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분류

살찐 몸이 뭐 어때서? 크고 아름다운 내가 좋아![내 몸과 잘 살고 있습니다②]

작성자 정보

  • 유튜브114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젊은 여성의 비만율이 유독 낮은 이유는 명확하다. ‘좋은 몸’에 관한 사회적 기준이 젊은 여성일수록 더 엄격하고 강압적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살찌면 매력 없다” “조금만 빼면 예쁠 텐데” 같은 간섭과 품평은 대부분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을 겨냥한다.

경향신문 기획 ‘내 몸과 잘 살고 있습니다’ 2회는 이런 획일적인 시선을 거부하는 살찐 여성들의 이야기다. 몸무게가 남들보다 더 나갈 뿐인데 게으르다고 손가락질하는 사회, ‘표준 체중’보다 적은 ‘미용 체중’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회, 기준에서 벗어난 몸은 못난 것 취급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너나없이 특정한 틀에 자신을 맞추려고 분투할 수밖에 없다.

‘보디 포지티브’, 몸 긍정이 세계적인 화두가 됐지만 여전히 타인의 몸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에게 살찐 몸들이 묻는다. 어째서 우리의 몸은 숫자로만 평가되는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것은 누구인가.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아는데…왜 그렇게 간섭하나요”



김혜미씨(26)에게 몸과 관련된 기억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때 하던 태권도를 그만둔 게 계기였다. 갑자기 뚱뚱해진 몸을 쳐다보기조차 싫었다. 몸무게도 재지 않았고, 바지 사이즈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교복을 사러 매장에 갔을 때 가게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치수는 없어요.”

시 외곽에 있는 창고형 매장까지 가서 겨우 맞는 교복 치마를 찾아낸 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펑펑 울었다. “수백명이 입는 똑같은 교복인데 딱 내 사이즈만 없다면, 내 몸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이건 내 잘못이라고 인식할 수밖에 없었죠.”

사람들이 살찐 몸을 질책할 때 가장 먼저 이유로 드는 건 건강이다. 물론 비만은 각종 합병증의 원인이 되고 심각해지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몸무게가 늘어 체내에 지방이 증가하면 당뇨나 고혈압, 지방간 같은 대사성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생활도 불편하다. 온몸에 살이 붙으면 팔다리의 가동 범위가 좁아져 신체 구석구석까지 손이 닿지 않는다. 양말을 신거나 발톱을 자르는 간단한 일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한쪽 발로 무게를 버티는 게 힘들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두려워진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과도한 참견이다. 자신의 몸은 스스로 제일 잘 안다. 그런데도 주위에선 몸 구석구석을 뜯어보며 간섭하는 게 일상적이다. ‘작은 비버’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 작가 황인후씨(30)는 2년 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100㎏이다>라는 책을 펴냈다. 현재 그의 키는 155㎝, 몸무게는 89㎏으로 체질량지수를 계산하면 37.04다. 동일 연령대 100명을 마른 순서부터 줄 세운다면 100번째인 고도비만이다. 황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과체중이었고, 매년 계속 쪘다. 나도 내가 살쪘다는 걸 아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조차 내 몸에 대해 가르치려 든다”고 말했다.

병문안을 갔는데 뜬금없이 다른 환자의 보호자가 ‘내 친구가 효과를 본 다이어트 비법’을 알려준다며 나선 일, 지인이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가 “슬슬 살 뺄 때 되지 않았느냐”고 툭 던진 일. 살찐 몸이기에 겪어야 하는 폭력이다. 몸을 아래위로 훑어보는 것, ‘살쪘는데 왜 그런 옷을 입느냐’고 비난하는 것 같은 노골적인 차별이 있는가 하면 언뜻 칭찬처럼 들리는 미세한 차별도 있다.

김혜미씨는 아르바이트 동료에게 “네 덕분에 뚱뚱한 사람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뚱뚱해서 둔할 줄 알았는데, 너는 빠릿빠릿하게 일을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성격이 좋다, 일을 잘한다는 칭찬인 줄 알았는데 곱씹을수록 의아하더라고요. 그제야 살찐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죠.”

마른 몸에 대한 집착은 또래와의 비교가 심한 청소년기 여성에게서 특히 크게 작용한다. 미디어에서 보게 되는 마른 몸뿐 아니라 주위 친구와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검열한다. 김씨는 “뚱뚱한 몸이지만 크게 불편한 것 없이 잘 살아왔다”면서도 “주위에서 하는 말 때문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체육 시간이 제일 싫었어요. 뛰면서 살이 흔들릴 때마다 모두가 쳐다보는 것 같고, 단체 티셔츠를 맞추면 저만 사이즈가 안 맞아서 꽉 끼었거든요.” 느닷없이 “사람들은 뚱뚱한 여자를 안 좋아한다. 20대가 제일 예쁠 때인데 그걸 못 누리는 게 억울하지 않냐”면서 살을 빼라던 선생님도 있었다.

안현진씨(31)는 시민단체 여성환경연대에서 외모 다양성 관련 캠페인을 하고 있다. 안씨는 중학생 때까지 마른 편이었는데 고등학생 때 급격히 살이 찌면서 주변 시선의 확연한 온도차를 느꼈다고 했다. “지금은 진짜 몸이 아니다, 빨리 다이어트를 해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원래의 몸은 도대체 몇년 전의 몸인지, 수치로 비교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죠. 그럼 나는 지금 가짜의 몸에 살고 있는 건가요?”


...



하지만 사람의 몸은 개인의 의지보다 환경의 영향을 훨씬 많이 받는다. 타고난 유전자의 영향도 있고, 소득 격차나 생활환경, 습관에 따른 편차도 크다. 특히 소득 수준별로 살폈을 때 여성은 소득이 낮을수록 비만율이 높은 경향이 있다. 2017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펴낸 비만백서를 보면 여성의 비만율(체질량지수 25 이상~30 미만)은 건강보험료 1분위에서 21.8%로 가장 높고, 20분위에서 15.7%로 가장 낮았다. 건강보험료 1분위에 가까울수록 소득과 재산이 적고, 20분위에 가까울수록 많다는 뜻이다.

이는 소득이 많은 여성일수록 미용과 체형 관리에 더 많은 돈과 시간을 쏟을 수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저소득 비정규 노동시장에 내몰리는 여성일수록 살찐 몸과 더 가까울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성은 반대의 경향을 보였다. 재산이 많은 19분위에서 비만율이 37.4%로 가장 높고, 7분위에서 33.7%로 가장 낮았다. 살찐 몸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돈 많은 남성에겐 상대적으로 느슨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안씨는 “헬스는 물론 원푸드 다이어트, 1일 1식까지 안 해본 게 없다”면서 “하지만 몸이 내 마음대로 될 것 같으면 누가 걱정하겠느냐”고 말했다. “몸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엔 유전자나 생활습관의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 사회에서 20~30대 여성이 몸을 돌볼 시간과 여유가 있는지 의문이에요. 누구나 좋은 음식을 잘 챙겨 먹으면서 건강하게 살고 싶지만, 그럴 돈도 시간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잖아요.”

황인후씨는 가정환경이 자신의 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여파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초등학생 때 친척 집에 몇년간 얹혀살아야 했다. 그때 은근한 눈치와 따돌림을 받으면서 식습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 “스파게티가 먹고 싶은데 아무도 해줄 것 같지 않아서 스파게티 컵라면을 혼자 몰래 먹다가 들켰어요. 그런데 그걸 본 친척이 웃더니 다른 아이들에게만 진짜 스파게티를 해주더라고요. 그때부터 음식에 대한 집착이 커졌고, 살이 계속 찌면서 몸 돌보기를 포기하게 된 것 같아요.”

한번 살이 찌고 나니 몸을 관리하는 게 쉽지 않았다. 황씨는 “어렸을 때부터 몸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으니까 운동을 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면서 “수영이나 필라테스는 모두 몸 좋은 사람들이 라인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김씨는 요즘 ‘굳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고 했다. “입고 싶은 옷인데 맞는 치수가 없을 땐 마른 몸을 가져야 하나 싶기도 해요. 하지만 굳이? 지금 내 몸으로 사는 생활이 너무 즐겁고 좋거든요. 옷 하나 때문이라면 내가 바뀔 이유가 있나요? 오히려 이 몸에도 맞는 옷을 만들어주는 사회가 필요한 것 아닐까요.”

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http://naver.me/GI8PM0Rx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52,343 / 458 페이지

공지글


최근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