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수라기(獸羅記) 33번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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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호오~그러니까 당신이 청룡보의 남유란을 데리고 왔다구요?"
넓직한 대전안, 회의용 탁자인지 크고 둥근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세 사람이 앉아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거한(巨漢) 하나와 중년의 얄상해보이는 사내하나 그리고 이십대 후반 쯤 되었을까? 꽤 미모가 있어보이는 여인하나가 앉아 있었다. 여인은 여자치고는 적지 않은 키를 가지고 있어 앉은키가 중년의 사내보다 컸다. 눈꼬리가 위로 치켜올라가 있고 입술이 얇으면서도 길게 퍼져 있어 성질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 인상, 어찌보면 다소 잔인한 듯한 성격을 보이는 얼굴이었다.
"남유란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데려온 여자를 칭하는 거라면 그렇소."
"그래요?...소협은 누구신가요?"
"나는 그냥 떠돌이 무사요."
"어떻게 해서 남유란을 만나게 된 거죠?"
"우연히 길을 가다가 죽어가는 한 사내를 보게 되었소. 그 남자가 저 여인을 이 곳 구문현의 홍하장에 데려다 주라고 해서 데리고 온 것이오."
"그 사람은 죽었나요?"
"그 말만 하고 곧 숨을 거두어 할수 없이 이 여자를 데리고 이 곳으로 온거요."
"저희들이 누군지 아시나요?"
"모르오."
"그럼 이 여자가 소속된 단체도 모르시겠군요."
"그렇소."
"그렇다면 당신이 이 곳으로 그 여자를 데려온 이유가 단지 그 죽어가는 이의 부탁때문인가요?"
"그렇소."
"저 여자의 옷은 당신이 벗겼나요?"
"그렇소. 험한 일을 당한 듯하여 이 곳으로 오는 도중 내가 씻기느라고 어쩔 수 없이 그리 하였소."
"당신이 그 험한 일을 한 장본인은 아닌가요?"
"아니오."
사내, 아환은 여자와 중년의 사내가 번갈아 하는 질문을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혹시 당신은 청룡보를 아시나요?"
"청룡보? 강서성의 패자인 청룡보 말이오?"
"예. 바로 그 청룡보를 아세요?"
"그렇소. 알고 있소."
"그 청룡보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그리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소. 약간의 원한이 있소."
"그 원한을 말해 줄 수 있나요."
"꼭 말해야 하오?"
"아니, 그러지 않아도 무방해요."
"그럼 말하지 않겠소."
"우리가 청룡보와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나요?"
"그러리라 생각지 않았소. 청룡보와 사이가 좋다면 그 죽은 이가 저 여자를 청룡보로 데려다 주라 말했을거요."
"좋아요. 그럼 혹시 당신이 저 여자를 이리로 데리고 와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있나요?"
"원하는 것이라..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아서.."
"당신은 가입되어 있는 단체가 있나요?"
"없소."
"우리가 당신을 필요로 한다면 우리와 행동을 같이 할 수 있나요?"
"한번 생각을 해보아야 겠소."
"문주님. 좌호법입니다."
한참 말을 나누고 있는 도중 문밖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여자가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을 열고 한 사내가 들어왔다. 얼굴에 칼자국이 그어져 있는 장년의 건장한 무인 하나가 모습을 보였다.
"무슨 일이신가요?"
"예. 저희가 준비하고 있는 비화에 문제가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비화?"
여인의 안색이 기이하게 변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 돌아오죠."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좌호법을 따라 문밖으로 나섰다.
"당신들의 정체는 뭐요?"
여인이 나가자 아환이 얄상한 인상의 사내에게 질문을 하였다.
"우린..한 문파였소. 지금은 그 위세가 형편없지만.."
아환은 더 물을려다 입을 다물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대전의 문이 열리고 아까 그 여인이 다시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그리고 제가 미처 대접도 못했네요. 일단 차라도 드시죠. 게 있느냐?"
"예."
한 소녀, 시비로 보이는 소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차를 내오거라."
"예."
소녀가 물러난다 싶더니 금새 차를 가지고 들어와서 각자의 앞에 잔을 내려놓고는 차를 따랐다.
"드시지요."
시비가 물러서자 여인이 차를 권하였다.
아환은 자신의 앞에 준비된 차에 손을 가져가 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원래 차에 대하여 거의 아는게 없고 기껏해야 상운진이 만든 국화차나 마신 경험외엔 지식이 전무. 뜨거운 차를 입김을 불어가며 마셨다.
"그래. 혹시 머무를 곳은 있나요?"
"이번이 강서성 초행이라.."
다행히 아환의 말투는 여러 지방을 떠돌아 본디의 강서성의 말투가 많이 희석이 되어 있고 산서성의 어투가 강해 그리 말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홍하장에 머무르시는게 어떤지요?"
"그리 해도 괜찮겠습니까? 마당히 묵을 곳이 없어.."
"물론이지요. 우리의 일을 도우신 분인데.."
"그렇다면 감사합니다."
이런 저런 말을 나누면서 차를 다 비우고 시간도 거의 시진 가까이 흘러갔다.
"그건 그렇고 뭐 하나 질문을 할께요."
"그러시오."
"그런데 왜 우리 혈도문도를 죽였죠?"
흠칫. 아환이 놀라 눈을 들어 여인을 쳐다보았다.
"무슨...?"
"아니, 내 질문은 왜 우리 혈도문도를 죽였냐는 것이지요."
아환이 눈을 들어 여인의 눈을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의혹이 담긴 눈길이었지만 여인의 눈속에 들어있는 차가운 기색이 보이자 이내 포기를 하고 여인에게 되물었다.
"어찌 알았소?"
"오호호홋."
날카로운 교소.
"소협은 무림의 초행길이시지요?"
"..."
아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그 계획, 아! 우리는 그 계획을 비화라고 불렀죠. 비화를 실행하면서 그렇게 단순히 계책을 세웠으리라 생각했나요?"
"..."
아환은 뚫어지게 여인만을 쳐다보았다.
"집행조 외에 감시조와 대기조를 두는 것은 기본이예요. 그 중 하나가 당신의 뒤를 밟았죠. 당신이 혈도문도 둘을 죽이고 말을 산에 버리고 남유란을 강간한 것까지 다 알고 있어요. 하나 더 말 해주죠. 길들여진 짐승은 자신의 집으로 오는게 일반적입니다. 당신이 놓아준 말은 이미 우리 장원에 와 있어요."
말은 꼬박 꼬박 경어를 하면서도 그 말 속에는 은은한 살기가 배어 있었다.
"게다가 당신이 서툰 행보로 인하여 우리도 위험하게 되었네요. 이제 곧 청룡보의 추적대가 여기로 들이 닥칠테니.."
"그렇군."
아환이 무심히 응대를 하였다. 그러면서 내심 긴장하며 운기를 해보았다. 진기가 쉽사리 모아지지 않았다. 아마 차에 어떤 수작을 부린 모양이었다. 독이리라. 진기가 가닥가닥 끊어졌다.
"차에 무얼 탔소?"
"별거 아니예요. 산공독을 조금 가미했죠. 그건 그렇고.."
잠시 말을 끊더니,
"네 놈때문에 우리의 계획이 송두리채 망가졌다. 이 촌놈의 자식아! 네가 우리의 거사를 망쳤단 말이다. 어떻게 마련한 계책인데, 어떻게 자리잡은 곳인데 네 놈때문에 모두를 망쳤단 말이다."
쾅!
여인이 얼굴에 분노의 살기를 가득 띄고는 거칠게 내뱉았다.
"죽여버릴테다."
챙!
여인의 허리춤에서 칼을 빼내었다. 붉은 기운이 서려있는 보도로 보였다.
칼이 붉은 선을 그으며 아환의 목을 향해 뻗어왔다. 아환은 급히 탁자를 걷어차 올려 칼을 막으며 바닥을 굴러 뒤로 몸을 피했다.
서걱!
탁자를 마치 무우처럼 가르며 칼이 쇄도해 들어왔지만 아환은 이미 몸을 굴려 그 칼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아환은 몸을 구르며 등의 칼을 뽑아들어 앞을 막았다.
"호오라~대적을 하겠다고? 어디 한번 막아봐라."
쉬~익.
칼이 호선을 그리며 아환에게 다시금 짖쳐들어 왔다. 흉흉한 기세. 게다가 아환 자신은 독에 중독이 되어 진기를 채 운용을 하지 못하였다.
카캉.
혈보도가 아환의 칼에 부딪혔다. 불꽃이 튀었다. 아환은 충분히 대비를 못한 터라 경기에 밀려 뒤로 몇걸음 물러섰다.
뜨끔.
무언가가 날아와 옆구리에 박혔다. 아환이 시선을 돌리자 아까 그 얄상한 사내가 손에 암기를 발사하는 통 같은 것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환이 급히 옆구리를 보자 옆구리에 삐죽이 박혀있는 못같은 물체가 보였다. 아환이 옷을 잡아 찢어 암기를 뽑았다. 암기는 끝이 갈고리 모양으로 되어 있어 쉽게 뽑히지 않았으나 세차게 힘을 주자 살을 찢으며 손에 딸려 나왔다. 끝이 검푸른 색인 것으로 보아 독이 발려져 있는 듯 했다. 아환은 옆구리의 혈도를 몇군데 짚어 독이 퍼지는 것을 일단 막고 칼을 다시금 쳐 들었다.
"순순히 내 목을 바쳐라. 빨리 네놈을 쳐단하고 우리도 이 곳을 떠야 하니까.."
여인이 칼을 잠시 내리고는 아환에게 조소를 보내었다.
순간, 아환의 신형이 뛰쳐나갔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칼을 세차게 휘둘렀다.
"아앗. 이 놈이.."
여인은 놀라서 뒤로 물러서며 혈보도로 아환의 칼을 막아갔다.
창!
"끼아악!"
칼이 맞부딪히는 소리, 찢어지는 여인의 비명이 연속해서 들려왔다.
아환은 칼을 휘두름과 동시에 대전의 문을 박차고 나가 장원의 밖으로 달려나갔다. 뒤에서 여인이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지만 더이상 여기에 머무르는 것은 자살행위. 아환은 장원 마당에 내려섰다. 상당수의 인원이 칼을 빼들고 아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 일시의 방심이..자칫하면 여기서 뼈를 묻겠구나.'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탓하지만 이미 업질러진 물. 아환은 칼을 움켜쥐고 곧 닥쳐올 대전을 준비하였다.
그때였다.
"청룡보가 구문현에 들어섰다!"
급박한 음성이 들려왔다. 무리들의 시선이 일제히 시선이 들려온곳으로 향했다. 그 곳, 한 경장차림의 무사가 허겁지겁 달려오며 소리를 치고 있었다.
"청룡보의 추적대다. 구문현의 어귀에 도착했다!"
홍하장내의 사람들의 안색이 획 변했다. 웅성웅성 거리다 대장격인 사내가 나서서 무리들을 통제하였다.
"어귀라면 얼마 남지 않은 거리. 모두들 후문으로 이동하라. 척후조는 계속 추적대의 동태를 살피도록. 어서 움직여라."
아환은 체내의 독기운으로 인하여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 대치 상황이 해지되자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지만 여기서 주저 앉을 수는 없었다. 후둘거리는 다리에 가까스로 힘을 주고는 무리들이 달려간 쪽과 다른 쪽으로 달려갔다.
아환이 막 담벼락에 도착하여 담을 뛰어 넘을려는 찰나 대전안에서 뛰쳐나오는 여인, 문주라 불렸던 여인이 가슴을 움켜잡으며 아환에게 소리쳤다.
"게섯거라. 이놈. 감히 내게 칼을 겨누고 네놈이 살아날듯 싶으냐?"
욕설과 함께 아환에게 소리치던 여인은 곧 따라온 사내들에게 부축되어 대전으로 다시 들어갔다.
고함소리를 등뒤로 하고는 아환은 홍하장 담을 뛰어 넘어 근처의 숲속으로 몸을 피했다. 비록 구문현을 떠난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그래도 어렸을때에는 골목대장 노릇도 한 아환이기에 근처의 지리를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또한 어렸을때 숨바꼭질하면서 놀던 시절의 은신처등도 아직 잊지 않아 아환은 숲속으로 몸을 빼내곤 이내 은밀한 곳에 숨기위하여 재빨리 행동을 했다.
"으윽. 그놈이.."
여인이 가슴을 움켜쥐며 의자에 주저 앉았다. 고운 하늘 빛의 비단 궁장의 가슴부위가 찢어져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오른쪽 가슴의 옷가지와 젖가슴을 다친듯 여인은 조심 조심 손을 떼고 옷가지를 떼어냈다.
"빠드득. 이런..이.."
아환의 칼은 원래 날이 세워져 있지 않아 거대한 쇳덩이와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워낙 빠른 속도로 지나갔기에 칼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는 움푹 살점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칼이 지나간 자리가 유두근처였던가 보다. 여인의 젖가슴의 끝은 너덜 너덜해져 있었다. 유두라 짐작되는 것은 사라진지 오래 짖이겨진 살점만이 그 위치쯤에 남아 있었다.
얼마나 화가 치미는지 말을 잇지 못하고 이를 갈으며 눈을 치켜뜨는 여인에게 좌호법이라 불리우는 장년 사내가 나서서 길을 재촉하였다.
"문주님, 여기 계시면 위험합니다."
"이...이.."
"문주님."
"알았어요!"
소리를 빽 지르며 가슴을 천붕대로 감싸고는 여인은 좌호법이 이끄는 대로 대전을 나섰다.
"남유란은 어쩔까요?"
"그년은 죽여..아니, 일단 그년에게 가요."
다른 내실로 들어서자 침대에 죽은 듯이 엎어져 있는 여체, 남유란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까지 얼굴이 부어있었고, 아환에게 뒷머리를 얻어맞고 또 계속되는 고통에 지쳐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문주라 불리운 여인이 품에 손을 넣더니 작은 약병을 꺼내더니 거기서 붉은 환약을 하나 끄집어내었다. 곧 손에 있는 환약을 남유란의 입을 벌리고 집어넣고는 목젖을 눌러 환약이 식도로 넘어가게 하였다.
"음황정(淫荒精), 아마 네 년의 앞날이 신날거다. 오홋홋홋."
여인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교소를 터뜨렸다.
음황정(淫荒精)
배교 비전의 음약으로 배교의 실종과 함께 현세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독성이 지독하여 무림의 금지된 약물. 초기에는 가벼운 열기만 느껴지다가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음기가 발동하여 중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색을 탐하게 만드는 음약이다. 더욱 이 음약이 악독한 것은 수컷이라면 사람이건 아니건 가리지 않고 교접을 하게 만든 다는 것이다. 삼백년전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던 아미의 현성사태가 이 음약에 중독되어 숱한 남성과 관계를 가진 후 급기야는 수간(獸奸)까지 할려다가 가까스로 이성을 찾고 자결을 한 전례가 있다. 그렇다면 문주라는 여인은 배교와 어떤 관계가 있을지..
문주라는 여인은 뒤를 돌아보고 명령을 하였다.
"비영당주. 뒷일을 부탁해요."
비영당주라 불리우는 사내가 예를 취하였다.
"예. 부디 옥체를 보중하시오소서."
여인은 가슴을 감싸 안고는 좌호법이라는 사내와 같이 내실을 빠져나와 비밀통로로 몸을 홍하장에서 빼내었다.
콰직.
홍하장의 대문이 부서져 나가며 일련의 무리들이 돌진해 들어왔다. 이십여명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더니 무언가를 지시를 하자 여러 갈래로 나뉘며 홍하장의 이곳 저곳을 수색하였다. 곧 좌호법과 남유란을 찾아낼수 있었다.
"비겁한 놈. 어서 대소저를 놓지 못하겠느냐? 이러고도 네놈이 사내라 말할 수 있느냐?"
우두머리격인 사내가 좌호법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후후후. 그러는 네놈들은 그리 떳떳하다 말할 수 있느냐? 독으로 혈도문을 암습하여 비열한 승리를 거두것은 정정 당당한 일이더냐?"
"이런 처죽일..어서 대소저를 놔드리고 나랑 한번 붙어보자."
"이걸 어쩐다 그걸 생각은 전혀 없는데.."
장대한 체격의 사내가 칼을 남유란의 목에다 대고는 청룡보의 무리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본디 강직한 성품의 좌호법은 이런 것은 성격에 맞지 않았으나 문주를 비롯한 문도들이 대피할 시간을 벌어야 했다. 자신과 남유란을 둘러싼 청룡보의 무사들을 보고 자신은 여기서 운명을 마감할 것은 예상하였으나 충성을 바쳐온 남유란과 자신을 믿고 따르는 다른 사람들의 목숨이 중요하였기에 비겁하지만 남유란을 인질로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새인지 옷이 말끔하게 입혀져 있는 남유란. 얼굴이 아환에게 얻어 맞아 부어 있었지만 충분히 남유란이라 분별할 수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였다는 생각이 들자 좌호법은 남유란을 밀어내고 칼을 허리춤에서 빼내어 청룡보의 무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이얍!"
"내칼을 받아라."
"네 놈들 몽땅 지옥으로 보내주마!"
"우와아아.."
챙...챙....챙.....
아환의 고향 구문현의 홍하장에 칼빛이 뒤덮다가 이내 스러지고 어둠이 다시 구문현을 내리 덮었다.
(6)
"후우~"
아환은 일주천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렵게 어렵게 진기를 끌어모아 운기조식을 마쳤다. 아환의 내공은 이미 임독양맥이 관통되어 진기의 순환이 자유로운 상태, 시간의 여유가 더 있으면 이기집독(以氣集毒)한후 삼매진화로 태워버리면 그만이겠으나 그리하자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내력의 소모도 크기 때문에 언제 닥칠지 모르는 청룡보의 무사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과연..과연..비왕 사부님도, 상사부님도, 설하도 그랬지. 경륜이라고..항시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허! 자칫하면.."
스스로를 자책하였다. 정말 몰라도 너무 몰랐다. 아니 안일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중요한 일에 선후도 채 가리지 못하고 주변을 살피지도 않았다. 그 결과가 자칫하면 '다시'라는 기회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 경험으로 깨달았다.
아환은 어느 정도 진기가 유통이 되자 몸을 일으켜 은신한 곳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곤 무작정 서쪽으로 몸을 날렸다. 아무래도 여기는 너무 위험했다. 아환이 강서성 출신이라고 하지만 청룡보 역시 강서성의 문파, 그것도 강서성의 패주격인 방파였다. 그 위세가 떨치는 영향력하의 지역은 강서성전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서 머무르다간 언제 추적대에 덜미를 잡힐지 몰랐다.
며칠 밤낮을 그렇게 보냈다. 뛰다가 쉬면서 진기를 조식하고 다시 경신술을 발휘하여 서쪽으로 향하고 그러다 다시 쉬고..중간 중간 끼니는 나무 열매를 따서 먹었다. 옆구리의 상처는 칼로 살점을 도려내곤 천을 대어 묶기만 한 상태. 혈도를 짚어 지혈은 해놓았지만 그 부위의 살은 이미 염증을 잃으켜 곪기 시작하였다.
아환은 양의심공의 화후가 충분치 않지만 약간의 진기를 나눌정도는 충분히 되었다. 일부의 진기는 독상이 퍼지는 것을 막고 일부의 진기로 경신술을 발휘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진기가 채 모이지도 않아 고생을 하였지만 무상심결로 가까스로 일으키자 전신세맥에서 잠재되어 있던 진기와 음양신단의 약효 중의 일부가 다시 용해되어 상처를 치유하고 조식을 도와주었다.
아환은 어느 덧 호남성에 접어들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여유있는 휴식을 취하지 못하였지만 호남성에 들어오자 어느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아환은 근처의 야산으로 들어가서 쉬면서 상처를 치료할 곳을 찾았다.
얼마 되지 않아 아환은 원하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작은 분지였는데 외부에서는 쉬 볼수 없는 지형구조가 되어 있는 곳이었다.
아환은 그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하였다. 일단은 여독을 푸는 것이 중요하였다. 아환은 진기를 운용하면서 독기를 한 곳에 집중시켰다. 혈도에 막혀서 운행을 하지 못하던 독기가 진기의 흐름에 따라 진행을 하였다.
아환은 독기를 제어할 수 있게 되자 독을 한곳으로 몰았다. 전신의 진기가 아환의 혈맥을 순회하면서 여독을 끌어모아 아환의 손끝으로 몰아 넣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아환은 전신의 독기를 좌수 검지에 밀어넣을 수 있었다. 이제 삼매진화로 태우던가 아니면 손끝에 상처를 내어 독기를 배출하는 방법이 남아 있었다. 삼매진화로 독기를 소멸해도 되지만 아환은 손끝에 상처를 내어 진기로 핏줄기를 분사시켰다. 삼매진화란 원래 과도한 진원지기를 필요로 하는 수법. 호되게 당한 아환은 긴장을 풀지 못하고 손끝으로 독기를 배출시켰다.
대주천을 마친 후 아환은 주변을 뒤지며 약초를 찾았다. 어렸을때 집이 멸문되어 제대로 교육을 마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의가의 후손, 지금 옆구리의 응급처치도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한 것이었다. 산을 뒤져서 아환은 필요로 하는 약초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아환은 상처를 치료하고는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간만에 맞이하는 마음의 틈이었다.
장사,
호남성의 성도. 호남성은 말그대로 중원 최대의 호수인 동정호에 접해있는 곳이다. 후덥하고 습한 날씨를 보이는 지방으로 광산과 모시등의 생산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강서성을 벗어나서 호남성으로 들어선 아환은 성도인 장사로 들어섰다.
무역이나 상거래가 활발한 지역이라서 그런지 강서성도인 남창보다는 번화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환은 길을 가면서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것에 대해 반추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내가 원한을 맺은 청룡보와 혈도문을 감당할 수 있을까?'
대답은 절대불가였다. 그 중 멸문되다시피한 혈도문의 잔당들에게까지도 험한 꼴을 당하였는데 그보다 더욱 강대한 세력을 가진 청룡보와 부딪히는 것은 말그래도 이란격석의 꼴이었다. 무예로만 따지자면 아환은 조설하에게서 들은 바대로 화경에 접한 자신의 무위로 청룡보의 누구와도 일대일로 붙어도 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만의 하나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각종 암계가 펼쳐진다면 미처 근처도 가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래.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일순간의 결정으로 후회하지 말자. 시간은 아직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아환은 시장기가 느껴졌다.
'허허..이런 점심때를 놓쳤구만..'
여기저기 살피던 아환은 근처의 주점에 들어갔다. 작지만 외면상 그럴듯한 분위기가 묻어나오는 주점.
"식사되는가?"
아환이 주점에 들어가서 계산대 앞에서 졸고 있는 중년의 사내를 깨우면서 질문을 하였다.
"예?..아! 예. 그럼요. 되고 말고요. 야! 홍홍아!"
"예. 주인님. 부르셨어요?"
쪼르르 달려오는 작은 인영의 모습.
짝!
다짜고짜 뺨을 갈겨대는 계산대의 사내.
"아니 이 년이, 손님이 오셨으면 냉큼 나와서 주문을 받아야 할꺼 아냐?"
자신의 얼굴만한 커다란 사내의 손에 뺨을 얻어맞고는 뒤로 벌렁 자빠지는 작은 인영. 아환이 눈을 돌리자 그 인영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일곱 여덟살쯤 되었나? 여기저기 지저분한 오물이 묻어있어 지저분해 보이는 작은 계집아이였다. 배불리 먹지는 못했는지 비쩍 말라 붙은 팔과 다리는 앙상하다 못해 작은 나뭇가지를 보는 듯 가늘고 거칠었다. 말라붙어 살점이 붙지 않은 얼굴이지만 사내의 손길에 붉은 기운이 뺨에 남으며 둥그러이 부풀어 올랐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무릎을 꿇고 절을 해대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계속 해대었다.
"됐다. 이 찢어죽일 년아. 어서 손님이나 모셔라..헤헤, 저 계집을 따라 가시지요."
살짝 눈살을 찌푸리지만 별로 자신과 관계되는 일이 아니라 여기었는지 아환은 아무 말 않고 계집아이를 따라서 간후 자리에 앉아 주문을 했다.
"만두하고 소채, 그리고 화주 있으면 한병 다오."
"예. 손님. 금방 올리겠습니다."
꾸벅 절을 하고 물러서는 계집아이.
음식이 나왔다. 주인의 성격과는 달리 제법 음식이 먹음직스러워 보였고 실제로 맛도 있었다.
아환은 술을 한잔 따라서 마시면서 여기까지 오면서의 생활을 되살려 보았다. 음양조화역을 나서면서 병기를 얻은 일이며 강서성에서의 일. 남유란을 강간한 일, 혈도문과의 접전, 그리고 무작정 도주한 일..
'그래. 최대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으로 가자. 그곳이 어디든 가서 살아 남아야 한다. 그래야만 나의 길을 갈 수가 있겠다. 악철옹이 말하는 곳이 군(軍) 이었지'
한잔 한잔 마시다보니 술이 떨어졌다.
"여기 술 한병 더 주시오."
아환이 계산대에 소리쳤다.
"예..예..홍홍아!"
"예. 갑니다."
작은 발을 바삐 놀려 술을 들고 가까이 다가오는 홍홍이라는 작은 계집아이.
"여깄습니다. 손님."
"음. 그래. 수고했다."
아환이 주머니에서 동전 몇닢을 꺼내어 계집아이에게 던져 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코가 땅에 닿을듯 절을 하는 계집아이. 동전 몇닢을 받고서는 마치 온 세상을 얻은듯 기뻐하는 모습에 아환은 실소를 머금었다.
계집아이는 기분이 무척 좋은 듯 흥얼거리면서 물러갔다. 계집아이는 계산대로 다가가더니 주인에게 동전 몇닢중 반을 주인에게 건네었다. 주인은 당연한 일인듯 그 돈을 받았다. 아환은 다소 마음이 불편하였지만 굳이 자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 생각하여 모른체 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때가 지났는지라 객점안은 아환 혼자만이 객으로 앉아있었다. 아무리 때가 늦었다 하나 텅빈 객잔을 보고는 아환이 주인을 불렀다.
"여긴 이렇게 항상 손님이 없소?"
"무슨 말씀을요. 꽤 있습니다요."
"그런데 왜 지금은 보이질 않는거요?"
"아,예. 요즘 상황이 어렵습니다요. 몇년째 흉년이 들어 인심이 흉흉한데다가 여기 저기 도적떼들이 날뛰어서 그런지 점심이후 시간에는 손님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요."
"그리 어려운가?"
"아유~말도 마십쇼. 게다가 왜 그리 거지들이 많은지.."
"허~"
식사를 한후 아환은 주인을 불러 객실을 청하였고 방에 안내되어 들어갔다.
"져녁은 방으로 갖다 줄수 있느냐?"
계집아이는 공손히 대답을 하였다.
"예. 그러하겠습니다."
문득 아환은 낮에서부터 느껴왔던 이질적인 기분이 재차 감지되었다. 다름아닌 이 어린 계집아이때문이었다. 곰곰히 이 계집아이를 살펴보니 범상치 않음을 볼 수 있었다. 몸에 배어 있는 예의하며 절도있는 품행과 언행이 예사 집안의 여식으로 보이지 않았다. 긴 시간을 살피지는 않았지만 느낌이라는 것이 있다.
"잠깐 나와 몇 마디 할 수 있겠느냐?"
아환이 계집아이를 불러세웠다.
"예?.. 예. 말씀 하십시오."
깜짝 놀라며 몸이 굳어지는 계집아이..
"네 나이를 물어도 되겠느냐?"
하찮은 계집의 나이가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올해 아홉살입니다."
아환의 질문의 뜻을 파악하려고 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이 소녀는 혹시 아환이 자기를 탐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중원에는 각각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일부는 어린 소녀를 간하며 즐기기도 하였다. 또 일부의 사내들은 안고 자는 것을 좋아하여 품안에 어린 계집아이를 끼고 잠을 청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많은 여자아이들이 그런 용도로 부잣집에 팔려 갔다. 지금 이소녀도 그것을 염려하는 듯 했다. 하지만 당당히 맞서려 하는 태도가 가상했다. 언뜻 보기에는 일곱정도 밖에 되어보이지 않는데 아마 먹지 못하여 발육이 충분하지 않았는가 보았다.
"이 객잔에 너 말고 또 누가 일을 하느냐?"
"제 동생과 둘이 일하고 있사온데 동생이 몸이 불편하여 저 혼자 있습니다."
"혼자? 그럼 아까 그 음식도 네가 한것이냐?"
"입맛에 맞지 않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아직 솜씨가 미천하여.."
"아니야. 아니야. 참 잘 먹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너는 여느집 계집같지 않아 보여서 묻는건데 혹시 네 출신을 말해줄수 있느냐?"
흠칫. 작은 동체가 가늘게 떨린다.
"미천한 계집은 농가에서 태어나 부모를 일찍 잃고 여기저기 떠돌다가 이 객점 주인이 거두어 주셔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래?"
무언가를 숨기는 듯 보이지만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모양. 더이상 꼬치꼬치 캐묻는것도 이상하고 하여 아환은 화제를 돌렸다.
"동생의 나이는 얼마인가?"
"저와 같이 태어난 쌍둥이 여동생이 있습니다."
"그렇구나. 이만 나가보아라."
동전을 몇개 주면서 아환은 계집아이를 내보내었다. 중원의 민초들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은 모양이었다. 이 곳까지 오면서 수 많은 난민들을 볼 수 있었다. 하나같이 배고픔과 고난에 겨운지 생기가 없는 사람들이 떠돌아다니며 초근목피로 끼니를 연명하고 그것도 먹지못하여 굶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소문으로는 인육까지 먹는 일도 숱하다 들었다. 그에 따라 여기저기 민란이 들끓고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보호할려고 무사들을 고용하여 지키지만 그것도 준비하지 못하는 일반 백성들은 도적떼들의 표적이 되고 난민이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것을 아환은 적잖이 보았다.
아무리 자신에게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치부할려고 하여도 자신이 겪어온 과거가 생각이 나는 것은 인간인이상 어쩔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스스로 나서서 정의의 사도가 될 생각은 없었다.
여러 상념에 빠져 있는 아환. 지금 그가 있는 곳은 호남성의 성도 장사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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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하다보니 이 수라기 파일이 벌써 1M를 넘어섰습니다.
과거 7권짜리 무협이면 한질의 분량인데..
이번까지가 7장 행보입니다.
다음 장은 8장 우(友), 살(殺) 이라 정해보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드린대로 토요일의 연재는 없을 듯 합니다. 어디를 급히 가게 되어서..
(혹시 모르죠. 또 시간을 짜내어서 올릴지도..하지만 기대는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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