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수라기(獸羅記) 38번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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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의 대표적인 두 집단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히고 난리가 났다.
서가장과 은검문, 가히 장사의 세력을 좌지우지하던 문파들은 자신들의 손님이던 화산의 문도들이 납치, 실종되고 큰 부상을 입자 그 원인에 일조를 한만큼 서둘러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에 전 힘을 기울였다.
화산의 꽃이자 무림사화중의 일인인 악서령을 찾기위하여 수색대가 조직되어 근교를 샅샅이 뒤지는 가 하면 화산의 대표격인 목영근의 상세를 치유하고자 근처의 이름난 의원들을 초빙하여 목영근을 치료하고자 하였다. 심혈을 기울인 노력을 보여서 목영근은 어느 정도 회복의 기미가 보였지만 정작 중요한 천향매화는 오리무중이었다. 실종이 된지 벌써 오일 사단이 났어도 벌써 났을 기간이었다.
특히 서가장의 장주인 서회각과 은검문의 문주인 은검객(銀劍客) 은불학은 화산의 노기를 건들이지 않기 위하여 전력을 기울였다. 화산의 세력을 등에 업고 지금까지의 위세가 생긴만큼 화산이 자신들에게서 등을 돌리면 다른 세력과 연계를 맺지 않은 이상 호시탐탐 노려온 지방의 다른 세력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전 문도와 금력을 동원하여 동분서주하고 있는 참이었다.
객잔,
아환이 묵고 있었던 객잔에 여러 사람이 안색을 굳힌채로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하나같이 눈빛이 흉흉하고 서슬이 퍼런 것이 중대한 일이 벌어진 것을 언뜻 봐도 짐작케 했다.
"허!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천향매화는 무사한지.."
사십대의 중년의 사내가 입을 뗀다. 등에는 고색창연한 검을 멘 단단해 보이는 체격을 가진 사내,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 것이 독선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태양혈이 불쑥 올라와 있는 것이 꽤 무공을 정심하에 익힌 듯이 보였다.
"은 문주. 그러게 말이오. 이것 참. 제발 무사해야 할텐데.."
얼굴에 기름기가 반드르르 흐르는 금의 중년사내가 그 말을 받았다. 꽤 돈이 있어 보이는 집안의 사람으로 보이는 금의의 사내, 서가장주 서회각은 은검문주의 침중한 말에 동조를 하였다.
"벌써 닷새요. 닷새. 무슨 일이 벌어졌어도 벌써 벌어졌을 시간이요. 게다가 무림의 일절로 꼽히는 미모를 가진 여인이 아니오. 만일 큰일이 벌어졌다면..정말 큰일이 벌어질꺼요."
"낸들 그걸 모르겠소. 화산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한일, 이를 어쩌면 좋겠소?"
"일단 화산에 파발을 띄우는 것은 만류를 했지만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소. 제발 화산에서 알기전에 우리가 천향매화를 찾아야 할 것이오. 우리가 먼저 그를 찾는다면 화산에서도 천향매화의 명예때문이라도 일을 더이상 확대시키지는 않을 것이오.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요?"
"우리들이 이 일을 알고 있지 않소? 화산에서 그런 우리를 가만두겠소?"
"가만두지 않는다면..?"
"나도 그 이후는 어찌될지 모르겠소. 다만..아니오. 그것은 그렇고 목 소협은 어찌 되었소?"
"쉽진 않았지만 몇달후면 완쾌될 것으로 보이오. 허나 심중의 충격이 워낙 큰 상태라.."
"그것도 그렇겠지. 듣자하니 목소협이 천향매화를 사모하고 있었다던데 눈앞에서 천향매화가 납치되는 것을 보고 자신은 또 그런 그 놈에게 패했으니.."
"쉬! 말조심하시오. 혹시라도 화산의 귀에 그 말이 들어가면 우리도 좋은 꼴로만 남지는 않을 것이오."
두 장사의 거두(巨頭)가 이런 저런 근심을 하면서 객잔의 자리를 지키며 앉아 있을때였다.
"말씀도중에 죄송하지만 저..주문하시겠어요?"
두 사내의 주위에서 기웃기웃하던 작은 계집아이, 청청인지 홍홍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계집애가 우물쭈물하면서 의향을 물어보았다. 이 두 사람이 장사에서의 영향력을 잘 아는지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물어보았다.
자연스레 두사람의 시선이 꼬마 계집아이에게 향했다. 퉁퉁 부어올라 눈이 제대로 뜨여지지 않은 계집아이의 작은 얼굴이 보였다. 아환이 떠나고 난후 꽤 고초를 겪은 가 보다. 여기저기 상처가 얼굴과 몸에 가득하고 단벌의 옷은 거의 다 찢어져 동정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네 년이 그 마두하고 관련이 있다는 그 점소이 계집년이냐?"
차가운 말투가 은검문주 은불학에게서 흘러나왔다.
"예! 바로 이 년입니다."
그 옆에 서있던 칼을 찬 사내가 은불학의 말에 응답을 하였다.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 다름아닌 왕칠이었다. 은검문의 위세를 업고 장사의 뒷골목을 행세하다 동료인 장영이 아환에게 팔을 잃자 은검문에 거짓 보고를 하여 청청과 홍홍에게 심한 고초를 겪게 한 장본인이었다.
아환의 실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그는 은검문과 서가장, 그리고 화산의 문도가 나서면 모든 일이 잘 해결될 줄만 알았다. 미처 화산문도가 아환을 찾은 것을 모른 상태에서 객점에 들이닥쳐 아환이 없자 청청과 홍홍에게 그 분풀이를 하였다. 그결과 청청은 몸이 회복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 다시금 앓아 누웠고 홍홍만이 객점에서 수발을 들고 있는 중이었다.
"네 이년!"
은불학이 손을 뻗쳐 홍홍의 멱살을 잡아 틀어 위로 쳐들었다. 마르고 앙상한 어린 계집아이는 은불학의 힘에 끌려 올라가 위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켁...켁..나으리..왜 이런..큭..끄르륵.."
새빨개진 얼굴을 해가지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은불학의 두툼한 손을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는 홍홍이 안스럽다. 하나 일말의 인정도 없는지 은불학은 손을 흔들며 홍홍을 다그쳤다.
"이 발칙한 년. 어서 실토를 하지 못하겠는가? 그 흉악무도한 마두가 어디있는지 바른대로 불란 말이다. 어서 불어라!"
"케켁..전..모르..켁.."
홍홍이 결사적으로 고개를 흔들며 부인을 하였지만 은불학의 귓가엔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제 열살도 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가 무림인의 거친 손길에 핍박을 받고 있지만 그 누구하나 은불학을 말리는 이가 없었다. 주인조차 계산대에서 오들오들 떨며 애써 눈길을 다른데로 돌리며 외면을 하고 있었다.
'저 년들을 당장 내보내야지. 저 애물단지들..저 빌어처먹을 잡년들..아유..'
핑!
"크윽."
갑자기 은불학이 홍홍을 잡고 있던 손을 움켜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은불학은 팔을 주무르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 곳에는 자그마한 자갈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문밖에서 날아온 자갈은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와 은불학의 팔꿈치에 적중이 되었고 그 충격으로 은불학은 손에 잡고 있던 홍홍을 놓쳤다.
자갈에 진기가 실려있지 않았고 외가무예로 단련된 육체이니만큼 외상은 입지 않았으나 상당한 통증이 팔에 느껴졌다. 은불학은 눈을 부라리며 돌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왠 놈이냐?"
은불학의 눈길이 시커먼 그림자가 막 들어오는 객점의 정문을 향해 고정이 되었다. 거대한 체구를 가진 한 사람이 막 객잔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환이었다.
은불학은 객점 안으로 들어선 아환을 노려보았다. 차츰 그 눈가에 증폭되는 살기가 어렸다. 칠척장신의 짙은 구릿빛 피부를 가진 외가 무사로 보이는 사내가 객잔의 정문을 막고 서있자 빛살의 음영때문에 그 용모를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하여도 이 놈이 바로 그 마두란 것을 알기엔 충분했다.
"네 이놈! 네놈이 그 흉악무도한 마두냐? 비열한 수법으로 화산의 문도를 부상입히고 천향매화를 납치한 놈이 네 놈이더냐?"
"비열한 수법?"
"이놈! 그렇지 않다면 네놈따위가 어찌 고명한 화산의 제자를 감당할수 있겠느냐? 어서 이리 와서 목을 길게 빼내어 어르신의 처분을 기다려라."
"왜 명문대파의 사람이 지는 경우는 비겁한 암수에 당했다 생각하는 지 모르겠군."
"이 놈이? 에잇!"
창!
은불학은 검을 빼어들었다. 찬연한 은빛이 감도는 보검이었다. 화산의 문도가 당했다기에 내심 긴장을 많이 하였던 은불학은 아환의 모습을 보자 그러한 생각이 별 쓸모 없었다고 여겼다. 그도 그럴것이 아환의 지금 차림이나 외양이 외가계열의 무사나 다름 없었기에 강호의 밥을 어느 정도 먹었다 자부하는 은불학으로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
종종 무림에서는 자신보다 무예가 터무니 없이 낮은 이들에게 패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도 내가고수가 외가의 하류무사에게 어이없이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경륜의 차이일수도 있었고 내기의 순환이나 기타 다른 이유로 인하여 낭패를 보기도 하였다. 은불학 역시 강호에서 나름대로 행보를 했기에 목영근이 비록 화산의 영재이며 무림의 후지기수중 손꼽힌다고 하나 아환을 얕보고 패배를 하였다고 생각했다. 관자놀이가 불룩 솟아있는 모습을 보면 그런 심중이 더욱 굳혀졌다. 하지만 은불학은 방심을 하지는 않고 은검을 뽑은채 아환을 노려보았다.
그런 은불학을 별다른 감정이 실리지 않은 듯 덤덤하게 노려보는 아환, 그의 내심은 어린 홍홍에게 무력을 행사한 이들에게 대한 분노가 서려있었지만 표출되지는 않았다. 단지 등의 검은 칼을 빼내어 앞으로 돌려 비스듬히 세울뿐.
거대한 칼의 위용에 잠시 움찔하던 은불학은 병기가 크다고 하여 고수가 아니라는 것은 강호의 삼척동자도 아는지라 심기를 가다듬고 검을 곧추세웠다.
"천향매화는 어찌 했는가? 이실직고 하거라. 이놈!"
"천향매화? 그게 누구지?"
"네 이 패악한 마귀같은 놈아. 네가 납치해간 여협말이다. 당장 솔직히 고하지 않을테냐?"
"아! 그 여자? 모르겠는데..그때 납치할려다 그 계집이 도망을 가는 바람에 나도 그년을 찾을려고 여기저기를 뒤지던 참이었소. 혹시 그대는 그 계집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오?"
"이놈! 거짓말 말아라. 네 놈이 틀림없이 천향매화를 어찌 했지 않느냐?"
"아니라고 했지 않소. 혹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오?"
천연스럽게 거짓을 말하는 아환에 더더욱 화가나는 은불학은 마침내 급기야 노기가 충천하여 잡아먹을듯 아환을 노려보았다.
"이런 이 미친 악마같은..네 이놈! 정말 쓴맛을 봐야겠구나."
"쓴맛이라..어떤 것이 쓴맛이지?"
"여기서 무릎을 꿇을테냐? 아니면 순순히 따라와 은검문에서 죄를 받을테냐?"
아환이 대답없이 도신을 눕혀 도면을 은불학의 정면에 보이게 하였다. 은검문의 다른 사람들이나 서회각을 비롯한 기타 사람들은 주위에 물러서서 이어질 한바탕의 결전을 기다렸다.
"내 검을 받아라! 이 마두야!"
은색선이 길게 호선을 그리며 아환을 향해 날아왔다.
캉!
도신을 살짝 비틀어 그 검을 튕겨낸 아환, 은불학이 튕겨진 은검을 회수하고 신형을 돌려 재차 검을 뻗치려고 할때.
'건곤의 쾌!'
아환의 칼이 일순 시야에서 사라졌다.
투두둑..쿵.
땅에 무언가가 연이어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끄아악!"
내장을 후벼파내는 듯한 비명이 장내를 뒤흔들고 은불학의 몸이 객잔의 바닥에 거세세 떨어져 내렸다. 은불학의 무릎 밑부분이 잘려져 나가 시뻘건 핏줄기가 사방으로 비산하였다. 떨어진 양쪽 다리는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은불학은 피를 뒤집어 쓴채로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바닥에서 바둥거리고 있었다. 단 일식. 초식을 전개한 것도 아닌 빠른 도의 놀림에 수십년을 강호에서 행보한 한 무사의 삶이 끝났다.
아환은 칼을 거두고 바닥에 내려 세운다음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은검문과 서가장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대경실색한 표정이었다. 곧 그 표정은 두려움과 질린 기색으로 변하였고 동요가 일어났다.
"네...네...네놈...네놈이 감히 문주님을.."
"아앗! 문주님!"
"어엇. 은문주.."
은검문도들의 호들갑스러움에 비해 서가장의 인물들은 놀라고 두려워하기는 하였지만 서가장에는 피해가 오지 않았기에 가공할 무위를 드러낸 아환과 적대시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데리고 꺼져라."
짧은 말이 아환의 입에서 뱉어졌다.
원독의 시선으로 아환을 노려보던 은검문도들이 이를 바드득 갈면서 일부는 은검문주를 부축하고 객잔을 빠져나갔으며 일부는 그런 문도를 보호하려는지 칼을 빼어들고 경계를 하였다.
"잠깐."
아환의 칼이 수평으로 들려 한 문도의 목근처에 와닿았다. 막 물러서려던 왕칠은 거대한 검은빛을 내는 칼이 자신의 목어림에 와닿자 기겁을 하고는 그 자리에 멈추어섰다.
"왜..왜 이러시는 게요. 금..금방 떠나라 하지 않았소?"
"네 놈이 저 어린 계집아이를 저렇게 만들었나?"
아환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리던 왕칠은 그 시선의 끝에 있는 홍홍을 보자 안색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지난번에도 왕칠의 패거리들이 어린 계집아이를 희롱하다가 험한 꼴을 당했는데 이번에도 또 저 계집년때문에 어렵게 되었다 싶었다.
"저 꼬마 계집하고 무슨 상관이오? 무슨 상관이 있길래 이리 하는 거요?"
두려움에 가득한 음성.
아환 또한 자신이 왜 이리 분노하는 지 잘 몰랐으나 다만 어렸을때의 자신이 겪었던 설움이 저 어린 계집을 통하여 비추어지는 듯하여 화가 났을거라 생각이 되었다. 만일 곱게 자란 명문세가의 자식이라면 이토록 화내지 않았으리라. 허나 힘없는 약자인 홍홍이 강한 자에게 밟히는 것을 보니 분노가 치밀었다. 게다가 시선을 홍홍에게 향하자 당장 눈에 띄는 처참한 몰골이 더더욱 화를 부채질하였다.
"상관? 없지. 그럼 너희들은 왜 저 계집아이를 괴롭히는 거지?"
"그야..그것은..그러니까.."
"재미로 그랬나? 약한 자가 밟혀 꿈틀거리는것이 그리 재미있고 흥미로왔던가? 좋아. 나도 그런 재미를 한번 알아보지."
퍽!
칼을 거두면서 주먹을 말아쥐고 왕칠의 아랫배를 후려쳤다.
"쿠웍!"
눈이 튀어나올듯 부릅뜨여지고 상체가 굽혀졌다.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이 되었고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다가 이어서 극심한 아픔이 찾아왔다.
"으어억!"
쓰러질려는 왕칠의 뒷춤을 잡아드는 아환의 커다란 손.
"아직..아직..재미가 막 생길려는데.."
퍼억!
"끄어어억.."
똑같은 부위에 주먹이 다시 날라갔다. 왕칠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고통이 밀려오자 신음소리도 뱉지 못하고 입만 딱 벌린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약간의 피가 속에서 올라와 입가로 흘러내렸다. 내장에 상처를 입은 모양이었다.
"호오..재미있는데."
퍽!
"우어어.."
분수같이 핏줄기가 입에서 뿜어져 나와 바닥에 퍼졌다. 속을 뒤흔들어 갖가지 오물과 함께 왕칠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선연한 피뭉치가 울컥울컥 흘러나왔다. 왕칠의 눈이 빛을 잃었다.
아환은 그런 왕칠을 잡고 있던 손을 떨치듯 놓고 던져버렸다.
"어이쿠.."
은검문도들이 왕칠이 날아오자 무의식적인 반사로 받은후 뒤로 넘어졌다. 재빨리 일어난 은검문도들이 왕칠을 안고 객잔 밖으로 사라졌다.
아환은 은검문도들이 떠나자 눈을 돌려 객잔안을 둘러보았다. 파리하게 질린 안색을 한 몇몇의 사람들이 발이 얼어붙은듯 객잔 안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아환의 눈치만을 볼뿐이었다. 그 중 서가장주인 서회각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진바 금력은 대단하여서 호남성의 상권을 뒤흔들만큼 재력은 가지고 있었지만 무공에 관한한 백지나 다름이 없었다. 그에 한이 맺혀 화산에 거금을 투자하고 자식을 입문시켰는데 앞의 이 덩치 큰 놈에게 당해 앓아 눕고 있으니 속에서 천불이 났다. 더구나 믿었던 은검문주 마저 제대로 붙어 보지도 못하고 저렇게 병신이 되어 나갔다. 두려움과 원한이 교차하였다.
아환의 눈빛이 와닿자 움찔, 몸이 떨렸다.
'왠 놈의 눈매가 저리..'
"내게 볼일이 있소?"
절로 고개가 좌우로 세차게 흔들렸다.
"아니오. 절대 없소. 그런것 절대 없소."
"계속 이 객잔에 있을거요?"
"이만 나가봐도 되겠소?"
아환이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살았다는 기분이 들은 나머지 사람들은 안도감에 속을 쓸어내리고 객잔밖으로 하나 둘 나갔다. 아환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 구석의 자리에 앉았다.
"이보시오. 주인장."
아환이 시장기를 느끼는지 배를 쓰다듬으며 객점 주인을 불렀다. 객점 주인이 계산대 뒤에 떨고 있다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요. 무사님."
"간단하게 안주와 술 좀 주시게."
"예 예, 알았습니다요. 예 홍..아니지, 얘야. 주문이 나왔으니 어서 주방에 들어가 준비하여라."
홍홍을 괴롭히던 왕칠이 치도곤이 났던 것이 생각나자 식은 땀을 흘리며 홍홍에게 주문을 하였다. 홍홍은 영문도 모르고 주인이 부드러워 지자 고개를 갸웃하였지만 머리를 까닥이고 절을 한후 주방으로 뛰다시피 들어갔다.
"아니, 주인장. 최고급 술상으로 한번 봐주게."
아직까지 문앞에서 서성이던 서가장주 서회각이 입술을 꼭 깨물며 무언가를 생각하다 계산대의 주인에게 새로 주문을 하였다. 객점주인은 아직 서회각이 가지 않았냐는 듯 힐끗 쳐다보다 그 말뜻이 무언가 잘 접수가 되지 않은 듯 했다.
"저 무사님의 술상 말일세. 내가 부담함세."
서회각은 주인에게 주문을 마친후 천천히 발을 옮겨 아환의 탁자 옆에 다가갔다. 아환은 서회각이 옆에 다가왔으나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서회각은 안색을 가다듬고 금새 빙긋이 웃는 낯으로 아환에게 말을 건네었다.
"무사님. 같이 앉아도 되겠소?"
"앉으시오."
"어이구..참 날씨가 변덕스럽소이다. 얼마전까지 후덥하더니 이젠 제법 싸늘한 기운이 돌지요."
막 가을로 접어들려는 시기이기에 아침 저녁으로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아들이 다치고 정혼한 집안이 풍지박산이 났고 든든한 배경인 화산 까지도 사단이 났지만 천성이 상인이라서 그럴까? 웃음기도는 얼굴로 부드럽게 말을 꺼내었다.
"무사님은 고향이 어디시오? 어투를 들어 보아하니 남쪽 인것두 같구 북쪽인것두 같구..허! 종잡을 수 없구려.."
아환이 부모를 잃고 떠돌면서 여러 지방을 전전한지라 어투 역시 혼합된 어투가 흘러나왔다.
"용건을 말하시오."
아환이 서회각의 눈을 직시하고 또박 또박 한자 한자 내뱉었다. 그런 아환의 시선이 눈에 들어오자 흠칫 하던 서회각 이내 얼굴 빛을 정색하며 진지하게 말을 꺼내었다.
"무사님은 혹시 소속이 있으시오? 만약 속해 있는 곳이 없으면 서가장에 한번 몸담아 보시는 게 어떻소. 내 섭섭치 않게 대우를 해드리리다."
"...."
아무 말 없이 아환의 눈이 서회각의 눈에 맞추어진 상태 그대로 아환은 서회각의 말을 듣기만 하였다.
"황금을 원하면 원하는 대로 밀어주겠소. 여자를 원한다면 절색의 처녀를 붙여주겠소. 무공비급을 원한다면 그것도 사주겠소. 서가장에 소속되어 있다고 해도 내 명령을 따르거나 할 필요는 없소. 단지 서가장에 그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가장은 이 곳 장사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거요. 어떻소. 내 제안이?"
"무엇이든지 해준다...무엇이든지..이보시오. 내가 그쪽의 식구들을 다치게 하였는데도 개의치 않고 나와 손을 잡겠다는 거요?"
"나는 상인이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어든 할 수 있소. 내 아들놈이 당신에게 큰 부상을 입어 몸져 누웠지만 그것보다는 돈이, 내 사업이 우선이오. 어떻소.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받아들일 생각없소. 그만 가보시오."
아환이 차갑게 말을 끊었다. 그래도 뭔가 할말이 남아 있는지 서회각이 미적미적거린다.
음식이 나왔다. 한상 푸짐하게 차려 왔다고 해봤자 제육을 볶은 거와 오리고기, 송화단 등과 몇가지 생선요리가 나왔다. 하기야 이런 작은 객잔에서 잘 차려봤자 뭐 그리 대단한게 있을리 없다.
"드시오. 어이구, 이거 끼니를 걸렀더니 배가 고프구만.."
서회각은 아환에게 저를 권한다음 자시도 수저를 들고 음식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더니 게걸스럽게 여러 음식을 입에 가져가 맛있게 먹었다. 아환은 음식이 나왔지만 손을 대지 않고 묵묵히 음식을 쳐다 보고 있었다.
조금 혼란스러웠다. 분명 자신과 원한이 있다면 있을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앞 자리에 앉아 저렇게 태연스럽게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인의 삶이라는 것 자체가 아환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았고 서충을 비롯한 서가장의 사람들과 마찰이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더군다나 이 앞의 인물은 은불학을 벨때 파랗게 질려 한구석에서 오들오들 떨지 않았던가?
"내게 원하는 것이 뭐요?"
일단 부딪히자.
서회각이 음식을 가져가던 손을 멈추곤 아환을 바라 보았다.
"날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오. 그대 덕분에 내가 기대했던 방패가 날아갔소. 명문정파라고 으시대는 화산을 잡기 위해 내가 얼만큼 돈을 투자를 하였는지 모를거요. 그대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간에 그로 인하여 내가 입은 피해가 막심하오. 그렇다고 그 피해를 보상해달라는 말은 아니오. 또 내가 그대를 구속하겠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오. 단지 내가 원하는 것은 그대가 차후에 나를 도와줄수 있을때 도와달라는 것이오. 이래뵈도 내가 사람을 약간을 볼줄 아오. 그대에게선 내가 여태까지 겪지 못하였던 기세가 풍기오. 나는 무림인이 아니라 그게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대가 거성(巨星)이 될 거라는 추측, 아니 확신이 있소. 게다가 현 그대의 무위가 현 무림의 후지기수 중 으뜸이라 칭하는 사화와 칠룡을 제압한 것으로 보아 이미 경지에 들어섰다 여겨지오. 언뜻 보기에도 그대는 약관 정도의 나이,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보오."
"거성? 거성이라.."
"그렇소. 비록 내가 아직 강호에서 별볼일 없는 삼류급의 상인이지만 세력을 넓히기엔 무력이 필요하오. 그것도 절실하게..혹시 그대는 황금벌이라고 아시오?"
"황금벌?"
"못들어본 모양이구료. 황금벌은 강북의 상인들의 연합단체요. 아직 표면화되있지는 않지만 강북의 상권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있는 장막속의 세력이오. 그 힘이 강남상권에 포착된것이 불과 몇개월전인데 이미 강남의 상권을 상당부분 잠식한 상태요."
아환은 서회각의 말에 관심을 기울였다. 다름아닌 상계의 판도는 곧 무림의 판도와도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차후 아환이 무림을 행보할때 반드시 얻어야할 힘 역시 재력이었기에 아환은 서회각의 설명을 묵묵히 경청하였다.
"그대는 강남의 상인들은 왜 그런 결집을 하지 않는가 하고 물을 지도 모르오. 바로 거기에 무력이 개입된 흔적이 보이오. 얼마전부터 강남의 상권을 잡고 있는 몇몇 거상들이 하나둘 제거 되었소. 명목상으로는 지병이나 급사로 되어있지만 암살을 당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이오."
아환은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서회각이 말하는 것 자체가 기밀일 수 있었고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될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지 않소?"
"그대는 내가 괜히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시오?"
"...?"
"이게 연결고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시오? 난 이미 내 속을 그대에게 보였소이다. 하나더 패를 보여 드리지. 내 재산을 원하는 만큼 쓰도록 해드리겠소. 내가 세력은 미약하지만 가진 재산은 적지 않소. 현 중원의 상인 중 나보다 금력이 많은 인물이나 세력은 그리 많지 않을거요."
아환이 서회각을 빤히 쳐다보았다. 서회각의 심중을 읽고 싶었다.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이길래 이런 솔깃한 조건을 저렇게 쉽게 내뱉는 것일까? 그러나 아환은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연륜이나 경험상 아환은 남을 판단하기에 미욱한 점이 많았다. 그렇게 서로를 뚫어지게 쳐다보기를 꽤 오랫동안 하던 두사람, 마침내 아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난..당장 그리 할 수 없소. 내가 배울 것이 있어서요. 앞으로 내가 무림에서 활동을 할려면 장주의 힘이 필요로 할지도 모르오. 허나 여기서 장주를 도우며 멈출 수는 없소. 장주가 말한 것은 뇌리 속에서 지워버리도록 하겠소."
"그럴 필요 없소."
"..?"
"오년을 기다리겠소. 내 나이 마흔 여섯, 아직 젊은 나이오. 비록 그대가 내 숙질뻘 밖에 되지는 않지만 동업자로서 말을 하겠소. 앞으로 오년 후 나를 도와주시오. 물론 내가 말한 조건은 지금부터 적용될 것이오."
서회각은 품에 손을 넣더니 전표다발을 꺼내들고는 아환에게 건네었다.
"더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시오."
일견 보아도 꽤 거액이 내밀어졌다. 아환은 그 돈을 물끄러미 쳐다 보다가 입을 떼었다.
"내가 원하는 사람에게 이 전표를 줄수 있겠소?"
"그 전표는 이미 그대의 것이오. 그대가 어찌 처리하든 이미 그것은 그대의 소관, 내게 허락을 구할 필요 없소."
"내 것이라..이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장주와의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이겠군."
아환은 전표를 묵묵히 쳐다보다가 품에 전표를 집어 넣었다. 그것을 보는 서회각의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계약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대가 배울 것은 무언지 말해줄수 있겠소?"
"글쎄..나도 그게 무언지는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의 나의 독보(獨步)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 정도 밖엔 뭐라 말하기가 그렇소."
"독보? 독보라 하시었소? 지금."
아환이 특유의 감정이 실리지 않는 시선으로 서회각을 바라보았다. 서회각은 그 눈에 실린 아환의 내심을 파악하려 집중을 하였지만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과욕을 한것은 아닌지.."
뜻모를 말이 뱉어졌다. 그러면서 서회각은 앞에 있는 저를 다시 들고 차디차게 식어버린 음식에 가져가서 음식을 집어 올렸다. 아환 역시 식어 맛이 없는 식사지만 아무 말없이 배에 음식을 채워넣었다.
밤이 깊어졌다.
이경쯤 되었을까? 주위사방이 모두 깜깜한 어둠으로 덮여있고 간간히 새어나오는 호롱불빛이 그 주위만 미약하게 비추고 있는 밤이었다.
아환은 무상심결의 대주천 운기를 마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눈을 뜨니 뇌전이 뻗어나갔다. 화경의 단계에 접어들어서도 매일매일 운기를 거르지 않았다. 근래에는 외가의 수련을 가끔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을 하였다. 그랬을 경우에는 반드시 내기를 일주천하고 명상에 들어 무아지경에 접어들었다. 체내의 음양신단은 상당 부분이 용해되어 내기의 증진에 커다란 일조를 하고 있었다. 아직 많은 부분이 남아 있긴 하지만 아환 스스로의 예상이나 사부인 비왕의 일러준 말과는 달리 진도가 꽤 빠른 듯했다.
아환은 근래에 들어 건곤형에 대한 심도 있는 사고를 많이 하였다. 이제 육성가량의 성취를 하였을까? 아환은 건곤형의 무공 특성상 타무공과 융화되는 건곤형의 무리를 자신이 여태까지 익혀온 무예와 병합하여 세가지의 기세를 중점적으로 익혀나갔다.
쾌(快)! 붕(崩)! 그리고 화(化)의 세가지 기본의 원리에 충실한 기세로 닦아나갔다. 빠르고 강렬하고 어울리는 세를 정립화 시킬려고 노력하였다. 허나, 아환이 화경에 진입하면서 깨달은 '나(我)'라는 각성은 아환으로 하여금 얽매이지 않토록 아환을 자유롭게 하였다. 아환은 문득 문득 수련을 하다가 틀에 갇히는 자신을 돌아보고 되돌리다가 혹은 그냥 그 틀에 자신을 맡기곤 하였다. 검후 역시 진경에 도달해서야 '나'라는 것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아환이 진경의 단계에 접어든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서 아환은 혼란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고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하나가 머리를 들었다. 그렇게 하나하나의 실타래를 풀었다.
똑똑..
창가에서 창문을 살살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조용히 창문이 열리고 하얀 그림자 하나가 객실로 들어왔다. 여인, 얼굴을 면사로 가리고 머리는 우아하게 틀어 올려 기품이 있어 보였다. 흰빛의 비단 궁장에 가려 여인의 다른 부위는 볼수 없었으나 갸녀리고 아름다룬 교수가 궁장의 밖에 나와 있어 이 여인의 피부빛과 살갖의 부드러움 그리고 이 여자의 다른 부위의 미색을 약간이나마 추측하게 하였다.
"벗어."
여인은 아환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면사로 손을 가져갔다.
"면사는 놔두고."
손을 얼굴에서 떼더니 여인은 외의를 벗고 저고리로 손을 가져가 옷고름을 풀어 저고리를 고운 몸에서 벗어내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하얀 살덩이..여인은 원래 내고를 입지 않았는지 상류층의 의복중의 저고리만 벗었는데도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풍만한 두 젖가슴위의 유실이 여체의 움직임에 따라 위아래로 흔들렸다.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싶더니 스르르 치마가 아래로 내려갔다. 곧게 내려 뻗은 절색의 우윳빛 기둥이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시선을 위로 올리니 무릎이, 알맞게 살집이 오른 허벅지가, 그리고 두 다리가 만나는 곳에서의 갈라짐..연한 수풀에 덮여있는 붉은 아랫 입술이 삐져나올듯 다리사이에서 고개를 살짝 내밀고 있었다. 그 수풀위로....붉은 글씨, '용(用)'
"이리와!"
여인, 악서령은 면사를 쓴채로 아환의 가까이 다가갔다. 자연스레 손은 늘어뜨린채 발가벗은 알몸이 아환의 눈앞에 훤한데도 가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아래로."
악서령은 아환의 말이 떨어지자 아환의 바지춤을 끌러 내렸다. 언제나 그렇듯 위풍당당한 검붉은 살덩이가 우뚝 솟아있다. 악서령은 면사를 살짝 들고는 아환의 육봉을 입에 넣었다. 그리곤 핥고 빨고...한 손으로는 아환의 남근을 잡고 있고 다른 한손은 어느새 자신의 비처사이에서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한참 아환의 아랫도리를 입으로 즐겁게 해주던 악서령이 아환의 양물에서 입을 떼고는 몸을 일으켜 하체를 아환의 남근근처에 가져가 대었다. 홍건한 물기에 젖어 호롱불빛에 번들거리는 악서령의 비부..그 위의 '용'
장사의 또 하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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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늦게 되네요. 요즈음 제가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어서..회사 사람들의 눈치도 보이고..
이렇게 가다간 주 2회로 연재를 하루 줄여야 할지도..
아직 반도 가지 않았는데 많이 지치네요. 연재 중단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그만 쓰라고 하시기 전까지는 계속 이어갈께요.
어쩌다 하루 올리지 못하게 되어도 양해하시길..
부지런히 복선을 깔아야 3부에서 무리한 설정을 하지 않을텐데요..에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사의 대표적인 두 집단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히고 난리가 났다.
서가장과 은검문, 가히 장사의 세력을 좌지우지하던 문파들은 자신들의 손님이던 화산의 문도들이 납치, 실종되고 큰 부상을 입자 그 원인에 일조를 한만큼 서둘러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에 전 힘을 기울였다.
화산의 꽃이자 무림사화중의 일인인 악서령을 찾기위하여 수색대가 조직되어 근교를 샅샅이 뒤지는 가 하면 화산의 대표격인 목영근의 상세를 치유하고자 근처의 이름난 의원들을 초빙하여 목영근을 치료하고자 하였다. 심혈을 기울인 노력을 보여서 목영근은 어느 정도 회복의 기미가 보였지만 정작 중요한 천향매화는 오리무중이었다. 실종이 된지 벌써 오일 사단이 났어도 벌써 났을 기간이었다.
특히 서가장의 장주인 서회각과 은검문의 문주인 은검객(銀劍客) 은불학은 화산의 노기를 건들이지 않기 위하여 전력을 기울였다. 화산의 세력을 등에 업고 지금까지의 위세가 생긴만큼 화산이 자신들에게서 등을 돌리면 다른 세력과 연계를 맺지 않은 이상 호시탐탐 노려온 지방의 다른 세력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전 문도와 금력을 동원하여 동분서주하고 있는 참이었다.
객잔,
아환이 묵고 있었던 객잔에 여러 사람이 안색을 굳힌채로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하나같이 눈빛이 흉흉하고 서슬이 퍼런 것이 중대한 일이 벌어진 것을 언뜻 봐도 짐작케 했다.
"허!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천향매화는 무사한지.."
사십대의 중년의 사내가 입을 뗀다. 등에는 고색창연한 검을 멘 단단해 보이는 체격을 가진 사내,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 것이 독선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태양혈이 불쑥 올라와 있는 것이 꽤 무공을 정심하에 익힌 듯이 보였다.
"은 문주. 그러게 말이오. 이것 참. 제발 무사해야 할텐데.."
얼굴에 기름기가 반드르르 흐르는 금의 중년사내가 그 말을 받았다. 꽤 돈이 있어 보이는 집안의 사람으로 보이는 금의의 사내, 서가장주 서회각은 은검문주의 침중한 말에 동조를 하였다.
"벌써 닷새요. 닷새. 무슨 일이 벌어졌어도 벌써 벌어졌을 시간이요. 게다가 무림의 일절로 꼽히는 미모를 가진 여인이 아니오. 만일 큰일이 벌어졌다면..정말 큰일이 벌어질꺼요."
"낸들 그걸 모르겠소. 화산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한일, 이를 어쩌면 좋겠소?"
"일단 화산에 파발을 띄우는 것은 만류를 했지만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소. 제발 화산에서 알기전에 우리가 천향매화를 찾아야 할 것이오. 우리가 먼저 그를 찾는다면 화산에서도 천향매화의 명예때문이라도 일을 더이상 확대시키지는 않을 것이오.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요?"
"우리들이 이 일을 알고 있지 않소? 화산에서 그런 우리를 가만두겠소?"
"가만두지 않는다면..?"
"나도 그 이후는 어찌될지 모르겠소. 다만..아니오. 그것은 그렇고 목 소협은 어찌 되었소?"
"쉽진 않았지만 몇달후면 완쾌될 것으로 보이오. 허나 심중의 충격이 워낙 큰 상태라.."
"그것도 그렇겠지. 듣자하니 목소협이 천향매화를 사모하고 있었다던데 눈앞에서 천향매화가 납치되는 것을 보고 자신은 또 그런 그 놈에게 패했으니.."
"쉬! 말조심하시오. 혹시라도 화산의 귀에 그 말이 들어가면 우리도 좋은 꼴로만 남지는 않을 것이오."
두 장사의 거두(巨頭)가 이런 저런 근심을 하면서 객잔의 자리를 지키며 앉아 있을때였다.
"말씀도중에 죄송하지만 저..주문하시겠어요?"
두 사내의 주위에서 기웃기웃하던 작은 계집아이, 청청인지 홍홍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계집애가 우물쭈물하면서 의향을 물어보았다. 이 두 사람이 장사에서의 영향력을 잘 아는지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물어보았다.
자연스레 두사람의 시선이 꼬마 계집아이에게 향했다. 퉁퉁 부어올라 눈이 제대로 뜨여지지 않은 계집아이의 작은 얼굴이 보였다. 아환이 떠나고 난후 꽤 고초를 겪은 가 보다. 여기저기 상처가 얼굴과 몸에 가득하고 단벌의 옷은 거의 다 찢어져 동정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네 년이 그 마두하고 관련이 있다는 그 점소이 계집년이냐?"
차가운 말투가 은검문주 은불학에게서 흘러나왔다.
"예! 바로 이 년입니다."
그 옆에 서있던 칼을 찬 사내가 은불학의 말에 응답을 하였다.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 다름아닌 왕칠이었다. 은검문의 위세를 업고 장사의 뒷골목을 행세하다 동료인 장영이 아환에게 팔을 잃자 은검문에 거짓 보고를 하여 청청과 홍홍에게 심한 고초를 겪게 한 장본인이었다.
아환의 실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그는 은검문과 서가장, 그리고 화산의 문도가 나서면 모든 일이 잘 해결될 줄만 알았다. 미처 화산문도가 아환을 찾은 것을 모른 상태에서 객점에 들이닥쳐 아환이 없자 청청과 홍홍에게 그 분풀이를 하였다. 그결과 청청은 몸이 회복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 다시금 앓아 누웠고 홍홍만이 객점에서 수발을 들고 있는 중이었다.
"네 이년!"
은불학이 손을 뻗쳐 홍홍의 멱살을 잡아 틀어 위로 쳐들었다. 마르고 앙상한 어린 계집아이는 은불학의 힘에 끌려 올라가 위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켁...켁..나으리..왜 이런..큭..끄르륵.."
새빨개진 얼굴을 해가지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은불학의 두툼한 손을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는 홍홍이 안스럽다. 하나 일말의 인정도 없는지 은불학은 손을 흔들며 홍홍을 다그쳤다.
"이 발칙한 년. 어서 실토를 하지 못하겠는가? 그 흉악무도한 마두가 어디있는지 바른대로 불란 말이다. 어서 불어라!"
"케켁..전..모르..켁.."
홍홍이 결사적으로 고개를 흔들며 부인을 하였지만 은불학의 귓가엔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제 열살도 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가 무림인의 거친 손길에 핍박을 받고 있지만 그 누구하나 은불학을 말리는 이가 없었다. 주인조차 계산대에서 오들오들 떨며 애써 눈길을 다른데로 돌리며 외면을 하고 있었다.
'저 년들을 당장 내보내야지. 저 애물단지들..저 빌어처먹을 잡년들..아유..'
핑!
"크윽."
갑자기 은불학이 홍홍을 잡고 있던 손을 움켜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은불학은 팔을 주무르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 곳에는 자그마한 자갈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문밖에서 날아온 자갈은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와 은불학의 팔꿈치에 적중이 되었고 그 충격으로 은불학은 손에 잡고 있던 홍홍을 놓쳤다.
자갈에 진기가 실려있지 않았고 외가무예로 단련된 육체이니만큼 외상은 입지 않았으나 상당한 통증이 팔에 느껴졌다. 은불학은 눈을 부라리며 돌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왠 놈이냐?"
은불학의 눈길이 시커먼 그림자가 막 들어오는 객점의 정문을 향해 고정이 되었다. 거대한 체구를 가진 한 사람이 막 객잔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환이었다.
은불학은 객점 안으로 들어선 아환을 노려보았다. 차츰 그 눈가에 증폭되는 살기가 어렸다. 칠척장신의 짙은 구릿빛 피부를 가진 외가 무사로 보이는 사내가 객잔의 정문을 막고 서있자 빛살의 음영때문에 그 용모를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하여도 이 놈이 바로 그 마두란 것을 알기엔 충분했다.
"네 이놈! 네놈이 그 흉악무도한 마두냐? 비열한 수법으로 화산의 문도를 부상입히고 천향매화를 납치한 놈이 네 놈이더냐?"
"비열한 수법?"
"이놈! 그렇지 않다면 네놈따위가 어찌 고명한 화산의 제자를 감당할수 있겠느냐? 어서 이리 와서 목을 길게 빼내어 어르신의 처분을 기다려라."
"왜 명문대파의 사람이 지는 경우는 비겁한 암수에 당했다 생각하는 지 모르겠군."
"이 놈이? 에잇!"
창!
은불학은 검을 빼어들었다. 찬연한 은빛이 감도는 보검이었다. 화산의 문도가 당했다기에 내심 긴장을 많이 하였던 은불학은 아환의 모습을 보자 그러한 생각이 별 쓸모 없었다고 여겼다. 그도 그럴것이 아환의 지금 차림이나 외양이 외가계열의 무사나 다름 없었기에 강호의 밥을 어느 정도 먹었다 자부하는 은불학으로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
종종 무림에서는 자신보다 무예가 터무니 없이 낮은 이들에게 패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도 내가고수가 외가의 하류무사에게 어이없이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경륜의 차이일수도 있었고 내기의 순환이나 기타 다른 이유로 인하여 낭패를 보기도 하였다. 은불학 역시 강호에서 나름대로 행보를 했기에 목영근이 비록 화산의 영재이며 무림의 후지기수중 손꼽힌다고 하나 아환을 얕보고 패배를 하였다고 생각했다. 관자놀이가 불룩 솟아있는 모습을 보면 그런 심중이 더욱 굳혀졌다. 하지만 은불학은 방심을 하지는 않고 은검을 뽑은채 아환을 노려보았다.
그런 은불학을 별다른 감정이 실리지 않은 듯 덤덤하게 노려보는 아환, 그의 내심은 어린 홍홍에게 무력을 행사한 이들에게 대한 분노가 서려있었지만 표출되지는 않았다. 단지 등의 검은 칼을 빼내어 앞으로 돌려 비스듬히 세울뿐.
거대한 칼의 위용에 잠시 움찔하던 은불학은 병기가 크다고 하여 고수가 아니라는 것은 강호의 삼척동자도 아는지라 심기를 가다듬고 검을 곧추세웠다.
"천향매화는 어찌 했는가? 이실직고 하거라. 이놈!"
"천향매화? 그게 누구지?"
"네 이 패악한 마귀같은 놈아. 네가 납치해간 여협말이다. 당장 솔직히 고하지 않을테냐?"
"아! 그 여자? 모르겠는데..그때 납치할려다 그 계집이 도망을 가는 바람에 나도 그년을 찾을려고 여기저기를 뒤지던 참이었소. 혹시 그대는 그 계집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오?"
"이놈! 거짓말 말아라. 네 놈이 틀림없이 천향매화를 어찌 했지 않느냐?"
"아니라고 했지 않소. 혹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오?"
천연스럽게 거짓을 말하는 아환에 더더욱 화가나는 은불학은 마침내 급기야 노기가 충천하여 잡아먹을듯 아환을 노려보았다.
"이런 이 미친 악마같은..네 이놈! 정말 쓴맛을 봐야겠구나."
"쓴맛이라..어떤 것이 쓴맛이지?"
"여기서 무릎을 꿇을테냐? 아니면 순순히 따라와 은검문에서 죄를 받을테냐?"
아환이 대답없이 도신을 눕혀 도면을 은불학의 정면에 보이게 하였다. 은검문의 다른 사람들이나 서회각을 비롯한 기타 사람들은 주위에 물러서서 이어질 한바탕의 결전을 기다렸다.
"내 검을 받아라! 이 마두야!"
은색선이 길게 호선을 그리며 아환을 향해 날아왔다.
캉!
도신을 살짝 비틀어 그 검을 튕겨낸 아환, 은불학이 튕겨진 은검을 회수하고 신형을 돌려 재차 검을 뻗치려고 할때.
'건곤의 쾌!'
아환의 칼이 일순 시야에서 사라졌다.
투두둑..쿵.
땅에 무언가가 연이어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끄아악!"
내장을 후벼파내는 듯한 비명이 장내를 뒤흔들고 은불학의 몸이 객잔의 바닥에 거세세 떨어져 내렸다. 은불학의 무릎 밑부분이 잘려져 나가 시뻘건 핏줄기가 사방으로 비산하였다. 떨어진 양쪽 다리는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은불학은 피를 뒤집어 쓴채로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바닥에서 바둥거리고 있었다. 단 일식. 초식을 전개한 것도 아닌 빠른 도의 놀림에 수십년을 강호에서 행보한 한 무사의 삶이 끝났다.
아환은 칼을 거두고 바닥에 내려 세운다음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은검문과 서가장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대경실색한 표정이었다. 곧 그 표정은 두려움과 질린 기색으로 변하였고 동요가 일어났다.
"네...네...네놈...네놈이 감히 문주님을.."
"아앗! 문주님!"
"어엇. 은문주.."
은검문도들의 호들갑스러움에 비해 서가장의 인물들은 놀라고 두려워하기는 하였지만 서가장에는 피해가 오지 않았기에 가공할 무위를 드러낸 아환과 적대시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데리고 꺼져라."
짧은 말이 아환의 입에서 뱉어졌다.
원독의 시선으로 아환을 노려보던 은검문도들이 이를 바드득 갈면서 일부는 은검문주를 부축하고 객잔을 빠져나갔으며 일부는 그런 문도를 보호하려는지 칼을 빼어들고 경계를 하였다.
"잠깐."
아환의 칼이 수평으로 들려 한 문도의 목근처에 와닿았다. 막 물러서려던 왕칠은 거대한 검은빛을 내는 칼이 자신의 목어림에 와닿자 기겁을 하고는 그 자리에 멈추어섰다.
"왜..왜 이러시는 게요. 금..금방 떠나라 하지 않았소?"
"네 놈이 저 어린 계집아이를 저렇게 만들었나?"
아환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리던 왕칠은 그 시선의 끝에 있는 홍홍을 보자 안색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지난번에도 왕칠의 패거리들이 어린 계집아이를 희롱하다가 험한 꼴을 당했는데 이번에도 또 저 계집년때문에 어렵게 되었다 싶었다.
"저 꼬마 계집하고 무슨 상관이오? 무슨 상관이 있길래 이리 하는 거요?"
두려움에 가득한 음성.
아환 또한 자신이 왜 이리 분노하는 지 잘 몰랐으나 다만 어렸을때의 자신이 겪었던 설움이 저 어린 계집을 통하여 비추어지는 듯하여 화가 났을거라 생각이 되었다. 만일 곱게 자란 명문세가의 자식이라면 이토록 화내지 않았으리라. 허나 힘없는 약자인 홍홍이 강한 자에게 밟히는 것을 보니 분노가 치밀었다. 게다가 시선을 홍홍에게 향하자 당장 눈에 띄는 처참한 몰골이 더더욱 화를 부채질하였다.
"상관? 없지. 그럼 너희들은 왜 저 계집아이를 괴롭히는 거지?"
"그야..그것은..그러니까.."
"재미로 그랬나? 약한 자가 밟혀 꿈틀거리는것이 그리 재미있고 흥미로왔던가? 좋아. 나도 그런 재미를 한번 알아보지."
퍽!
칼을 거두면서 주먹을 말아쥐고 왕칠의 아랫배를 후려쳤다.
"쿠웍!"
눈이 튀어나올듯 부릅뜨여지고 상체가 굽혀졌다.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이 되었고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다가 이어서 극심한 아픔이 찾아왔다.
"으어억!"
쓰러질려는 왕칠의 뒷춤을 잡아드는 아환의 커다란 손.
"아직..아직..재미가 막 생길려는데.."
퍼억!
"끄어어억.."
똑같은 부위에 주먹이 다시 날라갔다. 왕칠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고통이 밀려오자 신음소리도 뱉지 못하고 입만 딱 벌린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약간의 피가 속에서 올라와 입가로 흘러내렸다. 내장에 상처를 입은 모양이었다.
"호오..재미있는데."
퍽!
"우어어.."
분수같이 핏줄기가 입에서 뿜어져 나와 바닥에 퍼졌다. 속을 뒤흔들어 갖가지 오물과 함께 왕칠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선연한 피뭉치가 울컥울컥 흘러나왔다. 왕칠의 눈이 빛을 잃었다.
아환은 그런 왕칠을 잡고 있던 손을 떨치듯 놓고 던져버렸다.
"어이쿠.."
은검문도들이 왕칠이 날아오자 무의식적인 반사로 받은후 뒤로 넘어졌다. 재빨리 일어난 은검문도들이 왕칠을 안고 객잔 밖으로 사라졌다.
아환은 은검문도들이 떠나자 눈을 돌려 객잔안을 둘러보았다. 파리하게 질린 안색을 한 몇몇의 사람들이 발이 얼어붙은듯 객잔 안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아환의 눈치만을 볼뿐이었다. 그 중 서가장주인 서회각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진바 금력은 대단하여서 호남성의 상권을 뒤흔들만큼 재력은 가지고 있었지만 무공에 관한한 백지나 다름이 없었다. 그에 한이 맺혀 화산에 거금을 투자하고 자식을 입문시켰는데 앞의 이 덩치 큰 놈에게 당해 앓아 눕고 있으니 속에서 천불이 났다. 더구나 믿었던 은검문주 마저 제대로 붙어 보지도 못하고 저렇게 병신이 되어 나갔다. 두려움과 원한이 교차하였다.
아환의 눈빛이 와닿자 움찔, 몸이 떨렸다.
'왠 놈의 눈매가 저리..'
"내게 볼일이 있소?"
절로 고개가 좌우로 세차게 흔들렸다.
"아니오. 절대 없소. 그런것 절대 없소."
"계속 이 객잔에 있을거요?"
"이만 나가봐도 되겠소?"
아환이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살았다는 기분이 들은 나머지 사람들은 안도감에 속을 쓸어내리고 객잔밖으로 하나 둘 나갔다. 아환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 구석의 자리에 앉았다.
"이보시오. 주인장."
아환이 시장기를 느끼는지 배를 쓰다듬으며 객점 주인을 불렀다. 객점 주인이 계산대 뒤에 떨고 있다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요. 무사님."
"간단하게 안주와 술 좀 주시게."
"예 예, 알았습니다요. 예 홍..아니지, 얘야. 주문이 나왔으니 어서 주방에 들어가 준비하여라."
홍홍을 괴롭히던 왕칠이 치도곤이 났던 것이 생각나자 식은 땀을 흘리며 홍홍에게 주문을 하였다. 홍홍은 영문도 모르고 주인이 부드러워 지자 고개를 갸웃하였지만 머리를 까닥이고 절을 한후 주방으로 뛰다시피 들어갔다.
"아니, 주인장. 최고급 술상으로 한번 봐주게."
아직까지 문앞에서 서성이던 서가장주 서회각이 입술을 꼭 깨물며 무언가를 생각하다 계산대의 주인에게 새로 주문을 하였다. 객점주인은 아직 서회각이 가지 않았냐는 듯 힐끗 쳐다보다 그 말뜻이 무언가 잘 접수가 되지 않은 듯 했다.
"저 무사님의 술상 말일세. 내가 부담함세."
서회각은 주인에게 주문을 마친후 천천히 발을 옮겨 아환의 탁자 옆에 다가갔다. 아환은 서회각이 옆에 다가왔으나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서회각은 안색을 가다듬고 금새 빙긋이 웃는 낯으로 아환에게 말을 건네었다.
"무사님. 같이 앉아도 되겠소?"
"앉으시오."
"어이구..참 날씨가 변덕스럽소이다. 얼마전까지 후덥하더니 이젠 제법 싸늘한 기운이 돌지요."
막 가을로 접어들려는 시기이기에 아침 저녁으로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아들이 다치고 정혼한 집안이 풍지박산이 났고 든든한 배경인 화산 까지도 사단이 났지만 천성이 상인이라서 그럴까? 웃음기도는 얼굴로 부드럽게 말을 꺼내었다.
"무사님은 고향이 어디시오? 어투를 들어 보아하니 남쪽 인것두 같구 북쪽인것두 같구..허! 종잡을 수 없구려.."
아환이 부모를 잃고 떠돌면서 여러 지방을 전전한지라 어투 역시 혼합된 어투가 흘러나왔다.
"용건을 말하시오."
아환이 서회각의 눈을 직시하고 또박 또박 한자 한자 내뱉었다. 그런 아환의 시선이 눈에 들어오자 흠칫 하던 서회각 이내 얼굴 빛을 정색하며 진지하게 말을 꺼내었다.
"무사님은 혹시 소속이 있으시오? 만약 속해 있는 곳이 없으면 서가장에 한번 몸담아 보시는 게 어떻소. 내 섭섭치 않게 대우를 해드리리다."
"...."
아무 말 없이 아환의 눈이 서회각의 눈에 맞추어진 상태 그대로 아환은 서회각의 말을 듣기만 하였다.
"황금을 원하면 원하는 대로 밀어주겠소. 여자를 원한다면 절색의 처녀를 붙여주겠소. 무공비급을 원한다면 그것도 사주겠소. 서가장에 소속되어 있다고 해도 내 명령을 따르거나 할 필요는 없소. 단지 서가장에 그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가장은 이 곳 장사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거요. 어떻소. 내 제안이?"
"무엇이든지 해준다...무엇이든지..이보시오. 내가 그쪽의 식구들을 다치게 하였는데도 개의치 않고 나와 손을 잡겠다는 거요?"
"나는 상인이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어든 할 수 있소. 내 아들놈이 당신에게 큰 부상을 입어 몸져 누웠지만 그것보다는 돈이, 내 사업이 우선이오. 어떻소.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받아들일 생각없소. 그만 가보시오."
아환이 차갑게 말을 끊었다. 그래도 뭔가 할말이 남아 있는지 서회각이 미적미적거린다.
음식이 나왔다. 한상 푸짐하게 차려 왔다고 해봤자 제육을 볶은 거와 오리고기, 송화단 등과 몇가지 생선요리가 나왔다. 하기야 이런 작은 객잔에서 잘 차려봤자 뭐 그리 대단한게 있을리 없다.
"드시오. 어이구, 이거 끼니를 걸렀더니 배가 고프구만.."
서회각은 아환에게 저를 권한다음 자시도 수저를 들고 음식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더니 게걸스럽게 여러 음식을 입에 가져가 맛있게 먹었다. 아환은 음식이 나왔지만 손을 대지 않고 묵묵히 음식을 쳐다 보고 있었다.
조금 혼란스러웠다. 분명 자신과 원한이 있다면 있을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앞 자리에 앉아 저렇게 태연스럽게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인의 삶이라는 것 자체가 아환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았고 서충을 비롯한 서가장의 사람들과 마찰이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더군다나 이 앞의 인물은 은불학을 벨때 파랗게 질려 한구석에서 오들오들 떨지 않았던가?
"내게 원하는 것이 뭐요?"
일단 부딪히자.
서회각이 음식을 가져가던 손을 멈추곤 아환을 바라 보았다.
"날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오. 그대 덕분에 내가 기대했던 방패가 날아갔소. 명문정파라고 으시대는 화산을 잡기 위해 내가 얼만큼 돈을 투자를 하였는지 모를거요. 그대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간에 그로 인하여 내가 입은 피해가 막심하오. 그렇다고 그 피해를 보상해달라는 말은 아니오. 또 내가 그대를 구속하겠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오. 단지 내가 원하는 것은 그대가 차후에 나를 도와줄수 있을때 도와달라는 것이오. 이래뵈도 내가 사람을 약간을 볼줄 아오. 그대에게선 내가 여태까지 겪지 못하였던 기세가 풍기오. 나는 무림인이 아니라 그게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대가 거성(巨星)이 될 거라는 추측, 아니 확신이 있소. 게다가 현 그대의 무위가 현 무림의 후지기수 중 으뜸이라 칭하는 사화와 칠룡을 제압한 것으로 보아 이미 경지에 들어섰다 여겨지오. 언뜻 보기에도 그대는 약관 정도의 나이,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보오."
"거성? 거성이라.."
"그렇소. 비록 내가 아직 강호에서 별볼일 없는 삼류급의 상인이지만 세력을 넓히기엔 무력이 필요하오. 그것도 절실하게..혹시 그대는 황금벌이라고 아시오?"
"황금벌?"
"못들어본 모양이구료. 황금벌은 강북의 상인들의 연합단체요. 아직 표면화되있지는 않지만 강북의 상권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있는 장막속의 세력이오. 그 힘이 강남상권에 포착된것이 불과 몇개월전인데 이미 강남의 상권을 상당부분 잠식한 상태요."
아환은 서회각의 말에 관심을 기울였다. 다름아닌 상계의 판도는 곧 무림의 판도와도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차후 아환이 무림을 행보할때 반드시 얻어야할 힘 역시 재력이었기에 아환은 서회각의 설명을 묵묵히 경청하였다.
"그대는 강남의 상인들은 왜 그런 결집을 하지 않는가 하고 물을 지도 모르오. 바로 거기에 무력이 개입된 흔적이 보이오. 얼마전부터 강남의 상권을 잡고 있는 몇몇 거상들이 하나둘 제거 되었소. 명목상으로는 지병이나 급사로 되어있지만 암살을 당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이오."
아환은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서회각이 말하는 것 자체가 기밀일 수 있었고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될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지 않소?"
"그대는 내가 괜히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시오?"
"...?"
"이게 연결고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시오? 난 이미 내 속을 그대에게 보였소이다. 하나더 패를 보여 드리지. 내 재산을 원하는 만큼 쓰도록 해드리겠소. 내가 세력은 미약하지만 가진 재산은 적지 않소. 현 중원의 상인 중 나보다 금력이 많은 인물이나 세력은 그리 많지 않을거요."
아환이 서회각을 빤히 쳐다보았다. 서회각의 심중을 읽고 싶었다.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이길래 이런 솔깃한 조건을 저렇게 쉽게 내뱉는 것일까? 그러나 아환은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연륜이나 경험상 아환은 남을 판단하기에 미욱한 점이 많았다. 그렇게 서로를 뚫어지게 쳐다보기를 꽤 오랫동안 하던 두사람, 마침내 아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난..당장 그리 할 수 없소. 내가 배울 것이 있어서요. 앞으로 내가 무림에서 활동을 할려면 장주의 힘이 필요로 할지도 모르오. 허나 여기서 장주를 도우며 멈출 수는 없소. 장주가 말한 것은 뇌리 속에서 지워버리도록 하겠소."
"그럴 필요 없소."
"..?"
"오년을 기다리겠소. 내 나이 마흔 여섯, 아직 젊은 나이오. 비록 그대가 내 숙질뻘 밖에 되지는 않지만 동업자로서 말을 하겠소. 앞으로 오년 후 나를 도와주시오. 물론 내가 말한 조건은 지금부터 적용될 것이오."
서회각은 품에 손을 넣더니 전표다발을 꺼내들고는 아환에게 건네었다.
"더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시오."
일견 보아도 꽤 거액이 내밀어졌다. 아환은 그 돈을 물끄러미 쳐다 보다가 입을 떼었다.
"내가 원하는 사람에게 이 전표를 줄수 있겠소?"
"그 전표는 이미 그대의 것이오. 그대가 어찌 처리하든 이미 그것은 그대의 소관, 내게 허락을 구할 필요 없소."
"내 것이라..이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장주와의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이겠군."
아환은 전표를 묵묵히 쳐다보다가 품에 전표를 집어 넣었다. 그것을 보는 서회각의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계약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대가 배울 것은 무언지 말해줄수 있겠소?"
"글쎄..나도 그게 무언지는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의 나의 독보(獨步)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 정도 밖엔 뭐라 말하기가 그렇소."
"독보? 독보라 하시었소? 지금."
아환이 특유의 감정이 실리지 않는 시선으로 서회각을 바라보았다. 서회각은 그 눈에 실린 아환의 내심을 파악하려 집중을 하였지만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과욕을 한것은 아닌지.."
뜻모를 말이 뱉어졌다. 그러면서 서회각은 앞에 있는 저를 다시 들고 차디차게 식어버린 음식에 가져가서 음식을 집어 올렸다. 아환 역시 식어 맛이 없는 식사지만 아무 말없이 배에 음식을 채워넣었다.
밤이 깊어졌다.
이경쯤 되었을까? 주위사방이 모두 깜깜한 어둠으로 덮여있고 간간히 새어나오는 호롱불빛이 그 주위만 미약하게 비추고 있는 밤이었다.
아환은 무상심결의 대주천 운기를 마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눈을 뜨니 뇌전이 뻗어나갔다. 화경의 단계에 접어들어서도 매일매일 운기를 거르지 않았다. 근래에는 외가의 수련을 가끔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을 하였다. 그랬을 경우에는 반드시 내기를 일주천하고 명상에 들어 무아지경에 접어들었다. 체내의 음양신단은 상당 부분이 용해되어 내기의 증진에 커다란 일조를 하고 있었다. 아직 많은 부분이 남아 있긴 하지만 아환 스스로의 예상이나 사부인 비왕의 일러준 말과는 달리 진도가 꽤 빠른 듯했다.
아환은 근래에 들어 건곤형에 대한 심도 있는 사고를 많이 하였다. 이제 육성가량의 성취를 하였을까? 아환은 건곤형의 무공 특성상 타무공과 융화되는 건곤형의 무리를 자신이 여태까지 익혀온 무예와 병합하여 세가지의 기세를 중점적으로 익혀나갔다.
쾌(快)! 붕(崩)! 그리고 화(化)의 세가지 기본의 원리에 충실한 기세로 닦아나갔다. 빠르고 강렬하고 어울리는 세를 정립화 시킬려고 노력하였다. 허나, 아환이 화경에 진입하면서 깨달은 '나(我)'라는 각성은 아환으로 하여금 얽매이지 않토록 아환을 자유롭게 하였다. 아환은 문득 문득 수련을 하다가 틀에 갇히는 자신을 돌아보고 되돌리다가 혹은 그냥 그 틀에 자신을 맡기곤 하였다. 검후 역시 진경에 도달해서야 '나'라는 것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아환이 진경의 단계에 접어든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서 아환은 혼란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고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하나가 머리를 들었다. 그렇게 하나하나의 실타래를 풀었다.
똑똑..
창가에서 창문을 살살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조용히 창문이 열리고 하얀 그림자 하나가 객실로 들어왔다. 여인, 얼굴을 면사로 가리고 머리는 우아하게 틀어 올려 기품이 있어 보였다. 흰빛의 비단 궁장에 가려 여인의 다른 부위는 볼수 없었으나 갸녀리고 아름다룬 교수가 궁장의 밖에 나와 있어 이 여인의 피부빛과 살갖의 부드러움 그리고 이 여자의 다른 부위의 미색을 약간이나마 추측하게 하였다.
"벗어."
여인은 아환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면사로 손을 가져갔다.
"면사는 놔두고."
손을 얼굴에서 떼더니 여인은 외의를 벗고 저고리로 손을 가져가 옷고름을 풀어 저고리를 고운 몸에서 벗어내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하얀 살덩이..여인은 원래 내고를 입지 않았는지 상류층의 의복중의 저고리만 벗었는데도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풍만한 두 젖가슴위의 유실이 여체의 움직임에 따라 위아래로 흔들렸다.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싶더니 스르르 치마가 아래로 내려갔다. 곧게 내려 뻗은 절색의 우윳빛 기둥이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시선을 위로 올리니 무릎이, 알맞게 살집이 오른 허벅지가, 그리고 두 다리가 만나는 곳에서의 갈라짐..연한 수풀에 덮여있는 붉은 아랫 입술이 삐져나올듯 다리사이에서 고개를 살짝 내밀고 있었다. 그 수풀위로....붉은 글씨, '용(用)'
"이리와!"
여인, 악서령은 면사를 쓴채로 아환의 가까이 다가갔다. 자연스레 손은 늘어뜨린채 발가벗은 알몸이 아환의 눈앞에 훤한데도 가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아래로."
악서령은 아환의 말이 떨어지자 아환의 바지춤을 끌러 내렸다. 언제나 그렇듯 위풍당당한 검붉은 살덩이가 우뚝 솟아있다. 악서령은 면사를 살짝 들고는 아환의 육봉을 입에 넣었다. 그리곤 핥고 빨고...한 손으로는 아환의 남근을 잡고 있고 다른 한손은 어느새 자신의 비처사이에서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한참 아환의 아랫도리를 입으로 즐겁게 해주던 악서령이 아환의 양물에서 입을 떼고는 몸을 일으켜 하체를 아환의 남근근처에 가져가 대었다. 홍건한 물기에 젖어 호롱불빛에 번들거리는 악서령의 비부..그 위의 '용'
장사의 또 하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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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늦게 되네요. 요즈음 제가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어서..회사 사람들의 눈치도 보이고..
이렇게 가다간 주 2회로 연재를 하루 줄여야 할지도..
아직 반도 가지 않았는데 많이 지치네요. 연재 중단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그만 쓰라고 하시기 전까지는 계속 이어갈께요.
어쩌다 하루 올리지 못하게 되어도 양해하시길..
부지런히 복선을 깔아야 3부에서 무리한 설정을 하지 않을텐데요..에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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