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에 얽힌 추억..
작성자 정보
- youtube링크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565 조회
-
목록
본문
세상에는 두종류의 영화가 있다.
흉내만 내는영화와 실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영화 이렇게 두가지 이다.
아무리 자극적이고 뛰어난 애로물이라고 해도 그것은 극사실적으로 리얼리티를
추구한 흉내내기에 불과하며, 있는 그대로를 다 보여주지는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 영화 -포르노 라고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를 처음 접하게
된것은 국민학교 5학년때의 일이다. 당시 우리집에 있는 비디오는 지금은 사장된
베타막스 방식이었고, 현재의 VHS방식과는 비교될수없는 뛰어난 화질과 음질을
자랑하는 방식이었지만, SONY사와 미국 영화업체들과의 불화로 인해, 성능의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국제표준방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제품이다.
일본에서 개발된 방식이니만큼 소스의 출처도 일본쪽이 압도적이었고
덕분에 어린시절부터 각종 만화의 원본을 접하며 자랄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것들만이 베타막스의 전부는 아니었다.
어린시절부터 안방 장농 깊은곳은 금기의 성역이었고, 그 안에 비디오 테이프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그다지 신경을 쓰지도 않았거니와 감히 침범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학교 5학년 당시 "레이디경향"으로기억나는 잡지
에서 "포르노"라는 단어를 접하고 나서 혹시 우리집에 비치된 것이 과연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집이 비었을때를 틈타 개봉에 성공
하고야 말았다. 테이프의 양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월등히 많았다. 당시 백화점
쇼핑백에 가득히 있었으니 한 20개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일단 한번 틀어본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고야 말았다.
그동안 구전되는 이야기들과 어렴풋한 상상만으로 구축하고 있었던 나의 단편적인
데이타 베이스는 일순간에 혼동을 일으키고야 말았으며
"나는 그래도 내또래의 다른놈들보다는 더 많이 깨우쳤다."라는 나의 옹졸한
개화사상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인간 본래의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모든것을 전부
시연해 보이는, 아니 생활의 일부를 그냥 보여주는 그 필름들에 크나큰 감동을
받고 말게 되었던 것이다. 그순간 나의 모든 가치관은 하나로 굳어져 버렸으며
지금에 까지 이르고 있다.
나는 금단의 열매를 따먹어 나고 죽는 이치를 깨달아 버린 에덴동산의아담이었고
아담과 이브처럼 태초의 모습 그대로 비추어지는 화면속의 그들이고 싶었다.
그리하여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생활 내내 학교를 휘어잡는
피끓는 건전한바른생활의 사나이가 될수 있었다.
문화영화 -나는 그것을 포르노라고 부르지 않는다. 문화적인 이질감에서 오는
충격일뿐 또 하나의 세계이고 문화라고 보기때문에 문화영화라 부른다.-에 얽힌
수많은 일화가 있지만, 몇가지 일화만 늘어놓아볼까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봄방학 직전의 일이다.
늘 결석하지 않는 녀석이 결석을 했고,그점이 궁금하여 전화로 안부를 물어보았다.
아아 그는 어른이 되기위한 남자들만의 통과의례이자, 신성한 의식인 "할례"를
거행했던 것이고, 그덕에 결석처리되지 않고 하루 학교를 빠진 것이다.
피끓는 우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피끓는 친구들이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
우선 사전에 전화로 집이 언제 비는지를 물어서 그시간에 맞추어서 갔다.
물론 한손에는 본인의 콜렉션중 가장 엽기적이며 아방가르드적인 문화영화를
들고서 말이다.
문을 열어주려다가 내 손에 들려있는 비디오 테이프를 보고 무엇인가 눈치를
채었는지 이내 문을 잠그어 버리는 그녀석을 잘 달래어서 마침내 입장에 성공
했고, 절대로 보지 않겠다고, 지금 보면 수술 봉합이 다 터질거라는 그녀석의
사지를 붙잡아 한명은 눈꺼풀을 억지로 올리게 하고서 문화영화 상영을 시작했다.
소와 돼지를 한꺼번에 무더기로 도살할때 들리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졌으며
바지춤을 부여잡고 흐느끼는 그를 뒤로한채 우리는 그곳을 나왔다.
훗날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는 결국 봉합이 터져서 재수술을 하였으나
원인은 문화영화 관람으로 인한 팽창이 아닌, 문화영화의 감동을 재 음미하며
부상을 무릅쓰고 거행한 장차 이나라의 일꾼이 될지도 모르는 자식들을 방출
하는 거룩하고 숭고한 의식때문이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구체적으로 언급할까 한다. 너무도 파란만장하고
기구한 인생을 살고있는 순수하고 가녀린 영혼을 가진 사나이 이기에...
피끓는 패거리중 한 녀석의 아버지가 비디오가게를 하고 있으며, 그집에는
아주 방대한 라이브러리가 있다는 -아마도 세자리숫자였던걸로 기억된다.- 소식
을 접하게 된 우리멤버는 그 친구를 유혹하여 어덜트영상회를 가질수 있었다.
물론 친구의 아버님께서 집을 비웠을때 말이다.
어느덧 영상회는 시작되었고, 담배가 떨어져 가위바위보를 한 결과 내가 패배
하였기에 눈물을 머금고 담배를 사러 그 집을 나서는 순간 -그집은 2층이다.-
대문을 열고 친구의 아버님이 들어오시는것을 목격한 나는 친구들에게 알려야
겠다는 일념하에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
"야~~ 너희 아버지 오셨어!!"
그러자 문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는
"이새꺄 장난치지마 지금 막 벗고 있으니까 빨리 사와"
사태를 파악하고 격분한 그의 아버지는 집안으로 뛰쳐들어갔으며, 난 순간
기록영화에서나 볼수있었던 6.25피난 당시 열차 창문으로 사람이 빠져나와
열차 지붕으로 올라가는 광경을 목격할수 있었다.
혼비백산한 녀석들은 모두들 창문으로 뛰쳐내렸고, 지붕으로 올라간 녀석도
있었지만....... 아풀싸 모두들 그집에 가방을 놓아두고 온것이다.
잠시후 모두들 아버님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반성문과 더불어 일장훈시를
들었고, 아버님께서는 장농속의 테이프를 모두 꺼내서 그집 옥상에 있던
드럼통에 넣고는 신나까지 부어서 불을 당기셨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에게서 그 화형식은 눈속임 -당시 우리가 보다가 걸린 그
테이프 이외에 나머지 테이프들은 벌크나 혹은 공테이프였다고 한다.- 이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으며, 실은 안방에 있는 커다란 자물쇠가 달린
문갑속에 보관되어 있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커다란 노력끝에 -아버지가 샤워를 하는 사이 재빨리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꺼낸후 재빨리 열쇠가게에 가서 복사를 하고 다시 원위치에 놓았다는-
우리는 다시금 금단의 세계로의 여행을 계속할수 있었으며, 감동과 환희의 나날을
지속시켜 나갈수 있었다.
아아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역시 대단한 인물이었고, 인생의 선배로써 가히 존경
할만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심증 -그의 아버지는 집을 비울때마다 비디오의
카운터 (0000부터 9999까지 올라가는 테이프 진행상태를 짐작케해주는 장치)의
숫자를 수첩에 적어놓고 다녔다고 한다. 물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은 있으나
물증이 없어 고심하던 열혈부친께서는 마침내 현장을 덮치고야 만 것이다.
"여보세요"
"어 난데 지금 우리집에 와라 집 또 비었어."
"아 그래 애들은 다 오고?"
"물론이지 오늘은 여자도 몇명 와, 생각있으면 내방 써도 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의 집에 도착하니 역시 멤버들은 모두 있었으며
처음보는 묘령의 아가씨 두어명도 얼굴을 붉혀가면서 화면속의 세계로 몰입하고
있었다. 마침내 참다못한 한 녀석이 화장실로 가려는 순간.........
갑자기 옷장의 문이 열리면서 살기등등한 거한이 우리들앞에 등장했으며
그가 그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난 본능적으로 문밖으로
뛰쳐나가려 했으나 알수없는 어떠한 힘이 나의 뒷덜미를 잡아 방바닥으로
내동댕이 치고야 말았다. 아아 그날의 아비규환을 어찌 말로 표현할수 있으리오.
그 와중에 우리 모두는 연락을 받고 달려온 부모님의 손을 잡고 그 집을 나설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커다란 악몽이었다는 말로 그날의 일들을 마무리 지을까 한다.
이제는 나이를 먹고, 아무런 제재없이 성인으로서 당당하게 포르노를 보고
성인 사이트에 들어갈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있지만 금단의 영역을 몰래 들추어
보았던 그시절의 감동과 설레임은 남아있지 않으니 안타깝기 그지 없어
오늘밤도 홀로 제지업계의 호황을 위해 휴지 한통을 다 쓰고야 만다는..
마육봉
흉내만 내는영화와 실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영화 이렇게 두가지 이다.
아무리 자극적이고 뛰어난 애로물이라고 해도 그것은 극사실적으로 리얼리티를
추구한 흉내내기에 불과하며, 있는 그대로를 다 보여주지는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 영화 -포르노 라고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를 처음 접하게
된것은 국민학교 5학년때의 일이다. 당시 우리집에 있는 비디오는 지금은 사장된
베타막스 방식이었고, 현재의 VHS방식과는 비교될수없는 뛰어난 화질과 음질을
자랑하는 방식이었지만, SONY사와 미국 영화업체들과의 불화로 인해, 성능의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국제표준방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제품이다.
일본에서 개발된 방식이니만큼 소스의 출처도 일본쪽이 압도적이었고
덕분에 어린시절부터 각종 만화의 원본을 접하며 자랄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것들만이 베타막스의 전부는 아니었다.
어린시절부터 안방 장농 깊은곳은 금기의 성역이었고, 그 안에 비디오 테이프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그다지 신경을 쓰지도 않았거니와 감히 침범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학교 5학년 당시 "레이디경향"으로기억나는 잡지
에서 "포르노"라는 단어를 접하고 나서 혹시 우리집에 비치된 것이 과연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집이 비었을때를 틈타 개봉에 성공
하고야 말았다. 테이프의 양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월등히 많았다. 당시 백화점
쇼핑백에 가득히 있었으니 한 20개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일단 한번 틀어본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고야 말았다.
그동안 구전되는 이야기들과 어렴풋한 상상만으로 구축하고 있었던 나의 단편적인
데이타 베이스는 일순간에 혼동을 일으키고야 말았으며
"나는 그래도 내또래의 다른놈들보다는 더 많이 깨우쳤다."라는 나의 옹졸한
개화사상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인간 본래의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모든것을 전부
시연해 보이는, 아니 생활의 일부를 그냥 보여주는 그 필름들에 크나큰 감동을
받고 말게 되었던 것이다. 그순간 나의 모든 가치관은 하나로 굳어져 버렸으며
지금에 까지 이르고 있다.
나는 금단의 열매를 따먹어 나고 죽는 이치를 깨달아 버린 에덴동산의아담이었고
아담과 이브처럼 태초의 모습 그대로 비추어지는 화면속의 그들이고 싶었다.
그리하여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생활 내내 학교를 휘어잡는
피끓는 건전한바른생활의 사나이가 될수 있었다.
문화영화 -나는 그것을 포르노라고 부르지 않는다. 문화적인 이질감에서 오는
충격일뿐 또 하나의 세계이고 문화라고 보기때문에 문화영화라 부른다.-에 얽힌
수많은 일화가 있지만, 몇가지 일화만 늘어놓아볼까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봄방학 직전의 일이다.
늘 결석하지 않는 녀석이 결석을 했고,그점이 궁금하여 전화로 안부를 물어보았다.
아아 그는 어른이 되기위한 남자들만의 통과의례이자, 신성한 의식인 "할례"를
거행했던 것이고, 그덕에 결석처리되지 않고 하루 학교를 빠진 것이다.
피끓는 우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피끓는 친구들이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
우선 사전에 전화로 집이 언제 비는지를 물어서 그시간에 맞추어서 갔다.
물론 한손에는 본인의 콜렉션중 가장 엽기적이며 아방가르드적인 문화영화를
들고서 말이다.
문을 열어주려다가 내 손에 들려있는 비디오 테이프를 보고 무엇인가 눈치를
채었는지 이내 문을 잠그어 버리는 그녀석을 잘 달래어서 마침내 입장에 성공
했고, 절대로 보지 않겠다고, 지금 보면 수술 봉합이 다 터질거라는 그녀석의
사지를 붙잡아 한명은 눈꺼풀을 억지로 올리게 하고서 문화영화 상영을 시작했다.
소와 돼지를 한꺼번에 무더기로 도살할때 들리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졌으며
바지춤을 부여잡고 흐느끼는 그를 뒤로한채 우리는 그곳을 나왔다.
훗날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는 결국 봉합이 터져서 재수술을 하였으나
원인은 문화영화 관람으로 인한 팽창이 아닌, 문화영화의 감동을 재 음미하며
부상을 무릅쓰고 거행한 장차 이나라의 일꾼이 될지도 모르는 자식들을 방출
하는 거룩하고 숭고한 의식때문이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구체적으로 언급할까 한다. 너무도 파란만장하고
기구한 인생을 살고있는 순수하고 가녀린 영혼을 가진 사나이 이기에...
피끓는 패거리중 한 녀석의 아버지가 비디오가게를 하고 있으며, 그집에는
아주 방대한 라이브러리가 있다는 -아마도 세자리숫자였던걸로 기억된다.- 소식
을 접하게 된 우리멤버는 그 친구를 유혹하여 어덜트영상회를 가질수 있었다.
물론 친구의 아버님께서 집을 비웠을때 말이다.
어느덧 영상회는 시작되었고, 담배가 떨어져 가위바위보를 한 결과 내가 패배
하였기에 눈물을 머금고 담배를 사러 그 집을 나서는 순간 -그집은 2층이다.-
대문을 열고 친구의 아버님이 들어오시는것을 목격한 나는 친구들에게 알려야
겠다는 일념하에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
"야~~ 너희 아버지 오셨어!!"
그러자 문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는
"이새꺄 장난치지마 지금 막 벗고 있으니까 빨리 사와"
사태를 파악하고 격분한 그의 아버지는 집안으로 뛰쳐들어갔으며, 난 순간
기록영화에서나 볼수있었던 6.25피난 당시 열차 창문으로 사람이 빠져나와
열차 지붕으로 올라가는 광경을 목격할수 있었다.
혼비백산한 녀석들은 모두들 창문으로 뛰쳐내렸고, 지붕으로 올라간 녀석도
있었지만....... 아풀싸 모두들 그집에 가방을 놓아두고 온것이다.
잠시후 모두들 아버님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반성문과 더불어 일장훈시를
들었고, 아버님께서는 장농속의 테이프를 모두 꺼내서 그집 옥상에 있던
드럼통에 넣고는 신나까지 부어서 불을 당기셨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에게서 그 화형식은 눈속임 -당시 우리가 보다가 걸린 그
테이프 이외에 나머지 테이프들은 벌크나 혹은 공테이프였다고 한다.- 이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으며, 실은 안방에 있는 커다란 자물쇠가 달린
문갑속에 보관되어 있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커다란 노력끝에 -아버지가 샤워를 하는 사이 재빨리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꺼낸후 재빨리 열쇠가게에 가서 복사를 하고 다시 원위치에 놓았다는-
우리는 다시금 금단의 세계로의 여행을 계속할수 있었으며, 감동과 환희의 나날을
지속시켜 나갈수 있었다.
아아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역시 대단한 인물이었고, 인생의 선배로써 가히 존경
할만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심증 -그의 아버지는 집을 비울때마다 비디오의
카운터 (0000부터 9999까지 올라가는 테이프 진행상태를 짐작케해주는 장치)의
숫자를 수첩에 적어놓고 다녔다고 한다. 물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은 있으나
물증이 없어 고심하던 열혈부친께서는 마침내 현장을 덮치고야 만 것이다.
"여보세요"
"어 난데 지금 우리집에 와라 집 또 비었어."
"아 그래 애들은 다 오고?"
"물론이지 오늘은 여자도 몇명 와, 생각있으면 내방 써도 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의 집에 도착하니 역시 멤버들은 모두 있었으며
처음보는 묘령의 아가씨 두어명도 얼굴을 붉혀가면서 화면속의 세계로 몰입하고
있었다. 마침내 참다못한 한 녀석이 화장실로 가려는 순간.........
갑자기 옷장의 문이 열리면서 살기등등한 거한이 우리들앞에 등장했으며
그가 그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난 본능적으로 문밖으로
뛰쳐나가려 했으나 알수없는 어떠한 힘이 나의 뒷덜미를 잡아 방바닥으로
내동댕이 치고야 말았다. 아아 그날의 아비규환을 어찌 말로 표현할수 있으리오.
그 와중에 우리 모두는 연락을 받고 달려온 부모님의 손을 잡고 그 집을 나설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커다란 악몽이었다는 말로 그날의 일들을 마무리 지을까 한다.
이제는 나이를 먹고, 아무런 제재없이 성인으로서 당당하게 포르노를 보고
성인 사이트에 들어갈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있지만 금단의 영역을 몰래 들추어
보았던 그시절의 감동과 설레임은 남아있지 않으니 안타깝기 그지 없어
오늘밤도 홀로 제지업계의 호황을 위해 휴지 한통을 다 쓰고야 만다는..
마육봉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