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시마 다케오의 여인추억 1 ... - 1부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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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아픈 동심





따지러 왔던 길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뜻밖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

었다. 우습게 된 것이었다. 다에꼬에게 죄책감이 느껴졌다. 이것만큼

은 고백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보다 자신만만하게

마사오는 오까모또에게 "꼴 좋게 됐군" 하고 외치고 있었다. 폭력으로

사람을 제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마사오는, 오까모또가 터

무니없는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자기 여자인 후미에가 마사오에게

키스를 해 주는 모욕을 자초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정원의 나무에서 매미가 울고 있었다. 집 안은 조용했고 후미에의

할머니는 어디에 있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후미에의 손이

마사오의 손목을 잡았다. 그 손이 마사오의 팔을 감아 자신의 가슴으

로 이끌었다. 그 동안에도 후미에의 혀는 마사오의 입 안에서 움직이

고 있었다.

흰 블라우스 위로 마사오의 손이 후미에의 젖가슴에 닿았다. 후미에

의 손은 마사오의 손이 자기의 가슴을 만지도록 했다. 브레지어를 하

지 않은 젖가슴은 약간 밑으로 처져 있었다. 다에꼬의 가슴에 비해 크

고 부드러웠다. 마사오가 알기로는 후미에는 다에꼬와 같은 학년이었

다. 마사오는 손을 댄 채 가만히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주무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아무 짓도 해선 안 된다

고 명령을 내렸다.

후미에가 아쉽다는 듯이 입술을 떼엇다. 얼굴을 돌리진 않았다. 눈

이 마주쳤다. 붉게 충혈된 채 물기가 어른거리는 후미에의 눈동자에서

요염한 빛이 흘러나왔다. "이 여자, 어디까지라도 가 볼 마음이 되어

있어." 마사오는 그렇게 직감했다. 그렇지만 당혹스럽지는 않았다. 반

대로 과연 그런지 어떤지를 확인해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남자다. 언제든지 거부하고 몸을 돌릴 수 있다.

"날 싫어해?"

"......"

"싫어하면 안돼."

후미에의 목소리는 달콤했다. "유혹적인 목소리군." 마사오는 대답

대신 후미에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얼굴의 인상도 다

에꼬와는 전혀 달랐다. 더욱 "여자"를 느끼게 했다.

"좋아해 달라고는 하지 않을께. 단지 날 데리고 노는 사람이 너라면

좋겠어."

다시 한번 입술을 밀어 왔다. 후미에의 입 속에는 아까보다 침이 많

이 고여 있었다. 더구나 이번엔 눈을 감지도 않았다. 흥분하는 기색도

없이 눈길도 고정시킨 채 그대로 마사오의 입술을 빨고 있었다. 마사

오가 입을 떼었다.

"다에꼬의 허를 찌르려는 거지?"

"아니."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지금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아. 단지 우리 두 사람만...."

마사오는 몸을 일으켰다. 후미에도 억지로 마사오를 막지는 않았다.

"나 돌아갈래."

"안 돼. 피 묻은 옷을 빨아야 돼. 기다려."

그것도 그렇다. 피 묻은 셔츠로 돌아가면 어머니가 걱정할 테니까.

"그러면 깨끗이 빨아 줘."

"누워 있어."

후미에는 나갔다. 마사오는 누운 채 얼굴의 상처를 손가락으로 만지

고 있었다. 정원에서 후미에가 마사오의 옷을 말리는 모습이 보였다.

곧 후미에가 셔츠와 바지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마사오는 누운

채 그대로 있었다. 후미에는 마사오의 앞에 앉아 바지를 다다미 위에

놓았다.

"셔츠가 마를 때까지 기다려. 곧 마를 거야."

"오까모또와 정말 헤어질 거야?"

"헤어질 거야."

"두고보겟어."

"그렇게 좋아하는 사이는 아니야. 난 바람기가 좀 있거든."

"그래서 그 녀석이 그렇게 질투가 심하구나."

이미 마사오는 후미에에 대해 화가 풀려 있었다.매혹적인 요정과

함께 잇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 애와 더 가까와진다 해

도, 이 애가 나를 별로 간섭하지 않고 나를 곤란하게 만들지도 않고,

나와 다에꼬 사이를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그런 조건이 확보된

다면 관계가 더 깊어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경험이 많은 후미에는 마

사오를 교묘하게 이끌어들여 오늘 마사오를 하여금 첫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그 체험을 다에꼬에게 써먹을 수

도 있다. 다에꼬와의 사이를 위해 후미에를 이용한다. 그런 명분이 마

사오를 부추기고 있었다.

"질투할 권리 따윈 없어."

마사오는 몸을 일으켜 책상다리로 앉았다. 후미에는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한 손을 마사오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날 믿어."

"뭘?"

"이제 결코 너를 화나게 하지 않을께."

"못 믿겠어." 마사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와 사귀면 당연히 그 녀석들이 날 노리게 될거야. 넌 그들 세계

에서 사는 애니까."

"알리지 않으면 되잖아. 이제 절대로 말하지 않을께."

"분명히 또 말할거." 둘 사이가 가까와지더라도 그 사실을 모든 사

람에게 비밀로 하겠다는 다짐을 마사오는 받고 싶었다.

"알리지 말라고 하면 알리지 않을께."

"그렇게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그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무에게도 알려선 안 돼." 후미에는 얼굴을

가까이 대며 장난꾸러기 같은 눈빛으로 말핬다.

"다에꼬에게도 알리지 말라구?"

"그런 뜻도 있어."

"약속해. 비밀 중의 비밀로 할께."

"....."

"저..." 후미에는 마사오의 귀에 입을 댔다.

"오늘 밤 아홉 시 넘어서 살짝 와. 내 방을 가르쳐 줄께. 현관은 안

돼. 안으로 돌아서 창문 밑으로 와."

"올지 안 올지 확실한 약속은 할 수 없어."

"그래도 좋아. 기다릴께. 할머니는 일찍 주무셔. 방은 떨어져 있어.

안심해도 된다구."

그날 밤 마사오는 후미에에게 가지 않았다. 오까모또가 두렵기 때문

도 아니었고 다에꼬를 배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엇다. 다만

불량 소녀의 유혹에 간단히 넘어가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였다. 욕망에 끌리면서도 남자다운 고집을 부렸다. 쓸데없는 고집일

지도 모르고 더구나 자기 진심과는 다른 결론이었지만 그대도 역시 소

년다운 진실이었다. 후미에가 모기장을 치고 그 안에서 기다렸을 그

시간에 마사오는 손에 잡히지 않는 영문법 참고서와 씨름하고 있었다.

이튼날 아침, 마사오가 정원의 밤나무에 매달려 운동을 하고 있을

때 울타리 너머에서 마사오를 부르는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단정한

교복 차림의 후미에였다. 마사오는 크게 몸을 흔들어 바닥으로 뛰어내

렸다. 울타리께로 다가갔다. "등교하는 길이야" 하고 후미에가 먼저

말했다. 화장도 하지 않았다. 머리를 땋아내린 청초한 여학생 모습이

었다. 희고 빛나는 뺨이 미모를 두드러지게 했다. "빨리 역으로 가야

해." 아침 햇살이 이제 막 땅 위에 쏟아지기 시작했고 울타리의 잎새

들은 이슬에 젖어 있었다.

"이젠 착실하게 학교에 다닐 건가?"

"응."

후미에는 마사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안됐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얼굴이 상다히 부었구나.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이렇게 만들다니.

용서할 수 없어."

"빨리 학교나 나."

"엄마에게 뭐라고 했어?"

"있는 그대로 말했어. 물론 네 말은 빼고."

"어젯밤 내내 창문을 열어 놓고 기다렸어."

"넌 오까모또와 정식으로 헤어져야 돼. 난 어젯밤 공부했어."

"꼭 절교할 거야. 이제 어울려다니는 것도 싫어졌어. 나 갈께."

손을 흔들어 보이고 후미에는 돌아섰다. 남자를 경험한 여자는 걸음

걸이로도 알 수 있다고 반 친구 중 누군가가 말한 적이 있었다. 후미

에의 걷는 모습을 누느올 따라가며 그 허리 흔드는 모양을 유심히 관

찰햇다. 그렇지만 마사오로서는 알아 낼 도리가 없었다.

삼 일 후였다. 장대 같은 비가 퍼붓는 오후에 긴이가 또 찾아왔다.

"또 부르어 왔어? 이제 안 가. 일삼아 맞으러 다니는 바보가 세상에

어딨냐?"

"아니 그런 게 아냐. 여기서 말할께."

요전에도 긴이의 태도는 마사오에게 호의적이었다. 마사오는 긴이

를 방으로 데리고 갔다.

"후미에가 오까모또와 헤어졌어."

"정말?"

"정식으로 절교했어. 후미에는 이제 우리들과 어울리는 걸 그만 두고,

밭일을 한다고 했어."

"밭일?"

"지금까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했었어. 그 애는 멋대로 돌아다니기마

했지. 우리와 어울려다니면서도 마음이 아팠던 모양이야. 이제부터는

마음을 고쳐먹고 학교에서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서 집안 일을

도울 거래."

"정말, 진심일까?"

"진심인 것 같아. 글쎄. 언제까지 그럴지는 모르지. 작심삼일이라니까.

얼마 안 가 우리한테 다시 돌아올 거라는 애도 있지만 난 그 애가 변한

거 같애. 본래 이 동네 사람이 아니잖아. 뭔가가 그 애의 생활을 변화

시키고 있는 거 같아."

놀라웠다. 후미에가 변햇다는 사실도 그랬고 긴이의 말하는 태도나

말투도 불량배들 같지 않았다.

"후미에 집안이 복잡한 모양이지?"

"아마 그 때문이었던 거 같아."

"너희 집은 어때?"

"나 ? 난 줏대가 없어. 그래서 후미에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어. 그 애

의 결심을 축복해 주고 싶어. 한번 노는 데 맛을 들인 사람이 발을 씻는

다는 건 대단한 일이거든."

"왜 내게 그런 말을 하지?"

"후미에가 부탁을 했어. 네가 그 애의 지주가 되어 줘."

"....."

"오까모또에게 내가 직접 들은 건데, 오까모또 녀석에겐 입술만 허락한 것

같아. 이렇게 빨리 도망칠 여자라면 강제로 빼앗을 걸 하고 후회하고 있어.

이제 늦었지. 그 애는 가 버렸어."

"그렇지만 한번 사귄 여자는 악착같이 따라다니는 게 너희들이잖아?"

긴이는 머리를 흔들었다.

"다른 학교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는 그렇게 악당이 아니야. 넌 모르겠지만

오까모또도 근본은 순정파라구. 너희들이 생각하는 만큼 우리들이 못돼먹은

건 아니야."

"후미에가 비료동을 메고 맨발로 밭에 들어가 일을 할 거라구? 믿어도 될까?"

"지켜봐."

"묻고 싶은 게 있어. 오까모또 전에 후미에가 사귀 남자가 또 있지? 내 말

은 그 애가 남자르 ㄹ경험했느냐고 묻는 거야."

"그 애는 처녀야."

"설마..."

"물론 나도 단언할 순 없어. 우리는 모두 그렇게 생각해. 이것도 너희들이

아는 것과 다를 거야. 우리 패 여학생 모두가 거기까지 남자에게 허락하진

않아. 사람마다 다 달라."

"그러면 남자애들도 그래?"

"응. 주먹만 쓸 뿐 다른 나쁜 짓은 하지 않는 애도 많아. 수업을 빼먹고

산에 가서 멍청히 앉아 있기만 하는 애도 있고, 도둑질 하는 버릇이 있

지만 여자에겐 전혀 흥미가 없는 애도 있어. 화투만 하는 애도 있고, 술

과 담배에 빠진 대신 싸움이나 여자와는 관계없는 애도 있어. 나쁜 짓이

라면 뭐든지 하는 애들은 별로 없어. 여자도 마찬가지야. 불량 소녀는

반드시 어떤 남자와도 잠자리를 같이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편견이야. 후미에는 아마 바보 같은 소리나 하고 소란피우고 춤

추고 하는 우리들과 함께 있으면서 공허함을 달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

"공허함이라구?"

"모르겠어. 별로 자기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 애니까. 다 함께 있을 때도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아. 인간은 제각기 고통을 안고 있는 거니까."

"그런 후미에가 왜 갑자기..."

"오까모또가 널 때린 게 계기가 된 건 확실해. 그 다음은 모르겠어. 난

이제 가야 돼. 어쨌든 부탁받은 건 전했으니까."

"어디 가는 거야?"

"스즈끼가 집에서 수레로 쌀을 두 가마니 훔쳐내왔어. 그걸 몰래 따데로

갖고 가는 거야. 밀주 만드는 마을에 팔려고."

"그런 짓 하지 마."

"난 돈이 필요해."

저녁 무렵 비는 갰다. 산의 녹음이 아름다왔다. 하늘의 푸르름을 눈

에 담으면서 마사오는 스스로에게 산보하는 거라고 말하며 다에꼬의

집을 향했다. 다에꼬는 집 마당을 지나 흐르는 도랑에서 대소쿠리를

가지고 열심히 뭔가를 건지고 있었다.

"뭘하고 있어?"

"물고기가 몇 마리 있어. 잘 안 잡히네."

도량의 물이 많이 불어나 있었다. 흐름도 빨랐다. 그 안의 물고기를

잡으려는 다에꼬의 모습은 국민 학교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표정도

아이 같았다. 마사오는 다에꼬와의 은밀한 분위기를 재연할 수 있기를

죽 기대하고 있었다. 이렇게 온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천진난만

한 다에꼬의 모습에 자신이 마냥 추하게 느껴졌다. "역시 그날의 일은

꿈으로 치는 게 좋지 않을까? 다에꼬도 후회할 거야. 잊으려고 할 거

고." 자신이 잔인한 실험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사오는 큰

소리로 말했다. "좋아. 내가 잡아 볼께."

틀림없이 하류의 물고기들이 빗물로 불어난 물줄기를 타고 거슬러

올라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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