 고강한 모양이네요. 호호호.."
죽이 잘맞는 건지 아니면 서공자의 부아를 돋구려는지 옆에서 이죽거리는 여인. 무림의 통념상 큰칼이나 기병을 쓰는 자들 중에 무예의 고수는 없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더군다나 앞에 보이는 체격의 사내는 내가무공이 아니고 외가무예 몇수를 배워선 큰칼을 들고 사람들을 위협하는 삼류무사라 생각되었나 보았다.
"그렇지요. 은 소저가 보기에도 그리 보이지요. 이 무사는 대단히 높은 무공을 가져서 하찮은 우리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같군요. 제가 이 사내에게 한 수 배워보죠. 칼을 뽑아라. 떠돌이 무사 나으리."
이죽거리며 사내가 채찍을 던져놓고는 허리춤에서 검을 빼들었다. 일견하기에도 보검으로 보이는 병기, 잘 정련된 검에 여러 보석으로 장식을 해놓았다. 돈으로 만든 병기.
아환은 뚫어지게 서공자를 노려보다가 채찍을 손에서 놓고는 한손으로 뒤의 칼을 뽑아들었다.
츠으읏..
"어디 한 수 잘 가르쳐 주겠지."
서공자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아환을 비꼬았다. 그말에 대꾸를 하지 않고 두손으로 칼을 든채 칼끝을 서공자를 향해 겨누었다. 서공자는 나름대로 믿는바가 있었다. 본디 서공자는 여기 장사의 서가장 이라는 부잣집의 독자로 어려서 부터 서가장의 재물을 들고 화산파에 들어가 화산파의 무공을 걷핥기로나마 배운 인간이었다. 본시 그리 재질이 나쁘지 않은 터에 상승 절학을 몇수 전수받아 제법 검을 쓸줄 알았고 또 각종 영약을 구입하여 복용해서 내공도 어느 정도 닦았다. 따라서 외가의 무사들은 그에게 조금의 위협이 되지 않았고 여기서 아환에게 조롱을 하는것도 다 그와 같은 것은 믿은 탓이었다.
"들어오시오."
짧은 말. 아환이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은채 서공자에게 공격을 말하였다.
"건방진 놈! 받아라!"
서공자가 보검을 휘두르며 아환에게 쳐들어왔다. 길게 사선을 그리며 아환의 어깨어림을 베어오는 서공자의 검을 아환의 슬쩍 도를 비틀어서 막아내었다.
캉!
서공자의 검이 튕겨나갔다. 서공자는 튕겨나온 검을 갈무리 하면서 다시금 수차례 칼질을 해대었다.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秀梅花劍法)의 초식, 그중 매화난분의 초식으로 서공자는 아환을 공격하였다. 몇송이 매화가 허공에 떠서 아환의 요혈을 노리며 쇄도해왔다. 아환은 슬쩍 손목만 비틀어 검의 공세를 일일이 도신으로 막아내었다.
창..카캉..츠캉..
서공자가 하나 간과한게 있었다. 일반적인 외가무사들은 크고 무거운 병기를 곧잘 사용하기는 하지만 지금 아환이 들고 있는 것처럼 저런 초대형의 무기는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내공이 없이 체력만으로 저러한 거병을 쓴다는 것은 별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더군다나 무림에는 일대일의 전투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수의 전투도 발생하는 경우하 비일비재하였다. 그런 경우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크고 무거운 병기는 없느니만 못하였다. 서공자는 단순히 큰 병기라고만 생각을 하였지 여섯자에 가깝고 폭이 한자에 조금 못미치는 쇳덩이의 무게를 계산하지 못하였다.
"허! 칼이 커서 운좋게 막아내는군. 그럼 이것도 받아보아라. 매화도현!"
서공자의 검이 크게 원을 그리며 아환의 주위를 맴돌았다. 구궁보(九宮步)를 밟으며 아환의 주위를 돌면서 매화검중 쾌속한 검초로 아환의 등부위를 찔러들어갔다. 아환은 허리를 비틀며 검을 피해내었다. 또 아환이 검을 도를 이용해 튕길것이라는 생각을 한 서공자는 찔러들어가는 검을 미처 회수하지 못하고 상체가 아환의 바로 어깨 부근까지 다달았다.
퍽!
아환이 어깨로 서공자의 가슴을 밀듯이 쳐내었다.
"크악!"
서공자가 한줄기 핏물을 허공에 뿌려대며 뒤로 튕겨나갔다. 아환도 자신의 펼친 수법에 자신이 놀란듯 멍해져 있었다. 처음 시전해보는 건곤형이었다. 모든 병기와 권각법에 응용할 수 있는 건곤형. 외가무예의 절정이자 내가무예로도 사용이 가능한 상고의 절세 무예가 아환에게서 펼쳐진 것이었다. 아환은 건곤형을 시전하면서 약간의 힘만 주었다 생각을 하였는데 서공자는 멀찍이 밀려나와 가슴을 부여잡고 피를 토하고 있는 중이었다. 쉴새없이 선혈이 흘러나왔다. 선홍빛이 분명한 것이 내상을 크게 입은 모양이었다.
"공자!"
은소저라 불리운 여인이 서공자에게 다가가 서공자를 부축하였다.
"괜찮으세요? 내상이 심하신가요? 이를 어째.?"
"으으으..은 소저. 내 크게 상처를 입은 것 같소. 저놈이 무언가 비겁한 술수를 썼나보오. 저깟 놈에게 내가 당할리가 없는데..우웩!"
핏덩이를 토해내면서도 입은 살아있나 보았다.
"이걸 어쩌지..이를 어쩌나?"
어쩔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는 은소저라 불리운 여인에게 서공자가 힘겨운 목소리를 뱉었다.
"일단 서가장으로 갑시다. 그후 다시 ..우욱.."
"예? 아! 예.."
여인은 서공자를 부축하고는 말에 태우고 자신도 말에 올라탄후 왔던 길을 되돌아 돌아갔다.
"네 놈. 비열한 수법으로 서공자에게 부상을 입히다니..네놈이 사내라면 기다려라. 다시 돌아올 것이다."
원독이 서린 눈빛으로 아환을 쏘아본후 여인은 힘겹게 서공자를 데리고 돌아섰다.
아환은 피식 웃으면서,
"그러시오."
짤막한 대꾸로 여인의 말을 받아넘겼다.
사람들은 일남일녀가 떠나자 이제 상황이 종료된것을 알고는 아환에게 힐끔 힐끔 눈을 돌리면서 각자의 행동을 계속하였다. 사람들이 장내에서 떠나가자 아환은 탁발승에게 다가갔다.
"이보시오. 스님. 괜찮으시오?"
"으음. 소승은 괜찮소이다. 허,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소승으로 인하여 협사께서 어려운 일을 당하지는 않을 지 걱정이 되오이다."
"어려운 일은 무슨..자, 이리로 오시오. 내가 상처를 한번 봐드리리다."
그래도 의가의 후손, 아환은 탁발승의 상세를 일일이 살펴보고는 품에서 금창약을 꺼내어 탁발승의 이곳 저곳에 발라주었다. 얼마전 의방에서 구입한 시중에서 흔히 파는 약품이었다. 아환이 손길이 상처에 닿을때마다 움찔거렸지만 탁발승은 작은 신음도 내지 않고 아환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다 된것 같소이다."
아환이 손을 떼고 일어나자 그제서야 탁발승이 일어나서 합장을 하며 예를 하였다.
"정말 감사하오이다. 큰 은혜를 입었소이다."
"은혜는 무슨..스님, 아직 식전이시지요?"
그러고보니 점심때가 가까와 왔다.
"소승은 아침을 늦게 들어서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이리 오시오. 소생과 점심이나 합시다."
아환은 탁발승을 끌다시피하여 근처의 객잔으로 들어갔다. 탁발승은 한사코 마다했지만 아환의 끌어당기는 힘에 못이겨 따라왔다. 아환은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가는 이 스님이 마음에 들었는지 평소같으면 별 참견을 하지 않은 일에 참견을 하고 또 이 탁발승과 식사를 같이 하려 하였다.
아환은 객잔에 들어서 간단한 만두와 소면, 그리고 소채를 주문을 하였다.
식사가 나오기전 아환은 탁발승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
"스님은 법호가 어찌되시오."
"소승은 땡중이라 법호도 없소이다. 얼마전까지 황각사(皇覺寺)라는 절에서 탁발을 하였는데 절을 떠나서 이리저리 떠돌며 빌어먹고 사는 처지이지요."
"허허. 그러시오? 소생은 주환이라고 하오이다."
"주소협이셨군요. 이렇게 연이되어 소승이 협사를 뵙게 되었나 보오."
"그럼 스님의 속명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그냥 주각 이라고 불러주시오."
"주각? 그게 스님의 속명이시오?"
"본디 소승은 남경근처의 한 빈농의 자식으로 세상에 나왔지요. 어려서 부모를 잃고 각이라고만 불리웠습니다. 그런 소승에게 무슨 성이 있겠습니까? 이제 소승을 구해준 협사를 만나게 되어 감히 소승이 협사의 성을 빌은 것이오."
"소생의? 하하하.."
"아니. 어찌 웃으시오. 소승이 무슨 잘못이라도.."
"아니오, 아니오. 솔직히 주환은 내 이름이 아니오. 내 본래의 성은 적(赤)가 오만 어떤 사정이 있어 주가로 임시로 바꾸어 썼는데 스님이 그 성을 쓴다니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겠소? 하하하."
"허허. 적(赤)이나 주(朱)나 둘다 붉은 것은 마찬가지가 아니오. 그럼 소승이 주가의 성을 쓰겠소이다."
아환은 잠깐의 대화를 나누었지만 이 탁발승이 점점 자신의 마음에 들었다.
"소생은 아까 아침 나절부터 스님을 쭈욱 살폈지요. 스님은 참 어린 아이들을 잘 대해주시더군요."
"음..그 부끄러운 일을 보셨습니까?"
"예. 우연히 보게 되었소이다. 참으로 인자하신 스님이시더이다."
"아니외다. 단지 빈농에서 태어나 유랑생활을 하던 시절이 생각이 나서 그리 한것이지 무어 대단한 일이라고.."
"그나저나 참 어려운 세상이외다."
"그렇지요. 어렵지요. 빈승이 탁발을 다니다 보면 더욱 심하지요. 곳곳에 난민들이 끼니를 때우지 못하고 굶어 죽거나 도적질을 하다가 험한 일을 당하지요. 게다가 흉년이어서 그런지 민심은 더욱 흉흉하기만 합디다. 어찌 되려는지..가진 자는 더욱 그 욕심을 더하고 강한 자는 자신의 그런 강함으로 세상을 위해 쓰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위하여 세상을 핍박하려 하니 참 어떻게 이 나라가 되려는지..."
"듣자하니 송나라의 왕족과 그 후손들이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들었소이다만.."
"그게 무슨 소용이오. 서민들은 왕조가 누가 되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오. 한족이 나라를 되찾든, 몽고족이 이 중원을 계속 다스리던지 저 오랑캐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던지 상관이 없소. 다만 그들은 배불리 먹기를 원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원할 뿐이오. 송의 후예가 나라를 되찾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들이 실정을 하여 나라를 잃어버렸잖소. 다시 송이 일어선다고 해도 민초들의 삶을 보살피리라고는 생각지 않소. 그들의 이익을 원할뿐이지..단지 소승이 원하는 것은 이 나라가 어서 안정을 되찾기만을 바랄뿐이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면서 눈을 부릅뜨고는 힘있는 목소리로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탁발승의 모습에 은은한 기개가 묻어나왔다. 이에 더더욱 이 탁발승에 호감이 갔다.
그러던중 음식이 나오고 음식을 먹으면서 말이 이어졌다.
"더이상 백성들이 참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오. 일어날 것이오. 틀림없이 그렇게 될것이오."
"이미 각지에서 농민들이 봉기했지 않소?"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그들의 세력이 나타날 것이오."
아환은 정말 이 탁발승이 마음에 들었다.
"스님은 올 연세가 어찌 되시오?"
뜬금없이 아환이 탁발승에게 질문을 던졌다.
"기억하기론 스물 여섯이지요. 그러는 협사께서는?"
이 탁발승도 아환이 마음에 들었는지 대화가 점점 구체화 되어갔다.
"소생보다 연배시군요. 소생은 이제 스물하나외다."
"쓸모없이 나이만 먹었지요. 어쩌다 보니 그리 되었소이다."
"그럼 같은 성을 쓰게 되었으니 형제가 되겠군요."
아환이 다짜고짜 형제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아환은 몇시진 안되는 동안 이 탁발승을 보면서 나름대로 푹 빠졌다.
"어떠시오. 소생을 의제로 받아주시겠소?"
아환이 눈을 반짝 빛내면서 탁발승, 주각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제안을 하였다. 그런 아환의 시선을 마주보는 주각. 한참을 아환의 눈을 보다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그리는 못하겠소."
뜻밖의 거절에 아환은 실망감을 느꼈다. 허나 본인이 싫다는데야 어쩔 수 없는 노릇.
"허어, 소생이 모자라서 그러는 모양이구려. 죄송하오. 무리한 부탁이었나 보오."
"그게 아니오."
주각이 아환을 직시하면서 힘이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협사를 의제로 맞이하고 싶지는 않소. 우리 벗이 되는 것이 어떻소."
주각은 아환의 나이가 자신보다 다섯살이나 어린데도 불구하고 벗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러한 주각의 진심이 아환에게 전달이 되었다.
"어찌 소생이 감히 벗을 칭할 수 있겠소. 스님께서는 말씀을 거두시지요."
"왜 안된다는 것이요. 소승이 부족하기 때문이오?"
"그런 것은 아니오."
"그럼 왜 안된다는 것이요?"
아환과 주각의 눈이 허공에서 강하게 충돌을 하였다. 얼마간 서로 눈싸움을 한다 싶더니 동시에 둘의 손이 내밀어졌다.
"주각."
"주환."
굳게 맞잡은 손.
"하하하하."
"핫하하.."
둘은 손을 맞잡은 채로 크게 대소를 터뜨렸다.
"이보게, 주환."
"내 이름은 적무환이네."
"아니, 그냥 주환이라 부르겠네."
"좋도록하게, 왜?"
"나는 이 길로 안휘성으로 갈 예정이네."
"안휘성?"
"그래. 듣자하니 그 곳에 곽자흥(郭子興)이라는 사내가 거병을 했다고 들었네. 그 휘하에 들어갈 생각이야."
"곽자흥?"
"그래, 홍건도이기는 하지만 꽤 백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들었네. 그 사람을 한번 찾아갈 예정이야."
"오래전부터 계획하였던 일인가?"
"그건 아니야. 방금 막 생각한 것일세."
"방금?"
"그렇다네. 자네와 말을 나누다보니 깨닫는 것이 있었네. 지금껏 자네에게 한 말이 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어리석은 땡중이다 보니 그리 되었지. 그래서 결정하게 된것이야."
"그런가?"
"자네도 같이 가겠는가?"
"아니, 나는 예정한 길이 있네. 아마 운남쪽으로 갈 걸세."
"왜? 운남에는 무슨 일로?"
"배울게 있어서 그러지. 시간이 좀 걸릴거야."
"그렇구만. 할 수 없지. 혹 나중에라도 기회가 되면 호주로 한번 오게."
"그러지. 주각, 자네 혹시 무예를 익히지 않았나?"
"무예랄 것도 없네. 황각사에 있을때 노스님에게 호신술로 나한권과 몇가지 무예를 귀동냥으로 배우긴 했지만.."
"그렇구만. 어쩐지 아까 상처를 볼때 생각보다는 가볍더라니. 자네가 농민군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게 큰 도움이 될걸세."
"그렇겠지. 땡중이 이제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에 나서게 되나 보이."
"하하하. 그러니까 자네는 땡중이 맞네 그려."
"그런가? 하하하.."
"내 자네에게 별명을 하나 지어줌세."
"별명이라..좋지. 무어라 지을건데?"
"내 배운 것이 많지 않아 좋은 것은 짓지 못하지만..음, 자네는 으뜸가는(元) 땡중이니 반쪽이라 볼수 있지(璋). 자네를 원장(元璋)이라 부르지."
"원장? 원장이라..그럼 내가 자네도 하나 지어 주지. 자네는 무공을 목표로 하는 것 같으니 홍무(洪武)라 부르겠네. 큰 무예를 얻게."
"홍무라..좋아! 아주 좋네. 핫핫하!"
둘이 몇가지 싼 음식을 시켜놓고는 큰소리로 웃어가며 소란을 피우는 것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는 주인의 시선을 무시한채 생전 처음 갖는 벗에 흥겨워 하였다.
"이보게. 원장."
"왜 그러나, 홍무?"
"한가지 충고를 하겠네. 자네는 보아하니 너무 고지식한 것 같으이. 좀 더 유연하면서 독해지게. 때로는 하기 싫은 것도 해야하네. 허~ 참.."
"알겠네. 그런데 왜 그러나?"
"아닐세. 나도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을 자네에게 말하고 있네 그려."
"허, 사람도 참.."
(2)
아환은 이 곳 호남성에 와서 평생의 벗이 될만한 주각을 만난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아환은 저녁이 다될때까지 주각과 이런 저런 말을 나누면서 서로의 공감대를 넓혔다.
곧 주각은 안휘성으로 간다고 길을 떠났고 아환 역시 자신의 길을 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일단 주점에 돌아가서 정리를 하고 길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묵었던 주점으로 발을 향했다.
주점이 가까와졌다. 아환은 주렴을 걷고 주점의 안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끼아악! 나으리. 이러지 마세요."
찢어지는 어린 아이의 음성이 들렸다. 본능적으로 아환은 눈길을 돌려 소리가 들린 곳을 보았다. 아환이 눈길이 닿는 곳. 여러 사내가 앉아서 술을 마시는 자리였다. 저녁 무렵이어서 그런지 두 무리의 사람들이 주점에 자리를 잡고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중 한자리에서 조금전의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객점의 여점원, 홍홍과 청청 둘중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한 소녀는 탁자위에서 옷자락을 부여잡고 주저 앉아 사내들의 손길을 피하고 있었으며 다른 한 소녀는 그 밑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사내들에게 애원을 하는 중이었다.
"어허. 이 어르신께서 검사해 주겠다는데 왠 앙탈이냐?"
"끼악. 이러시면 안되요. 꺅!"
"카하하하. 좋아서 그러는 모양이네. 이봐, 왕칠. 나하고 내기하세. 이년의 거기가 잘 조이는지 안 조이는지. 어디 한번 걸어보게."
"장영, 그야 아직 아물지 않아 좁은데 구별이 되겠나?"
"허어! 다 이 형님이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니까. 내 나중에 이년이 명기가 될지 아닐지 알려주지."
세 사내가 탁자에 여러 술병이 어지럽힌 채 계집아이를 탁자에 올려 놓고는 옷을 벗길려고 하였다. 계집아이는 필사적인 저항을 하지만 성인의 사내의 손길에 그나마 천조가리같은 옷가지가 찢겨져 나가 아직 여물 기미도 보이지 않는 속살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나마 간신히 손으로 가슴과 사타구니를 가릴뿐 오들 오들 떨면서 눈에 두려움이 가득한채 웅크리고 있었다.
"어허! 어르신이 하시는데. 이봐! 주인장!"
"예..예..부르셨습니까요."
계산대의 주인이 달려와서 굽신거렸다.
"내 오늘 매상은 잘 올려줄테니 이 계집애를 좀 잘 타이르시오. 결국엔 다 어떤 놈이 차지할 텐데 뭐 어떻다고 이러는지.."
"아! 예. 알겠습니다. 청청아! 네 이 쓸모 없는 계집! 어르신께서 잘 보아주신다는데 무슨 짓이냐? 썩 손을 치우거라."
"주인님. 그렇지만.."
"어허! 이 객점에서 쫓아낼까?"
계집애는 청청이었나보다. 쫓아낸다는 말에 청청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여기서 쫓겨나면 어찌될지..두해전만 해도 이름있는 명문가에서 곱게 성장했는데..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멸문의 화를 당한 집안. 간신히 몸을 피한 두 자매는 어렵게 유랑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런 일을 당하다니..
홍홍이 주인이 나서서 한수 거들자 그 침착하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러더니 뒤로 몸을 돌려 부엌으로 달려들어갔다.
청청은 사내가 손을 잡아서 치우자 힘없이 손을 떼어내었다. 앙상히 말라 뼈가 그대로 드러나는 상반신, 젖가슴의 발육은 차치하고서도 살점도 없어보였다. 그래도 사내들은 어린 아이라도 여자라 생각하는지 눈을 번들거리며 장영이라는 사내의 다음 동작을 기대하였다. 사내는 손을 청청이 하초를 가린 손으로 가져가는 것을 흥미있게 쳐다보았다.
"악!"
굵은 비명소리. 장영이라는 사내가 손을 움켜잡고 펄쩍 뛰어 올랐다. 그 손위, 팔뚝에 부엌에서 쓰는 식칼이 반쯤 박혀 있었다. 그 앞에는 홍홍이 눈을 파랗게 뜨고서 사내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쌍년이!"
왕칠이가 손을 휘둘러 홍홍을 후려 갈겼다.
"아악!"
연약한 몸체는 한방에 뒤로 훌쩍 날라가 굴렀다.
"이 잡것들이 어르신에게 칼을 들이대?"
왕칠이 몸을 일으켰다. 다른 한 사내는 흥미있는지 그냥 바라보기만 할뿐, 장영이라는 사내가 팔에서 칼을 뽑아내고는 눈에 살기를 일으키고는 왕칠에게 씹어 뱉듯 말을 한다.
"앉아 있게. 내가 하지. 내 오늘 이 년들을 아예 기어다니게 만들어주마."
주인은 홍홍이 칼을 찔렀을때부터 몸을 사시나무떨듯 했다. 이 무리들은 이 장사에서 알아주는 건달 패거리들로 그 성질이 매우 포악하여 분란을 수시로 일으켰다. 주인도 이들에게 몇차례 폭행을 당한 경력이 있어 그 불똥이 자신에게 튀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장영이라는 사내가 홍홍의 멱살을 잡고 위로 끌어 올렸다.
"네 년이 이 어르신의 옥체에 칼을 대? 감히 네깟 잡년이 이 귀한 몸에 상처를 냈단 말이지?"
홍홍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자 세찬 바람에 날려대는 가랑잎처럼 홍홍의 몸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우읍..켁,.."
멱살이 잡혀 기도가 막혔는지 숨을 쉬지 못하고 갸날픈 손으로 장영의 손을 잡고는 새빨개진 얼굴로 신음을 토해내는 홍홍의 모습이 애처롭다.
"그만하지."
묵직한 저음이 주점안을 울렸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무슨 말인지 어떤 의도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말. 장영은 고개를 돌려 말이 들려온 쪽을 쳐다 보았다. 거기엔 장대한 체구의 사내가 등에 시커먼 칼을 메고 형형한 눈빛으로 장영을 노려 보고 있었다.
아환은 조금전까지의 들떴던 기분, 주각을 만남으로서의 흥이 순식간에 싸늘히 식고 밑에서 부터의 차가운 분노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이는 자신이 어려웠을때의 고난을 받았던 기억이 장영이라는 사내가 어린 계집아이를 건들자 되살아남에 심장이 차가와졌다. 만약 청청이 어른 계집이라면 나서지 않았으리라. 허나 지금 이 자매의 나이가 아환이 부모를 잃었을때의 나이와 비슷하여 어떤 교감을 미약하게 느끼고 있는 찰나 이같은 상황에 접하게 되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장영은 장영대로 평소 자신에게 거스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계집애가 반항을 하지 않나 팔에 칼을 맞지 않나 성질이 날대로 나있는 상태에서 아환의 말은 불에 기름을 분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건 또 뭐야! 오호라~ 이 어린 잡것의 기둥서방인가? 오호! 어린 줄만 알았는데 저런 사내도 받아들이네? 그럼 이 어르신도 받아드릴수 있겠지."
쫘아악!
홍홍의 앞섬이 길게 찢겨져 나갔다. 장영이라는 사내가 한손으로 멱살을 잡은채 다른 손으로 옷가지를 잡아 찢어낸 것이었다. 홍홍이라고 청청과 다를바 없이 비쩍 마른 앙상한 몸을 갖고 있었다.
"이런 몸이라도 사내를 받아 들인단 말이지. 어디 밑도 한번 볼까?"
장영의 손이 홍홍의 바지로 다가갔다. 무방비의 홍홍은 작은 동체를 흔들어 대지만 사내의 손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볼수 밖에 없었다.
서걱.
마치 두부가 잘려나가듯 무언가 잘려나가는 소리.
"우와악!"
장영이 다른 손으로 홍홍의 하체로 가져가던 팔을 움켜잡고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인가 아환의 칼이 등뒤에서 앞으로 향해져 있고 그 칼의 끝은 홍홍의 바로 앞에 놓여져 있었다. 바닥에는 장영의 팔뚝이 나뒹굴고 있었다. 아환이 장영의 팔뚝을 잘라낸 것이었다.
창..챙..
두번의 칼을 뽑는 소리가 들렸다. 왕칠과 다른 사내가 장영의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는 대경실색하여 칼을 치켜들었다.
"네놈은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아환이 대답대신 칼을 수평으로 뻗어 왕칠을 가르켰다.
"덤비지 않을거면 꺼져!"
이미 살(殺)을 행하여서일까? 아환의 눈은 붉은 열기로 번들거렸다. 야수의 눈빛같았다. 사내들은 주춤거리며 감히 덤비지 못하였다. 아환의 기도에 질린 것이리라. 일개 저잣거리의 건달이 무림인을 상대로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왕칠은 다른 사내와 눈을 맞추고는 장영을 부축하여 객점을 빠져 나갔다.
"기다려라. 이 놈! 우리 형제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명년의 오늘을 네 제삿날로 만들어 주지. 거기서 꼼짝말고 기다려라!"
입은 살아 있었다.
아환은 진기를 거두고 도를 갈무리 하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도에 진기를 불러 넣어 도기(刀氣)를 일으켜 장영의 손목을 잘랐다. 날이 세워져 있지 않는 아환의 병기이지만 아환이 도기가 어려있는 칼은 궤를 달리 하여 예리함과 쾌속함을 보였다. 아환의 좀전에 휘두른 칼도 건곤형을 기초로 한 초식 아닌 초식 이었다. 무엇인가가 희미하게 잡힐 듯 했다. 아환은 칼을 휘두르며 낮에 어깨로 서공자를 받았을때와 같으면서도 다른 이질적인 그 어떤 것이 마음에 남아있는 것을 느꼈지만 그게 무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봐."
아환이 바닥에 주저앉아 오들오들 떠는 홍홍의 뺨을 손가락으로 툭톡 건드려 보았다.
"아앗! 예?...예."
아직 놀람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작은 손짓에도 기겁을 하는 어린 계집아이의 몸짓이 안스러워 보였다. 길게 찢어진 천조각을 이리저리 가슴에 두르고 가릴려는 몸짓을 보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사님."
청청이 옆에 다가와 아환에게 예를 올렸다. 청청 역시 찢어 발겨진 옷자락을 여기 저기 묶고 간신히 몸을 가리고 있었다.
"되었다. 옷이나 갈아 입어라."
아환은 말을 마치고는 시선을 돌려 주인을 바라보곤 간단한 주문을 하였다.
"여기 술한병 주시오. 안주는 간단한 걸로 갖다 주고.."
"예..예. 알겠습니다요. 청청아! 주문 들었지."
"예. 주인님."
작은 발걸음으로 한걸음에 달려가는 청청,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였지만 밝은 표정을 얼굴에 가득 담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마치고 아환은 객실로 들어가서 운기조식을 취한후 명상에 잠기었다.
간만에 가져보는 명상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명경지수같이 하여 다스려 보았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자신의 무예에 대한 생각을 하였다. 건곤형의 구결이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랐다. 비왕이 제령심안으로 뇌리에 심어준 덕분으로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한구절 한구절 되새김을 하면서 오늘 자신이 두번에 걸쳐 펼친 건곤형과 대비를 시켜 보았다.
건곤형은 외가의 절세 무예이기도 하지만 알면 알수록 내가의 무예같기도 하였다. 과거 비왕이 건곤형의 구결을 말해주면서 외가의 무예라 칭한 것은 아마도 건곤형의 초기 수련 과정에서 외가계열의 수련을 많이 요구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 생각한 것일지도 몰랐다. 일반 내가 무공이 명상과 운기요상 등을 이용한 내기 운용에 그 중점을 두고 있는 것에 비해 건곤형은 처음부터 신체의 체력을 기르기 위한 수련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달랐다. 아환이 산서성 상가진에서 살때의 수련 과정이 다 이 건곤형의 구결에 나와있는 수련 방법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수련한 것이다. 다행히도 건곤형의 구결은 일반 비전절예가 암호같은 방법으로 쓰여져 있는 것과는 달리 쉽게 풀어져 있어 아환이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은 수련법을 익힐 수 있었다.
똑..똑..
나즈막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객실안의 고요를 깨뜨렸다.
"누구시오?"
"저 여기 점소이입니다."
소곤 소곤하게 계집아이의 음성이 들렸다.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아환은 의아했지만 곧 허락을 하였다.
"들어 오너라."
"예."
문이 열리고 두 작은 인영이 들어섰다. 홍홍과 청청이었다. 아직도 옷을 갈아입지 못했는지 아까의 그 너덜해진 천쪼가리를 몸에 걸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협사님. 우리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명이 말하는 것처럼 둘이 똑 같이 말을 하였다.
"되었다. 그런 인사를 받자고 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아직 옷을 못갈아 입었나?"
"...예. 다른 옷이 없어서."
그럴만도 했다. 이리저리 떠도는 생활에 제대로 옷이야 갖추어 입을 수가 있었을까?
"그래."
"..."
감사의 말을 전하러 온것만을 아닌듯 싶었다. 예를 올리고 말이 끊기자 두 쌍둥이 자매들은 서로의 눈치만 보고 쉽사리 입을 열려고 하질 않았다. 왠지 어색한 기분이 느껴지자 아환은 다시금 눈을 돌려 홍홍과 청청을 쳐다보았다.
"내게 무슨 할 말이 있느냐?"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마침내 홍홍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무사님께 청이 있습니다."
"청? 청이라..무슨 부탁이 있는데?"
홍홍과 청청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더니 둘은 아환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희 자매를 제자로 맞이하여 주십시오."
"헛! 제자? 허..하하하하."
난데없이 제자로 맞아달라는 말에 일순 헛바람을 들이켰지만 박장대소를 터뜨리는 아환.
"뜬금없이 제자로 맞이하여 달라니 그 무슨 말이냐?"
"오늘 저녁에 스승님께서 보여준 무위가 실로 대단하여 불한당들이 스승님의 한칼에 출행랑을 쳤으니 대단하심을 알았습니다. 비록 저희들이 자질을 미천하지만 스승님이 거두어 주신다면 열과 성을 다하여 스승님을 모시고 무예를 익히겠습니다."
아직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스승이라는 단어부터 썼다. 사전에 준비를 하였는지 또박또박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게다가 이번 스승님께서 쫓아내신 그 무리들은 이 장사의 불량배들입니다. 이번 스승님께 앙심을 품고 물러갔지만 혹시 다시 스승님을 찾을때 스승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 핍박이 저희 자매에게로 미치게 됩니다. 스승님께서는 일단 원인을 만드셨으니 그 이후도 책임을 지셔야할 줄로 사려됩니다."
"허허..협박하는 것이냐?"
당돌해 보았지만 밉게 보이지는 않았다. 어린 나이에 저렇게 또렷이 말하는 것이 가상스러웠다. 협박 아닌 협박을 들으면서도 아환은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가져갔다. 오늘 강호에 나와 주각을 만나서 크게 한바탕 웃고는 마음에 여유가 생긴듯 아환은 미소를 쉽게 지었다.
아환이 홍홍의 말에 반박하지 않은 것은 반박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홍홍이 짚었기에 어린 아이의 깊은 생각에 나름대로 감탄을 하였다.
"아닙니다. 소녀가 어찌 감히..스승님, 허락해 주십시오."
"허락해 주십시오."
청청 역시 나서서 아환에게 졸라 대었다. 아환은 난감하였다. 자신의 무예가 남을 가르칠 수준이 된다 아니다는 나중 문제였다. 일단 아환은 목표로 하는 곳이 있었고 머지 않은 시일 내에 그쪽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 곳은 여자와 어린 아이는 가서는 안되는 곳, 그런데 여자아이라..
"안되겠구나. 난 지금 제자를 맞이할 수준도 되지 않지만 어딜 가야되기 때문에 너희들을 신경을 써줄수가 없겠구나."
아환의 거절에 둘의 안색이 창백히 변하였다. 하지만 이런 거절도 예상하였는지 순순히 자리를 물러섰다.
"예. 내일 아침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스승님."
스승이라는 말은 그래도 꼭 붙이고 물러나는 두 자매. 두자매가 물러간 후 아환은 마음이 다소 무거웠지만 크게 심호흡을 하여 떨치곤 조식에 들어갔다.
다음날 평상시와 같은 아침이 시작되었다.
아환은 아침 식사를 조금 늦게 하였다. 간밤에 건곤형에 대한 고찰을 좀 깊이 하여 아침까지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해가 뜨는 것을 보고는 식사를 위하여 객점으로 내려갔다.
막 식사를 시키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을때 객점안으로 일단의 무리들이 들어왔다. 하나같이 손에 검을 쥐고 객점안을 들어서는 사람들.
"여기 떠돌이 무사가 누구인가? 앞으로 나서라!"
아직 식전의 아환이 있는 곳은 호남성의 성도 장사였다.
----------------------------------------------------------------------------------
8장은 꽤 길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중간중간 그 장면이 나옵니다.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어느 분이 독(毒)에 대하여 말씀을 하셨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볼까 합니다. 먼저 백독불침이니 만독불침이니 하는 말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찬성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제가 임의대로 독을 세분류로 나누었습니다.
먼저 생독(生毒)입니다. 말그대로 유기물에서 나온 독성물질로 각종 독을 가진 생물에서 채취한 성분으로 만든 독이지요. 제 전공이 화학이라서 드리는 말씀은 아니지만 이런 유기독성물질은 대부분이 단백질이나 효소, 호르몬, 그리고 다른 유기혼합물이지요. 따라서 일반적으로 무림에서 독에 중독이 되었을때 해독약이 존재하는 독이기도 합니다. 단적인 예로 뱀에 물렸을때나 기타 전염병의 백신도 그 해독제의 하나로 봅니다. 제 짧은 생각으로는 독에 대한 저항성은 이 생독에 중독이 될 경우 로 생각됩니다.
그다음이 사독(死毒), 광물독(鑛物毒)이라 말하고 싶군요. 이는 무기물질로 구성되어 있는 독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볼까요. 염산(HCl)이 눈에 들어갔다 치고 그 해독약으로 염산을 중화시킨다고 수산화나트늄(Sodium Hydroxide, NaOH화학과에서는 나트늄을 소디움이라고 말합니다.)를 눈에 넣으면 독성이 해독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아예 그 눈을 날려버리는 일이 되지요. 오직 하나의 방법은 바로 눈을 깨끗한 물로 계속 희석시켜 씻어내는 것입니다. 그것도 바로 씻어내야지 조금이라도 경과가 된다면 실명뿐만 아니라 더 큰 부상도 당할 염려가 있습니다. 염산이 사람에게는 충분히 독이 될수 있지요. 이런 광물독은 해약이라고는 거의 대부분 없습니다. 해약을 복용하기전에 이미 식도가 타들어갈텐데요. 청산가리(KCN, Potassium Cyanide 칼륨도 포타지움이라 합니다.)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지막으로 흔히 나오는 심독(心毒)을 또하나의 분류로 놓습니다. 일종의 마음의 독, 그러니까 실제 존재하지는 않는 독이지요. 다만 고차원의 무예로 상대의 심중에 심마나 심화를 불러 일으켜 치명적인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지요.
그리고 점점 규모가 넓어지지요. 처음 구상을 할때 생각한 일이지만 너무 크게 벌이는 것은 아닌지..
하나더 로리타는 제 취향에 맞지 않아 아환이 홍홍과 청청을 최소한 7년안에 꿀꺽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허접한 부연입니다. 아는 척했네요. 쥐뿔도 모르면서..에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8장 우(友), 살(殺)
(1)
"후우~"
아환은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운기조식을 마쳤다.
이제 독상과 옆구리의 외상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약간의 흔적이 남아있을뿐 활동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그 와중에 음양신단이 일부가 더 용해되어 약간의 내기가 더 충만해진 느낌이 들었다.
이른 아침,
막 해가 떠오르는 시각. 아환은 세면을 하다가 물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별 다른 것은 없었으나 덥수룩한 수염과 스스로 느끼기에 눈빛이 더 강렬해진 듯한 기분외엔 특별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칠척의 장신에 험상궂어 보이는 사내. 산적의 인상인가?
내심 실소를 흘리며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일어나셨어요?"
밖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객을 깨우지 않을려는 배려가 보였다.
"음. 그래. 들어오너라."
"예."
살며시 문을 열고 쪼르르 들어오는 작은 인영. 객잔의 소녀 점원이었다.
"아침 식사 가져왔어요."
전날 미리 주문한 식사를 가지고 들어오는 갸날픈 체구의 어린 계집아이는 자기 체격의 반만한 쟁반에 여러 음식과 식수등을 힘들게 이다시피 하여 방에 들어섰다.
"수고했다. 홍홍이라 했나?"
"아! 홍홍은 제 언니고요. 전 청청이라 부르시면 되요."
힐끔 쳐다봐서 그런지 잘 몰랐지만 그 말을 듣고는 자세히 계집아이를 쳐다 보았다. 과연 어딘가 다른 느낌이 풍겼다. 어제의 홍홍이라는 여아는 의젓하면서 침착한 면모가 보였지만 청청이라는 이 계집아이는 밝은 기운과 시원한 성품이 느껴졌다.
"그렇구나. 어제 언니가 네가 몸이 아프다고 그러던데.."
"예.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나았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직 쾌차하지는 않았는지 파리한 안색이 병색이 완연했다.
"아직 다 낫지 않은 것 같은데.."
"다 나았어요. 언니가 그동안 혼자서 많이 힘들어서 빨리 일어서야죠."
두 자매의 의의가 상당히 좋은 듯 했다. 객잔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고 해도 어린 계집애 둘이서 모든 것을 소화하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많았다. 게다가 한명이 몸져 누울 경우 그 여파는 다른 한쪽에 돌아갔다. 남은 한명은 그 경우 혹사라고 할 정도의 일을 해야만 하리라.
"그래. 건강해야지."
아환은 동전 두닢을 청청에게 주곤 수저를 들었다. 아환이 식사를 시작하자 청청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방안을 물러 나갔다.
아침을 먹은 후 아환은 저잣거리로 나섰다. 평소같으면 수련을 할 시간이지만 마땅한 수련장소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곳에서 칼을 휘두를수도 없는 노릇, 아환은 마침 돈도 떨어지고 해서 근처의 전장으로 가서 환전을 한후 시장거리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여러 군상이 보였다. 수많은 점포가 자리를 잡고 각각의 물품을 팔면서 손님들과 흥정을 하고 호객행위를 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등 일상적인 시장의 광경이었다.
'어렸을때에는 저 단고하나 사달라고 조르기도 했건만..'
아이들이 단고장수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단고를 침을 흘리며 쳐다 보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 같이 비쩍 마른 체격에 낡은 천을 기운 옷가지를 입고선 혹시 땅에 떨어지는 것이라도 주워먹을까하는 모양새다.
'정말 어려운 세상이구나..'
아환 역시 부모를 잃고 구문현을 떠나면서 수없이 겪은 생활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상가진에서 정착한 후 잠시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러던 중 한 탁발승이 단고 장수에게로 가는 것이 보였다. 탁발승은 뒤에 맨 보퉁이를 끌러 단고 장수에게 내밀고 무언가를 얘기하는 듯 했다. 단고 장수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드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탁발승이 한참 보퉁이를 밀어대며 단고 장수에게 간절히 부탁을 하던가 싶더니 단고 장수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단고 장수는 상자에서 단고를 대여섯개 꺼내어 탁발승에게 전해 주고는 탁발승이 내민 보퉁이를 받아 가지고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떴다.
탁발승은 단고를 여러 아이들에게 조금씩 떼주었다. 머리를 쓰다듬고 가급적 공평하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난데없는 횡재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단고를 손에 쥐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연신 머리를 숙이며 탁발승에게 절을 하곤 단고를 조금씩 떼어 먹었다.
아환은 과정을 별다른 감정없이 보았지만 탁발승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아환 자신도 그러한 시절을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아환은 탁발승을 유심히 쳐다 보았다. 파르스름한 머리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부리부리한 호목에 두툼한 주먹코 건장한 체격을 가진 스물 안팎의 중이었다. 탁발승이기는 하나 범상치 않아 보이는 눈빛과 영웅의 기개가 보임에 아환은 그 중에 대한 관심이 더더욱 강해졌다.
아환은 탁발승이 단고를 아이들에게 떼어 주는 것을 바라보다 탁발승이 단고가 손에서 비자 다시 걸음을 시장거리로 옮기는 것을 보고는 그 뒤를 따랐다. 탁발승은 여러 객점과 민가를 돌면서 시주를 얻기위한 탁발을 하였다. 한집, 한집 반응이 달랐다. 스님이라고 환대하는 집, 무시하며 대꾸도 안하는 집, 심지어는 욕을 하고 부지깽이를 들고 나와 재수없다고 쫓아내는 이들도 있었다. 허나 탁발승은 웃음을 잃지 않고 염불을 외우며 담담한 응대를 할뿐 같이 화를 내거나 힘을 쓰는 것은 볼수가 없었다.
탁발승이 한 집에 가더니 무언가를 청하였다. 그러자 집의 아낙이 바가지에 물을 들고 나와 탁발승에게 건네었고 탁발승은 단숨에 그 것을 들이켰다. 마신후 배를 쓸어내리는 것을 보면 식사대용으로 물을 마신것이리라 짐작이 되었다. 아침 나절의 시간, 얻은 탁발을 단고와 맞바꾸고는 끼니를 거르게 되어 물로 배를 채우는 것이었다. 아환은 홀린듯이 그 광경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동쪽에서 뿌연 먼지구름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따가닥. 따가닥..
두필의 말이 먼지를 일으키며 탁발승이 막 물을 얻어마시고 몸을 돌이킨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비켜라. 이 땡중놈!"
말과 중과의 거리는 얼마 남지 않아 금방이라고 탁발승을 칠 것만 같았다. 탁발승이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말이 돌진하는 것을 보고는 급히 몸을 피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하였고 말이 비껴 지나가면서 무언가가 탁발승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우욱.."
탁발승이 어깨를 부여잡으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 밝던 인상이 눈살이 찌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적잖은 고통을 당한듯이 보였다.
히히힝..히힝..
말소리가 크게 들리고 말의 앞발이 들렸다가 내려왔다.
"야! 이 빌어먹을 땡중놈아. 정신을 어디다 팔고 다니는 거냐?"
쫙!
어느새 마상의 사람이 말위에서 뛰어내리며 손에 들은 채찍으로 탁발승을 내리쳤다.
"윽."
외마디 비명소리. 낡은 승복이 등부위가 길게 찢어졌다. 금새 붉은 피가 배어나왔다.
"감히 네까짓 놈이 길 한복판에서 본인들이 가는 길을 막는단 말이냐?"
화가 잔뜩 치밀어 오르는 지 말이 거칠었다. 말위에서 내린 자는 일남 일녀였다. 둘다 스물 전후정도의 나이로 보였고 차림새가 꽤 번드르르 한 것을 보면 제법 행세하는 집안의 자식들인것 같았다. 그리 썩 뛰어난 용모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잘먹고 치장을 잘하여서 인지 괜찮아 보이는 외모였다. 단지 오만하고 독선적으로 보이는 게 흠이었다.
"죄송하외다. 소승이 미처 보지를 못해서 그런 실수를 한 것 같소. 모쪼록 공자께서는 인자하신 성품으로 소승을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탁발승은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을 하곤 사과를 하였다. 흔히 겪는 일인지 사과하는 동작이 자연스럽다.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띄고는 용서를 구하는 탁발승. 허나 이런 웃음짓는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옆의 여자가 한몫 거들었다.
"저런 땡중놈은 나라를 좀먹는 쥐새끼같은 놈들이예요. 서공자, 저 눈초리를 보세요. 우리를 비웃고 있잖아요. 잘못을 모르는 저런 썩은 중놈들은 아예 혼찌검을 내주어야 해요."
여자의 말에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서공자라 불리우는 사내가 손에 든 채찍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쫘악!..쫙..츠악!...
"우욱..욱.."
몸을 잔뜩 웅크리고는 내리치는 채찍을 몸으로 견디어 내는 탁발승, 금방 승복이 걸레처럼 변하고 피투성이가 되었다. 여러번 이런 일을 당한 탁발승은 여기서 저항을 하다가는 더 험한 꼴을 당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아 신음을 흘리며 채찍질을 견디었다.
어느새 사람들이 꽤 모여서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소란이 일자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시장거리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란을 고개를 빼들고 쳐다보았다. 하나 누구하나 이 남녀를 말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환은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또야. 저 년놈들은 툭하면 스님들이나 도사님들을 괴롭히네. 전생에 부처님과 신선님들과 무슨 원한이라도 가졌는지 또 저 지랄이야.."
"그러게. 또 스님하나가 골병이 들겠구만. 쯧쯧쯧.."
"그래도 이 스님은 저번 스님처럼 반항을 하지 않아 다행이네. 그려..그 스님은 결국 의방에서 죽었잖아?"
"힘없는 게 죄지. 암, 힘없는 게 죄야.."
혹시 저 남녀들이 들을까봐 나지막한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이 남녀들은 때때로 이런 짓거리를 벌이는 가 싶었다.
"그만하시오."
나직하지만 힘이 있는 음성이 장내를 흔들었다. 서공자는 갑자기 채찍이 무언가에 잡힌듯 움직이지 않자 채찍을 따라 시선을 이동시켰다. 그러자 굵은 팔뚝이 눈에 들어왔다. 그 팔의 임자를 살펴보았다. 칠척 정도의 키에 딱 벌어진 어깨와 가슴의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는 사내하나가 채찍의 끝을 잡고 있었다.
서공자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누군데 본공자의 일을 방해하는 거지?"
"지나가는 떠돌이 무사요. 보아하니 이 스님이 크게 잘못한거 같지도 않고 또 그리 맞았으면 되었다 생각하니 이만 채찍을 거두시오."
"호오~영웅이 출현하였구만. 이봐! 떠돌이 무사면 그냥 떠돌아다녀. 쓰잘데 없이 나서지 말고. 쓴맛을 보기 전에 냉큼 꺼지도록."
"서공자님. 이 사내는 제법 무예를 좀 하는가 보죠? 저기 보세요. 저 큰칼을..칼이 크니까 무공도 아주 고강한 모양이네요. 호호호.."
죽이 잘맞는 건지 아니면 서공자의 부아를 돋구려는지 옆에서 이죽거리는 여인. 무림의 통념상 큰칼이나 기병을 쓰는 자들 중에 무예의 고수는 없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더군다나 앞에 보이는 체격의 사내는 내가무공이 아니고 외가무예 몇수를 배워선 큰칼을 들고 사람들을 위협하는 삼류무사라 생각되었나 보았다.
"그렇지요. 은 소저가 보기에도 그리 보이지요. 이 무사는 대단히 높은 무공을 가져서 하찮은 우리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같군요. 제가 이 사내에게 한 수 배워보죠. 칼을 뽑아라. 떠돌이 무사 나으리."
이죽거리며 사내가 채찍을 던져놓고는 허리춤에서 검을 빼들었다. 일견하기에도 보검으로 보이는 병기, 잘 정련된 검에 여러 보석으로 장식을 해놓았다. 돈으로 만든 병기.
아환은 뚫어지게 서공자를 노려보다가 채찍을 손에서 놓고는 한손으로 뒤의 칼을 뽑아들었다.
츠으읏..
"어디 한 수 잘 가르쳐 주겠지."
서공자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아환을 비꼬았다. 그말에 대꾸를 하지 않고 두손으로 칼을 든채 칼끝을 서공자를 향해 겨누었다. 서공자는 나름대로 믿는바가 있었다. 본디 서공자는 여기 장사의 서가장 이라는 부잣집의 독자로 어려서 부터 서가장의 재물을 들고 화산파에 들어가 화산파의 무공을 걷핥기로나마 배운 인간이었다. 본시 그리 재질이 나쁘지 않은 터에 상승 절학을 몇수 전수받아 제법 검을 쓸줄 알았고 또 각종 영약을 구입하여 복용해서 내공도 어느 정도 닦았다. 따라서 외가의 무사들은 그에게 조금의 위협이 되지 않았고 여기서 아환에게 조롱을 하는것도 다 그와 같은 것은 믿은 탓이었다.
"들어오시오."
짧은 말. 아환이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은채 서공자에게 공격을 말하였다.
"건방진 놈! 받아라!"
서공자가 보검을 휘두르며 아환에게 쳐들어왔다. 길게 사선을 그리며 아환의 어깨어림을 베어오는 서공자의 검을 아환의 슬쩍 도를 비틀어서 막아내었다.
캉!
서공자의 검이 튕겨나갔다. 서공자는 튕겨나온 검을 갈무리 하면서 다시금 수차례 칼질을 해대었다.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秀梅花劍法)의 초식, 그중 매화난분의 초식으로 서공자는 아환을 공격하였다. 몇송이 매화가 허공에 떠서 아환의 요혈을 노리며 쇄도해왔다. 아환은 슬쩍 손목만 비틀어 검의 공세를 일일이 도신으로 막아내었다.
창..카캉..츠캉..
서공자가 하나 간과한게 있었다. 일반적인 외가무사들은 크고 무거운 병기를 곧잘 사용하기는 하지만 지금 아환이 들고 있는 것처럼 저런 초대형의 무기는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내공이 없이 체력만으로 저러한 거병을 쓴다는 것은 별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더군다나 무림에는 일대일의 전투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수의 전투도 발생하는 경우하 비일비재하였다. 그런 경우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크고 무거운 병기는 없느니만 못하였다. 서공자는 단순히 큰 병기라고만 생각을 하였지 여섯자에 가깝고 폭이 한자에 조금 못미치는 쇳덩이의 무게를 계산하지 못하였다.
"허! 칼이 커서 운좋게 막아내는군. 그럼 이것도 받아보아라. 매화도현!"
서공자의 검이 크게 원을 그리며 아환의 주위를 맴돌았다. 구궁보(九宮步)를 밟으며 아환의 주위를 돌면서 매화검중 쾌속한 검초로 아환의 등부위를 찔러들어갔다. 아환은 허리를 비틀며 검을 피해내었다. 또 아환이 검을 도를 이용해 튕길것이라는 생각을 한 서공자는 찔러들어가는 검을 미처 회수하지 못하고 상체가 아환의 바로 어깨 부근까지 다달았다.
퍽!
아환이 어깨로 서공자의 가슴을 밀듯이 쳐내었다.
"크악!"
서공자가 한줄기 핏물을 허공에 뿌려대며 뒤로 튕겨나갔다. 아환도 자신의 펼친 수법에 자신이 놀란듯 멍해져 있었다. 처음 시전해보는 건곤형이었다. 모든 병기와 권각법에 응용할 수 있는 건곤형. 외가무예의 절정이자 내가무예로도 사용이 가능한 상고의 절세 무예가 아환에게서 펼쳐진 것이었다. 아환은 건곤형을 시전하면서 약간의 힘만 주었다 생각을 하였는데 서공자는 멀찍이 밀려나와 가슴을 부여잡고 피를 토하고 있는 중이었다. 쉴새없이 선혈이 흘러나왔다. 선홍빛이 분명한 것이 내상을 크게 입은 모양이었다.
"공자!"
은소저라 불리운 여인이 서공자에게 다가가 서공자를 부축하였다.
"괜찮으세요? 내상이 심하신가요? 이를 어째.?"
"으으으..은 소저. 내 크게 상처를 입은 것 같소. 저놈이 무언가 비겁한 술수를 썼나보오. 저깟 놈에게 내가 당할리가 없는데..우웩!"
핏덩이를 토해내면서도 입은 살아있나 보았다.
"이걸 어쩌지..이를 어쩌나?"
어쩔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는 은소저라 불리운 여인에게 서공자가 힘겨운 목소리를 뱉었다.
"일단 서가장으로 갑시다. 그후 다시 ..우욱.."
"예? 아! 예.."
여인은 서공자를 부축하고는 말에 태우고 자신도 말에 올라탄후 왔던 길을 되돌아 돌아갔다.
"네 놈. 비열한 수법으로 서공자에게 부상을 입히다니..네놈이 사내라면 기다려라. 다시 돌아올 것이다."
원독이 서린 눈빛으로 아환을 쏘아본후 여인은 힘겹게 서공자를 데리고 돌아섰다.
아환은 피식 웃으면서,
"그러시오."
짤막한 대꾸로 여인의 말을 받아넘겼다.
사람들은 일남일녀가 떠나자 이제 상황이 종료된것을 알고는 아환에게 힐끔 힐끔 눈을 돌리면서 각자의 행동을 계속하였다. 사람들이 장내에서 떠나가자 아환은 탁발승에게 다가갔다.
"이보시오. 스님. 괜찮으시오?"
"으음. 소승은 괜찮소이다. 허,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소승으로 인하여 협사께서 어려운 일을 당하지는 않을 지 걱정이 되오이다."
"어려운 일은 무슨..자, 이리로 오시오. 내가 상처를 한번 봐드리리다."
그래도 의가의 후손, 아환은 탁발승의 상세를 일일이 살펴보고는 품에서 금창약을 꺼내어 탁발승의 이곳 저곳에 발라주었다. 얼마전 의방에서 구입한 시중에서 흔히 파는 약품이었다. 아환이 손길이 상처에 닿을때마다 움찔거렸지만 탁발승은 작은 신음도 내지 않고 아환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다 된것 같소이다."
아환이 손을 떼고 일어나자 그제서야 탁발승이 일어나서 합장을 하며 예를 하였다.
"정말 감사하오이다. 큰 은혜를 입었소이다."
"은혜는 무슨..스님, 아직 식전이시지요?"
그러고보니 점심때가 가까와 왔다.
"소승은 아침을 늦게 들어서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이리 오시오. 소생과 점심이나 합시다."
아환은 탁발승을 끌다시피하여 근처의 객잔으로 들어갔다. 탁발승은 한사코 마다했지만 아환의 끌어당기는 힘에 못이겨 따라왔다. 아환은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가는 이 스님이 마음에 들었는지 평소같으면 별 참견을 하지 않은 일에 참견을 하고 또 이 탁발승과 식사를 같이 하려 하였다.
아환은 객잔에 들어서 간단한 만두와 소면, 그리고 소채를 주문을 하였다.
식사가 나오기전 아환은 탁발승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
"스님은 법호가 어찌되시오."
"소승은 땡중이라 법호도 없소이다. 얼마전까지 황각사(皇覺寺)라는 절에서 탁발을 하였는데 절을 떠나서 이리저리 떠돌며 빌어먹고 사는 처지이지요."
"허허. 그러시오? 소생은 주환이라고 하오이다."
"주소협이셨군요. 이렇게 연이되어 소승이 협사를 뵙게 되었나 보오."
"그럼 스님의 속명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그냥 주각 이라고 불러주시오."
"주각? 그게 스님의 속명이시오?"
"본디 소승은 남경근처의 한 빈농의 자식으로 세상에 나왔지요. 어려서 부모를 잃고 각이라고만 불리웠습니다. 그런 소승에게 무슨 성이 있겠습니까? 이제 소승을 구해준 협사를 만나게 되어 감히 소승이 협사의 성을 빌은 것이오."
"소생의? 하하하.."
"아니. 어찌 웃으시오. 소승이 무슨 잘못이라도.."
"아니오, 아니오. 솔직히 주환은 내 이름이 아니오. 내 본래의 성은 적(赤)가 오만 어떤 사정이 있어 주가로 임시로 바꾸어 썼는데 스님이 그 성을 쓴다니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겠소? 하하하."
"허허. 적(赤)이나 주(朱)나 둘다 붉은 것은 마찬가지가 아니오. 그럼 소승이 주가의 성을 쓰겠소이다."
아환은 잠깐의 대화를 나누었지만 이 탁발승이 점점 자신의 마음에 들었다.
"소생은 아까 아침 나절부터 스님을 쭈욱 살폈지요. 스님은 참 어린 아이들을 잘 대해주시더군요."
"음..그 부끄러운 일을 보셨습니까?"
"예. 우연히 보게 되었소이다. 참으로 인자하신 스님이시더이다."
"아니외다. 단지 빈농에서 태어나 유랑생활을 하던 시절이 생각이 나서 그리 한것이지 무어 대단한 일이라고.."
"그나저나 참 어려운 세상이외다."
"그렇지요. 어렵지요. 빈승이 탁발을 다니다 보면 더욱 심하지요. 곳곳에 난민들이 끼니를 때우지 못하고 굶어 죽거나 도적질을 하다가 험한 일을 당하지요. 게다가 흉년이어서 그런지 민심은 더욱 흉흉하기만 합디다. 어찌 되려는지..가진 자는 더욱 그 욕심을 더하고 강한 자는 자신의 그런 강함으로 세상을 위해 쓰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위하여 세상을 핍박하려 하니 참 어떻게 이 나라가 되려는지..."
"듣자하니 송나라의 왕족과 그 후손들이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들었소이다만.."
"그게 무슨 소용이오. 서민들은 왕조가 누가 되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오. 한족이 나라를 되찾든, 몽고족이 이 중원을 계속 다스리던지 저 오랑캐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던지 상관이 없소. 다만 그들은 배불리 먹기를 원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원할 뿐이오. 송의 후예가 나라를 되찾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들이 실정을 하여 나라를 잃어버렸잖소. 다시 송이 일어선다고 해도 민초들의 삶을 보살피리라고는 생각지 않소. 그들의 이익을 원할뿐이지..단지 소승이 원하는 것은 이 나라가 어서 안정을 되찾기만을 바랄뿐이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면서 눈을 부릅뜨고는 힘있는 목소리로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탁발승의 모습에 은은한 기개가 묻어나왔다. 이에 더더욱 이 탁발승에 호감이 갔다.
그러던중 음식이 나오고 음식을 먹으면서 말이 이어졌다.
"더이상 백성들이 참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오. 일어날 것이오. 틀림없이 그렇게 될것이오."
"이미 각지에서 농민들이 봉기했지 않소?"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그들의 세력이 나타날 것이오."
아환은 정말 이 탁발승이 마음에 들었다.
"스님은 올 연세가 어찌 되시오?"
뜬금없이 아환이 탁발승에게 질문을 던졌다.
"기억하기론 스물 여섯이지요. 그러는 협사께서는?"
이 탁발승도 아환이 마음에 들었는지 대화가 점점 구체화 되어갔다.
"소생보다 연배시군요. 소생은 이제 스물하나외다."
"쓸모없이 나이만 먹었지요. 어쩌다 보니 그리 되었소이다."
"그럼 같은 성을 쓰게 되었으니 형제가 되겠군요."
아환이 다짜고짜 형제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아환은 몇시진 안되는 동안 이 탁발승을 보면서 나름대로 푹 빠졌다.
"어떠시오. 소생을 의제로 받아주시겠소?"
아환이 눈을 반짝 빛내면서 탁발승, 주각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제안을 하였다. 그런 아환의 시선을 마주보는 주각. 한참을 아환의 눈을 보다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그리는 못하겠소."
뜻밖의 거절에 아환은 실망감을 느꼈다. 허나 본인이 싫다는데야 어쩔 수 없는 노릇.
"허어, 소생이 모자라서 그러는 모양이구려. 죄송하오. 무리한 부탁이었나 보오."
"그게 아니오."
주각이 아환을 직시하면서 힘이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협사를 의제로 맞이하고 싶지는 않소. 우리 벗이 되는 것이 어떻소."
주각은 아환의 나이가 자신보다 다섯살이나 어린데도 불구하고 벗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러한 주각의 진심이 아환에게 전달이 되었다.
"어찌 소생이 감히 벗을 칭할 수 있겠소. 스님께서는 말씀을 거두시지요."
"왜 안된다는 것이요. 소승이 부족하기 때문이오?"
"그런 것은 아니오."
"그럼 왜 안된다는 것이요?"
아환과 주각의 눈이 허공에서 강하게 충돌을 하였다. 얼마간 서로 눈싸움을 한다 싶더니 동시에 둘의 손이 내밀어졌다.
"주각."
"주환."
굳게 맞잡은 손.
"하하하하."
"핫하하.."
둘은 손을 맞잡은 채로 크게 대소를 터뜨렸다.
"이보게, 주환."
"내 이름은 적무환이네."
"아니, 그냥 주환이라 부르겠네."
"좋도록하게, 왜?"
"나는 이 길로 안휘성으로 갈 예정이네."
"안휘성?"
"그래. 듣자하니 그 곳에 곽자흥(郭子興)이라는 사내가 거병을 했다고 들었네. 그 휘하에 들어갈 생각이야."
"곽자흥?"
"그래, 홍건도이기는 하지만 꽤 백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들었네. 그 사람을 한번 찾아갈 예정이야."
"오래전부터 계획하였던 일인가?"
"그건 아니야. 방금 막 생각한 것일세."
"방금?"
"그렇다네. 자네와 말을 나누다보니 깨닫는 것이 있었네. 지금껏 자네에게 한 말이 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어리석은 땡중이다 보니 그리 되었지. 그래서 결정하게 된것이야."
"그런가?"
"자네도 같이 가겠는가?"
"아니, 나는 예정한 길이 있네. 아마 운남쪽으로 갈 걸세."
"왜? 운남에는 무슨 일로?"
"배울게 있어서 그러지. 시간이 좀 걸릴거야."
"그렇구만. 할 수 없지. 혹 나중에라도 기회가 되면 호주로 한번 오게."
"그러지. 주각, 자네 혹시 무예를 익히지 않았나?"
"무예랄 것도 없네. 황각사에 있을때 노스님에게 호신술로 나한권과 몇가지 무예를 귀동냥으로 배우긴 했지만.."
"그렇구만. 어쩐지 아까 상처를 볼때 생각보다는 가볍더라니. 자네가 농민군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게 큰 도움이 될걸세."
"그렇겠지. 땡중이 이제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에 나서게 되나 보이."
"하하하. 그러니까 자네는 땡중이 맞네 그려."
"그런가? 하하하.."
"내 자네에게 별명을 하나 지어줌세."
"별명이라..좋지. 무어라 지을건데?"
"내 배운 것이 많지 않아 좋은 것은 짓지 못하지만..음, 자네는 으뜸가는(元) 땡중이니 반쪽이라 볼수 있지(璋). 자네를 원장(元璋)이라 부르지."
"원장? 원장이라..그럼 내가 자네도 하나 지어 주지. 자네는 무공을 목표로 하는 것 같으니 홍무(洪武)라 부르겠네. 큰 무예를 얻게."
"홍무라..좋아! 아주 좋네. 핫핫하!"
둘이 몇가지 싼 음식을 시켜놓고는 큰소리로 웃어가며 소란을 피우는 것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는 주인의 시선을 무시한채 생전 처음 갖는 벗에 흥겨워 하였다.
"이보게. 원장."
"왜 그러나, 홍무?"
"한가지 충고를 하겠네. 자네는 보아하니 너무 고지식한 것 같으이. 좀 더 유연하면서 독해지게. 때로는 하기 싫은 것도 해야하네. 허~ 참.."
"알겠네. 그런데 왜 그러나?"
"아닐세. 나도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을 자네에게 말하고 있네 그려."
"허, 사람도 참.."
(2)
아환은 이 곳 호남성에 와서 평생의 벗이 될만한 주각을 만난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아환은 저녁이 다될때까지 주각과 이런 저런 말을 나누면서 서로의 공감대를 넓혔다.
곧 주각은 안휘성으로 간다고 길을 떠났고 아환 역시 자신의 길을 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일단 주점에 돌아가서 정리를 하고 길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묵었던 주점으로 발을 향했다.
주점이 가까와졌다. 아환은 주렴을 걷고 주점의 안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끼아악! 나으리. 이러지 마세요."
찢어지는 어린 아이의 음성이 들렸다. 본능적으로 아환은 눈길을 돌려 소리가 들린 곳을 보았다. 아환이 눈길이 닿는 곳. 여러 사내가 앉아서 술을 마시는 자리였다. 저녁 무렵이어서 그런지 두 무리의 사람들이 주점에 자리를 잡고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중 한자리에서 조금전의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객점의 여점원, 홍홍과 청청 둘중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한 소녀는 탁자위에서 옷자락을 부여잡고 주저 앉아 사내들의 손길을 피하고 있었으며 다른 한 소녀는 그 밑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사내들에게 애원을 하는 중이었다.
"어허. 이 어르신께서 검사해 주겠다는데 왠 앙탈이냐?"
"끼악. 이러시면 안되요. 꺅!"
"카하하하. 좋아서 그러는 모양이네. 이봐, 왕칠. 나하고 내기하세. 이년의 거기가 잘 조이는지 안 조이는지. 어디 한번 걸어보게."
"장영, 그야 아직 아물지 않아 좁은데 구별이 되겠나?"
"허어! 다 이 형님이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니까. 내 나중에 이년이 명기가 될지 아닐지 알려주지."
세 사내가 탁자에 여러 술병이 어지럽힌 채 계집아이를 탁자에 올려 놓고는 옷을 벗길려고 하였다. 계집아이는 필사적인 저항을 하지만 성인의 사내의 손길에 그나마 천조가리같은 옷가지가 찢겨져 나가 아직 여물 기미도 보이지 않는 속살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나마 간신히 손으로 가슴과 사타구니를 가릴뿐 오들 오들 떨면서 눈에 두려움이 가득한채 웅크리고 있었다.
"어허! 어르신이 하시는데. 이봐! 주인장!"
"예..예..부르셨습니까요."
계산대의 주인이 달려와서 굽신거렸다.
"내 오늘 매상은 잘 올려줄테니 이 계집애를 좀 잘 타이르시오. 결국엔 다 어떤 놈이 차지할 텐데 뭐 어떻다고 이러는지.."
"아! 예. 알겠습니다. 청청아! 네 이 쓸모 없는 계집! 어르신께서 잘 보아주신다는데 무슨 짓이냐? 썩 손을 치우거라."
"주인님. 그렇지만.."
"어허! 이 객점에서 쫓아낼까?"
계집애는 청청이었나보다. 쫓아낸다는 말에 청청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여기서 쫓겨나면 어찌될지..두해전만 해도 이름있는 명문가에서 곱게 성장했는데..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멸문의 화를 당한 집안. 간신히 몸을 피한 두 자매는 어렵게 유랑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런 일을 당하다니..
홍홍이 주인이 나서서 한수 거들자 그 침착하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러더니 뒤로 몸을 돌려 부엌으로 달려들어갔다.
청청은 사내가 손을 잡아서 치우자 힘없이 손을 떼어내었다. 앙상히 말라 뼈가 그대로 드러나는 상반신, 젖가슴의 발육은 차치하고서도 살점도 없어보였다. 그래도 사내들은 어린 아이라도 여자라 생각하는지 눈을 번들거리며 장영이라는 사내의 다음 동작을 기대하였다. 사내는 손을 청청이 하초를 가린 손으로 가져가는 것을 흥미있게 쳐다보았다.
"악!"
굵은 비명소리. 장영이라는 사내가 손을 움켜잡고 펄쩍 뛰어 올랐다. 그 손위, 팔뚝에 부엌에서 쓰는 식칼이 반쯤 박혀 있었다. 그 앞에는 홍홍이 눈을 파랗게 뜨고서 사내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쌍년이!"
왕칠이가 손을 휘둘러 홍홍을 후려 갈겼다.
"아악!"
연약한 몸체는 한방에 뒤로 훌쩍 날라가 굴렀다.
"이 잡것들이 어르신에게 칼을 들이대?"
왕칠이 몸을 일으켰다. 다른 한 사내는 흥미있는지 그냥 바라보기만 할뿐, 장영이라는 사내가 팔에서 칼을 뽑아내고는 눈에 살기를 일으키고는 왕칠에게 씹어 뱉듯 말을 한다.
"앉아 있게. 내가 하지. 내 오늘 이 년들을 아예 기어다니게 만들어주마."
주인은 홍홍이 칼을 찔렀을때부터 몸을 사시나무떨듯 했다. 이 무리들은 이 장사에서 알아주는 건달 패거리들로 그 성질이 매우 포악하여 분란을 수시로 일으켰다. 주인도 이들에게 몇차례 폭행을 당한 경력이 있어 그 불똥이 자신에게 튀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장영이라는 사내가 홍홍의 멱살을 잡고 위로 끌어 올렸다.
"네 년이 이 어르신의 옥체에 칼을 대? 감히 네깟 잡년이 이 귀한 몸에 상처를 냈단 말이지?"
홍홍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자 세찬 바람에 날려대는 가랑잎처럼 홍홍의 몸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우읍..켁,.."
멱살이 잡혀 기도가 막혔는지 숨을 쉬지 못하고 갸날픈 손으로 장영의 손을 잡고는 새빨개진 얼굴로 신음을 토해내는 홍홍의 모습이 애처롭다.
"그만하지."
묵직한 저음이 주점안을 울렸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무슨 말인지 어떤 의도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말. 장영은 고개를 돌려 말이 들려온 쪽을 쳐다 보았다. 거기엔 장대한 체구의 사내가 등에 시커먼 칼을 메고 형형한 눈빛으로 장영을 노려 보고 있었다.
아환은 조금전까지의 들떴던 기분, 주각을 만남으로서의 흥이 순식간에 싸늘히 식고 밑에서 부터의 차가운 분노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이는 자신이 어려웠을때의 고난을 받았던 기억이 장영이라는 사내가 어린 계집아이를 건들자 되살아남에 심장이 차가와졌다. 만약 청청이 어른 계집이라면 나서지 않았으리라. 허나 지금 이 자매의 나이가 아환이 부모를 잃었을때의 나이와 비슷하여 어떤 교감을 미약하게 느끼고 있는 찰나 이같은 상황에 접하게 되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장영은 장영대로 평소 자신에게 거스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계집애가 반항을 하지 않나 팔에 칼을 맞지 않나 성질이 날대로 나있는 상태에서 아환의 말은 불에 기름을 분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건 또 뭐야! 오호라~ 이 어린 잡것의 기둥서방인가? 오호! 어린 줄만 알았는데 저런 사내도 받아들이네? 그럼 이 어르신도 받아드릴수 있겠지."
쫘아악!
홍홍의 앞섬이 길게 찢겨져 나갔다. 장영이라는 사내가 한손으로 멱살을 잡은채 다른 손으로 옷가지를 잡아 찢어낸 것이었다. 홍홍이라고 청청과 다를바 없이 비쩍 마른 앙상한 몸을 갖고 있었다.
"이런 몸이라도 사내를 받아 들인단 말이지. 어디 밑도 한번 볼까?"
장영의 손이 홍홍의 바지로 다가갔다. 무방비의 홍홍은 작은 동체를 흔들어 대지만 사내의 손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볼수 밖에 없었다.
서걱.
마치 두부가 잘려나가듯 무언가 잘려나가는 소리.
"우와악!"
장영이 다른 손으로 홍홍의 하체로 가져가던 팔을 움켜잡고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인가 아환의 칼이 등뒤에서 앞으로 향해져 있고 그 칼의 끝은 홍홍의 바로 앞에 놓여져 있었다. 바닥에는 장영의 팔뚝이 나뒹굴고 있었다. 아환이 장영의 팔뚝을 잘라낸 것이었다.
창..챙..
두번의 칼을 뽑는 소리가 들렸다. 왕칠과 다른 사내가 장영의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는 대경실색하여 칼을 치켜들었다.
"네놈은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아환이 대답대신 칼을 수평으로 뻗어 왕칠을 가르켰다.
"덤비지 않을거면 꺼져!"
이미 살(殺)을 행하여서일까? 아환의 눈은 붉은 열기로 번들거렸다. 야수의 눈빛같았다. 사내들은 주춤거리며 감히 덤비지 못하였다. 아환의 기도에 질린 것이리라. 일개 저잣거리의 건달이 무림인을 상대로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왕칠은 다른 사내와 눈을 맞추고는 장영을 부축하여 객점을 빠져 나갔다.
"기다려라. 이 놈! 우리 형제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명년의 오늘을 네 제삿날로 만들어 주지. 거기서 꼼짝말고 기다려라!"
입은 살아 있었다.
아환은 진기를 거두고 도를 갈무리 하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도에 진기를 불러 넣어 도기(刀氣)를 일으켜 장영의 손목을 잘랐다. 날이 세워져 있지 않는 아환의 병기이지만 아환이 도기가 어려있는 칼은 궤를 달리 하여 예리함과 쾌속함을 보였다. 아환의 좀전에 휘두른 칼도 건곤형을 기초로 한 초식 아닌 초식 이었다. 무엇인가가 희미하게 잡힐 듯 했다. 아환은 칼을 휘두르며 낮에 어깨로 서공자를 받았을때와 같으면서도 다른 이질적인 그 어떤 것이 마음에 남아있는 것을 느꼈지만 그게 무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봐."
아환이 바닥에 주저앉아 오들오들 떠는 홍홍의 뺨을 손가락으로 툭톡 건드려 보았다.
"아앗! 예?...예."
아직 놀람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작은 손짓에도 기겁을 하는 어린 계집아이의 몸짓이 안스러워 보였다. 길게 찢어진 천조각을 이리저리 가슴에 두르고 가릴려는 몸짓을 보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사님."
청청이 옆에 다가와 아환에게 예를 올렸다. 청청 역시 찢어 발겨진 옷자락을 여기 저기 묶고 간신히 몸을 가리고 있었다.
"되었다. 옷이나 갈아 입어라."
아환은 말을 마치고는 시선을 돌려 주인을 바라보곤 간단한 주문을 하였다.
"여기 술한병 주시오. 안주는 간단한 걸로 갖다 주고.."
"예..예. 알겠습니다요. 청청아! 주문 들었지."
"예. 주인님."
작은 발걸음으로 한걸음에 달려가는 청청,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였지만 밝은 표정을 얼굴에 가득 담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마치고 아환은 객실로 들어가서 운기조식을 취한후 명상에 잠기었다.
간만에 가져보는 명상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명경지수같이 하여 다스려 보았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자신의 무예에 대한 생각을 하였다. 건곤형의 구결이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랐다. 비왕이 제령심안으로 뇌리에 심어준 덕분으로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한구절 한구절 되새김을 하면서 오늘 자신이 두번에 걸쳐 펼친 건곤형과 대비를 시켜 보았다.
건곤형은 외가의 절세 무예이기도 하지만 알면 알수록 내가의 무예같기도 하였다. 과거 비왕이 건곤형의 구결을 말해주면서 외가의 무예라 칭한 것은 아마도 건곤형의 초기 수련 과정에서 외가계열의 수련을 많이 요구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 생각한 것일지도 몰랐다. 일반 내가 무공이 명상과 운기요상 등을 이용한 내기 운용에 그 중점을 두고 있는 것에 비해 건곤형은 처음부터 신체의 체력을 기르기 위한 수련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달랐다. 아환이 산서성 상가진에서 살때의 수련 과정이 다 이 건곤형의 구결에 나와있는 수련 방법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수련한 것이다. 다행히도 건곤형의 구결은 일반 비전절예가 암호같은 방법으로 쓰여져 있는 것과는 달리 쉽게 풀어져 있어 아환이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은 수련법을 익힐 수 있었다.
똑..똑..
나즈막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객실안의 고요를 깨뜨렸다.
"누구시오?"
"저 여기 점소이입니다."
소곤 소곤하게 계집아이의 음성이 들렸다.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아환은 의아했지만 곧 허락을 하였다.
"들어 오너라."
"예."
문이 열리고 두 작은 인영이 들어섰다. 홍홍과 청청이었다. 아직도 옷을 갈아입지 못했는지 아까의 그 너덜해진 천쪼가리를 몸에 걸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협사님. 우리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명이 말하는 것처럼 둘이 똑 같이 말을 하였다.
"되었다. 그런 인사를 받자고 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아직 옷을 못갈아 입었나?"
"...예. 다른 옷이 없어서."
그럴만도 했다. 이리저리 떠도는 생활에 제대로 옷이야 갖추어 입을 수가 있었을까?
"그래."
"..."
감사의 말을 전하러 온것만을 아닌듯 싶었다. 예를 올리고 말이 끊기자 두 쌍둥이 자매들은 서로의 눈치만 보고 쉽사리 입을 열려고 하질 않았다. 왠지 어색한 기분이 느껴지자 아환은 다시금 눈을 돌려 홍홍과 청청을 쳐다보았다.
"내게 무슨 할 말이 있느냐?"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마침내 홍홍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무사님께 청이 있습니다."
"청? 청이라..무슨 부탁이 있는데?"
홍홍과 청청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더니 둘은 아환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희 자매를 제자로 맞이하여 주십시오."
"헛! 제자? 허..하하하하."
난데없이 제자로 맞아달라는 말에 일순 헛바람을 들이켰지만 박장대소를 터뜨리는 아환.
"뜬금없이 제자로 맞이하여 달라니 그 무슨 말이냐?"
"오늘 저녁에 스승님께서 보여준 무위가 실로 대단하여 불한당들이 스승님의 한칼에 출행랑을 쳤으니 대단하심을 알았습니다. 비록 저희들이 자질을 미천하지만 스승님이 거두어 주신다면 열과 성을 다하여 스승님을 모시고 무예를 익히겠습니다."
아직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스승이라는 단어부터 썼다. 사전에 준비를 하였는지 또박또박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게다가 이번 스승님께서 쫓아내신 그 무리들은 이 장사의 불량배들입니다. 이번 스승님께 앙심을 품고 물러갔지만 혹시 다시 스승님을 찾을때 스승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 핍박이 저희 자매에게로 미치게 됩니다. 스승님께서는 일단 원인을 만드셨으니 그 이후도 책임을 지셔야할 줄로 사려됩니다."
"허허..협박하는 것이냐?"
당돌해 보았지만 밉게 보이지는 않았다. 어린 나이에 저렇게 또렷이 말하는 것이 가상스러웠다. 협박 아닌 협박을 들으면서도 아환은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가져갔다. 오늘 강호에 나와 주각을 만나서 크게 한바탕 웃고는 마음에 여유가 생긴듯 아환은 미소를 쉽게 지었다.
아환이 홍홍의 말에 반박하지 않은 것은 반박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홍홍이 짚었기에 어린 아이의 깊은 생각에 나름대로 감탄을 하였다.
"아닙니다. 소녀가 어찌 감히..스승님, 허락해 주십시오."
"허락해 주십시오."
청청 역시 나서서 아환에게 졸라 대었다. 아환은 난감하였다. 자신의 무예가 남을 가르칠 수준이 된다 아니다는 나중 문제였다. 일단 아환은 목표로 하는 곳이 있었고 머지 않은 시일 내에 그쪽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 곳은 여자와 어린 아이는 가서는 안되는 곳, 그런데 여자아이라..
"안되겠구나. 난 지금 제자를 맞이할 수준도 되지 않지만 어딜 가야되기 때문에 너희들을 신경을 써줄수가 없겠구나."
아환의 거절에 둘의 안색이 창백히 변하였다. 하지만 이런 거절도 예상하였는지 순순히 자리를 물러섰다.
"예. 내일 아침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스승님."
스승이라는 말은 그래도 꼭 붙이고 물러나는 두 자매. 두자매가 물러간 후 아환은 마음이 다소 무거웠지만 크게 심호흡을 하여 떨치곤 조식에 들어갔다.
다음날 평상시와 같은 아침이 시작되었다.
아환은 아침 식사를 조금 늦게 하였다. 간밤에 건곤형에 대한 고찰을 좀 깊이 하여 아침까지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해가 뜨는 것을 보고는 식사를 위하여 객점으로 내려갔다.
막 식사를 시키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을때 객점안으로 일단의 무리들이 들어왔다. 하나같이 손에 검을 쥐고 객점안을 들어서는 사람들.
"여기 떠돌이 무사가 누구인가? 앞으로 나서라!"
아직 식전의 아환이 있는 곳은 호남성의 성도 장사였다.
----------------------------------------------------------------------------------
8장은 꽤 길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중간중간 그 장면이 나옵니다.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어느 분이 독(毒)에 대하여 말씀을 하셨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볼까 합니다. 먼저 백독불침이니 만독불침이니 하는 말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찬성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제가 임의대로 독을 세분류로 나누었습니다.
먼저 생독(生毒)입니다. 말그대로 유기물에서 나온 독성물질로 각종 독을 가진 생물에서 채취한 성분으로 만든 독이지요. 제 전공이 화학이라서 드리는 말씀은 아니지만 이런 유기독성물질은 대부분이 단백질이나 효소, 호르몬, 그리고 다른 유기혼합물이지요. 따라서 일반적으로 무림에서 독에 중독이 되었을때 해독약이 존재하는 독이기도 합니다. 단적인 예로 뱀에 물렸을때나 기타 전염병의 백신도 그 해독제의 하나로 봅니다. 제 짧은 생각으로는 독에 대한 저항성은 이 생독에 중독이 될 경우 로 생각됩니다.
그다음이 사독(死毒), 광물독(鑛物毒)이라 말하고 싶군요. 이는 무기물질로 구성되어 있는 독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볼까요. 염산(HCl)이 눈에 들어갔다 치고 그 해독약으로 염산을 중화시킨다고 수산화나트늄(Sodium Hydroxide, NaOH화학과에서는 나트늄을 소디움이라고 말합니다.)를 눈에 넣으면 독성이 해독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아예 그 눈을 날려버리는 일이 되지요. 오직 하나의 방법은 바로 눈을 깨끗한 물로 계속 희석시켜 씻어내는 것입니다. 그것도 바로 씻어내야지 조금이라도 경과가 된다면 실명뿐만 아니라 더 큰 부상도 당할 염려가 있습니다. 염산이 사람에게는 충분히 독이 될수 있지요. 이런 광물독은 해약이라고는 거의 대부분 없습니다. 해약을 복용하기전에 이미 식도가 타들어갈텐데요. 청산가리(KCN, Potassium Cyanide 칼륨도 포타지움이라 합니다.)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지막으로 흔히 나오는 심독(心毒)을 또하나의 분류로 놓습니다. 일종의 마음의 독, 그러니까 실제 존재하지는 않는 독이지요. 다만 고차원의 무예로 상대의 심중에 심마나 심화를 불러 일으켜 치명적인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지요.
그리고 점점 규모가 넓어지지요. 처음 구상을 할때 생각한 일이지만 너무 크게 벌이는 것은 아닌지..
하나더 로리타는 제 취향에 맞지 않아 아환이 홍홍과 청청을 최소한 7년안에 꿀꺽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허접한 부연입니다. 아는 척했네요. 쥐뿔도 모르면서..에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