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바깥으로 향할 때 - 2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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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바깥으로 향할 때 - 29
물자를 가득 실은 커다란 트럭이 밤공기를 휙하고 가르며 편의점 문 앞에 정차했다. 부르르르릉, 덜컹.
“1900원이요… 아!”
손님의 계산을 수행하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채미선은 바깥의 그 소리에 반가운 탄성을 질렀다. 물건을 산 손님은 의아한 눈으로 그녀와 바깥의 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미선은 그런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산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계산대 안쪽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거울을 보며 머리와 옷매무새 등을 얼른 다듬은 그녀는 편의점 문을 활짝 열었다.
“성진 선배!”
“어이어이, 잘 근무하고 계셨습니까 공주님?”
재고 상자 서너 개를 한번에 안아서 들어오던 성진은 그녀를 보자마자 기운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미선은 그가 물건을 안쪽으로 운반하는 걸 도와주면서 살짝 눈을 흘겼다.
“뭐에요, 그 호칭은. 놀리는 것도 아니고….”
“대접받기 싫으십니까, 공주님? 아, 그럼 그냥 미선이라 할까?”
“아 몰라요. 그냥 선배 좋을 대로 불러요.”
‘싫지는 않은가 보네?’라고 반문하려던 성진은 그냥 말없이 웃어넘겨버리고는 재고상자들을 계산대 옆에다가 적당히 쌓아놓았다. 미선은 차트 종이를 가져와서 성진이 불러주는 대로 재고품들을 체크해나갔다. 행여나 잘못 체크할까봐 카운터에 엎어지듯 집중해서 적고 있는 그녀의 뒷머리를 내려다보며 성진은 그만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다음… 응? 끝이에요?”
더 이상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아 의아해진 미선은 고개를 들었고 성진과 눈이 마주치자 더 미심쩍은 표정이 되었다. 성진은 애써 웃음을 참느라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고, 그녀가 바라보자 얼른 시선을 외면했다. 가만히 그런 그를 올려다보면 미선은 순간 얼굴이 빨개지며 다시 차트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 뭐에요, 선배!”
“아니아니, 미안. 그냥 좀… 네가 너무 귀여워서.”
“빨리 남은 물품이나 마저 불러요.”
성진은 잠시 후 정신을 가다듬고 남은 재고품들을 불러주었고 미선은 귀까지 빨개진 채 겨우 체크를 끝마쳤다. 한껏 콩닥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긋 웃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다 됐어요.”
“머리, 위쪽으로 좀 더 올려 묶은 거 같다?”
“눈치챘어요? 히힛. 어때요? 좀 더 활발하게 보이죠?”
“그래. 좀 더 귀엽게 보인다.”
미선은 그렇게 말하며 돌아서는 성진을 마중이라도 하듯 뒤따라가며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쳇. 뭐에요 그거. 칭찬인지 뭔지 애매하게….”
“칭찬이야 임마. 그럼 돌아갈 때 데리러 올게. 이따 보자고.”
“예. 선배. 다녀오세요.”
‘어차피 난 혜진이처럼 스타일이 좋지도 않아요’라고 쏘아붙일까 하는 충동을 살짝 느낀 미선은 그냥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성진은 다른 편의점으로도 납품을 하기 위해 서둘러 트럭에 올라탔고, 마치 조용한 공기가 바뀐 듯 그렇게 들어왔던 납품 트럭은 부산스럽게 떠나갔다. 미선은 그 트럭을 가만히 바라보다 편의점 내부로 도로 들어와서 새로 온 물품들을 정리해나갔다.
재고 상자들을 정리해가는 미선의 손이 한 상자에서 멈칫하였다. 그녀의 입술이 조용히 미소지으면서 한 남자의 이름을 불러본다.
“김성진 오빠….”
오빠라니! 미선은 부끄러움과 어색함에 얼른 고개를 들어 편의점 입구를 살펴보았고, 아무도 없음에 안도하고는 총총히 물품들을 마저 정리했다.
겨울을 향해 달리는 늦가을의 밤공기는 차가웠다. 이젠 쌀쌀함이라고 표현하기도 부족할 듯한 그 공기를 느끼며 성진과 미선은 나란히 걸어갔다. 뜸해진 네온사인 대신 가로등이 조용하게 그들의 길을 밝히고 있었다. 미선은 조그만 백을 팔에 걸고는 두 손을 입 가까이 모아서 따뜻한 입김을 불어보았다.
“하-. 날씨가 많이 추워졌네요, 선배.”
“팔짱은 껴도 됩니다, 공주님.”
“아 진짜, 선배!”
미선은 주먹을 꼭 쥐고는 그의 옆 팔을 후려쳤다. 하지만 그 손에는 힘이 없었고, 성진은 킥킥 웃으면서 짐짓 시선을 딴 방향으로 향했다. 미선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재킷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있는 그의 한쪽 팔을 슬그머니 안았다. 성진은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지만 걸음걸이를 조금 늦추었고 미선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가만히 기대었다. 가로등의 불빛은 마치 한 쌍의 연인을 축복하기라도 하듯 길고 미려한 그림자를 그들의 뒤편에 장식해주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이어질듯한 일정하고 느릿한 걸음걸이. 그 호흡을 느끼는 것처럼 미선은 성진의 팔에서 한동안 말없이 기대어있다가 지나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근데 낮에 뭘 했어요, 선배?”
“음? 뭘 했다니?”
“문자로 보냈잖아요. 이 오빠는 오늘도 바쁘구나! …라고.”
성진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것처럼 미선은 손가락을 들면서 중성적인 음성을 내었다. 성진은 그랬었나? 하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보낸 문자함 확인을 해보았다. 그리곤 곧 고개를 끄덕인다.
“음. 이제 기억나네. 이 ‘선배님’은 오늘도 바쁘구나라고 했지만”
“아, 아무튼! 그래서 뭐 했어요? 선배.”
다시금 얼굴이 빨개지며 재촉하는 미선. 성진은 볼을 긁적이며 별 것 아니라는 투로 간단히 대답했다.
“과제.”
“학교 과제요?”
“응. 조별로 과제가 있어서 어제 카페에서 회의하고 오늘 종합적으로 정리한 후 살을 붙이고 발표 준비 끝낸 거야.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리더라고.”
“헤에, 성진 선배가 발표자에요?”
“엠티 못갔으니 그거라도 맡아서 해야지 뭐. 음…? 왜 그런 시선으로 보는 거야?”
성진은 무심코 대답하다가 바로 옆에서 어깨에 머리를 기댄 미선이 가만히 올려다보는 걸 느끼고는 물어보았다.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로 조용히 선배를 바라보던 그녀.
“으응, 아니에요. 왠지 멋있다… 랄까.”
성진은 그만 픽하고 웃었다.
“뭐가 멋있어?”
“발표 과제를 도맡아서 하는 거잖아요, 그거.”
“얘는 별 걸 다 멋있다고 하네. 할 걸 하는 것뿐인데. 아……! 너 혹시 범생도 아닌 녀석이 의외로 성실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 거지? 그래서….”
미선은 태연하게 눈을 살짝 감았다 뜨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성진은 곤혹스러운 듯 이마를 부여잡았다.
“아, 미선이. 너 그러는 거 아니다. 선배를 여자만 만나고 다니는 날라리로 알았단 말이지.”
“쿡쿡. 사실이 그렇지 않아요? 선배 주변에 은근 마음품고 있는 여자 많은 것 같던데.”
하지만 성진은 그 말엔 별로 웃지도 않고 슬쩍 하늘만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어쩐지 가볍게 넘기지 못하고 깊은 한숨을 간직하는 것처럼. 미선은 그런 선배의 옆얼굴을 아리송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다가 다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늦가을의 바람이 불면서 미선의 뒤로 묶은 머리칼을 살랑 스치고 지나간다. 그녀는 볼을 이리저리 부풀려보면서 생각에 잠기다가 나지막이 툭하고 내뱉었다.
“그냥 반 농담이에요, 선배. 사실 정말 꽤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언뜻 보기엔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학업에 충실하는 거잖아요 그거. 이렇게 놀기만 바쁜 주말에 일도 다니면서.”
“네가 정말 바쁜 애를 못만나봐서 그래. 그리고…… 딱히 책임감이라든지 학생의 본분을 다할 생각에서 하는 것도 아냐. 뭐 네가 알것도 아니겠지만 우리 집도 그다지 잘사는 집은 아니라서,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알아보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뿐. 학점 펑크내지 않고 교수님 눈밖에 나지 않아서 어느 기업 추천 하나라도 받아보려고 이 짓을 하는 거지.”
하지만 미선은 그의 말에 동요하는 기색 따윈 전혀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성진은 어쩐지 자신의 팔짱을 끼고 있는 미선의 힘이 더 강해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뭐야, 이 녀석의 속도 참으로 알 수가 없단 말야.
미선은 마치 추위를 타는 것처럼 그의 팔을 꼭 끌어안고 몇걸음 더 걸어가더니 생긋 웃으며 다시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성진의 마음을 꾹꾹 누르는 듯한 부드러운 음성이 흘러나온다.
“선배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네요.”
“모르다니, 뭘?”
“전 바로 그런 선배의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한 거에요. 포림대, 으음…. 뭐 모든 학생들이 그렇단 것은 아니지만 선배처럼 이십 대 초반에 현실적인 앞일을 대비하고 성실하게 보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하거든요. 대부분이 주어진 자유를 만끽하고 이것저것 체험하며 보내기도 바쁜 시기일 터인데. 선배는 분명 사회생활도 안정적으로 잘하실 거에요.”
“어이어이, 너무 띄우는 거 아냐? 나도 놀러다니기 좋아하고 오늘처럼 과제로 종일 소비한 건 정말 몇 안 된다니까? 그리고 너 모르나 본데 내 나이에 벌써 사업하고 다니는 애들도 찾아보면 널렸어.”
“피, 칭찬해줘도 뭐라 하네. 흐음, 사업이라… 그런데 난 그런 남자들은 오히려 별로더라.”
성진은 그런 미선을 가만히 마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듯 시선을 다시 앞으로 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다. 아니지… 지금까지 만났던 여자들도 생각해보면 사실…. 여자를 많이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할지는 알 수 있어도, 속내가 어떠한지는 여전히 알기 어렵다. 남자와 여자는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란 게 이런 경우를 말하는 건가? 뭐 그건 비단 남녀로 나누어서 국한할 문제도 아니긴 하지만.
그리고 성진이 그런 문제로 머릿속을 헤집어나갈 때쯤에 건네어진 미선의 물음은 적절한 임팩트를 주기에 충분했다.
“선배는 좋아하는 사람이라든가 있어요?”
성진은 순간적인 기습을 당한 사람처럼 말을 더듬었다.
“어? 어… 글쎄.”
“있어요?”
“있다고랄까, 어떨까….”
“그럼 없는 거네.”
“아니, 없다고 하기엔 그렇고.”
“있어요?”
성진은 왜 그녀가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묻는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울컥하는 표정을 지으며 윽박지르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쏘아주려고 고개를 돌린 성진의 얼굴 바로 앞에는 두 눈을 또렷하게 뜬 채 밀착한 미선이 있었고, 그는 그만 할말을 잊은 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얘 오늘 왜이러지? 성진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하는 자신을 주체할 수 없어서 고개를 다시 회피했다.
미선은 그런 선배의 반응에 킥하고 웃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화의 주도권을 이끌어나갔다.
“흐음. 그럼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정돈 있다고 결론을 내죠. 그런데 선배.”
순진무구한 얼굴을 하면서도 가끔씩 너무 날카로운 면이 있는 후배라고 생각하며 성진은 일부러 건조하게 대답했다.
“왜?”
“친구도 애인도 아닌 사이로 애매한 관계를 지속시키는 건 상대와 자신에게 달콤한 설렘을 제공하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죠. 하지만 그 달콤함에 너무 안주해있으면 좋은 결과는 나오기 힘들 거에요. 사람의 마음이란 건, 특히 남녀관계에서는 설렘이란 선물이 커질수록 그 선물상자 속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받는 상처 또한 커질 테니까요.”
그럴 듯한 얘기긴 했지만 도대체 왜 미선이 그런 얘길 자신한테 하는지 성진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 또한 곱씹어볼 겨를을 그녀는 별로 제공해주지 않았다. 미선은 갑자기 성진의 팔을 풀더니 앞쪽으로 몇걸음 총총총 앞서나간 것이다. 성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비스듬히 내리비치는 가로등 아래에서 그녀는 고개를 반쯤 돌려 눈동자를 뒤로 해 성진을 마주보았다.
“저도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표현할 정도의 감정이 지금 깃들어있는 상태에요.”
“…그게 누군데?”
“흐음, 글쎄요. 누구일까요?”
“뭐야, 잔뜩 듣도록 해놓고 사람 긴장시키게.”
“선배도 제대로 대답 안 했잖아요. 후후훗. 복수에요, 이건.”
그리곤 뭐가 그리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무대 위를 거닐 듯 몸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녀는 현재 밝은색 미니원피스에 검은 스타킹, 부츠를 신고 있었고 롱가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뒷짐진 자세로 조그만 백을 들고 돌고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는 착각을 일게 한다. 성진은 몇 걸음 뒤에서 그런 미선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터뜨리다 발걸음을 멈추었다. 두 손을 재킷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로 제자리에 서서 미선의 이름을 부르는 성진.
“예?”
“다 왔다. 여기 너희 집 대문이잖아.”
“아! 그렇네요.”
미선의 집은 담으로 둘러싸인 주택이었고 그들은 대문 앞에 서있었다.
“정신 좀 차려 임마. 어떻게 자기 집 앞을 그냥 지나치려 하냐?”
하지만 미선은 그의 말에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슬쩍 미소짓고는 통통 뛰듯 그에게로 다시 다가왔다. 성진이 작별 인사라도 하려나 하고 관망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열고는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었다. 성진은 그 물체가 무엇인지를 곧 알아챘고 의문 섞인 음성을 내뱉을 때쯤.
“목도리?”
차가운 밤공기가 목에서 사그라들듯, 미선은 베이지색 목도리를 살며시 선배의 목에 둘러주었다. 별 거 아닌 동작이긴 했지만 성진은 어쩐지 그녀의 손이 제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고, 어느새 목도리는 그의 목에 휘감겨있었다.
“이건….”
“흑기사에게 하사하는 답! 례! 낮의 문자마냥.”
사양할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멘트를 형성하는 그녀의 모습에 성진은 그만 또한번 웃고 말았다. 미선은 다시 가방을 뒷짐져 들고선 마주 헤헤 웃었고, 성진은 자신의 목에 둘러진 목도리를 매만져보았다. 부드러운 재질의 따뜻한 감촉이다.
“산 거야?”
“별로 안 비싸요. 근데 감촉 좋죠, 선배? 이래봬도 고르는 데 꽤 신경 썼거든요.”
하지만 성진은 어쩐지 그 감촉보다는 그녀가 자신을 위해 마련해주었다는 사실로 인해 더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 기분을 받았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애틋하고 따스한 느낌이 피어올랐다. 이런 상황이 아니면 느낄 수 없을 것만 같은 매우 특별한 감정. 그래서 성진은 잠시 고맙다는 말도 잊은 채 자신의 목에 매어진 목도리 한쪽을 들어서 관찰하듯 바라보고만 있었다.
“선배! 그럼 내일 봐요. 우리, 내일도 근무니까.”
한 손을 흔들며 미소 가득한 얼굴로 대문 앞을 향해 걸어가는 미선. 성진은 그제서야 목도리에서 손을 떼고는 그녀를 마주보았다. 하지만 성진은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대신 그는 나지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미선아.”
“네?”
그녀는 대문 손잡이까지 다가갔다 멈칫하곤 뒤돌아보았고, 성진은 슬쩍 그녀의 담 너머 주택을 바라보았다. 불이 켜져있었고 아마 그녀의 부모님이 아직 주무시지 않고 있다는 걸 짐작하고는 넌지시 물어보았다.
“지금 곧바로 들어가봐야 해?”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왜요, 선배?”
성진은 대답 대신 한 손을 들어서 이리로 와보라는 손짓을 했다. 미선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알면서도 동그래진 눈으로 자신을 가리켰고, 성진은 피식 웃으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선은 다시 선배에게 총총걸음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성진은 그녀가 앞까지 오기도 전에 몇 걸음 더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미선은 그가 담 모퉁이 너머로 가는 것을 보고는 의아해진 표정으로 따라갔다.
“선배. 어딜 가는 거에요? 왜 이런 으슥한 곳으로….”
하지만 그녀가 선배의 모습을 쫓느라 모퉁이를 돌아설 때쯤 그의 한 손이 미선의 팔을 붙잡아 당겼다. 미선은 깜짝 놀라며 비명을 삼켰고 바로 그 순간 성진은 자신보다 키가 꽤 작은 그녀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술에 키스를 했다.
“합…!”
“…….”
놀라움과 당황함으로 몸이 굳는 미선. 하지만 성진은 그녀가 고개를 돌리지 못하도록 머리를 붙잡았고, 그로 인해 성진의 입술은 미선의 입술에 꼬옥 맞대어진 채 한동안의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정지한 듯한 충격이 그녀를 감싸 쥐었지만 미선은 몸이 굳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친다거나 저항할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약간 건조하면서도 마음이 담겨있는 듯한 그의 입술 느낌이 뇌리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성진은 한 손으론 그녀를 끌어안듯이 허리를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론 그녀의 머리를 살며시 붙잡은 채 입술을 조금씩 움직였다. 미선의 팔이 스르르 올라갔지만 그것은 그를 밀어내려는 동작이 아닌 끌어안는 형태를 띠고 있었고, 그에 따라 그녀 머리를 붙잡던 성진의 손은 점차 내려와서 그녀 어깨에 얹히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오히려 그들의 따뜻함을 더욱 빛나게 하듯, 몽환적인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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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 편! 미선 편! でも, 별로 낭만적인 분위기로 갈 생각은 없습니다.(…) 어차피 이 소설의 결말은 상당한 반전을 염두에 두고 있으므로… 랄까, 확실히 50화 내로 끝날 수가 없겠네요. 다음 회가 벌써 30화라니.
어쨌거나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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