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수라기(獸羅記) 35번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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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객점안에는 식사를 하는 사람이 자신외에 한 탁자 더 있었지만 그들은 상인으로 보이는 인상이었다.
아환은 이들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시선을 그 무리들에게 돌렸다.
"나를 찾은 것이오?"
십여명 정도의 사람들로 구성된 무리들, 뒤에 있는 두명의 여인과 나머지는 검과 각종 병기를 들고 흉흉한 기세로 아환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중 앞에선 사내가 아환의 말에 거친 음성으로 대꾸를 하였다.
"네놈이 바로 그 떠돌이 무사인가?"
"그 떠돌이 무사가 도대체 누구요?"
"이런 괘씸한..소저, 이 놈이 그 놈입니까?"
"예, 바로 저 인간이예요. 저 놈이 서공자에게 비겁한 술수를 부려 서공자에게 부상을 입혔어요. 맞아요. 저놈이예요."
아환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은소저라 불리운 여인이었다. 새파랗게 눈에 독기를 띄고 아환을 노려보며 앙칼진 음성으로, 가늘은 손가락을 부르르 떨면서 아환을 가리키고 있었다.
"혹시 저 여자가 아는 그 떠돌이 무사라면 나라고 봐도 무방하오."
그제서야 아환은 이들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 서공자라는 오만한 청년에게 부상을 입혔으니 그 집안에서 가만히 있지 않고 자신에게 복수를 하려 온것임을 알았다.
"그대들은 서공자의 복수를 하러 온 것이오?"
"네놈이 서공자님을 상하게 하였으니 어서 서가장으로 가서 네놈의 죄를 밝히고 그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자! 우리와 함께 가자. 순순히 따르면 정상을 참작하여 중벌은 면하게 해주마."
"나는 아직 아침식사가 끝나지 않았소만.."
"이런..감히 네 놈이 우리에게 반항을 하는 것이냐? 정말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모양이로구나."
챙!
사내가 노기가 치솟은듯 이마에 내 천(川)자가 그려지며 허리춤에서 검을 빼어들었다.
"어서 당장 일어나지 못할까. 네놈이 정녕 여기서 뼈를 묻고 싶은가 보구나."
아환은 사내가 검을 뽑던 말던 신경을 쓰지 않고 앞 탁자에 있는 음식을 마저 드는데 열중을 하였다. 하지만 신경을 앞의 사내가 들은 검에 온통 빼앗겨 있었다. 태연한 척은 하였지만 이 무리들과의 결과를 예견할 수가 없는게 그 이유였다. 아환이 이 무리들이 들어왔을때 그리고 이 무리가 자신을 불렀을때 그 무리를 쳐다보다가 내심 긴장을 하였다. 무리들중 몇몇의 기도가 범상치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앞에 서서 아환을 윽박지르는 이 사내는 별로 신경을 쓸 것이 없다하지만 그 뒤의 고수의 품격이 느껴지는 두어명은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내는 검을 아환에게 막 휘두르려 하였다. 그 순간,
"잠시 참으시게."
사내의 뒤에서 하얀 선이 뻗어나와 사내의 검을 멈추게 하였다. 그 하얀 선은 다름아닌 한 남자의 손이었다. 손을 뻗쳐 사내를 멈추게 한 사람은 훤칠한 외모를 가진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일견해도 절세의 준미한 용모의 사내, 여성의 눈매와 흡사한 고운 눈썹과 눈꼬리에 코는 뭉툭하기보다는 오똑하면서도 일자로 솟아올랐고 입술은 두툼하여 굳건한 기상을 보여주었다. 딱벌어진 어깨에 육척이 넘는 일반 사람들보다는 조금 큰 신장에 매화가 수놓아진 하얀 비단 장삼을 두르고 있었다.
"식사를 마칠때까지 기다리지."
하얀 옷을 사내가 말을 꺼내자 감히 그 말에 대꾸할 생각도 못하고 처음 아환에게 말을 건넸던 사내는 검을 갈무리하며 머리를 숙이고 뒤로 물러섰다.
아환은 새로 앞에 서있는 사내가 자신으로 하여금 긴장을 불러일으키게 한 사람들중 하나 임을 알았다. 아환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식사시간이 더욱 길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그럼에도 무리들은 누구하나 그런 아환을 제지하질 않고 앞에 서있는 잘생긴 사내의 다음 동작만 기다렸다.
이윽고 아환이 식사를 다 마치고 차를 한잔 들고 입가를 가시자,
"식사를 마쳤소?"
잘생긴 사내가 아환에게 묻는다. 별로 분노하거나 기타 다른 감정이 실려 있지 않으나 듣기에 따라선 오히려 공포를 느낄 수도 있는 기묘한 음색이었다. 게다가 사내는 꽤 기세를 그 말에 담으려 했는지 한 마디 문장에서 느껴지는 뜻외에 귓가에 울릴때 심기를 자극하는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렇소."
"그럼 이제 우리를 따라 서가장으로 가시겠소?"
"내가 서가장에 왜 가야하오?"
"그대가 서충을 부상 입혔잖소."
"내가 서공자라는 사람을 부상입힌 것때문에 그러오?"
"네놈이 비겁한 수법으로 서공자님을 해했잖아! 이 천한 놈! 출신이 비천하니 하는 짓이 다 그모양이지."
앙칼진 음성이 잘생긴 매화 옷의 사내와 대화하는 중에 터져나왔다. 은소저라는 여인, 아환의 행태가 영 맘에 들지 않는 듯 쌍심지를 켠 두 눈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 이 은소저라는 여인은 서공자, 서충의 정혼자로서 혼례의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차에 서충이 부상을 입어 거동을 하지 못하게 되자 마침 서가장에 들린 서충이 속한 문파인 화산파의 사람들을 대동하여 수소문한후 아환의 소재를 파악하고 이리고 곧장 온것이었다.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오?"
아환이 잘생긴 사내를 보고 물어보았다.
"그렇지 않소. 비겁한 수법은 아니라고 보오. 상당히 고강한 수법인듯 사료되오. 얼핏봐서는 내가중수법같기도 한데..내가 궁금한 것은 왜 당신같은 고수가 서충같은 자에게 손을 과하게 썼는가 하는 거이오."
"나도 과하게 쓸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소. 단지 그 무예를 강호에 나와 처음펼치는 것이기에 그런 결과를 가져온 것 같소. 허나, 그 서공자라는 인간이 오만방자하고 내 절친한 벗을 상하게 해서 나섰던 것이오. 그대들 역시 비슷한 이유로 나를 찾은 것이 아니오?"
"그렇소."
"그러면 해결 방법 역시 칼이 말해줄것 같지 않소?"
"그렇다고 보오."
"잠시 기다리시오 내 칼을 갖고 오겠소."
"그러시오. 기다리고 있겠소."
아환이 내실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보고 은소저가 초조한 기색으로 잘생긴 사내에게 한 마디 물어보았다.
"저 놈이 도망가면 어쩌죠?"
"그러지는 않을게요."
"아주 혼내주셔야 해요. 감히 저놈이 서공자를 부상을 입혔어요. 아예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은소저!"
백의사내가 중간에서 말을 끊는다. 힘이 실린 어조에 은소저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화산의 일이요."
화산(華山), 서악이라 불리우는 중원의 오악중의 하나인 명산. 하지만 이 사내가 말하는 화산은 중원의 구패 중의 하나인 화산파를 일컬음이다. 혹자는 화산검파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심오막측한 각종 신공절예에 정명한 문파의 기세로 인하여 오파일방의 위세를 능가할 정도의 세력을 갖춘것으로 평가되었다. 근래에 와서 오파에 구패중의 사정(四鼎)을 더해 구대문파라고도 한다.
은소저는 사내의 말에 말그대로 찍 소리도 하지 못했다. 서가장이 강서성에서 제법 이름을 떨치고 자신의 부친이 장문을 맡은 은검문이 장사에서 꽤 이름을 떨친다고 하나 어찌 화산에 범접할 수 있으리요. 또한 준수한 외모에 훌륭한 배경을 지녔고, 가진 무예의 성취도가 높은 무림의 선두격인 후지기수인 사내의 정체를 알고 나면서부터 서공자보다는 이 백의의 사내에게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곧 아환이 등에 자신의 거도를 메고 주점으로 다시 나섰다.
"앞장 서시오."
백의의 사내가 몸을 돌려 객점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그와 함께 객점에 온 여러 사람들이 뒤따랐다. 아환은 묵묵히 그 뒤를 따르다 문득 기이한 향기가 코를 간지럽히는 것을 알았다. 상쾌하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정신이 몽롱하고 가슴이 울렁거리다고 말해야 할까? 뭐라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인세에 맡기 힘든 천상의 향기라 할 기향이 주위에 퍼져있음에 아환은 그 향기의 발산지로 고개를 돌렸다.
그 쪽에 한 여인이 아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었다. 비록 면사로 얼굴의 눈밑을 가리고 있어서 그 용모는 제대로 볼수 없었지만 그 눈을 바라보는 순간 아환은 가슴이 떨려옴을 느꼈다. 가히 절세적인 아름다움이었다. 투명하다 못해 눈이 시릴정도의 눈빛을 발하고 있는 그림같은 아니 그림이라도 저리 표현할 수 없는 극치의 미가 숨막힐 듯이 뿜어져 나왔다. 단지 눈만을 보여도 저 정도인데 얼굴을 전부 내비치면 가히 경국(驚國)의 색(色)을 나타내리라.
가까스로 아환은 그 여자에게서 시선을 돌리곤 백의 사내의 뒤를 쫓아서 나갔다. 아환이 밖으로 나서자 잠시 눈을 빛낸 면사 여인은 하늘빛의 비단 옷을 흩날리며 미끄러지듯 아환의 뒤를 따랐다. 백의 사내와 같이 온 일행이었다.
넓은 공터.
아환은 백의 사내가 걸음을 멈추자 그와 이장여의 거리를 두고 신형을 멈춰 세웠다.
장사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외곽으로 벗어나자 금방 눈에 띈 장소였다. 그리 외지지 않은 장소여서 그런지 드문드문 농부며 나뭇꾼들의 왕래가 보였다.
"이 쯤이 어떠시오?"
"괜찮소."
"나는 화산의 목영근 이라 하오. 이른 시간이지만 무례를 범한 것에 사과를 드리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서충은 화산의 제자, 그의 윗사람으로서 그 진상을 파악하지 않을 수 없소."
"이해하오. 화산의 고명은 많이 들어왔소. 허나, 그 영예로운 이름에 먹칠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하구려."
"무슨 말인지는 알겠소만 이는 화산이 처리할 일, 무사는 더이상 화산을 욕되게 하지 마시오."
기실 서가장은 금전적으로 화산에 적지않은 도움을 주고 있는지라 화산파는 서가장의 요구를 묵살할 수 없어 이리 나서게 된것이다. 우연한 일로 화산의 정예라 할 수 있는 몇몇이 이 곳 호남성에 마침 오게 되었고 그 시점에 서충이 아환에게 부상을 입어 서가장주인 서충의 아버지의 부탁으로 나서게 되었지만 목영근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화산에서 서충의 사람이 경솔하고 오만하며 포악한 성격을 들어서 알고 있어 별로 가깝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어 안면이 한두차례 있긴 하지만 서충과 친교를 나누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은 무림 칠룡중의 일인. 손꼽히는 후지기수로서 이름을 떨치는 그가 삼류에 가까운 이들과 사귀고 싶은 마음은 눈꼽만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나선것은 서충의 부상에서 아환의 무예를 어느 정도 볼수 있었고 꽤 고강한 무예라 추측되어 호승심에 나선것도 없지 않았다. 또하나 그의 뒤에는 그가 절실히 사모하는 여인이 지켜보고 있음도 한몫을 하였다. 각설하고..
"칼을 드시오."
스르릉.
아환이 시커먼 거도를 등에서 빼어 비스듬히 자신의 앞에 세웠다. 목영근은 그 거도가 일반 칼이 아님은 감각적으로 알수 있었다.
창.
맑은 금속성과 함께 목영근도 검을 빼내었다. 붉은 기운이 은은히 검을 휘감고 그 예기가 예사의 병기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목영근은 검을 빼내어 곧추세우곤 검끝을 아환에게로 향하였다. 아환은 기세가 자신에게 밀려옴에도 그 자세를 풀지 않았다.
한동안의 대치 상태가 지속되었다. 목영근은 무형의 검세를 아환에게 흘려 보냈음에도 아환이 미동도 없이 그것을 받아넘기자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다시금 확인하고는 검신을 슬쩍 돌려 자신의 옆으로 보낸다 싶더니 검을 뻗어내었다.
"헛!"
주위에서 그 광경을 보던 화산의 무리들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목영근이 선공을 펼치다니..근래에 들어 한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목영근은 화산내에서도 비무나 대련을 할때 좀처럼 선공을 펼치는 경우가 드물었다. 목영근의 무위도 무위이지만 그의 배분이 왠만한 문파의 장로급에 버금가는 것도 이유가 되었다. 그러한 목영근이 먼저 검을 떨쳤다. 이는 그가 그만큼 긴장을 한다는 의미일까?
붉은 빛이 일직선으로 아환을 향해 날아갔다. 첫 출수여서인지 별다른 초식이 없이 내력을 운기하여 검을 내뻗은 형상, 허나 그 위력은 만만치 않았다.
캉.
아환이 조금 옆으로 칼을 움직여 붉은 빛을 튕겨냈다. 붉은 빛은 검은 칼에 막혀 뒤로 물러서는 듯 하다가 재차 아환을 향해 짓쳐들었다. 이번에는 화려한 붉은 빛이 허공에 흩어지며 아환을 향해 다가섰다.
아환은 이 초식이 눈에 익은 초식이었지만 서충과의 손속을 나눌때와는 천양지차임에 방심치 않고 상체를 옆으로 틀며 도를 옆으로 크게 베었다. 목영근은 자신의 이십사수매화검의 매화도현의 초식이 한번의 칼의 휘두름에 위력을 잃고 스러지는 것을 보고는 어지러히 검을 흔들며 칼의 기세를 막았다.
"과연.."
짤막한 감탄사가 잘생긴 남자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목영근은 서충의 상세를 보고 고강한 무위를 가진 상대임을 예측하였으나 상대는 생각보다 더 상승의 경지에 있는 것 같았다. 목영근은 자신의 홍예검(紅銳劍)을 곧추잡고 내력을 끌어올렸다. 홍예검의 붉은 빛이 한층 강화되자 목영근은 서서히 자신의 검을 아환에게 밀어내었다.
칠절매화검, 이십사수매화검의 상위무예로 화산의 진산절학이 홍예검의 붉은 빛에 묻혀 펼쳐졌다.
"매화현현(梅花現現)"
점점히 허공에 매화가 그려졌다. 검기를 뿜어내어 허공에 유형의 기세를 펼쳐내며 목영근은 아환에게 접근하였다. 상당한 내력을 담아내는지 신중한 표정으로 검을 펼치는 목영근.
아환은 호천검을 자신의 도에 맞추어 변화시킨 수법으로 허공의 매화를 찍어내었다. 하나하나의 매화의 잔영이 허공에서 스러졌다.
"매화수운"
물결치듯 붉은 검기가 밀려왔다. 아환은 역공을 취하지 않고 검의 기운을 도로 흘려보내었다.
카카카캉.
몇번의 금속성이 아환의 도신에서 울려퍼졌다. 홍예검이 천하의 보검이라면 아환의 칼 역시 명칭은 없지만 그에 못지 않은, 오히려 더욱 뛰어난 기물임에 조금의 흠집도 나지 않고 홍예검을 막아내었다.
목영근의 허리아래가 뿌옇게 변한다 싶더니 목영근은 소요보를 펼치며 물흐르듯 아환의 주위로 다가들어 연속하여 검을 펼쳤다. 아환은 그 검 하나하나를 칼을 미묘하게 틀어 방어해내었다.
캉..창..카강..
수차례의 선공에도 목영근은 자신이 기선을 잡지 못하자 홍예검을 크게 휘둘러 아환을 밀어내고는 자신도 뒤로 훌쩍 물러섰다.
"대단하시오. 무사의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소?"
"주환이라 하오."
"혹시 무림의 별호는 없으시오?"
"무림에 갓 나온 삼류무인이 무슨 별호가 있겠소? 그냥 주환이라 부르시구려."
"주소협. 내 잠깐이지만 소협과 검을 나누어 보고는 소협의 무위가 예사가 아님을 충분히 알았소. 허나, 처음부터 화산의 이름을 걸고 나선 일, 예서 멈출 수는 없는 일이오."
"화산의 명예, 내 잘 알지는 못하겠소만 이해는 되는 구려."
"자! 그럼 다시 가겠소."
목영근이 검을 굳건히 움켜잡고는 천추부동의 자세로 신형을 바로 세웠다. 아환을 잠시 응시하던 목형근, 쾌속하게 홍예검을 뻗어내었다.
"매화사견"
여태와는 차원이 다른 검초가 펼쳐졌다. 불그스름한 빛을 내던 것이 이제는 선명하다 못해 핏빛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짙은 광채를 뿌려내었다. 핏빛의 광채가 아환에게 날아들자 아환은 칼을 들어 그 광채의 끝을 마주쳐 갔다. 건곤형의 세(勢). 무형의 웅장한 기운이 도세로 펼쳐졌다.
목영근은 홍예검을 휘두르며 아환에게 근접하다 거대한 힘이 몰려드는 것을 감지하고 검을 휘둘러 검기를 일으켰다.
휘휘휘휘잇..
붉은 기운이 목영근의 주위를 맴돈다 싶더니 이내 붉은 막이 목영근의 주위에 둘러졌다.
"아! 검막."
청아한 음성이 들려왔다.
검기로서 마치 막을 두르듯 검객을 보호하는 환검의 극고한 경지가 목영근의 검에서 펼쳐졌다.
아환의 도세가 목영근의 검막에 부딪혔다.
츠츠츠츠..
쇠가 갈리는 듯한 괴성이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아환은 몸을 빙글 돌리며 도를 재차 휘둘렀다. 한겹의 기운이 건곤형의 세에 더해졌다.
카카카카..
괴성이 더욱 커지며 날카롭게 변하였다. 목영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검막으로서 도세를 막고 있지만 상당부분의 검막이 찢기고 무너졌다. 상당한 내력을 쏟아부었음에도 도세를 막지 못하고 위험에 처한 목영근.
"매화선."
상쾌하고 청아한 음성이 다시 한번 장내에 들리는 가 싶더니 옆에서 푸른 기운이 아환의 도세를 막아갔다.
츠파파팟!
아환의 도세가 사라졌다.
목영근은 뒤로 세걸음 물러나서 발목까지 땅에 박힌채로 입가에 핏줄기를 보이고 있으며 그 목영근의 앞에 하늘색 비단 옷이 보였다.
주점에서 아환의 마음을 울렁이게 한 기향(奇香)의 여인이 어느새인지 푸른 빛이 감도는 중검을 빼들고는 목영근의 앞에 서있었다. 아직 도의 여파때문이지 하늘색의 옷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의 모습을 방불케 했다.
"사매..우욱!"
목영근은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여인을 부르려다 핏덩이를 토해내었다.
"조식을 취하세요. 사형."
나즈막한 목소리. 아환은 기분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영롱하거나 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음성은 아니지만 사람의 귓가를 파고 들면서 차분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목소리였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목영근은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고 뒤로 물러서서 가부좌를 틀고는 자리에 앉아 운기요상을 하였다.
"대단한 무위시군요."
"소저야말로."
"왜 아직까지 그대같은 무사가 이름이 나있지 않은건가요?"
"내 초행이라 말했잖소. 그건 그렇고 이제 소저가 나오는 차례요?"
"그러시길 바라나요?"
"허참! 아침부터 찾아와 윽박지르지 않나 칼을 나누자 다른 사람이 나와서 딴 얘기를 하지 않나 나보고 어쩌라는 거요? 그대와 손을 나누자는 거요? 그리고 소저가 물러서면 저 뒤의 다른 사람이 또 나와서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요? 그게 화산이요?"
"언행에 주의를 해주시기를 바래요. 소녀는 동문의 형제가 위기에 처하자 잠시 나선것 뿐이예요."
"그럼 왜 저 친구는 저기 앉아 있소?"
"그것은 내상을 입어 더이상 대전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저 친구가 내상을 완치할때까지 난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거요?"
"그것은.."
아환의 무뚝뚝한 말에 여인은 대꾸를 하지 못하였다.
"좋소. 그럼 그대와 한번 겨뤄 봅시다. 허나 내가 그대와 싸워서 얻는 것이 무어요?"
"무얼 원하시나요?"
여인의 눈이 빛났다.
"그 말은 무엇이든지 원해도 된다는 말이오?"
"그건 아니예요."
"그럼 왜 그리 대답한 거요."
"그것은.."
여인, 악서령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말을 할수록 이 아환이라는 자에게 말려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화 중의 일인인 자신에게 여태까지 이렇게 대한 이는 없었다. 더군다나 남자라면 더욱 그러했다. 그 누구라도 자신의 앞에서는 공손하였고 자신에게 잘 보일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사내는 틀렸다.
낯선 충격에 악서령은 검을 든채 아무말도 않고 서있었다.
"저 친구가 상처가 다 나으면 다시 찾아오라 하시오."
아환은 칼을 거두곤 몸을 뒤로 돌렸다.
"멈춰요."
여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커지고 날카로워졌다. 무시당한 느낌이 들었다. 악서령은 아환이 뒤를 돌아 돌아가려 하자 분(憤)기가 치솟아 오름에 다짜고짜 아환의 발걸음을 잡았다.
"또 뭐요?"
"그대는 나와 대련할 용기가 있나요?"
"대련할 용기?"
아환이 고개만 돌려 악서령을 빤히 쳐다 보았다. 악서령의 눈에 은은한 노기가 보였다. 무엇인가 자신의 뜻과 맞지 않음에 화가 치밀은 모양이었다.
"아니, 난 그런 거 없소."
아환이 고개를 다시 돌리고 몇발자국 떼었다.
"멈추라고 했어요."
음성이 뽀족해졌다. 악서령의 교영이 스르르 미끄러지듯 다가와 아환의 앞을 막아섰다.
"왜 그러는 거요. 난 그런 용기 없다고 했잖소."
"그대가 사내라면 나와 검을 나누어 봐요."
아환이 앞을 막아선 악서령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무심한 시선인 듯하지만 그 앞을 막아선 악서령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사내의 눈길이 자신의 전신을, 속마음을 낱낱히 훑어 보는 것같았다.
"그럼 여기의 남자는 다 그대와 싸워야 하는 것이오? 저기 저 친구들도?"
"그런 뜻이 아니란 것쯤은 잘 알텐데요? 나는 그대가 나와 대련을 회피하지 말기를 바래요."
"조금전에 저 목가 사내와 싸우고 그대와 또 싸우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시오?"
"그것은 아니지만..그대는 부상을 입지 않았잖아요."
"그것을 어찌 장담하시오? 내가 금방 피를 토하고 죽을지도 모르잖소?"
"그것은.."
도통 말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대와 싸운다면 내게 어떤 이득이 있소."
"그대는 무얼 원하는가요?"
"이런..이런..또 아까와 같잖아. 난 그만 가봐야겠소."
아환이 고개를 흔들며 악서령을 비켜갈려고 하였다. 그러자 무의식적으로 악서령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될 말이 튀어나왔다.
"좋아요. 그대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주겠어요."
"사저!"
"사고님"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경악성.
말을 해놓고도 아차 싶은지 교수를 들어 자신의 입을 가리는 악서령. 아환은 옆으로 머리를 돌려 악서령을 정시하였다.
"그말에 책임을 지겠소?"
이왕 뱉은 말. 자신의 강호에서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줏어담을 수도 없는 실언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무예에 자신이 있는 악서령은 잡념을 접고는 아환의 말에 순순한 응대를 하였다.
"예. 책임지지요. 그러니 그대는 칼을 뽑아요. 그대신 그대가 진다면 화산으로 가서 그대의 죄를 청하는 것을 반대의 조건으로 하죠."
아환은 몸을 돌려 악서령을 정면으로 응시하였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쳐 불꽃이 튀길 정도.
"좋소."
크르르릉..
아환의 칼이 울음을 터뜨리며 아환의 등뒤에서 빼어졌다.
얼마간의 대치 상태가 펼쳐졌다.
짙은 검은 색으로 주위를 어둡게 흐리는 아환의 패도와 악서령의 푸른 빛이 영롱한 청하검(靑霞劍)이 서로를 겨눈채 팽팽한 긴장감을 뿌려내었다.
'일초. 순식간에 결판을 내야한다.'
아환은 내심 마음을 정하였다. 화산의 검은 서충과 목영근의 검초에서 보았듯이 쾌검보다는 환검을 위주로 하고 있다. 아환의 무예는 쾌(快)와 패(覇)를 위주로 하고 있어 환과는 거리가 있어 오래 끌수록 자신이 불리할지도 몰랐다.
아환은 한걸음 앞으로 전진했다. 악서령이 흠칫하며 한걸음 물러섰다. 아환이 몇발자국 앞으로 나서면 악서령은 그만큼 뒤로 후진을 하였다. 그러길 몇차례 결국은 공터의 끝쪽에 악서령의 발뒤꿈치가 닿았다. 악서령은 더이상 뒤로 물러설틈이 없자 검예를 펼치기 위한 기수식으로 자세를 바꾸었다.
그순간, 아환의 눈이 빛나는가 싶더니 재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왔다.
"앗!"
급히 몸을 뒤틀며 악서령은 청하검을 비스듬히 아환의 어깨쪽으로 베어내었다. 충분한 내력을 싣지 못한 청하검을 아환은 도를 치켜들면서 쳐내고는 손바닥으로 빠르면서도 중하지 않게 악서령의 복부를 쳐내었다.
퍽!
"우웃!"
강호의 행보는 악서령이 비록 월등히 많았을지 몰라도 실제의 생사의 결투는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악서령이었다. 무위는 목영근보다 훨씬 높을지 모르나 아환 보다더 심한 초짜 무림인인 악서령은 순간적으로 복부를 얻어맞자 앞이 노래지며 뜨거운 핏물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악서령은 앞뒤 가리지 않고 검을 어지러히 뿌려내었다.
아환은 한 초 한 초 최소한의 동작으로 흘리면서 더 악서령의 가까이 다가가서 몸을 숙이고는 풍도십사식 중의 풍영섬의 권격으로 악서령의 정강이 부분을 후려쳤다.
파박!
"꺄악!"
악서령의 발이 중심을 잃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아환은 허공에 뜬 악서령의 허리춤을 잡고는 건곤형의 화(化)의 기법으로 밑으로 내 던졌다.
퍽..
갸날픈 하늘 빛의 인영이 개구리가 땅에 펼쳐지는 것처럼 땅에 쭉 펴졌다. 그 위에 아환의 커다란 발이 더해졌다.
"저저.."
"저..저런 무지몽매한 놈! 네 이놈. 그 발을 치우지 못하겠느냐?"
장내의 광경. 아환이 우뚝 칼을 앞에 세운채 꼿꼿이 서있었다. 그런 그의 발밑, 악서령이 등이 아환의 커다란 밟에 밟힌채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아직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는지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였는지 버둥거리고 있었다.
"당장 비켜서거라. 이 놈!"
"내 저놈을 당장.."
챙..챙..챙..
여기저기서 칼을 뽑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에 서있던 화산의 무인들이 하나같이 검을 빼들고는 시퍼런 사슬로 아환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떤 이는 금방이라도 달려들것 같이 검을 휘둘러대는 자도 있었다.
"물러서시오."
아환이 칼을 빼어서는 자신의 몸쪽으로 끌어당겨서 땅에 다시 내려꽂았다.
"헛!"
"네..네 놈이..
"이런..천하에!!"
아환이 칼을 꼽은 장소는 다름아닌 땅에 엎어져 있는 악서령의 목덜미에서 두치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화산의 무인들 중 일부는 아환이 악서령의 목에 칼을 꽂는 줄 알고는 거의 심장마비 직전까지 간 인물들도 있었다. 그만큼 지금 아환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화산의 무인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아니 꿈을 꾸는것 자체도 불경스럽게 여기는 그러한 자세였다.
고귀한 화산의 자랑이자 뭍 남성들의 이상형. 악서령을 짧게 형용하자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런 악서령이 알지도 못하는 삼류무사의 발아래에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이 화산의 무인들로 하여금 극도의 치욕스러움과 분노를 야기시켰다.
"꺄악!"
아환의 발에 조금 힘을 주자 악서령의 작고 붉은 입술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물러서라 했다."
나즈막한 목소리를 깔아 흘리는 아환. 그에 화산의 무사들은 저마다 아환에게 욕을 해대지만 어쩔 수 없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아환은 허리를 굽히고 손을 뻗쳐 악서령의 삼단결의 곱디 고운 머릿결을 거친 손마디로 움켜잡고는 위로 치켜들었다.
"꺄아아악!"
찢어지는 비영이 들렸다. 악서령은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릿결을 움켜쥐고 들어올리는 아환의 손을 잡고는 두발이 땅에서 들려 바둥거리는 채로 고통스러운 비명을 흘렸다. 머릿가죽이 벗겨나같 것같은 극심한 아픔이 번져나갔다. 고통이라고는 태어나 거의 경험해보지 않은 악서령에게 너무나 갑작스러운 강한 고통이 밀려들어왔다.
퍽!
아환은 손바닥을 세워 악서령의 머리뒤쪽 부분을 슬쩍 가격하였다.
"윽!"
외마디 비명과 함께 정신을 놓는 악서령.
화산의 무사들이 욕을 해대거나 칼을 휘두르는 것은 전혀 아환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따라오면 이 계집을 죽일테다."
냉랭히 내뱉고는 아환은 뒤로 몸을 돌리더니 땅을 박차고는 뛰어 올랐다.
"멈춰라! 우욱...웩!"
운기요상을 하면서 상세를 치료하던 목영근이 급기야 아환이 악서령을 데리고 자리를 뜨자 진기를 억누를 새도 없이 입을 벌리고 말을 하다가 내기가 역류를 하여 입에서 분수처럼 피를 토하였다.
"사형!"
"사숙님!"
화산의 사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외치며 급히 목영근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4)
촤악!
뼈가 시리도록 맑고도 차가운 물이 끼얹어졌다.
"으음.."
나즈막한 신음성. 작은 동체의 뒤척임.
반짝.
샛별을 박아놓은 듯이 반짝이는 눈망울이 살그머니 드러났다. 하나 티없이 맑은 눈망울. 커다란 눈이 뜨여진다 싶더니 또르르 움직였다. 왠지 주위가 낯설다는 것을 알고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더니 상체가 바닥에서 튕겨지듯이 솟아올랐다.
"엇! 여기는.."
오똑한 콧날은 깍아지른듯 얼굴의 가운데에서 솟아올라 있었고 자그마하면서도 빠알간 입술의 살은 금방이라도 붉은 물이 조르르 흘러내릴것 같았다. 갸늘은 목선에 물기에 젖어 하늘빛의 비단 옷이 몸에 달라붙어 여체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봉긋이 튀어 나온 젖가슴이며 잘록한 허리..그리고 다리가 갈라지는 자욱까지 은근하게 비추고 있었다.
여인, 악서령은 고개를 돌리다가 어두운 곳 한쪽에 앉아있는 커다란 물체를 보았다.
"누구..세요?"
떨리는 음성.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깨어났나?"
그제서야 어둠이 익숙해지고 그 인영의 용모가 악서령의 눈에 차츰 차츰 선명하게 들어왔다.
"헛! 당신은.."
아환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고 그의 얼굴이 익숙하다고 느끼면서 머리에서 느껴지는 아픔, 이어서 악서령의 머릿속에 얼마전의 비무가 떠올랐다. 그리고는 자신이 아환에게 맞아서 정신을 잃은 것도..
"그대가 날 이리로 데려 왔나요?"
"그래."
"제 얼굴의 면사를 벗긴 것도 그대인가요?"
좀 침착해졌는지 음성이 차분해졌다.
"그래."
"왜 이리로 날 데려왔죠?"
"약속을 기억하나?"
"약속?"
아환의 대답이 아닌 반문에 무슨 말이냐는지 의아한 기색을 보이는 악서령.
"무엇이든지 한다고 했다."
"무엇이든지...아!"
그때야 기억을 하는 악서령이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떠올리고 지금의 상황을 깨닫자 안색이 창백해졌다.
"설마 당신은 .."
"약속을 지킬 것인가?"
"내 몸을 요구할 것인가요?"
악서령이 고운 얼굴에 표정을 굳힌채로 아환을 직시하며 되물었다. 고혹적인 자태가 악서령에게서 배어나왔다. 물기에 젖어 검은 머릿결이 여기저기 뭉쳐져 있었고, 옷자락이 흐트러져 있지만 숨막힐 정도로 매혹적인 아름다움은 감추질 못했다.
"다시 한번 묻겠다. 약속을 지킬 것인가?"
아환의 음성이 차가와졌다. 악서령은 잘 세워진 칼날이 다가드는 기분을 느꼈다. 금방이라도 자신의 몸을 두쪽 낼 것 같았다. 무서웠다.
"약속은...지키겠어요. 하지만 제 몸말고 다른 것을 요구하면 안되나요? 돈이 필요하다면 돈을 드릴께요. 만약 여자가 필요하다면......"입술을 꼭 깨물고, 말을 잇는다.
"다른 여자들을 취하게 할 수도 있어요. 제발 절 이대로 놔주세요. 충분한 보상을 할께요."
다른 여자를 취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아환의 심기가 뒤틀렸다.
"내 요구는.."
아환이 잠시 말을 끊었다.
"네가 내 시비가 되는 것이다."
시비! 아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악서령의 안색이 밀납처럼 창백해졌다. 시비라니! 한번의 육체를 취하는 것도 아닌 영원히 귀속되는 시비라니! 감히 자신을 시녀로 취하겠다니! 악서령은 자신이 잘못들었나 싶었다. 그러나 아환의 얼굴에서 그 말이 잘못들은 것도 아니고, 농담으로 한 말도 아닌 사실이고 현실이었다.
"말..말도 안돼! 말도 안돼! 그건 말이 안돼요!"
정신없이 머리를 흔들면서 주저앉은 상태에서 뒤로 물러서는 악서령. 머릿속은 텅비어 '시비'라는 단어만이 맴돌고 있었다. 무림사화중의 일인인 자신에게 시비라니!
"왜 말이 되지 않는가? 그렇게 네가 특별한가?"
"..."
"너는 소중하고 다른 사람은 발가락의 때만도 못한 존재인가? 네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 그깟 육체를 보존하기 위해서 희생할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그토록 잘났는가? 그래! 그 고귀한 육체를 한번 뽐내보아라."
쫘아악!
아환이 성큼 다가오더니 비단 옷을 잡고는 좌우로 길게 찢어내었다.
"끼악!"
악서령이 찢어지는 옷을 움켜잡고는 왼손으로 일장을 쳐내었다. 허나 조금의 내공도 실려 있지 않은 헛손질에 불과할뿐 탄탄한 아환의 육체에게 조금의 타격도 되지 않았다.
아환은 악서령이 반항을 하던 말던 악서령의 옷을 찢는 것외엔 다른 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물에 젖어 잘 찢어지지 않았지만 외가무공을 단련하기위해 외적인 근력을 기른 아환은 금새 내고만을 남긴채 악서령의 옷을 다 치울 수 있었다.
아환의 눈에 분노의 기색이 번들거리는 열기로 변한다 싶더니 욕정으로 그 색을 달리 한다. 악서령은 오들오들 떨면서 두손으로 앞가슴을 가린채 쪼그리고 앉아 아환을 애원하는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제발..제발..그냥 절 놔주세요.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이대로 놔주시면 다른 어떤 일이라도 할께요. 제발..제발..끼아악!"
아환이 가차없이 내고를 벗겨내어 기어이 악서령을 알몸으로 만들었다.
무림사화 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악서령의 나신이 야산의 한 동굴 속에 그 고운 자태를 환하게 드러내었다. 두 팔이 아환에게 잡혀 위로 치켜든채 아름다운 미안은 온통 눈물로 뒤덮여있었고 반듯한 콧대는 얼굴의 균형을 잘 잡아 주었다. 오물거리는 울음이 빨간 입술사이로 새어나오고 있었고 하얗고 가느다란 목덜미를 지나 어깨선의 완만하고도 부드러운 곡선에 외모와는 달리 풍만한 가슴이 눈에 띈다. 아환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누구보다도 커다란 가슴, 그 위의 유실은 귀여운 크기의 짙은 분홍색을 띄고 있었고 매끄러운 배를 지나면 잘록한 허리에 급격히 넓어지는 둔부가 있었다. 거기에는 소담스럽게 자라있는 방초의 숲이 갈라진 비열을 숨기고 있었고 언뜻 보일까 말까하는 붉은 속살이 조금 삐져나와 아환의 눈을 간지럽혔다. 그 비처를 사이에 두고 곧게 아래로 뻗어있는 옥기둥의 선의 미는 또 어떤가? 조금의 근육도 없이 울퉁불퉁한 상처나 티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
아환은 한손으로 악서령의 손을 잡은채 거칠게 입을 악서령의 입에 부딪혀갔다.
"우웁!"
팔이 잡히고 진기가 유통이 되지않아 가녀린 몸을 뒤흔들며 저항을 해보지만 사내의 숨결이 자신의 입에 와닿았다. 난생처음의 경험, 그것도 강제로 당하여지는 체험. 격렬한 악서령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입술을 탐하던 아환이 입은 계속 악서령의 고운 입술을 빨아들이는 채로 다른 손을 움직여 악서령의 풍만한 젖가슴을 움켜잡았다.
"웁!"
입이 막혀 소리를 지르지 못하지만 눈이 크게 뜨여지고 절망의 빛이 묻어나왔다. 아환은 손에 들어온 하얀 살덩이를 슬며시 매만지다 강하게 꽉 쥐었다.
"업!"
눈살이 찌푸려지고 이내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아픈 모양이었다. 몸을 뒤틀며 저항을 해보지만 사내의 손길에서 벗어날길은 없었다. 허나 그렇게라도 해야지 고통이 줄어드는 지 악서령의 몸이 계속 움직였다.
아환이 젖가슴을 쥔 손에 힘을 더 가하였다.
"아웁.."
무슨 말인가가 계속 희미하게 아환과 마주친 입에서 새어나왔다. 도리질을 칠려고 해도 아환의 입술을 벗어날수 없었다. 발로 아환을 걷어차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아환의 손아귀에 쥐여진 가슴에서의 통증만 더할뿐이었다.
아환의 손이 아랫배를 쓸며 밑으로 내려갔다. 잠시 아랫배를 어루만지다 싶더니 가차 없이 사타구니사이를 거칠고 큰 손으로 뒤덮고 잡아보았다.
"웁.."
악서령의 전신이 여태까지 중 가장 거세게 반응을 하였다. 뒤틀고 발길질을 하며 고개를 도리질을 하고 손을 빼어낼려고 하고 여하튼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반항을 방법을 다 취해서 아환에게 벗어날려고 하였다.
아환은 그러한 악서령의 반응에 일일히 반응하지 않고 미묘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여기저기를 만져보았다. 아직 메마른 느낌. 아까 끼얹은 물기와 여인의 비처에서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습기외에는 다른 물기가 배어나오지 않았다.
아환은 자신의 허리춤을 풀렀다. 어딘가에 걸리다가 아환이 허리를 흔들자 스르르 밑으로 내려가는 바지. 거대한 아환의 양물이 그 위용을 드러내었다. 위로 솟구쳐있는 검붉은 살덩이는 마치 그 속에 뼈가 들어있는 듯 단단하고 곧게 보였다.
아환이 드디어 악서령의 입에서 자신의 입을 떼내었다.
"허헉..헉...헉.."
작은 입을 벌리고 가쁘게 숨을 내쉬는 악서령. 몸이 아래로 내려간다 싶더니 그 입에 낯선 이물이 들어왔다.
"웁.."
아환이 바닥에 악서령을 내려놓고 머리를 움켜잡은 후 육봉을 그 벌린 입에 쑤셔넣은 것이었다.
악서령은 입안 가득히 무언가가 들어오자 처음에는 그 것이 무언지도 몰랐다. 하나 곧 그것이 사내의 남근임을 깨닫고 도리질을 치며 뒤로 머리를 빼려고 하였으나 아환의 손에 잡힌 머리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악서령의 머리는 작은 움직임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그 작은 움직임과 말을 하려고 혀를 씀으로 인하여 아환의 육봉은 기묘한 자극을 받고 쾌감이 느껴졌다.
몇번의 왕복으로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아환은 자신의 육봉을 꺼낸다 싶더니 손으로 악서령의 머리채를 움켜잡고는 위로 쳐들었다.
"아악! 놔요. 이거 놔! 제발..악!"
버둥거리며 머릿가죽이 찢겨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호소하는 악서령. 아환은 한손으로 머릿채롤 쳐든 다음 다른 손으로 악서령의 한쪽 다리를 잡고는 옆으로 벌렸다. 그때까지도 악서령은 머리에서 오는 아픔에 다른 것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아환의 육봉이 악서령의 가무스름한 음모가 덮고 있는 비처에 닿을때에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지만 아환의 살의 일부가 악서령의 생살을 강제로 벌리며 조금 진입을 하자 그제서야 자신의 비처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인지가 되었다.
"끄아악!"
한치 정도의 양물이 악서령의 질속으로 들어갔다. 금새 악서령의 비부에서 반응이 일어났다. 물가에 갓 잡아올린 잉어처럼 퍼득이는 악서령의 교구, 살이 갈라진 곳에서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아직 처녀의 증거가 파괴되지 않았음에도 피가 배어나오는 것은 비처가 파열된 것이리라.
강렬한 기향이 여체의 몸에서 풍겨나왔다. 얼마전에 객점에서 맡았고 계속해서 이 여인의 몸에서 풍겨 나오던 체향이라고 하기엔 상쾌하고 현세의 향기가 아닌듯한 기이한 향기가 더욱 짙게 여체에게서 배어나왔다. 청량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기분좋은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 향기는 아환의 성욕을 더더욱 자극하였다.
아환은 그에 그치지 않고 단번에 자신의 육봉을 악서령의 깊은 곳까지 단번에 밀어넣었다. 장대한 살덩이가 허리 놀림 한번에 거진 끝까지 악서령의 체내에 잠겼다.
"끄..으.."
악서령의 눈자위가 허옇게 돌아간다 싶더니 악서령은 정신을 놓아버리고는 혼절을 하였다. 이에 아랑곳 하지 않는 아환은 머리채를 잡은 손을 놓고 양손으로 악서령의 허리를 잡은 다음 선채로 악서령을 들어올렸다 놓았다 했다.
아환의 양물이 악서령의 비처를 헤집고 들어갔다 나왔다 할때마다 악서령의 희뿌연 동체는 퍼득이면서 비부에서 선혈을 토해내었다. 풍만한 가슴이 출렁거렸다. 아환은 한입 가슴을 베어물고 입속에서 잘근 잘근 씹어대면서 악서령의 허리를 잡고 있는 손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아환의 검붉은 육봉이 새빨갛게 물들었고 바닥은 홍건히 피가 고여 있었다. 악서령의 비처에서 흘러나오는 핏줄기는 하얀 허벅지를 타고 흐르며 바닥에 선을 이으며 떨어졌다. 악서령의 상체가 힘을 잃고 아환의 허리를 잡은 하반신만 고정이 되어 뒤로 활처럼 젖혀졌다.
한참을 그렇게 손을 움직이며 악서령과의 합의된 정사가 아닌 단순히 여체를 이용한 자위를 즐기더니 아환은 마침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사정의 순간. 아환은 남근의 뿌리까지 최대한 악서령의 음부에 밀어넣은 다음 자신의 체액을 악서령의 깊숙한 곳에 쑤셔넣었다.
털퍼덕..
아환이 내팽기치듯 여체를 놓았다. 바닥에 널부러진 악서령의 갸녀린 육체. 조금전의 처참한 몰골을 말해주듯 전신 곳곳에 멍과 치흔, 교접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벌려진 다리사이에서는 아직도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으며 동그랗게 벌어진 음부의 구멍에서는 희뿌연 액체가 선홍빛의 피와 어울려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환은 그런 악서령을 쳐다보지도 않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악서령의 찢겨진 옷가지로 양물을 닦은다음 한쪽에 앉아 조식을 취하였다.
무림사화 중의 하나, 천향매화(天香梅花) 악서령이 순결을 잃어버린 호남성의 장사부근의 야산에는 무얼아는지 갖가지 산짐승들의 울음소리가 산 중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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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저를 비행기 태우지 마십시오. 어지럽습니다. 감당이 안되요..
제가 쓰는 수라기는 대하역사무협소설이 아닌 야!설! 입니다. 그냥 성격상 단순한 Sex만 묘사하기가 그래서 여러가지 연관 상황을 집어넣은 것인데..
개.콘의 청년백서가 생각나는군요.
"야설은 야설일뿐 기대하지 말자!"
서른을 훌쩍 넘은 나이의 평범한 가정의 남자입니다. 예전에 쓰려고 하였던 무협을 변형시켜 야설로 올립니다.
하나더. 아환은 결코 판타지의 세계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른 이들의 소설로도 충분할 듯..(하긴 무협도 일종의 판타지지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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