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바깥으로 향할 때 - 40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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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바깥으로 향할 때 - 40







자판기의 버튼을 눌렀을 때 나와야 할 제품이 나오지 않는 경우 원인을 두 가지로 짐작해볼 수 있다. 돈을 넣지 않았거나, 아니면 자판기가 고장이라서 소위 말하는 ‘돈을 먹었다’이거나.



남자는 현재 적잖은 스트레스가 쌓여있었고, 그래서 자판기의 블랙커피 버튼을 눌렀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자 원인을 ‘반성’보다는 ‘남 탓’으로 돌리는 사고회로가 먼저 발동되었다. 결과는 꽤 담백하면서도 보편적인 모양새로 표출된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자판기의 윗부분을 주먹으로 탕! 탕! 쳐댔고 그래도 반응이 없자 걷어차려고 발을 약간 빼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의 이성이 간신히 더 이상의 추태를 방지했다.



블랙커피는 400원이었는데 남자는 300원만 넣었던 것이다. 물론 그걸 알아챈 남자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무슨 자판기 커피가 이리 비싸’ 등의 말을 중얼거리며 바지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리곤 100원 더 넣는 순간 옆에서 부산스런 발소리가 들려옴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박 코치님! 여기 있었군요. 갑자기 말도 없이 나가셔서 한참 찾았습니다, 휴우….”



자판기 앞의 남자는 자신을 찾으러 여기저기 뛰어다닌 흔적이 이마에 베인 땀으로 증명되는 또다른 남자를 돌아보았다. 박 코치는 자신의 동료를 보게 되자 다시금 일에 관한 스트레스가 머릿속에 채워지는 것을 느끼며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 사실 프로게이머 구단 중 하나인 ‘메지즈’ 팀의 코치인 그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통’의 프로게이머 구단이라면 신경도 안 쓸 아마추어 경기에까지 물색할 것을 상사에게서 지시받았기 때문이었다.



프로게이머란 직업이 활성화된지는 수 년이 지났고 급부상한 직종인만큼 레드오션을 방불케 할 정도로 그럴듯한 인재는 넘쳐났다. 때문에 정형화된 드래프트에서만 뽑아도 적당한 수익을 올려줄 선수는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감독은 자신의 맡은 일에 차분하면서도 열정적인 성실함을 갖추고있는 인물이었다는 게 문제다. 덕분에 그 밑으로 박 코치나 스탭들은 감독의 꼼꼼함을 저주하며 인터넷 한 구석의 기삿거리도 되지 않을 이런 아마추어 경기까지 관람하러 와야 했다.



‘까라면 까야지…. 하지만 전체 참여자 200명도 안 되는 PC방에서나 볼법한 경기까지 굳이 살펴볼 필요가 있나?’



물론 경기 참여자들이야 프로게이머로 등극할 기회가 찾아왔다며 박 코치를 가리키곤 수근수근 좋아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경기를 보지도 않고 있었다. 그저 내일에나 열릴 결승전이나 좀 관람하고 적당히 한두명정도 이름과 연락처만 적어갈 심산이었다. 매우 당연하게도 명단을 적어간 그 종이는 박 코치의 수당 쪽에 더 큰 기여를 할 것임이 불 보듯 뻔하다.



박 코치를 찾은 스탭원 또한 그의 고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근무태만에 관한 그 어떠한 말도 일절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모종의 전달사항을 간직하고 있었고, 어쩐지 긴박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박 코치가 스탭원의 내면을 알 리 없었기에 그는 태연하게 자판기가 조리한 커피를 꺼내들고 입가로 가져갔다. 꽤나 친절하게도 그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동전을 더 찾아봄으로써 동료의 몫까지 챙겨주는 미덕을 발휘하고 있었다.



“어째 용케도 찾았군. 어떤가, 자네도 커피 한잔 할텐가?”



“지금 여기서 한가롭게 커피 따위를 마실 때가 아닙니다, 선배님. 저희의 본분을 발휘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박 코치는 커피 종이컵을 한 손에 쥔 채 고개를 갸웃하며 ‘자네 언제부터 직무에 그렇게 성실한 태도를 보였지?’라고 묻는 듯한 시선을 보내었다. 그리고 박 코치에게 그런 이면의 인상을 심어준 스탭원은 이번엔 조금 침을 튀기면서까지 말을 이어갔다.



“경기장에서 난리가 났어요! 무명의 선수 하나가 웬만한 프로게이머급 우승 후보자까지 휩쓸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스탭원은 전달 사항을 알리는 도중에도 연신 그 무명의 선수 경기를 보고 싶다는 듯 안절부절 몇 발자국 물러났다. 그리고는 박 코치가 커피를 마저 다 마실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먼저 강당 쪽으로 달려갔다. 박 코치는 물끄러미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커피를 홀짝거리며 약간 빠른 걸음걸이로 자신도 경기장으로 걸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머릿속은 무명의 프로게이머급 선수에 대한 궁금증보다 그 스탭원에게 충고해줄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이래서 신입 스탭들은 문제라니까. 조금만 현란한 컨트롤을 보여줘도 대단한 프로게이머 하나 탄생한것처럼 호들갑을 떠니 말야. 이 바닥에 조금만 오래 있으면 날고 기는 준프로게이머들이 얼마나 널렸는지 깨달을 텐데.’



그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박 코치는 항상 예외적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반성을 해야만 했다. 물론 반성할만큼 심적 여유가 주어지지도 않았지만. 박 코치는 아까 그 스탭원이 말했던 무명의 선수가 여자였다는 점에서 일단 놀랐고, 그녀가 웬만한 연예인 못지 않을 세련된 미모를 가졌다는 점에서 두 번째로 놀랐고, 그녀가 보여주는 경기 내용에 차츰차츰 충격을 받았다.



선영은 여타 프로게이머들처럼 빠른 손놀림을 보여주진 않았다. 물론 해커의 경력을 간직한 손은 단축키를 찾아가는 데 익숙했지만 남성에 비해 반응 속도라든지 컨트롤 능력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작하는 그녀의 손놀림은 평균에서 약간 위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본래 천재적인 활동량을 갖는 그녀의 두뇌가 다른 면에서의 운용을 완벽하게 끌어내고 있었다.



선영의 건물 배치와 유닛 운용은 말 그대로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상대편이 어떤 전략을 펼치든 간에 그야말로 파고들 빈틈을 주지 않았다. 행여나 상대가 약간의 빈틈이라도 포착하고 찔러들어오면 정확한 계산을 통한 최소한의 병력으로 방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모은 병력들은 그동안의 잔방어나 견제 등에서 예상치 못한 기세를 몰고 상대의 진영을 휩쓸고 다녔다. 선영과 경기를 한 사람들은 훗날 한결같이 그녀의 플레이를 ‘믿을 수 없는 정갈한 솜씨’로 표현할 것이었다.



현재 선영은 그 날의 마지막 경기를 펼치고 있었고, 토너먼트식으로 승리하며 올라간 그녀는 내일의 결승전에 참여할 것이었다. 게다가 현재의 상대도 거의 선영에게 휘둘리다시피 하고 있었다. 상대의 20대 중반 남성은 이를 악물고 중장기병과 포병을 한데 뭉쳐 선영의 확장진지를 뚫어보려고 하고 있었다. 사실 뚫려도 거의 선영이 기선을 잡은 경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선영은 이미 ‘승리’의 목적에서 ‘보다 적은 피해’의 목적으로 넘어간 상태였고 상대의 노력을 애처로운 수준까지 차단해버리고 있었다. 상대가 대부분의 병력을 쏟아서 확장기지를 공격했지만 선영 쪽의 유닛 피해는 기본적인 ‘일꾼 몇 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의 본 병력, 즉 고급 중장기병들과 잘 쓰지 않는 궁기병까지 포함해 ‘카잔 전쟁’ 매니아가 본다면 예술적이라 표현할 만큼 깔끔한 일격으로 끝내버렸다. 어느 새 강당에 몇 겹으로 모여든 관중들이 환호성을 질렀고 아직 타인을 대하는 데 익숙지 않는 선영은 모자가 없음을 다시금 아쉬워하며 겸허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경기 진행자는 선영의 이름을 결승전 명단에 표기하곤 다음날의 방문 시간을 알려주었다.



선영은 자리에서 일어선 후 어깨에 가방을 걸치고 몇 걸음 걸어가, 잠시 자신과 경기를 펼쳤던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자칭타칭 프로게이머라고 불려지던(실제로 실력도 뛰어난 축에 속하는) 그 남자는 패배감에 사로잡혀 의자에 앉은 채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문득 자신의 시야에 여자의 구두가 들어왔음을 알아채고는 고개를 들었다. 선영이 바로 앞에 있었다. 그는 멍하니 자신과 대결했던 여자를 마주 올려다보며 기묘한 기분을 받았다. 어디 천사라도 내려왔나? 그리고 그의 손에 선물이라도 되는 듯 쥐어지는 약간 차가운 조그만 통.



남자는 그것이 아직 개봉하지 않은 젤리임을 깨닫고는 다시 멍청한 시선이 되어서 그녀를 재차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때쯤 선영은 이미 군중을 뚫고 강당을 걸어나가고 있었다. 미모의 ‘카잔 전쟁’ 여신을 방불케 하는 모습.



결승 일정이 주어진 내일까지 기다릴 것도 없었다. ‘메지즈’ 팀의 소속 박 코치는 노련한 선배답게 감탄의 공황에서 얼른 빠져나와 곁에 서있는 스탭원의 팔을 툭 건드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박이다’라는 표정만 짓고 있던 신입 스탭원은 그제서야 허둥지둥 스카웃 제의서 등을 확인했다. 그리곤 앞장서는 박 코치를 따라서 때아닌 들뜬 분위기에 젖어있는 강당을 조심스럽게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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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어떻게 하긴. 창오빠가 가르쳐준 대로 생각 없다고 했지」



「잘했어」



태환은 꽤 오랫동안 ‘카잔 전쟁’을 플레이해왔고, 또한 선영과 몇 번 맞붙어본 경험도 있는 만큼 그녀의 실력이 비범치 않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던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 선영의 실력이 프로게이머 구단 내에서 탐낼만한 수준이라는 점도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선영은 작은 경기부터 조금씩 경험을 쌓아가며 큰 경기에 도전할 생각이었기에, 오늘 그녀가 참가한 경기는 그야말로 조그만 규모였다. 하지만 꼼꼼한 태환은 그런 경기에서조차 프로게이머 구단의 감독이나 코치가 들러볼 경우를 배제하지 않고 미리 일러두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프로게이머 구단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면 절대 가입할 생각 없다고 잘라 말해. 넌 현재 그런 데서 얽매일만한 안정된 상태가 아니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지?」



「굳이 오빠 말 아니라도 전문직업으론 나도 못할 것 같아. 오늘 경기 뛰고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나 지금 팔이고 허리고 아파 죽겠단 말야」



태환은 ‘카잔 전쟁’ 대기실 채팅창에 떠오르는 그녀의 짜증섞인 귓속말을 보자 피식 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는 문득 커튼이 쳐진 방의 한쪽 창문가를 바라보았다. 본래가 어두침침한 방이었으나 이른 겨울에 찾아드는 빠른 밤은 인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태환은 오늘 꽤나 고생했을 그녀를 떠올리며 ‘수고했다. 푹 쉬고 내일 결승전에 대비해라’ 등의 일상적인 말을 타이핑해나갈 때쯤이었다.



문득 그는 모종의 확인을 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을 띄워보기로 했다. 그의 손가락이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하나의 질문을 채팅창에 입력한다.



「그런데 선영아. 이제 그만 슬슬 오빠를 믿을 때도 되지 않았니?」



「무슨 의미야, 그건?」



「그러니까… 보다 네 안위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연락처라도 공유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거야 나쁘진 않겠지. 그런데…」



선영은 ‘아직도 못 믿겠어’ 같은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태환에게 보낸 채팅귓속말은 태환이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다.



「난 사실 오빠가 누군지 아주 궁금해. 본래의 내 전 남친이기도 했을 테니. 그러니까 일단 만나보는 게 낫지 않을까? 어디 장**도 정해서 말야」



「그건 좀 곤란한데」



「왜? 창오빠는 이상하게 다른 데선 성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매너가 좋다가도 꼭 정체에 관해서는 시크릿 모드를 고수하더라?」



「안 될까?」



「기분 나쁘잖아. 얼굴도 모르는 남자 목소리를 사적으로 매번 들어야 한다면」



태환도 그녀의 심경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겐 개인적으로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고, 그것은 일반인이 보기엔 긍휼심보다는 경멸감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큰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가리켜서 ‘본인의 의지’가 박약한 탓을 한다. 불치병도 아닌,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을 극복해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본인의 의지’란 것 자체가 딱 거기까지밖에 미치지 못하는 병이라면….



태환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궤변일 것이다. 모든 것을 본질로 따져나간다면 이 세상에 분노해야 할 것은 무엇이 있겠으며, 슬프고 기뻐해야 할 것은 무엇이 있겠는가. 사람이란 건 결국 일정 선상에서 타협하고 지내야 활력을 얻고 쳇바퀴가 돌아가듯 살아가는 존재이다. 덧붙여서 태환은 언제까지고 자신의 문제를 그녀에게 드러내보이지 않을 수는 없겠다는 판단을 했다.



「히키코모리라고 아니?」



「히키코모리?」



「나는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심지어 담배조차도 사러갈 수 없어서 언제나 피붙이에게 의존하곤 하지. 집에서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는, 지독한 히키코모리야」



「어디 다치기라도 한 거야?」



선영은 아직 그가 무슨 병에 걸려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투였다.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예전 본래의 선영도 모른다는 얘긴데… 아니, 그건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본래의 선영이 알고 있었다고 해도 태환에 관한 기억을 지우려했다면 그런 부문까지 아예 싹 잊어버리려 했을 것이다. 사실 히키코모리라는 것은 아직 사회에 표면적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은, 근래의 젊은이들 층에서 이제 막 증가해가는 추세의 것이니까. 아마 나로 연상될만한 특수한 것 또한 기억에서 지워버렸겠지.



지극히 논리적인 관점에서 태환은 납득을 하고는 그녀에게 알기 쉽도록 설명의 타이핑을 길게 수행했다.



「신체적 결점이라기보다는 정신적 결점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할 질환이지. 집에만 틀어박혀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는 것 자체가 히키코모리의 증상이야.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거나 대인관계를 불편해하는 수준이 아냐. 기피하다못해 무서워지는 거지. 그래서 자신의 성역인 가장 안정된 ‘방’이란 공간에서 나가지 못해.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어. 학교 혹은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든가, 아주 혐오스러운 일을 당했다든가 혹은 사람이란 존재에 실망을 받았다든가. 나 같은 경우엔……」



다 비워진 젤리로 인해 빈 숟가락만 입에 물고 까딱거리며 태환의 이어질 말을 궁금해하던 선영. 그녀는 아무리 기다려도 더 이상 채팅귓속말이 올라오지 않자 자신 쪽에서 채팅을 입력해나갔다.



「특이한 병이군.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창오빠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태환은 문득 건조한 느낌을 받았다. 하긴 비단 그녀뿐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질환이 히키코모리일 테니. 오히려 그런 걸 본인 쪽에서 타인한테 얘기하는 것 자체가 꺼려질 수밖에 없는 행위이다. 물론 이 경우엔 손으로 타이핑하는 문자로의 전달 방식이긴 하지만.



태환은 더 이해하거나 생각하기도 귀찮다는 듯 넘겨버리는 선영의 말투를 탓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리고 선영은 그런 그의 마음가짐에 따른 선물이라도 되는 양 연이어서 채팅귓속말을 입력했다.



「하지만 그건 오빠 사정이고 나는 여전히 당신이란 존재를 신뢰할 수가 없어. 하지만 그간의 대화를 통해서 하나의 루트는 열어줄 수 있지. 지금 연락처를 보내줄게. 그러나 이건 내 핸드폰 번호는 아니야」



「그렇다면 누구…?」



선영은 그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거의 곧바로 대답을 타이핑해서 엔터를 눌렀다.



「김성진」



보지 않아도 모니터 너머 저 편에서 태환이 고개를 갸웃하는 게 느껴질 것 같다. 선영은 그렇게 생각하곤 빈 플라스틱 수저를 이빨로 조금씩 씹어보며 다음에 이어질 내용을 가만히 응시했다. 예상대로 얼마간 사이를 두고 태환의 꽤나 당황한 메시지가 띄워졌다.



「지금 널 맡고 있다는 그 남자야? 그의 연락처는 왜…」



「최소한 현재의 나보다는 창오빠와 연락하며 지내도 될지에 관해 판단하는 기준이 나을 테니까. 오빠가 먼저 성진이랑 연락하고 얘기해 봐. 그럼 녀석이 알아서 내게 어떻게 하라고 알려 주겠지」



태환은 성진이 선영과 동거를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녀와의 어떤 감정적 접점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물론 본래의 선영이 스스로 죽지 못하는 것이 그와 관련이 있다는 추측도 해보긴 했으나 이렇다할 근거가 없는, 말 그대로 추측에 불과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아직 학생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선영을 계속 돌보아줄 자금이라든지 시간적 여유가 적을 것이다. 따라서 태환이 김성진이란 남자와 통화를 하면 그가 선영의 행방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려줄 가능성은 높아보였다. 더군다나 그렇잖아도 언젠가 한번 기회가 되면 얘기를 나눠볼려고 마음먹은 점도 있었다.



그러나 태환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선영과 채팅을 하며 간만에 담배를 태워본다는 기분을 받으며 그것을 하나 피워 물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띄워보낸 채팅귓속말은, 앞서 들어맞았던 선영의 여러 예상들에 필적할 정도로 그녀를 의아하게 했다.



「그건 됐어, 선영아. 다음에 얘기하자」



「필요 없다고?」



「응」



간단한 답변. 뭐야, 어떤 방법을 써서든 나와 연락할 방법을 찾고 싶었던 것 아니었나? 이렇게 되자 선영은 거꾸로 자신이 태환에 대한 궁금증이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선영은 보다 직접적으로 닿아있는 현실 - 즉 내일의 결승전 - 에 관심이 치중되어 있었기에 이 이상 파고들기 귀찮아짐을 느꼈다. 그가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궁금하긴 했지만 현재의 선영에겐 별 의미가 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녀는 잘 자라는 작별인사나 간단히 하고 접속을 끊으려 했다.



그리고 그렇게 둘 사이를 연결하는 불규칙한 연락망 - 즉 ‘카잔 전쟁’의 대기실 - 이란 실이 끊어지기 직전, 태환은 그것을 슬쩍 더 연결해보기라도 하듯 메시지를 띄워올렸다.



「네가 정말로 나와 연락하며 지내야겠다고 생각됐을 때 직접 알려줘」



선영은 어이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 조건을 만족하지 않는 한 오빠한테 핸드폰 번호 따위를 알려줄 경우는 없을 거라고 봐. 이만 잘래」



「그럼 어쩔 수 없는 거고」



선영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주제에 여유있는 답변을 하는 그의 메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갑자기 욱하고 뭔가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재빠르게 타이핑을 했다.



「왜지? 오빠가 정말로 걱정하던 그녀 아니야? 비록 현재는 내가 대행하고 있지만 그래도 오빠가 보호해주고 싶었던 것 아니었어? 그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아내야 하는 것 아냐? 나… 난 사랑에 관해 잘 모르지만 그렇게 하는 게 틀리지는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그런데… 창오빠는 왜 그렇게 안 되면 말고 식으로 미적지근해? 내가 가능성을 다 알려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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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는 아주 불규칙합니다 ㅎㅎ 몇편 더 써놓고도 안 올릴 때도 있고 한번에 올릴 때도 있어요. 기준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벌써 40편 달성이군요. 원래는 50화 정도를 목표로 잡았었는데 당최 그 분량에 안 끝날 것 같습니다. 현재 생각해둔 시나리오로 예상해보자면 60~70화도 빠듯합니다….



결론은 더 길어질 거라는 것.(…) 이렇게 긴 소설을 써본 적이 없는데(소설 자체를 많이 써본 건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장편이 되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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