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시마 다케오의 여인추억 1 ... - 1부 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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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깨지지 않은 유리잔
초가을 숲속에서 다에꼬가 마사오의 몸을 알고난 후로 두사람은
일 주일에 한 번 정도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갖곤 했다. 그렇지만 두 사
람이 깊은 애정을 나누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나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더구나 마사오에게는 다에고의 순결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뿌리깊게 자라났고 애무 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다에꼬도 마사오를
유혹하지는 않았다. 분명히 자신이 요구하면 다에고는 고분고분 응해
줄 것이라고 마사오는 믿고 있었다. 그것이 커다란 여유가 되어 오히
려 서두를 마음을 일으키지 ㅇ낳게 하고 있는 듯했다.
또한 정상적인 행위를 위해선 충분한 시간과 평온한 주변 조건이 필
요하다는 걸 마사오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시간과 주위를 걱정
해야 하는 처지에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제전이 합격점을 얻지 못하
고 말 우려가 있었고 그렇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될 것
이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의 경험으로도 알 수 있었다.
말하자면 매우 친밀하면서도 두 사람이 하나가 되지 않는 것은 단순
히 윤리를 의식한 자제력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주어진 상황에서 무
리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거의 정기적으로 다에꼬의 애무에 의해 만
족감을 얻고 있었으므로 무리를 해서라도 이루고 싶은 절심함도 덜했
다. 그런 까닭에 다에꼬 이외의 여학생에겐 거의 이성을 느끼지도 않
게 되었다.
"며칠 전에 기차 안에서 굉장히 예쁜 여학생을 봤어." 어느 날 마사오
가 다에꼬에게 그렇게 말했다.
"사꾸라이라는 친구랑 같이 있었는데 그 친구도 미인이라는 걸 시인
했지. 마음씨나 실력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뭏든 얼굴만큼은 정말 예
뻤어."
그 다음이 마사오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렇지만 난 곧 다에고가 훨씬 예쁘다고 생각했어. 그림의 떡이라
는 느낌이 들었어.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아. 그런 기분이었다
구. 이성이 아니라 식물인 꽃을 앞에 둔 느낌이었어."
"그렇지만 말 걸고 싶지 않았어?"
"아니, 그런 마음은 전혀 생기지 않던데. 그럴 필요도 없었고. 예쁜
여자애를 보면 무턱대고 반한다는 건 거짓말이야. 적어도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아. 그렇지만 말을 걸긴 했어."
"뭐?" 다에꼬는 샐쭉해졌다.
"역시..."
"아냐. 자, 들어 봐."
예쁜 여자는 그저 예쁜 여자일 뿐, 자신의 사랑을 받을 여자는 세상
에 오직 다에꼬뿐이라는 것이 진심인지 스스로를 시험해 보기 위해 말
을 걸었었다고 마사고는 말했다. "난 이제 다에꼬 이외엔 누구에게도
흥미가 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
다에꼬는 어이없어 하고 있었다.
"안 돼. 아는 사람이 봤더라면 내가 창피할 뻔했잖아."
"아는 사람은 사꾸라이뿐이었는 걸."
"그래두 그렇게 예쁜 애니까 흥미가 있어서 말을 건 거잖아.?"
"아냐. 다에꼬 이외는 아무에게도 관심없다는 실험이었어. 그뿐이
야. 이건 맹세해도 좋아."
"그래도 앞으로 그런 실험은 하지 마."
겨울 방학이 끝나고 3학기가 시작되기 며칠 전, 온 세상을 새하얗게
뒤덮으며 밤새 내리던 눈이 아침 햇살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전 내내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을 온통 흰색으로 가득 메웠다. 오후에도 눈은
계속 내렸다. 마사오가 문 앞에 쌓인 눈을 치우려고 길가로 나섰을 때
마침 다에꼬 어머니가 가던 길을 멈추고 마사오 곁으로 다가왔다. 마
사오가 인사를 하자 다에꼬 어머니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사오, 참 부지런하구나. 지금 다에꼬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으니까
괜찮으면 가서 같이 놀아 줄래?"
"예, 그럴께요."
다에꼬의 집을 향해 가는 마사오의 몸은 흥분되어 있었다. 새해가
되고 나서 아직 서로 사랑을 나눌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다에꼬의 손
으로 기쁨을 얻게 되고부터는 스스로 얻는 쾌락을 금지하고 있었다.
욕망은 축적된 상태였다. 한편으론, 아무것도 모르고 같이 놀아달라
고 한 다에꼬의 어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믿음을 배반하는
것이고, 지금 배반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렇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결코 배반하는 것만은 아니야. 이것이 나와 다에꼬와의 진실이고 때가
되면 아주머니도 틀림없이 인정하실 거야." 현관으로 마사오를 맞으
러 나온 다에꼬가 환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부르러 갈까 하던 중이었어. 두 시간쯤 혼자 있어야 될 거 같아."
"알고 왔어. 조금 전 아주머니께 들었어."
"엄마가?"
놀라는 다에꼬의 얼굴에 순간 기쁨의 표정이 한데 어우러졌다. 두
사람의 관계를 어머니가 인정해 주는 것 같은 조짐을 느껴서였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응접실에서 끌어안은 채 서로 어루만지고 있었
다. 다에꼬의 뺨은 뜨거웠다.
"새해가 시작됐어."
마사오가 속삭였다.
"매일 함께 있고 싶어."
"저... 부끄러운 말을 해도 돼?"
"응?"
"마사오, 마사오가... 내... 여기에... 키스해 주었었잖아?"
"그랬지."
"기뻤었어."
"그러면 오늘 또 해줄께."
다시 한번 그렇게 하고 싶은 욕망은 마사오에게 늘 있었다. 다에꼬
가 처녀의 수치심과 결벽증으로 싫어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을 따름
이었다. 다에꼬가 먼저 말을 꺼낸 건 다행이었다. 다에꼬는 급하게 고
개를 가로저으며 마사오에게 안겨 왔다.
"그게 아니라..."
".......?"
"...저, 넌 해 주고, 난 아직 안 했잖아."
"그럼 네가 해줄래?"
"그러고 싶어."
마사오는 다에꼬에게 키스했다. 다엑도 적극적으로 응해 왔다. 긴
입맞춤이었다.
"해 줘. 나도 할께."
"그런데...." 다에꼬가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또 할 말이 있어?"
"나, 책에서 읽었어. 엄마 책을 살짝 봤거든."
"무슨 책?"
"결혼에 관한 책이야. 그 책에, 부끄럽지만..., 말하기 힘든 것이 있
었어."
머뭇거리며 겨우 다에꼬가 한 말은, 마사오가 기쁨의 절정에서 뿜어
낸 그것을 받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미 반 친구와의 얘기로 마사
오는 그 사랑의 행위를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것을 무어라 부르는
지도 알고 있었다. 자신도 다에꼬에게 바라고 있던 일이기도 했다.
"자신을 희생하여 내게 해 주려는 걸까." 다에꼬의 말 뜻을 알아챈 후
마사오는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부끄러우니까 얼굴을 보지 말라는 다에꼬의 부탁이 있었고 마사오
는 그러마하고 약속했다. "나도 다에고에게 같이 하면 좋을 텐데." 어쨌
든 다에꼬에게도 자신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새로운 단계로 들어
가는 의식인 셈이었다.
다에꼬는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마사오의 아랫도리가 이불 밖으로
나왔다. 이미 마사오의 몸은 드러난 채 다에꼬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다에꼬는 손의 위치를 바꿔 아래부터 눌러 오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손으로 애무할 때도 다에꼬는 부끄러워서 그것을 똑바로 보려고 하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똑바로 보고 있었다. 마사오도 조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부끄러움보다도 다에꼬가 자기를 보아 주고 있
다는 것이 따뜻한 느낌을 몰고왔다. 그 마음에는 어떤 황홀함도 물론
섞여 있었다. 마사오는 낮은 소리로 말을 건넸다.
"어때?"
"믿음직스러워.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싶어."
"다에꼬 거야."
"기버." 손에 힘을 주면서 다에꼬가 몸을 숙였다. 끝 부분에 뭔가가 부
드럽게 닿았다. "입술이다."
"정말 좋아."
다에꼬의 속삭임이 들렸다. 그것은 마사오의 온 몸에 속삭이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곳에 속삭이는 밀어였다. 절심함이 한층 진하게 배
어 있었다. 다시 한번 키스를 했다. 다에꼬는 아무 말도 없이 더욱 더
입술을 가까이 했다. 몇 번 키스를 한 뒤 다에꼬는 바로 위에서 마사
오를 입안에 넣었다. 평온했던 마사오의 온몸에 따뜻함이 번졌다. 마
사오는 눈을 감은 채 그대로 누워 있었다.
"보고 싶다." 그러면 기쁨이 더욱 강력해질 것 같았다. 그러나 눈을
뜨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눈을 감은 마사오는 기쁨을 가슴에 새겨 넣
으려고 애썼다. 쾌감이 갑자기 더욱 강해졌다. 그렇지만 그 쾌감 이상
으로 마사오는 다에꼬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에, 아니 그렇게 해 주
고 있는 사람이 바로 다에꼬라는 사실에 가슴 뿌듯한 만족감을 맛보고
있었다. "아, 기분 좋아." 그렇게 말했다. 다에꼬에게 자신의 감동을
전하고 싶었다. 다에꼬는 조금씩 삼키다가 멈추었다. 더 이상은 계속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
이제 다에꼬는 자기의 어떤 애무에 마사오가 흥분하는지 알고 있었
다. 손 대신 입으로 하면 더욱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엇다. 마
사오가 가르쳐 줄 필요는 없었다. 이 기쁨을 마음에 새겨 다에꼬의 사
랑을 확인하는 것이 더욱 더 중요했다.
"우리들은...." 마사오가 말했다.
"이제 헤어질 수 없어."
다에꼬는 끄덕였다. 그것이 마사오의 몸에 전해져 왔다. 입안 가득
마사오를 넣고 잇었으므로 다에꼬는 말할 수가 없었다. 손가락이 짧게
마사오를 몇 번 눌렀다. 마사오는 눈을 떴다. 다에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천정과 전등만이 보였다. 전등 불빛이 환하게 마사오를 비추
고 있었는데 웬일인지 그 빛은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 다에꼬의 머리
가 움직였다.
"아 -."
동작이 더 계속되길 바란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마사오는 숨소리
를 토했다. 다에꼬는 다시 움직였다.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었다. 그
때 마사오의 눈앞에 길을 걸어가는 교복 차림의 다에꼬가 떠 올랐다.
"묘하군. 이럴 때 그 모습이 떠오르다니." 다에꼬는 진지한 얼굴이었
다. 흰 선이 그어진 세라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청초했다. "그 다에
꼬와 지금의 다에꼬는 같은 인물이야." 문득 마사오에게, 자신이 다에
꼬에게 잔인한 일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엄습해 왔다. "아
냐. 다에꼬는 스스로 행동하는 거야." 다에꼬의 혀가 움직이기 시작했
고 그녀의 몸은 마사오에게 밀착되어 있었다. 마사오는 손을 뻗어 다
에꼬의 팔을 잡아 끌어당겼다.
"잠깐 이리로 와."
조금 째는 듯하더니 다에꼬는 마사오의 품으로 쓰러지듯 안겨 왔다.
"보지 말라니까."
가슴에 파묻으려는 얼굴을 끌어당겨 마사오는 입술을 맞추었다.
"이제 됐어." 마사오는 속삭였다.
"이번엔 내가 할께." 손을 뻗자 조금 전보다 훨씬 많은 사랑의 샘물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다에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이야."
"무리하지 않아도 돼. 이제부터는 보통 때처럼 하는 게 좋아."
"싫어." 다에꼬는 계속 고개를 저었다.
"하고 싶어."
마사오는 다에꼬의 귓불으 가볍게 깨물었다.
"하고 싶다고?"
"응. 훨씬 전부터 그러고 싶었어."
"싫지 않아?"
"응."
"정말?"
"정말이야. 황홀하고 기분이 좋아. 마사오이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들은 하나가 되어도 좋겠구나?"
"좋아. 지금이라도. 자, 이제 놔 줘. 조그만 더..."
마음 한구석에서 다에고의 마력에 대한 두려움이 싹트고 있었다. 길
을 걷고 있거나 친구와 이야기할 때의 다에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다시 한번 다에꼬는 마사오의 아래로 내려가 마사오를
움켜쥐었다. 입술이 다시 닿는 것도 느꼈다. "정말 이 애는 이런 일이
처음일까? 경험이 많았던 게 아닐까? 아니다. 내가 다에꼬를 의심하
다니." 마사오는 몸을 맡길 자세가 되었다. 다에꼬의 애무는 더욱 강
해졌다.
"아 - ."
마사오는 다시 다에꼬의 팔을 잡아 몸을 일으켰다.
"싫어."
다에꼬는 마사오의 눈을 가리며 마사오의 뒤로 고개를 돌려 숨으려했다.
"약속을 깨지 마."
마사오는 다에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젠 됐어. 이번엔 내가...."
그렇지만 다에꼬는 마사오에게 뺨을 비비며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마사오는 몸을 비틀려 다에꼬의 허리를 껴안고 다에꼬의 오므린 다리
사이로 얼굴을 가져갔다. 다에꼬는 저항하지 않고 마사오의 움직임을
도왔다. "이젠 됐어. 이제 나도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돼."
"저..., 잠깐만 그만해."
다에꼬의 절박한 목소리였다. 마사오는 멈췄다. 그러자 다에꼬가
마사오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이제 다에꼬의 의도는 분명해졌지만 정
작 마사오 자신은 주춤거려졌다. "어떻게 할까? 이 흐름에 맡기는 게
좋아. 그렇지만 과연..." 이제 벌어질 일은 다에꼬에겐 첫 체험일 것
이다. 마사오에게도 그랬다. 마사오는 마지막까지 가고 싶엇다. 그렇
지만 다에꼬가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하니 그런 모험은 하지 않는 편이
현명한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통해 다에꼬와 더욱 긴밀한 관
계가 되고 싶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있었다.
망설이는 동안 상황은 점점 다급해졌다. 빨리 결론을 내려야만 했
다. "좋아, 이제 이렇게 되면 다에꼬의 생각에 맡기면 돼." 그것을 이
미 몇 번이나 보았었고 손으로 만지기도 했었다. 걱정할 건 없다고 자
신에게 말했다.
그러나 마사오는 극치에 다다르자 다에꼬에게서 몸을 떼었다. 그리
고 공중으로 내뿜었다. 다에꼬는 애썼지만 마사오의 강한 힘으로 제지
되었다. 아무리 다에꼬가 바란다고 해도 그건 역시 다에꼬에겐 잔인한
일이다.
"왜 그래?"
책망하는 다에꼬을 껴안으며 마사오는 말했다.
"널 좋아하니까."
3학기가 시작되었다. 개학날 등교한 마사오는 충격적인 사건을 전
해 들었다. 한 학년 위인 가마다라는 얌전한 남학생이 같은 학년 여학
생과 겨울 방학에 동반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마사오는 그 가마
다라는 상급생을 알지는 못했다.
"급장 세 명 중의 한 애였어."
급장은 한 반에 세 명씩 학생들의 투표로 선출하게 되어 있었다. 아
무래도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표를 모으게 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학교측에서 임명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마사오도 줄곧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체조는 아주 싫어했고, 늘 책만 보는 애였다."
"포목점집 막내아들로 얼굴이 하얀 미소년이었대."
"여자애는 시골 농부의 딸이래나 봐. 여학생도 얌전해서 남학생이나
사귀고 다니는 아이는 아니었다. 두 사람이 사귀고 있는 줄은 아무도
몰랐었다구."
"약을 먹고 산속에서 껴안고 죽어 있었대. 눈이 내린 날이었다는 거같애."
"양가 부모님도 두 사람이 교제하는 걸 몰랐다니까 부모님 반대 때문도
아니야. 학교에서도 몰랐고."
"유서에는 부모님께 먼저 가는 불효를 용서해 달라고 쓰여 있었대.
이유는 쓰지 않았나 봐."
동반 자살한 두 사람이 자신들과 비슷한 평범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모두들 더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거기에는 어떤 부러움도 섞여 있는
듯했다. "눈이 온 그날..." 왜 동반 자살을 해야만 했는지 마사오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초가을 숲속에서 다에꼬가 마사오의 몸을 알고난 후로 두사람은
일 주일에 한 번 정도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갖곤 했다. 그렇지만 두 사
람이 깊은 애정을 나누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나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더구나 마사오에게는 다에고의 순결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뿌리깊게 자라났고 애무 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다에꼬도 마사오를
유혹하지는 않았다. 분명히 자신이 요구하면 다에고는 고분고분 응해
줄 것이라고 마사오는 믿고 있었다. 그것이 커다란 여유가 되어 오히
려 서두를 마음을 일으키지 ㅇ낳게 하고 있는 듯했다.
또한 정상적인 행위를 위해선 충분한 시간과 평온한 주변 조건이 필
요하다는 걸 마사오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시간과 주위를 걱정
해야 하는 처지에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제전이 합격점을 얻지 못하
고 말 우려가 있었고 그렇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될 것
이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의 경험으로도 알 수 있었다.
말하자면 매우 친밀하면서도 두 사람이 하나가 되지 않는 것은 단순
히 윤리를 의식한 자제력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주어진 상황에서 무
리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거의 정기적으로 다에꼬의 애무에 의해 만
족감을 얻고 있었으므로 무리를 해서라도 이루고 싶은 절심함도 덜했
다. 그런 까닭에 다에꼬 이외의 여학생에겐 거의 이성을 느끼지도 않
게 되었다.
"며칠 전에 기차 안에서 굉장히 예쁜 여학생을 봤어." 어느 날 마사오
가 다에꼬에게 그렇게 말했다.
"사꾸라이라는 친구랑 같이 있었는데 그 친구도 미인이라는 걸 시인
했지. 마음씨나 실력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뭏든 얼굴만큼은 정말 예
뻤어."
그 다음이 마사오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렇지만 난 곧 다에고가 훨씬 예쁘다고 생각했어. 그림의 떡이라
는 느낌이 들었어.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아. 그런 기분이었다
구. 이성이 아니라 식물인 꽃을 앞에 둔 느낌이었어."
"그렇지만 말 걸고 싶지 않았어?"
"아니, 그런 마음은 전혀 생기지 않던데. 그럴 필요도 없었고. 예쁜
여자애를 보면 무턱대고 반한다는 건 거짓말이야. 적어도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아. 그렇지만 말을 걸긴 했어."
"뭐?" 다에꼬는 샐쭉해졌다.
"역시..."
"아냐. 자, 들어 봐."
예쁜 여자는 그저 예쁜 여자일 뿐, 자신의 사랑을 받을 여자는 세상
에 오직 다에꼬뿐이라는 것이 진심인지 스스로를 시험해 보기 위해 말
을 걸었었다고 마사고는 말했다. "난 이제 다에꼬 이외엔 누구에게도
흥미가 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
다에꼬는 어이없어 하고 있었다.
"안 돼. 아는 사람이 봤더라면 내가 창피할 뻔했잖아."
"아는 사람은 사꾸라이뿐이었는 걸."
"그래두 그렇게 예쁜 애니까 흥미가 있어서 말을 건 거잖아.?"
"아냐. 다에꼬 이외는 아무에게도 관심없다는 실험이었어. 그뿐이
야. 이건 맹세해도 좋아."
"그래도 앞으로 그런 실험은 하지 마."
겨울 방학이 끝나고 3학기가 시작되기 며칠 전, 온 세상을 새하얗게
뒤덮으며 밤새 내리던 눈이 아침 햇살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전 내내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을 온통 흰색으로 가득 메웠다. 오후에도 눈은
계속 내렸다. 마사오가 문 앞에 쌓인 눈을 치우려고 길가로 나섰을 때
마침 다에꼬 어머니가 가던 길을 멈추고 마사오 곁으로 다가왔다. 마
사오가 인사를 하자 다에꼬 어머니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사오, 참 부지런하구나. 지금 다에꼬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으니까
괜찮으면 가서 같이 놀아 줄래?"
"예, 그럴께요."
다에꼬의 집을 향해 가는 마사오의 몸은 흥분되어 있었다. 새해가
되고 나서 아직 서로 사랑을 나눌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다에꼬의 손
으로 기쁨을 얻게 되고부터는 스스로 얻는 쾌락을 금지하고 있었다.
욕망은 축적된 상태였다. 한편으론, 아무것도 모르고 같이 놀아달라
고 한 다에꼬의 어머니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믿음을 배반하는
것이고, 지금 배반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렇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결코 배반하는 것만은 아니야. 이것이 나와 다에꼬와의 진실이고 때가
되면 아주머니도 틀림없이 인정하실 거야." 현관으로 마사오를 맞으
러 나온 다에꼬가 환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부르러 갈까 하던 중이었어. 두 시간쯤 혼자 있어야 될 거 같아."
"알고 왔어. 조금 전 아주머니께 들었어."
"엄마가?"
놀라는 다에꼬의 얼굴에 순간 기쁨의 표정이 한데 어우러졌다. 두
사람의 관계를 어머니가 인정해 주는 것 같은 조짐을 느껴서였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응접실에서 끌어안은 채 서로 어루만지고 있었
다. 다에꼬의 뺨은 뜨거웠다.
"새해가 시작됐어."
마사오가 속삭였다.
"매일 함께 있고 싶어."
"저... 부끄러운 말을 해도 돼?"
"응?"
"마사오, 마사오가... 내... 여기에... 키스해 주었었잖아?"
"그랬지."
"기뻤었어."
"그러면 오늘 또 해줄께."
다시 한번 그렇게 하고 싶은 욕망은 마사오에게 늘 있었다. 다에꼬
가 처녀의 수치심과 결벽증으로 싫어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을 따름
이었다. 다에꼬가 먼저 말을 꺼낸 건 다행이었다. 다에꼬는 급하게 고
개를 가로저으며 마사오에게 안겨 왔다.
"그게 아니라..."
".......?"
"...저, 넌 해 주고, 난 아직 안 했잖아."
"그럼 네가 해줄래?"
"그러고 싶어."
마사오는 다에꼬에게 키스했다. 다엑도 적극적으로 응해 왔다. 긴
입맞춤이었다.
"해 줘. 나도 할께."
"그런데...." 다에꼬가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또 할 말이 있어?"
"나, 책에서 읽었어. 엄마 책을 살짝 봤거든."
"무슨 책?"
"결혼에 관한 책이야. 그 책에, 부끄럽지만..., 말하기 힘든 것이 있
었어."
머뭇거리며 겨우 다에꼬가 한 말은, 마사오가 기쁨의 절정에서 뿜어
낸 그것을 받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미 반 친구와의 얘기로 마사
오는 그 사랑의 행위를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것을 무어라 부르는
지도 알고 있었다. 자신도 다에꼬에게 바라고 있던 일이기도 했다.
"자신을 희생하여 내게 해 주려는 걸까." 다에꼬의 말 뜻을 알아챈 후
마사오는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부끄러우니까 얼굴을 보지 말라는 다에꼬의 부탁이 있었고 마사오
는 그러마하고 약속했다. "나도 다에고에게 같이 하면 좋을 텐데." 어쨌
든 다에꼬에게도 자신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새로운 단계로 들어
가는 의식인 셈이었다.
다에꼬는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마사오의 아랫도리가 이불 밖으로
나왔다. 이미 마사오의 몸은 드러난 채 다에꼬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다에꼬는 손의 위치를 바꿔 아래부터 눌러 오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손으로 애무할 때도 다에꼬는 부끄러워서 그것을 똑바로 보려고 하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똑바로 보고 있었다. 마사오도 조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부끄러움보다도 다에꼬가 자기를 보아 주고 있
다는 것이 따뜻한 느낌을 몰고왔다. 그 마음에는 어떤 황홀함도 물론
섞여 있었다. 마사오는 낮은 소리로 말을 건넸다.
"어때?"
"믿음직스러워.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싶어."
"다에꼬 거야."
"기버." 손에 힘을 주면서 다에꼬가 몸을 숙였다. 끝 부분에 뭔가가 부
드럽게 닿았다. "입술이다."
"정말 좋아."
다에꼬의 속삭임이 들렸다. 그것은 마사오의 온 몸에 속삭이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곳에 속삭이는 밀어였다. 절심함이 한층 진하게 배
어 있었다. 다시 한번 키스를 했다. 다에꼬는 아무 말도 없이 더욱 더
입술을 가까이 했다. 몇 번 키스를 한 뒤 다에꼬는 바로 위에서 마사
오를 입안에 넣었다. 평온했던 마사오의 온몸에 따뜻함이 번졌다. 마
사오는 눈을 감은 채 그대로 누워 있었다.
"보고 싶다." 그러면 기쁨이 더욱 강력해질 것 같았다. 그러나 눈을
뜨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눈을 감은 마사오는 기쁨을 가슴에 새겨 넣
으려고 애썼다. 쾌감이 갑자기 더욱 강해졌다. 그렇지만 그 쾌감 이상
으로 마사오는 다에꼬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에, 아니 그렇게 해 주
고 있는 사람이 바로 다에꼬라는 사실에 가슴 뿌듯한 만족감을 맛보고
있었다. "아, 기분 좋아." 그렇게 말했다. 다에꼬에게 자신의 감동을
전하고 싶었다. 다에꼬는 조금씩 삼키다가 멈추었다. 더 이상은 계속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
이제 다에꼬는 자기의 어떤 애무에 마사오가 흥분하는지 알고 있었
다. 손 대신 입으로 하면 더욱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엇다. 마
사오가 가르쳐 줄 필요는 없었다. 이 기쁨을 마음에 새겨 다에꼬의 사
랑을 확인하는 것이 더욱 더 중요했다.
"우리들은...." 마사오가 말했다.
"이제 헤어질 수 없어."
다에꼬는 끄덕였다. 그것이 마사오의 몸에 전해져 왔다. 입안 가득
마사오를 넣고 잇었으므로 다에꼬는 말할 수가 없었다. 손가락이 짧게
마사오를 몇 번 눌렀다. 마사오는 눈을 떴다. 다에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천정과 전등만이 보였다. 전등 불빛이 환하게 마사오를 비추
고 있었는데 웬일인지 그 빛은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 다에꼬의 머리
가 움직였다.
"아 -."
동작이 더 계속되길 바란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마사오는 숨소리
를 토했다. 다에꼬는 다시 움직였다.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었다. 그
때 마사오의 눈앞에 길을 걸어가는 교복 차림의 다에꼬가 떠 올랐다.
"묘하군. 이럴 때 그 모습이 떠오르다니." 다에꼬는 진지한 얼굴이었
다. 흰 선이 그어진 세라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청초했다. "그 다에
꼬와 지금의 다에꼬는 같은 인물이야." 문득 마사오에게, 자신이 다에
꼬에게 잔인한 일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엄습해 왔다. "아
냐. 다에꼬는 스스로 행동하는 거야." 다에꼬의 혀가 움직이기 시작했
고 그녀의 몸은 마사오에게 밀착되어 있었다. 마사오는 손을 뻗어 다
에꼬의 팔을 잡아 끌어당겼다.
"잠깐 이리로 와."
조금 째는 듯하더니 다에꼬는 마사오의 품으로 쓰러지듯 안겨 왔다.
"보지 말라니까."
가슴에 파묻으려는 얼굴을 끌어당겨 마사오는 입술을 맞추었다.
"이제 됐어." 마사오는 속삭였다.
"이번엔 내가 할께." 손을 뻗자 조금 전보다 훨씬 많은 사랑의 샘물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다에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이야."
"무리하지 않아도 돼. 이제부터는 보통 때처럼 하는 게 좋아."
"싫어." 다에꼬는 계속 고개를 저었다.
"하고 싶어."
마사오는 다에꼬의 귓불으 가볍게 깨물었다.
"하고 싶다고?"
"응. 훨씬 전부터 그러고 싶었어."
"싫지 않아?"
"응."
"정말?"
"정말이야. 황홀하고 기분이 좋아. 마사오이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들은 하나가 되어도 좋겠구나?"
"좋아. 지금이라도. 자, 이제 놔 줘. 조그만 더..."
마음 한구석에서 다에고의 마력에 대한 두려움이 싹트고 있었다. 길
을 걷고 있거나 친구와 이야기할 때의 다에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다시 한번 다에꼬는 마사오의 아래로 내려가 마사오를
움켜쥐었다. 입술이 다시 닿는 것도 느꼈다. "정말 이 애는 이런 일이
처음일까? 경험이 많았던 게 아닐까? 아니다. 내가 다에꼬를 의심하
다니." 마사오는 몸을 맡길 자세가 되었다. 다에꼬의 애무는 더욱 강
해졌다.
"아 - ."
마사오는 다시 다에꼬의 팔을 잡아 몸을 일으켰다.
"싫어."
다에꼬는 마사오의 눈을 가리며 마사오의 뒤로 고개를 돌려 숨으려했다.
"약속을 깨지 마."
마사오는 다에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젠 됐어. 이번엔 내가...."
그렇지만 다에꼬는 마사오에게 뺨을 비비며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마사오는 몸을 비틀려 다에꼬의 허리를 껴안고 다에꼬의 오므린 다리
사이로 얼굴을 가져갔다. 다에꼬는 저항하지 않고 마사오의 움직임을
도왔다. "이젠 됐어. 이제 나도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돼."
"저..., 잠깐만 그만해."
다에꼬의 절박한 목소리였다. 마사오는 멈췄다. 그러자 다에꼬가
마사오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이제 다에꼬의 의도는 분명해졌지만 정
작 마사오 자신은 주춤거려졌다. "어떻게 할까? 이 흐름에 맡기는 게
좋아. 그렇지만 과연..." 이제 벌어질 일은 다에꼬에겐 첫 체험일 것
이다. 마사오에게도 그랬다. 마사오는 마지막까지 가고 싶엇다. 그렇
지만 다에꼬가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하니 그런 모험은 하지 않는 편이
현명한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통해 다에꼬와 더욱 긴밀한 관
계가 되고 싶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있었다.
망설이는 동안 상황은 점점 다급해졌다. 빨리 결론을 내려야만 했
다. "좋아, 이제 이렇게 되면 다에꼬의 생각에 맡기면 돼." 그것을 이
미 몇 번이나 보았었고 손으로 만지기도 했었다. 걱정할 건 없다고 자
신에게 말했다.
그러나 마사오는 극치에 다다르자 다에꼬에게서 몸을 떼었다. 그리
고 공중으로 내뿜었다. 다에꼬는 애썼지만 마사오의 강한 힘으로 제지
되었다. 아무리 다에꼬가 바란다고 해도 그건 역시 다에꼬에겐 잔인한
일이다.
"왜 그래?"
책망하는 다에꼬을 껴안으며 마사오는 말했다.
"널 좋아하니까."
3학기가 시작되었다. 개학날 등교한 마사오는 충격적인 사건을 전
해 들었다. 한 학년 위인 가마다라는 얌전한 남학생이 같은 학년 여학
생과 겨울 방학에 동반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마사오는 그 가마
다라는 상급생을 알지는 못했다.
"급장 세 명 중의 한 애였어."
급장은 한 반에 세 명씩 학생들의 투표로 선출하게 되어 있었다. 아
무래도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표를 모으게 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학교측에서 임명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마사오도 줄곧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체조는 아주 싫어했고, 늘 책만 보는 애였다."
"포목점집 막내아들로 얼굴이 하얀 미소년이었대."
"여자애는 시골 농부의 딸이래나 봐. 여학생도 얌전해서 남학생이나
사귀고 다니는 아이는 아니었다. 두 사람이 사귀고 있는 줄은 아무도
몰랐었다구."
"약을 먹고 산속에서 껴안고 죽어 있었대. 눈이 내린 날이었다는 거같애."
"양가 부모님도 두 사람이 교제하는 걸 몰랐다니까 부모님 반대 때문도
아니야. 학교에서도 몰랐고."
"유서에는 부모님께 먼저 가는 불효를 용서해 달라고 쓰여 있었대.
이유는 쓰지 않았나 봐."
동반 자살한 두 사람이 자신들과 비슷한 평범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모두들 더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거기에는 어떤 부러움도 섞여 있는
듯했다. "눈이 온 그날..." 왜 동반 자살을 해야만 했는지 마사오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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